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진 그 시간 안에서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판타지

새글

자빵
그림/삽화
자빵
작품등록일 :
2024.08.15 21:17
최근연재일 :
2024.09.22 22:00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101
추천수 :
0
글자수 :
94,585

작성
24.08.17 22:00
조회
6
추천
0
글자
10쪽

EP3: 여긴 도대체 어디

DUMMY

처음부터 말이 안된다고 생각은 했지만 창밖을 바라본 그녀는 더욱 더 기가 찰 노릇이었다.

도심 한 가운데 있는 병원에서 바라보는 창밖 풍경이 밤바다라니.

기껏해야 지금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을 시간인데,

시간도 말이 안되지만 바다라니.


창문만 넘으면 모랫바닥에 발이 닿을 것 같았다.


창문을 여니 부드러운 모래바람이 그녀의 얼굴에서 미세하게 부서졌다.


그녀는 낡은 백팩을 뒤로 메고 창문에 발을 디뎠다.

이제 뛰어넘기만 하면···.


지수는 조금 망설였지만 한편으로는 약간의 호기심도 생겼다.

자신의 가혹한 현실이 싫어서였을 수도 있다.

또 어쩌면 밤바다에 비친 별들이 너무 예뻐서였을 수도.


'에라, 모르겠다.'


지수는 창밖으로 폴짝 뛰어 내렸다.


그녀의 발가락 사이로 부드러운 모래알들이 들어왔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해변으로 사뿐사뿐 걸었다.

하얀 간호복을 입은 그녀는 옷이 더럽혀 질까 봐 더욱 조심스럽게 걸었다.

밤바다라 그런지 7월의 날씨임에도 바람이 서늘하게 느껴졌다.

지수의 긴 갈색 머리가 바람에 흩날리니 기분이 좋았다.


'여긴 천국일까.‘


칠흑같이 어두운 밤바다는 달빛에 기대어 더욱더 검게 보였다.

밤하늘이 아름다워 고개를 들어 하늘은 본 지수는 갑자기 현기증이 느껴지더니 숨이 조금씩 가빠지기 시작했다.


“헉헉···. 왜 이러지,”


지수는 모래사장에 쓰러졌다. 숨을 쉬는 것이 점점 힘들어져만 갔다.


'왜 이런거지? 설마 이렇게 죽는 걸까···. 미련이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그렇게 스르르 눈을 감았다.




*

지수가 다시 살아있다고 느낀 것은 그로부터 12시간 뒤.

따뜻한 햇살 때문에 눈 부셨고 누군가가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정신이 드세요? 숨을 깊게 마시세요. 천천히··· 그렇죠, 천천히···.”


지수는 누군지 모를 친절한 남자 음성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마치 푹 자고 일어난 듯한 기분 좋은 느낌이 들었다.


“산소 포화도가 갑자기 낮아져서 그래요. 이제 안정됐으니까 괜찮아요.”


“아···.”


지수는 누군지 모를 남자의 부축을 받아 천천히 일어났다.


“그런데···. 여긴 어디죠?”


사실 정신이 들었을 때부터 지수는 궁금증이 폭발했다.

포근한 내 침대에 누워 있을 줄 알았는데,

하룻밤의 꿈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습게도 그녀가 깨어난 곳은 어제 쓰러졌던 그 모래사장이었다.


“정신이 드세요? 전 현우라고 해요. 저도 어제 여기로 왔어요.”


“어제 여기로 왔다고요? 원래 이곳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네. 여기가 어딘진 이제 차차 알아내야죠. 흡사 무인도 같긴 한데···. 아! 인사하세요, 당신을 발견했던 사람입니다. 이 분도 어제 이곳에 왔다고 하더군요.”


“안녕하세요, 신재호 입니다.”


지수는 그제야 현우 옆에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재호를 발견했다.


“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둘 다 나이가 젊어 보이는 청년들이었다.


“이곳은 제가 제일 먼저 온 것 같은데, 여길 쭉 둘러보니 눈에 보이는 이곳이 다인 것 같아요.”


현우가 바닷가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이게 다라니?”


지수는 하도 터무니가 없어 되물었다.


“재호 씨와 제가 이곳에서 처음 만난 뒤 여길 둘러봤는데···. 왼쪽 저기 해안가 끝 보이시죠? 저 끝까지 가면 반대편 오른쪽 해안가 끝으로 다시 나오더라고요.”


“네??”


