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이 좋은 사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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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win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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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8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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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DUMMY

마빈이 카트라그에서 지낸 지 두 달이 지났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그동안 공기는 더욱 차가워지고 불과 일주일 전에는 첫눈이 내렸다. 사람들은 눈이 예년보다 늦게 왔다고 평했다.


이른 새벽에 내린 눈으로 거리는 흰 융단을 덮은 것처럼 하얗게 변해 있었다.


눈을 삭삭 빗자루로 쓸어내는 고즈넉한 소리가 조용한 거리를 살살 긁고 지나갔다.


“흥흥흥......”


잔잔한 콧노래의 선율과 비질을 하며 흔들리는 어깨를 따라 늑대 가죽 망토가 덜렁거렸다.


“어으 춥다. 어, 마빈. 오늘도 부지런하구나.”


마빈이 묵는 여관 옆집에 사는 사내가 인사했다.


빗질하는 소리는 소년이 여관에 묵은 뒤로 거의 매일 아침마다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어찌나 규칙적이고 잔잔한지 아침에 빗자루 소리가 들리면 절로 눈이 떠지는 습관이 들었을 정도.


“좋은 아침이에요 아저씨. 아직 해도 안 떴지만. 오늘도 일 나가세요?”

“그래야지. 눈 왔다고 놀 수는 없잖냐. 너는? 오늘도 선착장?”

“그건 오후에 갈 거고 오전은 저기 서쪽 구역에서 일하려고요.”

“서쪽?”

“프라우드라고 아세요?”

“아, 그 대형 가구 상점? 들어는 봤지. ......어째 내가 이 도시에서 평생 살면서 돌아다닌 것보다 네가 돌아다닌 구역이 더 넓은 거 같다?”


북부인 강도 셋을 홀로 때려잡은 사냥꾼, 늑대가죽을 늘 걸치고 다니는 별난 녀석, 늘 웃고 다니는 부지런한 일꾼......


여러 가지 별명을 달고 다니는 마빈은 일종의 지역 명물처럼 사람들에게 각인된 지 오래였다.


“돈 모아야 하니까요.”

“또 그 소리냐. 누가 들으면 빚지거나 병든 부모 모시는 줄 알겠다.”

“히히.”


사내의 말은 마빈에게 익숙했다. 이미 다른 사람들에게 비슷한 어조의 말을 여려 번 들었으니까.


-안녕하세요! 오늘 일은 뭔가요?

-어 마빈 왔냐. 옮길 상자는 저기 밖에 쌓아 놨어.


여러 가게를 전전하며 소일거리를 돕고.


-좋은 아침입니다!

-어어. 늘 힘차구나. 짐은 저기 파란 장미깃발 걸린 배에 있다. 뭐 내릴 때마다 감독관 확인 받고.

-예! 명심할게요!


도시 물류의 중심지인 선착장에서의 선박 하역 작업에.


-와, 오늘도 여긴 후덥지근하네요. 저 왔어요!

-오냐. 오늘은 이곳저곳 다녀와야 쓰것다. 요새 도구가 부러진 데가 많대서.


대장장이에게 필요한 금속 상자나 다 만들어진 물건 배달.


-고기가 다 떨어져 가는데, 뭐라도 잡아오면 두둑하게 줄게.

-일단 한번 살펴볼게요.


-망치질이 제법인데?

-아버지가 목수셨거든요.

-어쩐지. 몸을 잘 쓰더라.


본업인 사냥과 목수 일 등등등.


만약 마빈이 카트라그에서 해본 일거리들을 게임 속 일일 퀘스트로 구현한다면, 유저들은 뭐 이렇게 멀리까지 자주 싸돌아다니는 거냐며 불평을 터뜨렸을 것이다.


마빈도 처음부터 욕심을 부린 건 아니었다.


이것저것 소소하게 일을 하다가 돈 욕심이랑 모험 욕심에 조금씩 일을 늘려 봤는데, 신기하게도 업무 강도에 상관없이 일이 힘들지를 않았다.


도리어 일의 강도가 세지면 힘이 들기는커녕 활력이 더 돋아나기까지 했다.


‘부모님이 유전자 참 좋은 걸 물려주셨네.’


그저 조금만 운동해도 근육이 펑펑 자라나는 좋은 유전자인가보다 싶었다. 하긴, 잘 못 먹고 자란 편이었는데도 이렇게 컸으니깐.


하여튼 이거 할 만한데 싶을 때마다 하나씩 하나씩 일거리를 늘려 대다 보니, 결국에는 학점에 미친 대학생처럼 일정표가 꽉 차버린 것.


“몸은 사리면서 해라. 아무리 젊다 해도 몸이란 건 어느 순간에 훅 가는 거다.”

“네에 명심할게요.”




***




카트라그 서쪽 거리에 있는 대형 가구 상점에서 목수 일을 거들고 배달 업무까지 끝마친 마빈이 여관으로 돌아왔다.


“왔어?”

“네 아저씨.”


그리고.


“또 일할 데 없나요?”

“또 일할 데 없냐고?”


동시에 같은 말을 내뱉었다.

