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진 그 시간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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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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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빵
작품등록일 :
2024.08.15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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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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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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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EP4: 지금은 몇 년도?

DUMMY

“아니, 내가···?”


지수는 거울이 잘못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마법 거울일 수도 있잖아.‘


어리둥절해진 그녀는 낡은 잠옷을 다시 벗고 자신의 나체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피부의 탄성,

몇 년 전 생겼던 손목의 작은 화상 흉터,

허벅지의 튼 살,

병원에서 독한 약을 만지느라 주름진 손···.


죄다 없어진 상태였다.


제일 놀라운 건 그렇게나 빼고 싶어도 빠지지 않았던 뱃살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

어릴 적 자신의 몸으로 돌아갔다는 걸 충분히 자신의 눈으로도 확인이 된 순간.


“어머, 어머···. 앗싸! 오오, 미친!!”


그녀는 두 손으로 입을 막은 채 제 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여기가 어디든 지금이 언제든 그녀는 일단 로또를 맞은 것 같았다. 꿈이라면 깨기 싫었다.


그러나 꿈이라기엔 정신이 맑았다.

간호 일을 하면서 허리통증과 어깨통증을 달고 살았던 그녀였지만 지금은 그 몸 나이에 맞게 통증이라고 할만한 부위도 전혀 없었다.


며칠을 굶은 것 같지만 컨디션은 최상이다.

2층에서 뛰어내린대도 무릎이 아플 것 같지도 않았다.


’내 눈에만 이렇게 보이는 거 아니야?‘


지수는 한참을 거울 앞을 서성였다. 그 거울에서 눈을 떼면 그녀의 젊음도 사라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가만. 나만 젊어진 건가?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들도 혹시?'


그녀는 이 사실을 두 사람에게 물어봐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현우가 이미 그녀를 어리게 보고 말았는데 「저 사실 마흔이에요」 라고 말하면 그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미친 거지.‘


때마침 현우와 재호가 들어오는 인기척이 들렸다.

잠옷을 입고 나가기에는 너무 낯부끄럽지만, 나이도 젊어졌겠다, 분명 원래라면 이 잠옷도 살짝 꼈을 텐데 이 몸매엔 큰 잠옷으로 입을 수 있겠다, 자신감으로 가득 찬 지수는 당당하게 방문을 열고 나왔다.


“재호 씨, 현우 씨 오셨어요?”


지수는 2층에서 내려가며 처음으로 그들의 이름을 불렀다,

그것도 -씨를 붙여서.

처음에는 그들이 어린 20대 학생으로만 보여 OO 학생으로 불러야 하나? 란 생각이 들어 이름을 알면서도 호칭 때문에 망설였었다.


이젠 뭐 어떠하리.

나도 20대 학생으로 보일 텐데.


“네. 숲 안쪽엔 그래도 요깃거리가 좀 있네요.”


재호가 숲속에서 가져온 고사리와 버섯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정말요? 다행이다···.”


어제부터 굶었던 지수는 돌이라도 씹어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재호 씨랑 지수 씨는 앉아 계세요, 형편없는 솜씨지만 제가 요리해볼게요.”


현우는 멋쩍은 듯 웃으며 지수와 재호의 어깨를 끌어 식탁 의자에 앉혔다.


지수는 재호와 마주 앉자 살짝 머쓱했다.


말수가 많지 않은 재호는 키가 큰 편이고 조금은 마른 것 같았다.

20대라고 해도 이제 갓 고등학생티를 벗은 조각 같은 얼굴. 까무잡잡하지만 매끈한 피부, 짙은 눈썹···.


한 가지 의아한 건 흑발의 긴 머리가 참 어울린다는 것이었다.

참빗으로 까만 긴 생머리를 빗은 듯 앞가르마를 타서 야무지게 묶은 모습이 꼭 모델 같았다.



*

대충 식사를 마친 세 사람은 식탁에 둘러앉았다.


“현우 씨, 정말 잘 먹었어요. 어제도 밥을 못 먹어서 배가 무척 고팠거든요.”


“대충 해 본 건데, 지금 사는 하숙집 아주머니가 해주신 음식이랑 비슷하게 한다고 한 건데 입맛에 맞으셨나 모르겠네요.”


“와···. 아직 하숙집이 있다니 되게 오랜만이네요.”


나이도 젊은 사람이 하숙이라니, 새삼 현우가 정겨웠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난 뒤, 재호가 운을 뗐다.


“그런데 여긴 어디일까요? 그 남자가 우리를 여기로 모이게 만든 것 같은데. 아무것도 아는 게 없으니 답답하네요.”


지수도 사실 그 이유가 가장 궁금했다.


“공간이 한정적인 것도 그렇고. 집도 시대적으로 맞지 않는 걸 보니, 말이 안 되지만 여긴 지구가 아닌 것 같아요, 하긴 그 외계인 같은 이상한 남자가 문으로 나타나 문으로 사라지는 것 자체도 믿을 수 없는 일이긴 하죠.”


현우가 대답했다.


“그 남자가 사라지기 전에 저에게 곧 만날 거라고 했어요, 그때까지 기다려 볼 수밖에요.”


지수는 자신도 답답하지만, 재호와 현우를 안심시키고 싶었다.

