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과 구원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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쩜삼공팔
작품등록일 :
2024.08.09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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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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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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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피소(3)

DUMMY

나를 데리고 온 군인 하나는 중대장이 있는 방 문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똑-, 똑-.

군인이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부산스러운 인기척이 느껴졌다.


-들어와.


“들어가시면 됩니다.”


나는 군인의 말을 따라 방에 들어갔을 때 수북히 쌓여 있는 서류 더미들을 볼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예.”


“저를 보자고 하신 이유가···?”


굳이 그는 나같은 일개 민간인을 만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나보다는 특전사 부사관으로 전역한 이강훈이 중대장과 대면하는 쪽이 더 나을 것이다.


“보고를 받았습니다.”


“무슨 보고 말입니까?”


“비전사 출신이라고요.”


“예, 그건 맞습니다만.”


그놈의 비전사가 뭐라고.


한창 훈련으로 구르다가 평화롭기 그지 없는 21개월의 군 생활이었기에 딱히 좋은 기억은 없었다.


“혹시 군생활에 대해 기억이 납니까?”


“기억이라···. 구를 대로 구르다 전역했으니 그닥 좋은 기억은 없네요.”


“하하. 어쩔 수 없죠, 군대란 것이.”


그는 자리에 앉은 채 서류에 사인을 하며 호쾌하게 웃었다.


“강진우 씨에게 부탁드릴 게 있어서 말입니다.”


“뭡니까?”


“혹시 특별한 작전 하나 뛰어 볼 생각 없습니까?”


“······.”


특별한 작전이라···.


무언가 께름칙한 느낌이 들었으나 그가 내뱉은 말 한 마디에 나는 눈이 크게 떠질 수밖에 없었다.


“의약품이 거의 소진되었다뇨?”


“말 그대로입니다···.”


캠퍼스 주변으로는 이미 병사들이 1차적으로 가져왔다고 했고 물자가 대량으로 쌓여있을 만한 현대 백화점은 ‘그것’한테 점령당했다.


“자세한 작전 계획 보고는 나중에 해주십시요. 보다시피 제가 이런 상황이라···.”


중대장이 앉은 채로 잔뜩 쌓여 있던 서류 더미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일단, 알겠습니다.”


중대장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 나온 나는 방으로 돌아갔다.


**


“···확실히 조금 아슬아슬한 상황이긴 하더군요.”


“예. 그래서 이제는 의약품 수급을 위해서도 움직여야 할 듯 싶습니다.”


솔직히 이런 세상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전지전능하다는 신이라면 모를까 나나 이강훈 같은 일개 우주의 먼지나 다름없는 사람들이 종말을 생각이라도 했겠는가.


어두운 방 속 천천히 녹고 있는 밀랍 촛대 하나만이 불꽃을 내뿜으며 타오르고 있었다.


“하아···.”


가슴이 답답한 듯 깊은 한숨을 내쉬는 이강훈의 뒤로 세아가 매달렸다.


“오빠아. 나 배고파아.”


“세아야, 잠시만···.”


이강훈이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소세지가 든 작은 박스 하나를 세아에게 건네주었다.


“아싸! 오빠 최고!”


언제 빼돌렸는지 모를 소세지를 한 번 보고 이강훈을 바라보자 이강훈은 멋쩍은 웃음만을 지었다.


세아는 소세지를 받고는 신이 나는 듯 해맑게 웃고 있었으나 그런 세아를 바라보는 이강훈과 나의 얼굴은 하염없이 어두워지기만 했다.


**


“···▢▢▢가 우선이다.”


“강 뱀. 정말로 괜찮겠습니까?”


“어, 너흰 퇴로를 지키고 나는 ▢▢▢을···”


【손상된 기록】


**


“으음···.”


악몽이라도 꾼 듯 내 온몸이 식은 땀으로 범벅이 돼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예, 뭐···.”


자면서 끙끙 앓았던 것인지 옆에서 이강훈이 나의 안부를 물어왔다.


“후우···.”


짧게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푼 나는 가방을 메고선 이강훈과 함께 방을 나섰다.


분대 막사에 도착한 우리는 완전무장을 한 상태로 기다리고 있는 분대원들을 볼 수 있었다.


“좋은 아침.”


“하늘에서 똥 내리지 말입니다.”


안지후 상병이 어둡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늘에서는 현역 군인이라면 증오하다못해 죽여버리고 싶을 눈이 내리고 있었다.


“저희 제설작업 하는거 아님까?”


“응, 아냐. 물자 수급 나갈 거야.”


제설 작업에 동원되지 않을 거라는 말에 약간의 미소를 보인 분대원들은 이내 내 인솔 하에 대피소의 정문으로 향했다.


“충성.”


“어, 충성.”


보초를 서고 있던 초병의 경례를 받아 준 나는 분대원들을 데리고 열린 정문 사이로 지나갔다.


