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이 좋은 사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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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win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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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8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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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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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DUMMY

날이 추워질수록 사람들은 밖으로 나오는 걸 꺼린다. 태양 역시 마찬가지였다.


겨울을 향해 나아갈수록 늦어지는 태양의 출근 시각. 그만큼 닭이 울어대는 시간도 느려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축 소리 대신 인간이 만들어낸 소리로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마빈이 살던 고향 마을의 경우엔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있는 사람들이 마을 중앙의 짤랑이는 종을 치는 걸로 사람들을 깨웠다.


하지만 이곳은 도시.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드넓은 장소에는 거기에 걸맞은 규모의 기상수단이 필요했다.


데엥-!

데엥-!


성당의 종탑에서 시작된 파동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금속의 육중한 울림은 다시금 시작되는 하루를 알리며 온 도시를 꿈결 속에서 건져냈다.


“어, 춥다. 잘 잤나?”

“새벽에 찬바람 들어와서 깼어. 어디가 또 무너졌나봐. 보수하기도 힘든데......”

“얼른 남부도 중앙에서 재건을 하겠다고 발표해야 되는데 말이야. 그래야 자재라도 빠르게 들어올 텐데 말이지.”


입김을 내뿜으며 사람들이 거리로 하나둘 나와 서성거렸다.


덜 깬 머리를 차가운 공기로 일깨우며 멍하니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아침부터 팔팔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이들도 있었다.


도시의 중앙 지역에 위치한 경비병 숙소에서도 누군가가 나왔다.


“밤 동안 고생 많았다.”

“뭘요. 당연히 해야 하는 절차인데요.”


경비들이 웃으며 마빈을 배웅했다.


밤중에 있었던 북부인 강도 습격 사건.

강도를 살해한 장본인인 마빈은 경비대로 조사를 위해 불려갔다.


정당방위라지만 살인은 살인.


몰려든 피난민으로 인해 한 차례 홍역을 앓았고 지금도 빈민으로 와글대는 도시다. 그나마 이 정도라도 치안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빡빡한 규율 덕이라고 봐도 되었다.


-자그마한 틈이 큰 둑을 무너뜨리는 법이다. 결코 융통성을 보이지 마라!


뛰어난 지도력으로 대재앙으로부터 도시를 지킨 시장의 명령은 지엄했다.


-겁먹지 마. 어차피 증언은 충분하니까 벌 받을 일은 없어.

-맞아. 엄격하되 억울한 사람은 없게 하란 시장님의 명이 있으니까.


그렇다고 낙후된 문명에 응당 따라올 법한 강압적이고 부당한 취조는 없었다.


애초에 여관 손님들에게서 확실한 정황 증거를 확보했으니까. 경비병들은 난폭한 북부인 강도를 처치해 치안에 이바지한 소년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다.


-도시는 처음 와보는데, 정말 멋져요.

-아저씨들이 여기 자경단 같은 건가요?

-아, 경비대요? 도시를 지키느라 밤늦게 고생하시네요.

-이야, 무기랑 갑옷 번쩍거리는 거 봐. 평소에도 관리를 잘 하시나봐요? 정말 멋진데요?


아무리 무죄라고 한들 무장한 병사들과 함께 걷는데도 태연한 모습.


모든 걸 잃고 막 나가는 난민이나 범죄자들을 주로 상대해왔던 경비들은 마빈과의 대화에서 오랫동안 알고 지낸 지인과 대화하는 것 같은 편안함을 느꼈다.


경비대에 도착할 즈음 경비들의 표정은 따뜻한 물에 푼 종이처럼 흐물흐물해져 있었다.


마빈의 넉살 좋은 태도는 경비대에 도착해서도 발휘되었다.


경비대장에게 ‘누구신가요?’하는 물음을 던지고 ‘나는 이곳의 치안을 맡고 있다. 범죄자들을 잡아들이고 범죄를 예방하지.’라는 말을 듣자마자.


-아아, 촌장님 같은 사람인가요?


라는 세상 물정이라곤 한 톨도 모르는 말을 해 경비대 사무실이 한 차례 폭소로 뒤집어지기도 했다.


물론 분위기를 풀려고 마빈이 일부러 한 거다.


그러한 일련의 행동으로 인해, 마빈은 제 집처럼 편히 밤을 보낼 수 있었다.


“나중에 도둑 있으면 잡아올게요!”

“푸하하하! 그래, 잡아와서 우리 실적 좀 올려다오.”

“큭큭, 잘 가라.”

