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이 좋은 사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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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win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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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8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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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6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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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DUMMY

힘겨운 일과를 끝내고 온 이들은 저녁만 되면 피로와 짜증으로 가득 차곤 한다.


하루에 쌓인 노고를 푸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대부분은 비슷한 수법을 선택한다.


먹을 것과 술. 그리고 대화.


그것들이 모두 완비된 술집 겸 여관은 늘 사람으로 가득했다.


“앗, 맥주 세 잔이요? 알겠습니다.”


일이 얼마나 힘들었니 상관이 얼마나 개같니 등으로 경쟁을 하며 떠드는 사람들 사이로, 웬 늑대가죽을 망토처럼 걸치고 다니는 별난 소년이 있었다.


“저건 누구야?”

“요 앞에서 노숙하려던 앤데, 잠시 묵어가는 대신 일 시키는 거야.”

“사냥꾼 같은데 여관 일을 시킨다고?”

“짐승 잡아서 숙박비 내도 된다 했는데 그냥 해본대서.”

“하긴, 추울 때 사냥하기는 힘드니까.”


여관 주인과 그의 친구가 보는 방향에는 헤실거리면서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나르는 마빈이 있었다.


당장 산으로 달려갈 법한 복장의 사람이 접대를 하는 별난 모습.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들이 촌티 풀풀 풍기는 이방인을 훑고 지나갔다.


저 사람은 무슨 이유로 상경했고 왜 저런 복장으로 여기서 일을 하는 걸까?


‘히히 재밌다.’


마치 접객을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마빈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전생에는 많은 것들이 부러웠지만, 개중에서 조금 더 부러웠던 것이 있었다. 바로 종업원 등의 서비스직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의 주문을 기억하고, 바쁘게 손과 발을 놀리고, 음식이 쏟아지지 않게 나르는 행동이 어찌나 자유로워 보이던지.


손님들은 갑자기 생겨난 새 종업원에 낯설어하다가 금방 적응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생글거리는 종업원에게 눈살을 찌푸릴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밤이 조금씩 무르익어갈 무렵.


덜컹


새로운 손님이 여관으로 들어왔다.


“......북부인?”




***




새 손님의 등장 직후, 여관 홀의 들떠있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홀을 가득 채우던 난잡한 소란과 즐거움의 굴곡은 빠르게 침묵으로 메워졌다.


덥수룩한 수염까지는 그러려니 하는데, 머리와 수염을 길러 한데 땋기까지 하는 건 전형적인 북부 야만인들의 풍습이다.


카트라그로 오면서 만난 상인 무리에서도 보았듯, 제국인은 북부인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제국을 침탈한 야만인에게 큰 피해를 본 윗세대에게서 험한 말만 듣고 자라온 현 세대다.


‘참나. 야만인이 제국 남부까지 기어들어와?’

‘북부인이 강도 비율이 그렇게 높다던데.’


마빈을 향하던 호기심 가득한 시선들은 하나둘씩 껄끄러운 짜증으로 점철되며 북부인들에게 화살을 쏘아댔다.


“앗, 데릭손 아저씨. 안 떠났나 봐요?”

“아아. 배 시간이 남아서.”


편견 없는 마빈만이 그들을 반겼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도시 안인데도 완전무장을 하고 있는 모습과, 투구 속에서 느껴지는 싸늘한 시선이 마빈의 머릿속에 경종을 울렸다.


“여기 취직한 건가?”

“그건 아니고 숙식만 잠깐 해결할......”


마빈은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데릭손의 허리춤에서 튀어나온 광채가 들고 있던 쟁반을 두 동강냈다. 쟁반에 있던 안주 접시가 바닥을 굴렀다.


데릭손이 혀를 찼다. 단칼에 죽여주려 했는데.


“빠르게 처리하고 튄다!”


데릭손의 일갈에 뒤편의 두 부하들이 손도끼를 뽑아들었다.


“아저씨 왜 그러시는 거예요?”


영문을 모르는 표정과는 달리, 마빈은 어느새 허리춤의 검을 뽑아 들곤 상대를 겨누고 있었다.


날카로운 검의 끝이 자신에게 향한 것만으로도 데릭손은 벌써부터 목이 서늘했다.


‘빌어먹을.’


오랜 용병 경험으로 생겨난 예민한 육감이 알려주고 있었다. 살고 싶으면 도망가라고.


그러나 그는 감을 애써 억눌렀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눈앞의 덜 큰 새끼 맹수를 죽여야 하는 의무가 있다. 자신의 마음에 쏙 든 녀석이지만 북부의 동포들보다 귀중하진 않으니까 말이다.


와장창창!


“비켜!”


거추장스러운 기물을 밀치며 두 명의 북부 전사들이 데릭손과 협공하려 들었다.


“이 미친 야만인 새끼들이 어디서 행패야!”

“도시 한복판에서 강도질이라니,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냐?”