“눈이 와서 그런지 많이 미끄럽슴다.”


“그러게 말야.”


시답잖게 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손민재 병장과 박승현 일병은 정문을 지나쳐 나오며 등에 메고 있던 소총을 앞으로 돌렸다.


“사주경계 철저히.”


정문을 지나쳐 나온 나와 일행들은 현대백화점 쪽이 아닌 충현동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파트 단지가 많은 만큼 물자도 꽤 넉넉히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가진 채 우리는 충현동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날씨가 영 좋지가 않습니다.”


“그러게 말이야.”


우리가 정문을 나설 즈음부터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바랍과 함께 매섭게 몰아치며 계속 우리의 시야를 방해했다.


“다들 일렬종대로 앞사람만 보고 이동해.”


이런 강한 눈바람에는 좀비 또한 제대로 듣지 못하고 보지도 못할 것이다.


천천히 조금씩 쌓여가는 눈길을 밟고서 충현동 쪽으로 향하던 우리는 가까스로 이대 역 근처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여기서부터 다시 팀을 나눈다.”


부분대장 격인 이강훈과 분대장인 나는 이대 역을 랑데뷰 포인트로 삼고 이대 역 인근을 정찰하기로 했다.


“그럼 이따가 봅시다.”


“예.”


이대 역에서 둘로 갈라진 내 팀과 이강훈의 팀은 각각 북쪽과 남쪽을 향해 움직였다.


내 팀은 의약품을 우선하고 이강훈의 팀은 식료품 같은 물자를 목표로 팀을 갈랐다.


매서운 눈발 때문에 한 치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시야 탓일까 아니면 언제 어디서 좀비가 덮칠 지도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일까 유독 더 긴장한 듯 보이는 김성민 이병이 내 뒤를 쫄래쫄래 따라왔다.


그런 김성민의 뒤를 이어 안지후 상병과 박승현, 우철우가 따라왔다.


“강 뱀. 이거 눈이 너무 내리는데 괜찮은 겁니까?”


“일단 주변 수색부터 해보자.”


이대 역 인근이라면 병원이 많아 아마도 의약품을 입수할 수 있을 것이다.


“근데 캠퍼스 옆에 있는 세브란스 병원은 왜 안가는 겁니까?”


“이유가 있어.”


현재 세브란스 병원은 좀비들로 가득 찬 상태였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부터 시작해 그들을 돌보던 대부분의 의사와 간호사들이 대거 감염되었다고 들었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생각보다 의약품 관련 물자가 많이 부족했다.


우리는 도로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차들의 사이를 천천히 지나며 병원과 약국을 찾기 시작했다.


“강 뱀. 저기 저거 약국 아닙니까?”


뒤따라오던 우철우가 한 건물의 간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


하늘에서 내리는 하얀 찌꺼기들 때문에 흐릿하게나마 보이는 글자를 읽어 약국이 맞다는 것을 확인했다.


“정지.”


약국까지의 거리를 대략 50미터 정도 남겨두고 일행들을 멈춰세운 나는 건물 인근을 둘러보았다.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는 핏자국들과 약간의 뼛조각들.


생각보다 좀비가 많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나는 손을 들어올려 일행들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사박-, 사박-.

조금이나마 바닥에 쌓인 눈을 밟고서는 천천히 약국을 향해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온 우리는 깨져 있는 유리창 위에 쓰러져 있는 흰 가운의 시신 한 구를 볼 수 있었다.


좀비조차 되지 못한 채 죽어버렸는지 여기저기 이빨 자국으로 파여져 뼈까지 보이고 있는 시신 한 구는 마지막까지 발악했던 듯 손에 무언가를 꽉 쥐고 있었다.


“······.”


조용히 시신을 바라보던 나와 일행들은 일제히 대검을 소총에 착검한 뒤 약국에 진입했다.


“생각보다 크지 말임다.”


“그러게.”


확실히 역 인근에 있는 곳이다보니 약국은 의외로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우철우와 안지후에게 약국의 입구를 지키라는 말을 남긴 나는 김성민과 박승현을 데리고 조금 더 안쪽으로 향했다.


한번 좀비들이 한바탕 들어왔다 다 빠져나간 것인지 약국 내부는 조용한 적막만이 감돌았다.


옷이 살결에 스치며 내는 바스락거리는 소리조차 크게 들릴 정도로 약국 내부는 조용했다.


김성민과 박승현에게 진열되어 있는 의약품을 모조리 챙기라는 말을 남긴 나는 약국의 조제실로 향했다.


아무래도 아까 그 흰 가운을 입고 있던 시신이 약사였던 것인지 조제실 내부에는 아무도 없었다.


졸피뎀, 타이레놀, 비아그라 등등.


여러 종류의 약들이 제각기 통에 담겨 진열되어 있었다.


