모험이 좋은 사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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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win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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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8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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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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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DUMMY

투박하지만 잘 깔린 돌길.

이곳저곳 부서져 수리한 흔적이 역력하지만 나름 알록달록하게 꾸미려 노력한 벽돌집.

왁자지껄 떠드는 인파.

부지런히 짐을 옮기는 수레와 짐꾼들......


카트라그라는 이름의 이 도시는 옛 모습을 보전한 유럽 도시와 비슷한 면모가 있었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걷던 마빈은 도시를 관통하는 강가에 주저앉았다.


‘와......’


물이라고는 마을 근처 작은 시냇물이나 계곡물 정도밖에 본 적 없는 시골 소년에게 이런 다량의 물이 흐르는 큰 강이라는 건 생소한 지형이었다.


전생에 본 큰 강이 있긴 했지만, 너무 오래 전이라 빛바랜 사진처럼 된 지 오래.


찰랑이는 물결, 이따금씩 물고기가 수면을 건드리는지 퐁하고 솟아오르는 물방울, 강가에서 생기는 파문과 그걸 집어삼키는 물의 흐름.


“......”


마빈은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을 꼬물거렸다.

손가락들의 자그마한 움직임은 어쩐지 지금 바라보고 있는 다양한 형상의 물의 움직임을 닮아 있었다.


물결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스스로를 잠시 잊고 있던 마빈의 귓가에 웅얼대는 혀 꼬인 소리가 들려왔다.


“으어~ 빙비이잉, 도는, 구나으아아......”


작은 시냇물을 건너는 돌다리 밑에 드러누운 늙은 취객 하나.


마빈은 얼른 다가가 그를 흔들었다.

빌렛힐에서 겨울날에 술을 먹고 뻗었다가 얼어 죽은 사람을 봤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일어나세요. 추운 데서 자면 큰일 나요. 할아버지?”

“시끄러으엉...... 아드라아아, 우리 손주야아, 보구십다아아으 끄윽.”


돌다리 밑의 그늘진 곳에 드러누운 노인은 코가 빨개진 채로 잠꼬대만 했다. 마빈은 눈가에 흘러내린 눈물자국이 선명한 노인을 흔들어 보았지만 일어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가지?’


마빈은 아직 숙소도 안 잡은 떠돌이 신세다. 빌렛힐에서야 누가 어디 사는지 다 아니 바로 데려다줄 수 있지만......


생소한 길거리의 모습에 마빈은 머리만 긁적였다.


경찰의 역할을 하는 경비가 있긴 하겠다만, 거기가 전생의 경찰처럼 취객을 고이 맡았다가 가족에게 인계할 지는 미지수였다.


이곳에 대해 뭐 아는 게 있어야지.


‘가만히 두긴 그러니까 체온도 나눠줄 겸 업고 다니면 아는 사람이 알아보겠지?’


끙차.


으음. 다리에 느껴지는 이 중량감.


마빈은 배낭을 앞에 메고 뒤에는 술 취한 노인을 업은 채 산책도 할 겸 강가를 걸었다.


짹짹짹


참새 몇 마리가 포르르 날아와 마빈의 주변을 날아다녔다. 마빈은 빙긋 웃으면서 무의식적으로 참새의 뒤를 쫓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이 거기!”


덩치 크고 험상궂게 생겼지만 묘하게 순박한 눈을 가진 이들이 허겁지겁 뛰어왔다.


“무슨 일인가요?”

“그, 등 뒤에. 얼굴 좀 보자.”


마빈은 살짝 몸을 틀어 노인의 얼굴을 보여 주었다.


“후. 다행이다. 술 취해서 또 어디 계신가 했더니만.”

“지인이신가요?”

“맞아, 우린 민물장어파 사람이야.”

“그게 뭔데요?”

“어......”


마치 조폭 같은 생김새에 소속도 수상한 사내는 마빈을 슥 훑어보았다.


“여기 처음 와보냐? 이 도시.”

“네.”

“설명하기엔 긴데, 어부 조합 같은 거야. 네가 업고 있는 제프 어르신은 물길을 총괄하는 큰 상단의 주인 분이시고.”


제프의 상단과 이곳 어부 조합인 민물장어파는 서로 상부상조하고 있으며, 눈앞의 사내들은 술에 취해 자주 돌아다니는 이 노인을 옆에서 보조해주고 있는 사람들이란다.


“잠깐 한눈 판 사이에 어디로 가셨나 했는데. 이렇게 찾아주니 고맙다.”

“뭘요. 그럼 어디로 가면 될까요?”


큰 상단의 주인 분이라니까, 돈 많은 사람의 집구경을 하게 되지 않을까?


“아, 업고 가려고? 괜찮아 들것에 눕히면......”

“저, 형님. 실수로 안 갖고 왔는데요.”