“얼른 신고해. 뒷문으로!”


마침 홀에는 용병들이 있어서 그들이 데릭손의 두 부하들을 상대했다.


날붙이가 만들어내는 날카로운 소리와 이리저리 내던져지는 잡동사니 나뒹구는 소리들이 연거푸 홀을 울렸다.


“대체 왜 이러시는 건데요? 제가 뭐 잘못한 게 있나요?”


마빈은 의자와 탁자를 타넘으며 데릭손의 칼을 미꾸라지처럼 피해댔다. 눈 먼 칼에 다칠까 손님들이 벽에 붙어 웅크렸다.


“나도 이러고 싶진 않았어. 미안하지만 죽어줘야겠다.”

“......그래요?”


단순한 오해 같은 게 아니라 명확히 자신을 노리고 있단 걸 안 마빈의 눈이 변했다.


당황한 기색이 자취를 감추고 정련된 무감정이 파란 눈동자를 차갑게 얼렸다.




***




데릭손은 이유를 묻는 내 말에 이렇게 답했다.


“나도 이러고 싶진 않았어. 미안하지만 죽어줘야겠다.”


원치 않단 건 사실인지 다소 맥이 빠져 있지만 동시에 단단한 결심이 느껴지는 낮은 목소리였다.


직후 데릭손의 기세가 바뀌었다.


내가 독심술사는 아니지만 눈빛과 얼굴 근육의 변화로 대충이나마 상대의 감정을 파악할 수는 있다. 전생에 눈칫밥을 좀 많이 먹었어야지.


투구의 틈새로 눈이 보였다.


맹수의 본능 가득한 눈과는 다른, 남을 해치겠단 악의가 깃든 지성 있는 눈.


이유 없는 혐오 가득한 눈빛은 전생에서부터 많이 겪은 바 있지만, 명백한 살심이 더해진 걸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러나 두렵진 않았다.


현생의 내 몸이 가진 독특한 기질 때문일까.

두려움보단 호승심이 끓어올랐고 머리는 겨울날의 찬바람을 들이마신 것처럼 맑아졌다.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어떻게 하면 앞으로 뻗어 나올 저 날붙이를 피하면서 몸을 움직여 상대를 제압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실타래처럼 술술 풀려나왔다.


머릿속을 메운 실타래는 삽시간에 저절로 비단처럼 촘촘하게 짜이며 쫙 펼쳐졌다.


비단폭에는 효율적이고 간결한 싸움 방식들이 그러져 있었다. 벌써부터 온몸 곳곳의 근육이 당장이라도 질주하고 싶다며 움츠러들었다.


‘신기하네.’


이게 데릭손이 말해준 타고난 싸움꾼이라는 건가? 대련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


머리에 열기가 올라서인지, 눈앞의 이 사람을 죽인다고 한들 장작을 패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을 것만 같았다.


‘살인이라.’


전생의 기억과 도덕관념을 가지고는 있으나 거기에 얽매이진 않을 것이다.


왜냐면 지금의 나는 지구가 아니라 이 세상의 사람이니까.


두 다리가 온전하고 싸움을 즐기는 이 몸과 볼거리 가득한 이 세상에서의 삶에 충실할 것이다.


그래.


폭력과 살인이 허용되는 세상이라면.

기꺼이 어울리며 살아주마.


“......그래요?”


그렇게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




‘잘못하면 죽는다.’


마빈의 눈빛이 바뀌기 무섭게 데릭손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어린 시절 아무 짐승이나 잡아오라고 야밤의 산으로 내쫓겼을 때, 맹수의 안광을 목도한 것과 똑같은 섬뜩함이었다.


손에 금방 땀이 찼다. 자칫하면 검이 미끄러지지는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잡념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마빈의 손에서부터 뱀의 독니와도 같은 검이 발출되었다.


그 날카로운 첨단은 눈앞의 털북숭이 북부인이 휘두르는 검의 궤적을 간단히 타넘었다.


데릭손은 왼손으로 손도끼를 재빨리 뽑아 독니를 막았다.


마빈의 검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찰나의 주저도 없이 손도끼의 기역자 날과 자루 사이의 공간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챙!


용수철을 강하게 눌렀다가 뗀 것처럼 위로 튕겨지는 손목. 강인한 북부 용병의 손아귀에서 손도끼가 쑥 빠져 바닥을 나뒹굴었다.


자신이 알던 것보다 훨씬 빠르고 힘 있는 몸짓에 데릭손이 이를 악물었다.


‘이놈. 역시 대련은 진심이 아니었구나!’


데릭손이 허리를 우로 비틀며 마빈의 검을 피하고는 허벅지를 향해 검을 내뻗었다. 몸을 뒤로 확 내뺀 마빈이 거칠게 무기를 내리쳤다.


챙!