여관 주인이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어지간한 상인들보다 네가 더 수전노구나. 이거 방세 깎아주겠다고 한 말은 취소해야겠는데?”

“에이, 남자가 한 입으로 두 말을 하시려고요?”

“스읍, 그거 어디 지역 말인진 모르겠는데 남자 자존심 하나는 제대로 긁는 표현이구나.”


마빈이 낯선 곳에서 이리도 일자리를 잘 구했던 이유는 두 가지.


-돈 필요하다며? 일자리라도 소개해 줄까?


하나는 북부인 강도 사건 이후 한층 친해진 여관 주인의 추천. 여관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대개 발이 넓기 마련이다.


-어이구 세상에나. 우리 손주랑 닮았구나, 닮았어! 이런 우연이 있나! 그래, 이 할애비가 도와줄 건 없느냐? 뭐든 말해 보거라!


둘은 마빈이 도와준 주정뱅이 노인, 거대 상단의 상단주인 제프의 호의. 덕분에 조합에 속한 이들이 독점하고 있는 짭짤한 선착장 일거리에도 참가할 수 있었다.


두 인맥 덕에, 겨울이 깊어지며 사냥을 못하게 되었어도 돈주머니에 든 동전의 밀도는 점점 높아졌다.


“적당히 쉬면서 해. 내가 기억하기로 오늘은 강에 하역 작업하러 가는 날 같던데?”

“시간이 남아서요. 딱히 그동안 뭘 하기엔 또 애매하기도 하고.”

“이 녀석아. 네가 살날이 얼마 안 남은 것도 아닌데 뭘 그리 바쁘게 살아. 너무 욕심 부리다가는 어디 탈나기 마련이다.”


마빈을 고개를 끄덕였으나 이 버릇은 쉬이 고쳐질 것 같진 않았다.


하나씩 일거리를 늘리다가 워커홀릭이 된 지 한 달이 넘었는데도 번아웃이나 몸에 이상이 올 기미는 없었으니까.


“부엌에 스튜 끓여 놓은 거 있으니까 출출하면 한 그릇 먹어라. 두 그릇부턴 돈 받을 거니까 얘기하고.”

“네, 감사합니다!”


마빈은 부엌에 들러 먹는 시간도 아깝다는 듯 스튜 한 그릇을 후루룩 마시고는 방으로 돌아갔다.


‘행복해.’


다른 이들은 마빈의 일상을 보고 지치지도 않냐며 혀를 내둘렀지만, 정작 마빈의 표정은 늘 싱글벙글이었다.


육신이란 감옥에 갇혀 무려 수십 년을 보냈다.

정신적으로 수십 년 간 굶주린 사람 앞에 뷔페가 차려져 있는데 그걸 어떻게 참나.


이러니 마빈의 표정은 밝을 수밖에 없었고, 이는 평판을 더 높여 주는 요소가 되었다.


“참 활기찬 녀석이란 말이야.”

“그러게요. 늘 저 가죽을 걸치고 다니니 잊기도 힘들다니까요.”


대장장이, 상인, 호객꾼, 신문팔이, 선원, 재단사, 낚시꾼, 모험가, 용병, 인쇄소 직원, 약사, 마부, 경비대, 관료, 심지어 창녀나 소매치기까지.

이 도시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직업군과 한 번씩은 얘기를 나눠 보았을 정도로 활달한 소년.


“그런데 전에 들어 보니까 겨울 지나면 떠날 거라고 하던데 맞아요?”

“어. 나한테도 그렇게 말했어. 모험을 하고 싶어서 이렇게 돈을 모으고 있다니까.”

“모험요? 위험할 텐데......”


여급은 자신의 자식뻘인 나이에 불과한 마빈이 걱정되는 기색이었다.


“내가 싸움은 잘 모르지만 전에 북부인 강도 잡은 것도 꽤 대단해 보이던데. 검술 도장도 다니는 걸 보면 제 몸 간수 정도는 잘 하겠지.”


“하지만 여기는 그렇다 쳐도 다른 곳은 아직도 괴물 아니면 도적이 잔뜩 있다던데요.”


“그거야 저 녀석이 알아서 판단해야지. 상단 행렬에 끼어서 다니든가. 그러려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이것저것 물어보는 거 아니겠어?”




***




그날 저녁.


“으드드드! 푸하!”


하역 작업을 마친 마빈은 한껏 기지개를 켰다. 한바탕 헬스장에 갔다 온 것처럼 뻐근한 신체가 쭉 늘어나는 감각이 머리를 맑게 만들어주었다.


“오늘도 수고했다. 여기 일당.”

“감사합니다!”


일당 받는 인부들의 줄을 벗어난 마빈을 누군가가 불렀다.


“마빈! 오늘 저녁은 우리랑 같이 먹을래? 오겠단 사람이 빠져서 자리가 빈다!”


오늘 같이 일한 민물장어파 사람들이었다.


파 라는 단어의 어조 때문에 조직폭력배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알고 보면 선량한(다만 조금은 거친) 어부와 일꾼의 노조였다.


“아, 오늘은 가볼 데가 있어서요.”

“설마 또 일하는 가는 거냐?”