현우의 말을 들은 지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처음부터 말이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한정된 공간? 되돌이표?


갑자기 그녀는 공황장애가 올 것 같은 느낌이 일었다.


“섬 안쪽으로 조금만 가면 집이 하나 있어요. 누가 쓰던 건진 모르겠지만. 일단 그쪽으로 가시죠. 성함이··· 강지수 씨? 옷도 다 젖었는데 감기에 걸릴지도 몰라요, 일단 들어갑시다, 제가 부축해 드릴게요.”


아, 내 명찰에 이름이 있었지···.

그제야 그녀는 어제부터 씻지도 못한 채 젖어있는 간호복을 입은 자신을 보자, 갑자기 한기가 느껴졌다.

지수는 현우의 부축을 받아 일어났다.


어제 창문을 통해 나왔던 자리에 정말 집이 한 채 있었다.


그 안으로 들어간 지수는 기분이 묘했다.

얼핏 보면 큰 오두막처럼 생긴 집은 복층으로 층고가 높았고 낡았지만 길고 꽤 큰 집.


1층엔 부엌과 식사를 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고 옛날 곡간 같아 보이는 곳도 있었다.

2층은 복도식으로 각각의 방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었다. 족히 100년 이상은 되어 보이는 집이었다.


“낡았지만 욕실과 방마다 침대는 있더군요. 마치 여기 머물렀던 사람이 있었던 것처럼요. 재호 씨랑 저는 2층 방에 가방을 놔뒀으니 편하신 방에서 짐 푸심 될 것 같아요.”


“짐이 없어요···. 잠시만, 가방요? 가방이라 하셨나요?”


지수는 어제 저세상 남자가 준 백팩이 생각이 났다.


“네, 어제 웬 남자가 가방 하나를 주더라고요. 그 가방만 가지고 갑자기 오게 된 거예요.”


“혹시 은색 단발머리를 한 남자 아니었나요? 그 가방을 준 남자 말이에요.”


“네, 맞아요, 재호 씨와 저도 같은 남자였어요.”


그녀는 동지를 만났다는 기쁨과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이 섞였다.


“가방은 제가 들고 왔으니 올라가셔서 좀 쉬셔요.”


현우는 지수의 가방을 2층까지 친절히 들어 주었다.


“가방이 꽤 무겁네요. 많은걸 들고 오셨나 봐요.”


“그러게요. 왜 들고 왔는진 저도 모르겠지만 꽤 많은 게 들어있긴 하죠···. 여기서 필요한 건 없겠지만.”


“지수 씨는 간호사시군요. 급하게 가방을 싸셨나 봐요, 옷도 못 갈아입고 오신걸 보면.”


현우는 안쓰럽다는 듯 그녀를 쳐다보았다.


“전문 간호사는 아녜요, 뭐 주사나 놓고 상처 치료하는 게 전부인걸요. 일한 지 얼마 안 됐어요.”


“그렇게 보이네요, 일한 지 얼마 안 되셨겠어요.”


음, 어떻게 안 거지?

나이가 있어 환자들은 노련한 수간호사로 나를 보던데.


“이 방에서 묵으시면 될 것 같아요. 씻을 수 있는 곳이랑 가장 가까운 방이거든요.”


“감사합니다.”


“저희는 잠시 나가서 먹을 것이 있는지 둘러보고 올 테니 좀 쉬고 계세요.”


지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방에는 작은 나무 침대와 오래된 침구, 나무로 된 낡아빠진 옷장과 화장대, 그 앞에는 뿌연 거울이 전부였다. 창문이 하나 있지만 열리진 않았다.


「끼이익」


옷장 문을 열었더니 중세시대에나 입을법한 낡은 잠옷 같은 것도 두어 개 걸려 있었다.

정말 누가 살았던 것 같았다. 아니면 예전부터 손님맞이를 위해 지어진 집일까나. 여관으로 쓰여도 될 법한 집이었다.


가방을 열어 들여다보던 지수는 한숨부터 나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옷이랑 화장품을 챙겨왔어야 했는데···.”


지수는 곧장 그녀의 방 바로 옆 욕실로 갔다.

낡았지만 생각보다 깨끗했다.

그녀는 더럽혀진 간호복을 벗어 던지고 나무로 만들어진 큰 욕조에 물을 받았다.

