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향력 100배 이벤트
상온초전도체를 일론 머스크의 눈 앞에 보여준 다음, 도진은 한동안 그가 상온초전도체를 직접 만져볼 수 있도록 자석과 함께 넘겨줬다.
“초전도체를 맨손으로 만지게 될 수 있을줄이야. 정말 놀랍군요······!”
“원하는 만큼 만지시죠.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으셔도 괜찮고요.”
마치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표정으로 자석 위에 둥둥 떠 있는 초전도체 조각을 만지작대는 일론을 바라보며, 도진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속내는 조금 달랐다.
‘그래서, 내게 위해를 가할 수 없는 건 확실한 거지?’
-물론이죠. 앞으로 보호기간이 끝나는 10년 동안은 튜토리얼 시스템의 보호를 받게 되실거에요. 도진님의 재산도 마찬가지로요.
‘그럼, 최소한 일론네 경호원들한테 두들겨 맞을 일은 없겠네.’
-아, 혹시나 그렇게 된다면 시스템의 판단에 따라 보복당하게 될 거에요. 저라면 굳이 시험해보진 않을 거 같지만요.
왠지 모르게 섬뜩한 미소를 짓는 아리아의 말을 듣고서야, 도진은 속으로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
그 것이 도진이 아무렇지 않게 하나뿐인 상온초전도체 샘플을 일론의 손에 거리낌없이 넘겨줄 수 있었던 이유였으니 말이다.
“아, 정말입니까?”
“물론이죠.”
“그러면, X에 올릴 영상을 좀 찍어보겠습니다. 케이트?”
“네, 보스.”
일론의 말과 함께, 비서인 케이트가 곧장 스마트폰을 꺼내 녹화를 시작했다.
“자, 저는 상온초전도체를 직접 만지고 있습니다. 잘 보십시오. 여기, 퀀텀 락킹이 잘 걸려있는 게 보이시죠?”
특유의 장난스런 미소와 함께 카메라를 바라보며 둥둥 떠 있는 초전도체를 톡톡 건드리는 일론 머스크의 모습은, 도진이 평소에 알고 있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그때였다.
“아, 이쪽은 상온초전도체의 개발자인 미스터 권입니다. 자기소개 한 번 하시죠, 미스터 권?”
카메라를 도진을 향해 돌리라고 케이트에게 손짓하면서, 도진을 향해 한 쪽 눈으로 장난스럽게 윙크한 것이다.
“네?”
“오늘은 역사적인 순간 아닙니까! 인류의 새로운 역사가 될 날을 기념하는데, 그 주역이 빠져선 안 되겠죠?”
그 말을 들은 순간, 도진의 머릿속에 한 줄기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아리아.’
‘네?’
‘영향력, 간접적으로도 얻을 수 있는거지?’
‘음···매체가 뭐냐에 따라 다르지만, 가능하죠? 영향력이란 결국, 자신이 행성에서 어느 정도의 인지도를 지니고 있느냐도 포함되어있으니까요.’
‘좋아.’
그 순간, 살짝 얼어있던 도진의 표정이 변했다.
“아···저는 한국의 도진 권입니다. 지금 일론이 들고 있는 상온초전도체를 개발한 사람이고요······.”
일론이 찍고 있는 영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게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도진은 언제 굳어있었냐는 듯 유창한 영어로 자기소개를 마쳤다.
“좋아요, 미스터 권. 그러면, 이렇게 된 김에 한국 문화에 대해서도 간단히 소개해주겠어요?”
“아, 물론이죠.”
자기소개가 끝나자마자 입을 연 일론의 말에, 도진은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원룸의 부엌을 뒤졌다.
이윽고, 그는 양 손에 무언가를 든 채 일론에게 다가왔다.
“오, 그건······.”
“손님이 오면 식사대접을 해야하는데, 마침 좋은 물건이 있었네요.”
그 말과 함께, 도진은 자신을 찍고 있는 카메라를 향해 손에 든 물건들을 내밀었다.
[불닭볶음면컵]
“일론 씨도 한국에 왔으니, 매운 맛이나 좀 보고 가시죠?”
***
결국, 촬영은 일론 머스크와 도진이 컵라면에 든 불닭볶음면을 나눠먹으면서 끝나게 되었다.
“후우, 생각만큼 못 먹을 정돈 아니군요.”
꿀꺽꿀꺽
새빨개진 얼굴로 찬 물을 네 컵째 들이키고 있는 일론을 향해, 도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는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먹고 있습니다. 매운 맛이 스트레스를 푸는 데 도움이 되더라고요. 가격도 싸고.”
하지만 그러고도 일론은 한참동안 혀를 찌르는 매운 맛에 괴로워해야 했다.
잠시 후, 조금 상태가 나아진 일론은 땀을 슥 닦고는 도진을 바라봤다.
“어쨌든···미스터 권이 도와준 덕분에 영상은 잘 나올 거 같아요. 미국에 돌아간 다음 편집 좀 해서 올릴건데, 괜찮겠죠?”
“물론이죠.”
“좋아요, 좋아요. 그럼······.”