“에이, 이제 해 떨어졌는데 저도 그렇게까진 일 못해요. 다음날 피곤해요.”


마빈은 무리는 하지 말자는 주의였다. 다른 사람 눈에는 이미 충분히 무리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흐흐흐, 하긴 그렇지? 그럼 나중에 같이 먹자고!”

“네 기대하고 있을게요!”


선착장을 떠난 발걸음은 모험가 조합으로 향했다.


“오늘도 퍼질러 있네 형.”

“어. 왔냐.”


모험가 조합의 접수원 제임스가 책상에 엎드려 있는 자세 그대로 눈동자를 돌렸다. 책상에 눌린 뺨에서부터 귀찮은 기색이 풀풀 풍겼다.


“심심한가 봐요?”

“월급 도둑질도 정도가 있지. 너무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만 있으니까 지겹다 야.”

“그럼 저랑 같이 하역 뛸래요?”

“날 죽일 셈이냐.”

“흐흐.”


마빈과 제임스는 둘밖에 없이 휑한 조합 건물에서 가볍게 수다를 떨었다.


이곳에 들른 이유는 잡담을 하기 위해서였다.

정확히는 정보 습득.


마빈은 도시에서 일만 한 게 아니었다.


집집마다 정해진 직업이 존재하고 그 다양성도 많지 않은 농촌과는 달리, 도시는 그보다 훨씬 다양한 직업과 색다른 경험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아온 개인이 수두룩했다.


그들에게서 듣는 이야기 하나하나가 모두 마빈에게는 소소한 모험이고 공부였다.


-너희 마을에선 올무를 이렇게 하는 모양이구나. 꽤 잘 만들었는데. 내 방식은 말이지......


사냥꾼들과 교류하여 사냥법을 배우기도 하고.


-무슨 일인가요 경비아저씨?

-도둑놈이 골목길로 갔어!

-잡으면 저도 실적 인정해 주나요?

-푸핫! 그런 건 경비대 입대하고 얘기해라!


가끔씩 벌어지는 자잘한 이벤트에 참가하거나.


-좋은 아침입니다 아저씨!

-지각이다 이놈아! 빨리빨리 안 오나! 허수아비 치기 1천 번 실시!

-으에엑!


은퇴 기사가 운영하는 검술 도장도 등록하고.


-사업 다망하신 분... 망창을, 원망... 하나이다.

-공사다망하신 분의 번창을 앙망하나이다. 겠지.

-앗.


글공부도 꾸준히 했다.


“빨리 여름 됐으면 좋겠다. 그럼 토벌 준비로 심심하진 않을 텐데 말이야.”

“오, 여름에 토벌을 나가나 봐요?”


그리고 이렇게 모험가 조합에도 들러서 도보여행에 필요한 지식들을 배웠다.


북부인 용병들에게 제법 듣긴 했지만, 아무래도 북부인과 제국인의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다를 테니까.


“예끼 이놈아. 너는 입만 나불대느라 그 정도지, 일선 모험가는 거시기 빠지도록 바뻐!”


그때 문을 열고 들어온 한 모험가가 제임스에게 다가와 딱밤을 먹였다.


“어우 아파. 그래도 한 철에 빡세게 일하는 게 낫잖아요? 겨울에 추운 벌판 나가서 구르는 것보단.”


“접수원이란 놈이 모험가 현실을 아직도 몰라? 차라리 벌벌 떨면서 구르는 게 낫지. 그러면 적어도 입에 풀칠 대신 기름칠이라도 할 거 아니냐.”


현재 카트라그에서는 모험가나 용병들이 할 일이 별로 없었다.


그 두 직종의 업무는 탐험 내지 정찰과 그에 수반되는 괴물 토벌인데, 카트라그 근방 지역은 그게 여의치 않았다.


대재앙 당시 제국 남부에 지옥문이 유달리 많이 열린 탓에, 고루 퍼져 있던 괴물 서식지가 지옥문과 악마들을 중심으로 재편되어 이른바 ‘공백지대’가 만들어졌기 때문.


공백지대에는 이름대로 괴물이 거의 없었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공백지대가 아닌 곳에는 사람을 위협하는 것들이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득실거린단 의미였다.


따라서 두 직종은 자연스레 활동이 제한되었다.

사람 사는 곳 근방은 일거리가 없고, 그렇다고 함부로 괴물의 집단 서식지를 잘못 찔렀다간 큰일 나고, 일거리 찾아서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건 그것대로 위험하고.


그들에게 일거리가 주어지는 건 여름철.


봄밀을 수확하고 난 뒤 식량 사정이 괜찮아지면, 도시에서는 공백지대를 순회하며 유입된 괴물들을 토벌하곤 했다.


모험가 조합을 처음 방문한 당시에 그 말을 들은 마빈은 크게 상심했다. 시기가 안 맞아서 짜릿한 모험을 당장 할 수 없다니!


결국 그쪽에 관련된 모험은 나중에 도시를 벗어나서 경험하기로 했다. 세상은 넓고 시간은 많으니까.


“그나저나, 마빈 너는 아직도 모험가가 되고 싶냐? 그 거지 같고 위험한 직업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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