“어이고, 이 칠칠맞은 놈들. 어쩔 수 없구만. 마음 같아선 내가 업고 싶은데 하필 내가 오늘 상자 옮기다가 허리를 좀 삐끗한 바람에....,. 너희들은 이만 가서 마저 할 일 해. 내가 안내할게.”

“예, 형님!”


다른 남자들이 흩어지고, 후버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가 앞장섰다.


그가 향한 곳은 으리으리한 저택이었다.

이 할아버지, 역시 부자였구나!


“그러고 보니 네 이름은 뭐니?”

“마빈이요,”

“그래 마빈. 이분이 자주 이렇게 취해서 돌아다니시는 분이라 우리가 늘 붙어 다니거든. 그런데 하필 오늘 담당한 놈들이 한눈을 팔았지 뭐야. 날도 추워진 상황에 뭔 일 생기지 않았나 걱정했는데. 어르신을 챙겨줘서 정말 고맙다.”


마빈은 저택에서 나온 하인들에게 제프를 넘겨주었다.


주인이 아직도 인사불성인 상태에서 감히 집구경을 하겠다 할 순 없어서 아쉽지만 다음 기회를 노리기로 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고 하니, 만약 일거리가 필요하면 선착장에서 내 이름 대고 찾아와. 얼마든지 소개해 주마. 아니면 나중에 여기 다시 와서 내 이름 대고 어르신 만나도 되고. 사례는 충분히 해주실 거야.”

“네! 나중에 또 봐요 아저씨!”


마빈이 꾸벅 인사하고 가벼운 걸음걸이로 멀어져 갔다. 흥얼거리는 콧노래가 좀 더 높아져 있었다.


만남이란 건 늘 새롭고 기분 좋은 일이다.


거기에 뿌듯한 선행까지 더해졌으니, 마빈의 발걸음은 한결 더 가벼워졌다.




***




“으음......”


마빈이 업어온 노인, 제프의 정신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뺨이 꿈틀거리며 그가 서서히 눈을 떴다.


“......”


익숙한 천장과 등을 받치는 부드러운 침대.

자신의 방이었다.


끼익


문을 열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단정한 옷차림의 사내.


상단의 부단주였다.


“일어나셨습니까.”

“어. 그래......”


제프를 바라보는 부단주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제프의 아들 내외와 손자가 사고로 모조리 세상을 떠난 뒤, 공허해진 가슴을 채우기 위해 제프는 늘 술을 찾곤 했다.


모든 걸 내팽개친 채로 생기를 잃어버린 지도 어언 십 년.


그는 만취했다가 도로 깨면 한결같은 반응을 보였다.


악몽을 꿨다며 오만상을 찌푸리면서 평소의 성격과는 다르게 아무에게나 성질을 내는 거였다.


“오늘은 악몽을 꾸시지 않은 겁니까?”

“......그러게나 말이야. 참. 신기하지.”


제프는 물주전자에서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고는 푸하 숨을 내뱉었다.


컴컴한 바닷속에서 아들과 며느리와 손주가 해초에 휘감긴 채 자신을 바라보며 입을 쩍 벌리고 버둥거리는 끔찍한 악몽.


그러나 오늘은 그 새카만 심해 대신 다른 것이 꿈에 나왔다.


제프는 물주전자를 잡은 탓에 쇠비린내가 나는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고생이 많네 부단주. 못난 늙은이 수발 드느라.”

“아닙니다. 단주님 덕에 산 목숨인데 뭐가 힘들겠습니까. 그저 단주님이 얼른 상처를 딛고 일어나시길 바랄 뿐이죠.”


무려 강 하나를 장악하고 몇 개에 달하는 도시의 목숨줄을 쥘 정도로 크게 키운 상단이다.


자신이 주정뱅이로 전락한 이후에도 용케 말아먹지 않고 현상유지를 하는 것만 해도 얼마나 고맙고 미안한지.


제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야지.”


늘 그렇게 말하면서 마음을 다잡지만, 얼마 가지 못해 현실의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또다시 술병을 입에 가져가는 게 반복되었다.


이는 단순한 의지의 문제를 벗어나, 사람을 이루는 근본적인 무언가가 망가졌다고 봐야 했다.


하지만......


‘신기하구나.’


지금은 그러고 싶은 생각이 정말로 밀알 한 톨 조차 남지 않고 싹 사라져 있었다. 술이라는 걸 입술에 대본 적 없는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처음으로 악몽을 꾸지 않아서일까?

왠진 모르겠지만 삐걱대는 관절도 덜 아프고 술로 축난 몸도 오늘따라 가뿐했다.


‘그 꿈......’


누군가가 자신을 업고 걷는 꿈이었다.


마치 아기가 되어 어머니에 품에 안긴 것만 같은 따스한 온기가 등판에서 가슴 속으로 전해지는 듯했지.


그 훈훈한 감각은 상실로 인해 생긴 가슴 속의 구멍을 채워주었다.