도진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일론의 눈빛이, 바뀌었다.
얼굴에 장난기가 서려있던 조금 전과 달리, 일론은 진지한 표정으로 도진을 바라봤다.
곧, 그의 입이 열렸다.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죠.”
“네.”
“일단, 왜 저한테 이 사실을 알린거죠? 다른 루트들도 있었을텐데.”
“그야, 당연한 거 아닙니까?”
일론의 물음에, 도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투자를 원합니다, 일론 씨.”
“그럴거라고 생각은 했습니다.”
“아마, 일론 씨에겐 이 쇳조각이 꽤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고요. 물론 그건 저에게도 마찬가지지만요. 그렇다고 테슬라에 일론 씨를 연결해달라고 할 수는 없어서, 조금 무리한 방법을 썼습니다.”
“아, 그건 괜찮아요. 나도 오랜만에 재미있는 경험을 했으니까. 그럼······.”
조금 민망한 표정을 짓는 도진을 향해 손가락을 흔든 다음, 일론은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바로 들어가죠. 얼마를 원합니까?”
그 물음에, 도진은 잠시 입을 다문 채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부르는 게 값이지.’
지구의 문명을 몇 단계 위로 끌어올릴 수 있는 기적의 물질이다.
이 자리에서 얼마를 부르건, 상온초전도체를 손에 얻고 싶다면 상대는 제안에 응하는 수밖에 없다.
그 것이, 진행중인 사업 대부분에 상온초전도체를 활용할 수 있는 일론 머스크라면 더더욱 말이다.
‘그렇다고, 너무 많이 불러서 주도권을 아예 넘겨주면 또 곤란하지만 말야.’
이윽고.
생각을 마친 도진은 입을 열었다.
“billion.”
“···what?”
“One billion Doller.”
10억 달러.
그 것이, 일론의 질문에 대한 도진의 대답이었다.
***
“후, 손님 한 번 오니까 집안이 난장판이 됐네.”
폭풍이 지나간 뒤, 잔뜩 어질러진 원룸 안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도진은 곧장 정리를 시작했다.
일론과 함께 먹은 식사에서 나온 쓰레기들을 쓰레기봉투에 쑤셔박은 다음, 위장용으로 책상에 둔 실험도구들도 하나씩 꺼내 분리수거하기 시작했다.
“뭐, 일론이 다음에 여기 올 일은 없겠지.”
-그런가요?
“이사갈 거거든.”
-하긴, 생산시설과 가까운 곳에 사는 게 인도자님께서도 편하겠죠.
도진의 대답을 들은 아리아는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 이유만은 아니긴 하지만.”
쓰레기를 능숙하게 치우면서, 도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나저나···확실히 재능이 있으시네요.
“재능?”
-보통의 인간이라면 그 정도 격차가 나는 존재를 만날 때 그렇게 태연한 태도를 유지하기 어렵거든요. 인도자님께선 다른 인도자분들이랑 비교해도 확실히 뭔가 다른 점이 있는 거 같아요.
감탄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그녀의 말에, 도진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아···그냥 게임이라고 생각하니까 아무렇지도 않던데?”
-네?
“현실이 아니라 ’스타로드’의 프리퀄을 한다고 생각하니까, 딱히 겁은 안나더라고. 아니, 오히려 재미있다고 해야하나?”
-재, 재미요?
“어, 재미. 재미없으면 뭘 하기도 쉽지 않단 말이지.”
털썩!
말과 함께 원룸 정리를 마무리한 도진은, 자신의 침대 위에 주저앉았다.
“그럼···다음은 공장부지를 찾아보는 건가?”
-언제까지 자금력으로 교환해서 만들어낼 수는 없으니까요.
“그건 수수료가 너무 비싸다니깐.”
게다가 도진이 알고 있는 상온초전도체의 제작법 대로라면 그렇게 큰 비용이 들어가지도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사실상 가장 큰 문제는 거대한 공장을 짓게 될 부지의 가격 정도였다.
“오늘은 좀 늦었으니까, 내일 알아보는 게 나을 거 같고······.”
도진이 생각에 잠긴 그때였다.
딩동-! 딩동-!
문에 달려있는 초인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권도진씨, 권도진씨!”
“권도진씨 계십니까?”
문 바깥에서, 도진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의 웅성대는 소리가 그의 귀에 들어왔다.
“드디어 올 게 왔구나.”
-올 거···라뇨?
의아한 표정을 짓는 아리아를 뒤로 한 채, 도진은 현관을 향해 걸어나가며 입을 열었다.
“영향력 100배 이벤트.”
삐리리-!
그 말과 함께, 도진은 현관문을 활짝 열었다.
그러자.
“권도진씨!”
“도경일보에서 나왔습니다! 상온초전도체를 개발하셨다는 게 사실입니까?”
“세진일보의 최용혁 기자입니다! 일론 머스크씨와는 어떤 목적으로 만남을 가지신 겁니까?”
자신을 향해 카메라와 녹음기, 마이크를 들이미는 기자들의 무리를 내려다보며, 도진은 눈을 빛냈다.
- 작가의말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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