외모는 20대의 지수지만 쌓아온 내공만큼은 그들보다 어른이라고 생각했으니.


갑자기 분위기가 어두워졌다. 지수는 화제를 돌려보기로 했다.


“가방엔 뭘 넣어 오셨어요? 저는 보셨겠지만, 병원에서 바로 이곳으로 넘어오게 된 거라 기본적인 의료용품 말곤 챙겨온 게 없어요.”


“저는 먹을 걸 들고 왔어요. 보릿자루랑 여기 있는 그릇들과 양초와 은촛대 같은 거요···. 어디로 가게 될지 몰라 일단 먹을 거 위주로 챙겨 왔어요.”


아. 재호 씨가 들고 온 그릇으로 밥을 먹은 거구나. 지수는 새삼 놀랐다.

나도 이런 것들을 챙겨 왔어야 했는데.


“현우 씨는요?”


“저는 그때 시위를 하던 중에 일이 일어난 일이라 들고 온 게······. 최루탄이랑, 라이터···. 사실 수류탄도 몇 개 있습니다. 저 이상한 사람은 아녜요! 의심하지 마세요! 상황이 상황인지라.”


지수는 어안이 벙벙했다.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다 왔길래 최루탄이라는 건지···.


무슨 시위를 최루탄으로 해?

수류탄은 또 뭔가?

군대에서 탈영했나?


현우의 무서운(?) 가방 속 얘기에 분위기는 더욱더 어두워져만 갔다.

지수는 다시 한번 화젯거리를 돌렸다.


“혹시 두 분 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하하···. 서로 호칭이 필요하니까요.”


지수는 은근슬쩍 재호와 현우를 떠보았다.

사실 그녀는 현우와 재호가 자신처럼 나이가 어려진 게 아닐까 하는 궁금증을 아까부터 참을 수가 없었다.


“현재 23살입니다.”

“저도 올해 23세입니다.”


헐.


혹시나 하던 지수는 크게 실망했다.

그들은 그냥 제 나이구나.

하긴, 누가 봐도 23살 청년들의 얼굴이었다.


“지수 씨는요?”


“하하! 저도 23살, 그쯤 돼요.”


현우의 기습적인 질문에 지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내가 거짓말을 원래 잘했던가?'


지수는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 상황에 그녀는 「마흔이에요, 만 나이로 39세」라고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

나도 지금 내 상황이 믿기지 않는데 그들이라고 믿을까.


현우는 지수의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그럼 다 친구네요, 친구! 안 그래도 재호 씨 지수 씨 이렇게 말하기가 어색했거든요. 아직 누구를 어른 대하듯 말해본 적이 없어서. 우리가 어떻게 어디서 만났건 이것도 다 운명 아니겠어요?”


'친구 아니라고!‘


지수는 목구멍까지 나오던 말을 애써 꾹꾹 참았다.


“지수 씨 말고 그냥 이름을 불러도 될까요? 편하게. 친구니까.”


“아하하, 그럼요.”


지수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현우와 재호에게 큰 죄를 짓고 있는 것만 같아서.


“친구라고요?”


순간 조각 같은 재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인데.

지수는 재호의 표정이 바뀌자 점점 더 그들에게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다.


그냥 사실대로 말해버릴까?

그러나 여기서 멈추면 그녀만 웃기게 될 것 같았다.

친구라고 이미 해버렸는데 지금 와서 진실을 말할 순 없었으니.


“재호 씨는 조금 불편하세요? 서로 편하게 말하는 거.”


현우도 이내 재호의 표정을 알아채고 조심스레 그에게 물었다.


“마음에 안 드는 건 아닙니다. 그냥 그대들에게 아까부터 궁금한 게 있었어요, 어제까진 몰랐는데 말이죠···.”


재호는 말을 이어나갔다.


“웃긴 소리지만···. 혹시 지금이 몇 년도입니까?”


재호의 터무니 없는 질문에 지수는 당황했다.

혹시 이 세계로 넘어오면서 기억을 잃은 걸까?


“제가 확신이 생겨서 하는 말입니다. 현우 씨를 처음 볼 때만 해도 몰랐어요. 단발령이 내려 짧은 머리 남자들도 이제 많으니까. 그런데 어제 지수 씨를 보고 알았어요. 지수 씨의 옷도, 신발도. 아까부터 그대들이 말하는 대화 내용도···. 미묘하게 저랑 다른 것 같아요···.”


“무슨 말이에요, 재호 씨. 지금이 몇 년도냐니.”


지수는 당황스러웠다.


“혹시 지금이···. 1928년 아닙니까?”


재호의 뜬금없는 말이 계속 이어졌다.


“네? 재호 씨, 왜 그래요···. 무슨 소립니까?”


현우는 재호가 걱정된다는 듯 말했다.


“지금이 우리 조선의 국권을 일본에 뺏긴 지 18년째 되는 1928년이 아닌지 물었습니다.”


“지금은 1987년입니다, 재호 씨.”


1987년이라는 현우의 말에 재호와 현우는 서로를 바라보며 눈을 끔뻑거렸다.


??

지수도 아무런 말 없이 눈을 깜박거렸다.


몇 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지금은 2024년인데요···.”


웃긴 상황 속에 지수도 한 몫 보탰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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