뜨거운 물은 나오지 않았지만 머리와 온몸에 묻은 모래를 씻어낼 수 있음에 다행이라 생각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그 두 사람은 어쩌다가 여기로 왔을까.‘


「조금 있음 알게 되겠죠. 저는 마지막 할 일을 하러 이만. 곧 봅시다.」


별안간 은빛 머리 남자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뭘 알게 된다는 거야. 마지막 할 일은 또 뭐고.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를 만나면 물어보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

재호와 현우도 그 사람을 만났다고 했으니 그 남자가 뭐든 다 알고 있겠지.


지수는 복잡한 생각들을 잠깐이라도 지우려 머리까지 욕조에 담궜다.

하지만 재호와 현우가 언제 올지 모르니 그들이 오기 전에 옷을 갈아입어야겠단 생각으로 이내 씻는 걸 멈췄다.


대충 옷장에 걸려있던 낡은 잠옷 같은 옷으로 갈아입은 그녀는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축축하게 젖은 갈색의 긴 머리를 빗고 싶었지만 빗이 없었다.


'화장품은 없겠지만 화장대에 빗은 있지 않을까.'


지수는 화장대 서랍을 이리저리 열어보았다.


웬일!

서랍 안에는 작은 빗이 하나 있었다.

살짝 기분이 좋아진 그녀는 화장대 앞 뿌연 거울 앞에 서서 머리를 빗었다.

어찌나 오래 닦지 않았던지 거울은 이미 거울의 형체가 아니었다.

지수는 긴 잠옷 소매로 거울을 벅벅 문질러댔다.


“이제 좀 깨끗해졌네.”


창문 옆에 있던 화장대 거울을 보며 그녀는 작은 빗으로 갈색의 긴 머리를 빗겨 나갔다.

미쳤다고 할 테지만 오랜만인 상쾌한 기분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마침 정오의 햇살이 제법 환해 거울에 비친 지수의 민낯이 반짝였다.


'화장도 안 했는데 피부가 투명해 보이네···. 주름도 없어 보이고 머리 숱도 꽤 많아 보이는걸.'


머리 숱이 원래보다 많아 보여서 그런지 엉켜있는 머리카락을 힘있게 빗어내던 순간, 지수는 다시 한번 거울 가까이 다가갔다.


“이게 난 가···?”


머리카락을 빗다 말고 지수는 멍하게 거울을 바라보았다.


“나 맞는데···. 지금의 내 얼굴인가?”


분명 그녀의 얼굴은 맞다.


하지만 팔자 주름도 늘어진 땀구멍도···.

처진 볼살과 턱도 없다···.

풍성해진 머리카락도, 뽀얀 피부도···.


영락없는 과거 20대의 지수 얼굴이었다.


「그렇게 보이네요, 일한 지 얼마 안 되셨겠어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멈춰진 그 시간 안에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2 EP22: 소중한 장난감 NEW 4시간 전 0 0 9쪽
21 EP21: 슬픈 영화 24.09.21 2 0 10쪽
20 EP20: 복숭앗빛 입술 24.09.06 3 0 10쪽
19 EP19: AtoZ 24.09.05 4 0 9쪽
18 EP18: 그녀의 연기 24.09.04 4 0 10쪽
17 EP17: 종로경찰서 24.09.03 4 0 10쪽
16 EP16: 스위트룸 24.09.02 4 0 10쪽
15 EP15: 1928년 7월 7일 24.08.31 4 0 10쪽
14 EP14: 임옥호텔 24.08.30 4 0 9쪽
13 EP13: 지킬 수 있는 남자 24.08.29 4 0 10쪽
12 EP12: 모갈 1호 24.08.28 4 0 10쪽
11 EP11: 잃어버린 시간 24.08.27 5 0 9쪽
10 EP10: 넌 친구니까 24.08.26 4 0 9쪽
9 EP9: 비밀을 지켜 줄게요 24.08.24 4 0 10쪽
8 EP8: 라메탈 별에서 온 아스트론 24.08.23 4 0 9쪽
7 EP7: 은빛 머리 남자 24.08.22 4 0 9쪽
6 EP6: VVIP 24.08.21 5 0 10쪽
5 EP5: 당신이 왜 여기에 24.08.20 5 0 9쪽
4 EP4: 지금은 몇 년도? 24.08.19 7 0 9쪽
» EP3: 여긴 도대체 어디 24.08.17 7 0 10쪽
2 EP2: 늙은 여우 24.08.16 6 0 10쪽
1 EP1: 우리는 영원한 스무 살 24.08.15 14 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