서로의 검이 십자를 그리기 무섭게, 소년의 검이 비탈길을 굴러가는 돌멩이처럼 빠르게 날을 타고 내려가 데릭손의 손을 베었다.


“......!”


중지와 약지 사이와 손목까지 쭉 베인 상처.

가죽 장갑 사이로 피가 철철 흘러나왔다.


그러나 이 정도의 상처는 북부인에게 어릴 적부터 익숙한 것. 데릭손은 숨을 가다듬곤 다시금 양손으로 검을 휘둘렀다.


몇 번의 빠른 검격이 교환되었다.


노련한 용병의 경험을 간직한 몸놀림이었지만, 빠르게 치고 빠지는 젊음으로 가득한 몸놀림을 따라잡지 못했다.


북부인의 검은 허무하게 빗나갔으며 큼지막한 손은 몇 번이고 괜한 허공만 움켜쥐었다.


데릭손의 이마에 송골송골 식은땀이 맺혔다.


‘대련하면서 이 녀석의 특징은 대충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오판이었다.


채채챙!


목을 향해 불쑥 들이미는 짐승의 발톱 내지 독니 같은 검.


대련에서 경험했듯, 농촌에서만 살다 막 세상으로 나온 녀석이라고는 전혀 믿을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탄탄한 체력과 덩치를 믿고 몸싸움을 걸어 승리를 따내던 데릭손의 수법은 잽싼 마빈에겐 통하지 않았다.


“세상에. 버티잖아?”

“사냥꾼치곤 칼 좀 쓰는데?”


탁자 아래 몸을 숨긴 손님들이 두런거리고 용병들과 데릭손의 부하들도 둘의 싸움을 힐끔거리느라 소강 상태인 가운데.


데릭손의 팔이 조금씩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싸움이 길어지자 살아온 세월이 슬슬 그의 팔다리를 무겁게 만든 것이다.


그가 크게 숨을 들이쉬는 순간.


생겨난 짧은 틈을 마빈의 칼끝이 파고들었다.

목표는 갑옷의 약점 중 하나인 겨드랑이!


‘망할, 이럴 줄 알았으면 이것저것 떠들어대지 말걸.’


북부인은 판금 갑옷을 만드는 방법을 몰라 사슬갑옷 내지 찰갑을 주로 쓰고 그마저도 손재주가 떨어져 관절 부위를 허술하게 만든다며 푸념을 한 게 떠올랐다.


그때 마빈의 얼굴을 향해 맥주잔이 날아왔다.


마빈은 몸을 살짝 비틀어 어깨로 잔을 받아냈다. 어깨를 감싼 가죽 망토의 늑대머리 부분이 잔을 튕겨냈다.


그러느라 검의 진행방향이 살짝 바뀌어 데릭손의 겨드랑이에 정통으로 박히는 대신 근처를 베고 지나갔다. 사슬 몇 개가 짤랑거리며 떨어져나갔다.


‘그 와중에도 칼 방향을 수정했어!’


사람과의 싸움 경험도 별로 없는 녀석이 돌발상황에서 이리 침착하다니. 더 많은 경험을 겪으면 후에 무슨 괴물이 될지 상상하기도 싫었다.


‘죽여야 한다.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북부인 동포의 미래를 위해서!


데릭손이 갑옷을 믿고 죽기살기로 달려들었다. 그러자 마빈이 몸만 살짝 틀어도 될 공격인데도 갑자기 크게 바닥을 굴러서 피했다.


“큭!”


데릭손이 오른편 겨드랑이에서 아찔한 통증을 느끼며 비틀거렸다. 거기엔 그가 놓쳤던 손도끼가 깊숙이 박혀 있었다.


바닥을 구르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손도끼를 주워 던진 것이다.


데릭손이 고함을 지르며 팔을 휘둘렀다.


새파란 눈동자의 소년은 상처 입은 짐승 같은 일격을 피하며 자신의 늑대가죽 망토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가죽으로 손을 감싸 자신을 베려다 실패해 힘을 잃은 칼날을 턱 잡았다.


데릭손이 그걸 떨쳐내기도 전에, 그의 오른손목을 하얀 선이 스쳐 지나갔다. 힘줄과 동맥이 끊기며 피가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마빈은 자신을 움켜쥐려는 왼손을 피해 데릭손의 오른팔을 축 삼아 빙글 돌아 등 쪽으로 바짝 붙었다.


얼른 떨쳐내려 했지만 겨드랑이에 꽂힌 도끼가 격통과 함께 움직임을 방해했다.


“큭!”


오금이 걷어차였다.

다리가 휘청이는 그 순간.


‘어, 어느새!’


서늘한 감각에 눈동자를 아래로 굴렸다.

데릭손의 목 아래에는 흉갑을 타고 올라온 소년의 칼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안 돼......!’


섬뜩한 강철 이빨은 기어이 북부인의 목에 깊숙이 틀어박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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