“거 재밌는 녀석일세.”


공짜로 하룻밤을 묵은 경비대를 나온 마빈의 앞에 탁 트인 대로가 펼쳐졌다.


‘넓다.’


반짝이고 높은 건물이 가득한 전생의 도시에 비교한다면 나무둥치만 남은 민둥산이라 해도 될 정도로 낮고 후줄근한 도시였다.


하지만 숨 막힐 듯 하늘을 찔러대는 콘크리트 숲보다 풍광이 탁 트인 이곳이 보기 좋았다.


하늘을 담은 듯 파란 눈동자가 도시를 구석구석 훑었다.


여관이 있던 거리와는 사뭇 다른 풍경을 구경하던 마빈의 시야에 툭 튀어나온 언덕 위 무언가가 들어왔다.


성당.

도시 사람들을 깨운 큰 쇳소리의 근원지이자, 이곳 세상의 신앙의 중심지였다.


‘성당이라.’


다른 건물보다 높은 지대에 있어 눈에 확 띄는 건물.


언덕에는 오로지 성당만 자리 잡고 있어 다소 외로워 보였다. 어떻게 본다면 망망대해에 떠 있는 섬의 등대처럼 보이기도 했다.


마빈의 종교인에 대한 기억은 좋은 편이었다.


루게릭 병이 심해져 요양병원에 입원한 이후, 자원봉사하러 병원에 온 이들의 대다수가 성당이나 교회에서 나온 종교인들이었으니까.


개중에 질 나쁜 사람도 가끔 있었지만 대체로는 좋은 분들이었다.


눈물을 글썽이면서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며 기도해준 사람도 있었고 기저귀를 갈아주면서도 눈살 하나 찌푸리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나중엔 종교인들이 오는 주말을 기대했었다.


문 바깥에서 자그마하게 들려오는 찬송가를 듣다 보면, 자괴감과 절망을 곱씹는 대신 편한 마음으로 잠들 수 있었으니까.


‘이곳의 종교는 어떨까?’


저기에도 지구의 성당처럼 예술작품들이 있을까? 유럽에 있는 종교시설 관광지 같은 수준까진 아니더라도 제법 볼만한 게 있으면 좋을 텐데.


호기심이 보글거리며 추운 날씨를 몰아냈다.


‘가보자.’


지금까지 그래왔듯, 마빈은 호기심의 손을 잡은 채 발걸음을 옮겼다.




***




성당은 신이 기거하는 건물이라 불린다.


청렴함을 강조하는 주신 교단의 규범에 맞게 성당은 예배실과 종탑을 제외하곤 크게 짓는 게 권장되지 않는다.


다만 사람들의 자발적인 기부와, 위대한 주신의 처소에 작품을 남기고자 하는 지역 예술가들의 지원 덕에 규모는 작아도 일정 수준 이상의 화려함은 갖추고 있다.


“와......”


지구의 오래된 종교시설이 그렇듯, 이곳도 각종 조각과 그림으로 인해 일종의 미술관처럼 보였다.


짧은 통로를 지나자 긴 의자가 가득한 예배당이 나타났다.


깨끗한 유리창에 투과된 아침햇살이 싸락눈처럼 흐느적거리는 먼지를 드러내며 하얀 커튼처럼 일렁였다.


예배당의 맨 앞에는 사람보다 세 배 정도 큰 키를 자랑하는 석상이 텅 빈 공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늘하늘한 옷을 입고 허리까지 닿는 머리카락을 지닌 인자한 표정의 석상.


‘천사님이랑 비슷하네.’


천사님의 모습을 본 딴 걸까?

아니면 주신이라 불리는 신적 존재?


이곳의 교리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니 장담할 순 없었다.


밥 먹기 전에 주신에게 감사를 한다든가 하는 종교적인 의미의 언사들을 접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문화에 종교가 스며든 것에 불과했다.


제대로 된 종교를 접한 건 예전에 마을에 잠깐 들렀다 떠난 떠돌이 사제의 설교뿐이었는데, 심히 사이비의 분위기가 풍겼었다.


“하아.”


길쭉한 의자에 홀로 앉아 하얀 입김을 내뱉어 본다.


고요함이 가득한 공간에 가만히 앉아 있자니 마음이 평온해지나 싶었지만, 이내 싸늘한 침묵을 뚫고 어제의 기억이 제 존재감을 드러냈다.


‘왜 친절했던 데릭손 아저씨와 용병들이 날 죽이려 했을까?’