“이제 술은 끊어야겠어.”

“정말이십니까?”


그동안 힘을 내겠단 말은 해도 술을 끊는다는 말은 한 마디도 한 적 없었다. 제프는 거짓으로 다짐하지 않는 인물이었으니까.


“그래. 죽은 아들 녀석도 내가 이러길 바라진 않을 거야.”

“그 의지, 오랫동안 유지되길 바라겠습니다.”

“당연하지. 내가 이런 걸로 허세 떠는 늙은이는 아니잖아. 헌데, 오늘 내가 어떻게 여기로 왔지? 또 민물장어 애들이 들것에 실어왔어?”

“아 그건 아니고, 후버 씨랑 같이 온 한 청년이 업어왔습니다.”

“업어와?”


예전에 쓰러진 제프를 업었다가 업은 사람이 넘어지는 바람에 크게 다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제프를 살피는 민물장어파 조직원들은 들것을 휴대하고 다녔다.


‘내가 그렇게 사람의 온기가 고팠던 건가.’


낯선 이에게 업힌 게 좋은 꿈을 꿀 정도로 편안하게 느꼈다니.


“그 청년 어디 사는지 알 수 있겠니?”

“갓 도시에 들어온 사람이랍니다. 근시일 내에 떠나진 않을 거 같아서 후버 씨에게 일거리를 구하러 찾아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 그럼 후버한테 말해둬. 그 청년이 오면 바로 나한테 데려오라고. 얼굴도 보고 감사도 하게 말이야.”

“알겠습니다.”


제프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역시 평소보다 몸이 가벼웠다. 정말로 술에 절어버리기 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그동안 고생했다. 이제 내 책임을 다해야지.”

“예 알겠습니다. 즉시 그동안의 장부와 보고서를 싹 다 가져오겠습니다.”

“허허, 그래.”


부단주가 환해진 얼굴로 방을 뛰쳐나갔다.

내일 아침쯤이면 상단 사람들이 모조리 달려와 제프의 복귀를 축하하리라.


“새로 태어난 거 같구나.”


창밖은 어두워지고 있었지만, 제프의 마음속에서는 반대로 새로운 삶의 불길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




어느덧 날이 저물었다.


큰 길을 중심으로 도시 이곳저곳을 탐방했지만 기분이 좋아서인지 마빈은 아직도 기운이 남아돌았다.


그렇지만 내일을 위해서라도 슬슬 잘 곳을 찾아야 했다.


쌀쌀해진 공기 속에서 마빈의 선택은 결국 노숙이었다.


하도 노숙을 해서 오히려 더 편했던 것도 있고, 가죽을 판 돈은 허리춤에 덜렁거리는 검으로 대체된 탓이었다.


‘나중에 돈 많이 벌면 더 좋은 거 사야지.’


싸구려에 불과했지만, 왼쪽 허리춤에서 느껴지는 기분 좋은 묵직함은 잠자리의 불편함과 추위를 잊게 해주었다.


마빈은 담요 대용으로 쓰려고 유일하게 팔지 않은 회색 늑대 가죽을 이불처럼 덮고 땅에 누웠다.


“이봐, 딴 데 가서 자. 여기 간판 안 보여?”


누군가의 핀잔에, 건물 입구에서 흘러나오는 온기에 의지하려 했던 마빈이 머쓱한 표정으로 일어났다.


“죄송합니다.”

“여긴 여관이야. 그 앞에 거지...... 는 아닌 것 같지만 노숙하는 사람이 있으면 보기 좋지 않아.”

“죄송합니다. 돈이 없어서......”


여관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는 마빈의 행색을 쭉 보고 말했다.


“혹시 사냥꾼인가?”

“네.”

“씁, 잠깐만 기다려 봐.”


그는 잠시 안에 들어갔다 나왔다.


“방은 내줄 수 없지만 저기 1층 구석에 자리 잡을 순 있게 해주지.”


그는 부엌에서 흘러나오는 열기와 사람들의 온기에 훈훈한 여관 홀을 가리켰다.


“대신 여기 일을 조금 돕든가, 산짐승을 잡아줬으면 좋겠어.”


이런 제안을 하는 이유는, 이 여관에 고기를 대주는 푸줏간에 고용된 사냥꾼이 산행 중에 다리를 다쳐서 고기 공급이 끊긴 상태였기 때문.


물론 도시에 가축을 키우는 집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그런 데는 이미 다른 곳과 계약을 맺어서 여유가 없었다.


동물들이 겨울잠 준비를 하느라 뜸해지기 시작하는 이 시기에 충분히 고기를 준비해놓지 못하면 겨울 내내 스튜는커녕 스프도 간신히 내놓게 되리라.


“얼굴 보니 내 자식보다도 어려 보이는데 찬바람 맞게 두기도 좀 그래서.”

“감사합니다!”


참 다행스럽게도, 도시 인심이 아주 박하지는 않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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