가방을 내려놓고 종류를 가리지 않은 채 약들을 가방에 약들을 쓸어 담았다.


“······.”


약품을 챙긴 뒤 조제실을 나온 나는 아까부터 신경이 쓰이던 소리에 집중했다.


사박···, 사박···.

무엇인가 천천히 약국을 향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총을 든 채 입구를 지키던 우철우와 안지후 또한 그 소리를 들은 것인지 소총을 치켜들었다.


“······.”


주먹을 들어올려 분대원들에게 일제히 움직임을 멈추라는 수신호를 보낸 나는 조용히 총의 세이프티를 풀고는 총을 견착한 채 입구로 향했다.


마찬가지로 다른 분대원들 또한 내 뒤를 따라 총을 견착하고서 입구에 달라붙었다.


“······.”


계속해서 점점 가까이 들려오고 있는 사박거리는 소리에 나는 빠르게 입구를 나와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총구를 돌렸다.


“헉!”


메신저백을 멘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소년이 갑자기 총을 견착한 채 나타난 나를 보고 깜짝 놀랐는지 뒷걸음질을 쳤다.


계속해서 들려오던 발소리가 생존자였음을 파악한 나는 빠르게 총구를 내렸다.


“저, 저기···. 구조대인가요···?”


“······.”


물자 수급이 우선이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생존자 구출 또한 임무에 부여되어 있었기에 나는 뒷걸음질 친 이 소년을 보고는 맞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저희, 저희 누나 좀 살려주세요···.”


“······.”


“제, 제발요···.”


간절해 보이는 듯한 소년의 표정과 말투에서 진심을 느낀 나는 이내 분대원들을 데리고 나왔다.


“이 꼬맹이는 뭡니까?”


“······.”


소년은 나를 포함한 5명의 인원들을 보고는 일말의 희망을 찾았다는 듯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름이 뭐야?”


“배, 배성호요···.”


배성호라는 이름의 소년이 말하길 자신의 하나뿐인 누나가 모르는 사람들에게 마치 노예처럼 잡혀 갔다고 했었다.


“그놈들은 악마보다 못한 놈들이예요···.”


배성호의 설명을 들은 우리들은 얼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좀비도 아니면서 인육을 먹는 사람, 욕구에 뇌를 지배당해 잡아놓은 여자들을 겁탈하는 놈들 등등.


여러 종류의 미친 새끼들이 잔뜩 있었다.


“우리 누나만이라도, 구해주세요···.”


“······.”


“제발요···. 네?”


최우선적인 목표는 의약품과 물자 수급, 두 번째 목표는 생존자 구출이었다.


일단 첫 번째 목표인 의약품 수급은 어느 정도 달성된 것 같으니 부가임무인 생존자 구출에 대해 생각을 해볼 타이밍이었다.


“음···.”


“강 병장님. 어쩌실 겁니까?”


안지후가 내게 다가와 배성호와 나를 한 번씩 보고는 말했다.


“···일단 랑데뷰 포인트로 이동한다.”


“···예, 알겠습니다.”


안지후는 무언가 답답한 듯 한껏 찌푸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랑데뷰 포인트에서 2팀과 만나서 상의를 해보자고.”


그제야 조금은 펴진 얼굴을 한 안지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성호라고 했지? 일단 우리 좀 따라와볼래?”


“···네.”


아무래도 아직은 어린 소년이었기에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 것인지 배성호는 이대 역으로 향하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좋지 못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대기한다.”


“옛슴다.”


아직 2팀, 이강훈 쪽의 팀이 도착하지 않았기에 우리는 이대 역 내부로 들어가 있었다.


“한 마리도 안 보입니다.”


“그러게.”


역사 내부에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좀비는커녕 쥐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타다다닥-.

2팀을 기다리길 20분 정도, 이강훈과 분대원들이 묵직해 보이는 군장을 멘 채로 역사 내부로 들어왔다.


“거북이.”


“탈모.”


어두침침한 곳에서 규칙적으로 암구호를 사용해 서로를 확인한 나는 이내 배성호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들을 이강훈에게 설명했다.


“약탈자···, 라고 불러도 무방하군요.”


“예. 그래서 일단 빠르게 복귀해서 계획을 세우는 게 나을 듯 합니다.”


벌써부터 인간의 도덕심과 양심을 내려놓은 놈들을 잡기 위해서는 빠르고 간결한 기습 계획을 세워야 했다.


곧바로 역을 향하지 않겠다는 뜻을 보이자 라이터 불빛에 비친 성호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졌지만 모두 다 그곳에 갇혀 있을 사람들과 잡아간 놈들을 족치기 위해서였기에 나는 성호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곤 합류한 2팀과 함께 다시 대피소를 향해 움직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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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죽음 속으로(4) 24.08.12 18 0 13쪽
3 죽음 속으로(3) 24.08.11 1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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