자신의 솜씨도 그렇게 칭찬해 준 사람들이, 좋게 이별까지 마무리지은 사람들이 대체 왜?


여행의 시작부터 뒤통수를 맞다니 제법 입맛이 썼다.


세상이 꽃밭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누군가의 악의를 접하니 기분이 가라앉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아무리 세상이 예측 불가능하다고는 하지만 참 얄궂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친해진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을 죽여야 했다니.


그렇게 하염없이 앉아 있는데, 문득 예배당의 앞쪽이 살짝 밝아졌다.


오색빛 햇살 한 줄기가 중앙 천장에서 바닥으로 내리꽂히고 있었다.


마빈이 감탄했다.

천장에 색유리를 박아놓은 건가?


천장을 바라보았지만 지금 앉은 각도에서는 큼직한 샹들리에에 가려서 빛기둥의 꼭대기가 보이지 않았다.


바깥의 햇빛 각도에 영향을 받는지 오색의 빛기둥이 서서히 마빈에게 다가왔다.


‘신기하네.’


빛기둥은 서서히 흐려지다가 마빈의 근처에서 훅 사라졌다.


빛의 색깔이 천사님의 색깔과 비슷하다 보니 절로 천사님의 응원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


힘내자.


데릭손과 검을 마주할 때도 다짐했잖은가.

이런 세상에 기꺼이 어울리면서 살겠다고.


앞으로 이곳저곳 다니면서 별별 사건을 다 겪을 텐데, 고작 이런 일 하나에 발목 잡혀서 제자리에서 서성거릴 순 없지.


‘발목이라.’


얼굴에 다시금 떠오르는 미소 한 줄기.


고뇌는 아침 햇살에 이슬이 마르는 것처럼 사라지고, 헝클어졌던 머릿속은 어느새 평소처럼 돌아와 있었다.


전생에서도 여러 부조리를 겪은 바 있었다.


하나하나가 가슴을 파고들어 후비는 비수 같은 일들이었지만, 쭈욱 나아가다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니 너무나도 하잘것없는 일들에 불과했다.


이번 일도 제법 마음은 아프지만 언젠간 망각 저편으로 사라질 자그마한 돌부리에 불과하겠지.


‘폐허를 보고 절망하기보다는, 그 안에서 피어난 작은 꽃을 보고 미소 지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라.’


전생에서 한 봉사자에게 들은 문구를 되뇌며, 그리고 자신의 소중한 다리를 주무르며 마빈은 마음을 다잡았다.


눈을 감고 평온한 고요를 아무런 잡념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도중.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신가요?”


뒤에서부터 인자하다는 단어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빗자루를 든 흰 옷의 중년 사제가 천천히 걸어오는 게 보였다.


예전에 고향에서 자신을 떠돌이 사제라고 주장한 사람이 마을을 들렀다 떠난 적이 있었다.

비루하고 섬뜩한 느낌이 들었던 그 노인과는 달리, 눈앞의 사제에게선 마치 벽난로 옆에 앉은 것 같은 온화함이 감돌았다.


마빈이 일어나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사제님.”

“반갑습니다 형제님.”


종교인이 두 손을 모으며 묵례하는 것은 지구나 이곳이나 같았다.


“기도하는 날이 아닌데도 아침에 일찍 성당을 방문하는 분들은 보통 근심을 안고 있습니다만...... 형제님께서는 아닌 거 같네요.”


마빈의 얼굴을 살핀 사제는 당신의 기쁨은 곧 자신의 기쁨이라는 듯이 빙긋 웃었다.


“아. 네. 조용한 곳에서 오색 빛도 보면서 생각하다보니 고민이 싹 날아가네요. 앞으로도 자주 찾아와야겠어요.”


“허허, 잘 된 일이네요. 저는 메이헌이라고 하고, 이곳 카트라그 성당을 관리하고 있답니다.”


“제 이름은 마빈이에요. 시골에서 살다가 어제 막 도시에 도착했어요.”


“그래요? 이 도시에서 형제님이 바라는 바를 성취하길 바라겠습니다.”


둘이 서로를 보며 가볍게 웃었다.


마빈은 마음이 한층 가벼워져서, 메이헌은 성당이 누군가의 근심을 덜어주었다는 뿌듯함에.


소년이 성당을 떠난 뒤.


메이헌 사제가 예배당을 청소하다가 문득 이상한 점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오색 빛?”


예배당의 곳곳을 쭉 둘러본 그가 중얼거렸다.


“색유리를 끼운 곳은 없는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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