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진 그 시간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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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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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빵
작품등록일 :
2024.08.15 21:17
최근연재일 :
2024.09.2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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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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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EP16: 스위트룸

DUMMY

현우와 엘런, 지수는 유신을 만나기로 한 임옥호텔로 향했다.

그들은 서로 말이 없었다. 재호의 배신이 실망스러웠지만 반대로 재호의 행동을 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한반도의 역사상 가장 뼈아픈 시대라고 우리는 모두 배워왔으니까. 막상 그 시대의 현실을 눈앞에서 보고 겪은 그들은 더욱더 가슴이 미어질 듯 아팠다.


살면서 내가 힘들다고, 어렵다고 한 일들은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겐 징징대는 어린아이의 울음보다 못한 일들이 되어버렸다.


“유신···!”


지수가 유신을 부르는 말에 현우와 엘런은 터벅터벅 지친 몸을 이끌고 호텔로 걸어오는 유신을 발견했다.


“재호···. 재호 씨는 만났나요?”


재호가 보이지 않자 유신은 불안한 목소리로 지수에게 물었다.


“아뇨. 저녁 기차에도 재호는 없었어요.”


“아. 젠장···.”


“유신. 실망은 일러요. 내일 아침 기차로 재호가 올지도 모릅니다. 아니, 올 겁니다. 오늘은 여정이 길었으니 여기서 푹 쉬고 내일 아침에 다시 기차역으로 가보는 게 어떨까요?”


절망하는 유신을 보고 현우는 그를 위로했다. 내일 재호가 안 올지도 모르지만 딱히 그를 위로할 다른 방안이 없었다.


유신과 현우, 엘런과 지수는 임옥호텔 안으로 발길을 옮겼다.


“어서 오십시오, 고객님!”


호텔의 한 남자가 마중 나와 그들을 반겼다.


“안 그래도 제 안사람에게 연락을 받았습니다. 신혼부부가 오신다고 하더군요. 옷을 보고 알아봤습니다.”


‘저 지배인이 양장점 여주인의 남편이구나.’


지수는 지배인을 보자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스위트룸으로 묶으신다죠? 마침 오늘 스위트룸 예약이 없어 깨끗이 청소해 놓았습니다.”


“네? 스위트룸요?”


지수가 깜짝 놀라 엘런을 쳐다보았다.

지배인의 말을 들은 엘런은 이미 얼음이었다.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듯 지수는 계속 눈을 마주치려고 했지만 엘런은 이미 뇌 정지가 온 듯했다.


“우리는 방 4개가 필요하오. 스위트룸까진 필요 없소.”


뇌 정지가 온 엘런 대신 유신이 지배인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이···. 오늘 방이 3개 밖에 없습니다. 하나가 스위트룸이고 나머지 방은 작은 1인용 침대가 있는 방밖에 없습니다.”


“네? 방이 없다니요? 평일이잖아요!”


지수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주말에야 경성역으로 오시는 손님들이 많지만 저희 호텔은 평일엔 손님이 없어 다음 날 아침에 기차를 타는 일본인이나 외국인의 거처로 사용됩니다.”


“다른 호텔로 가요.”


지수가 말했다. 그러나 모두 힘든 날이었던 그들은 지쳐있었다.


“여기서 제일 가까운 호텔이 인력거로 30분은 걸립니다. 게다가 다른 호텔도 상황은 비슷할 겁니다.”


눈치 빠른 지배인이 덧붙였다.


“지수, 내일 재호를 만나려면 어차피 우린 더 멀리 갈 수 없어. 일단 남은 방 다 주세요.”


현우의 말이 옳았다.

어차피 내일의 일을 위해선 이 호텔이 최선이었다.

지배인은 방을 안내하러 그들과 동행하였다.


사실 키만 받고 스위트룸에 현우와 엘런을 같이 묵게 하고 지수 혼자 방을 따로 쓸 계획이었지만 지배인이 따라 오는 바람에 엘런과 지수는 스위트룸으로 먼저 안내받아 들어갔다.


임옥호텔의 스위트룸은 생각보다 크진 않았다.

그러나 고급스러운 카펫 바닥에 응접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고 푹신한 소파와 침대는 3명이 거뜬히 잘 수 있는 크기였다.


거기에 푹신한 침구는··· 그야말로 오랜만의 횡재로구나.


“우리가 먼저 들어와서 유신과 현우가 어느 방에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네.”


지수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저기···. 난 소파에서 잘게, 지수 너만 괜찮다면.”


엘런이 지수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아니, 내가 소파에서 잘게.”


“무슨 소리야! 어떻게 남자가 돼서 여자를 소파에서 자게 해!”


“요즘 세상에 남녀가 어딨니? 나, 이래 봬도 병원에서 야간근무 때 병실 의자에서 매일 쪽잠 자던 여자야. 넌 아무래도 글로벌 아이돌인데 소파에서 자본 적도 없을 거 아니야. 내가 소파에서 잘래. 그게 편해.”


“뭐? 내가? 참나. 글로벌 아이돌은 그냥 되냐? 나도 처음엔 신인이었어. 신인 때 대기실 의자에서 머리만 대면 자던 사람이 나라고. 무시하냐?”


“몰라. 내가 소파에서 잘 거야. 저 침대 불편할 것 같아.”


“아니. 내가 소파에서 잘 거야. 난 좁은 곳을 좋아해서.”


지수와 엘런의 옥신각신은 끝이 나질 않았다.

둘은 소파에 먼저 앉겠다고 서로 밀치며 싸우다 지쳐 결국 나란히 소파에 앉게 되었다.


“먼저 씻어.”


“싫어. 엘런, 네가 먼저 씻어.”


둘은 아주 피곤했다.

빨리 씻고 뻗고 싶은 마음이 컸다.

왜 이런 거로 싸우는 건지도 모른 채 그냥 서로가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아 몰라! 이러다가 밤새겠어. 나 먼저 씻을게.”


엘런은 지수에게 백기를 들고 구시렁대며 욕실로 들어갔다. 그의 뒷모습은 사막여우같이 새침스러웠다.


‘풋! 이겼다.‘


이렇게라도 엘런을 배려하고 싶었던 걸까. 지수는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

한편 유신은 온종일 마음이 불편했다.

분명 자신의 환영으로 데려온 그들이지만 괜한 위험에 빠뜨린 것만 같은 죄책감이 들었다.


기차 안에서 엘런과 지수, 현우는 일본 낭인들에게 위협을 받았고 메데이아에게 그들은 노출되었다.


이 시대는 재호의 시대다.


재호가 4차원 공간에서 3차원 공간으로 다시 왔지만 지금 현재의 재호는 원래의 재호 시간과 개념이 다르다.

현시대에 사는 재호는 계속해서 시간이 흐르는 거지만 4차원에서 온 재호는 시간이 멈춰있다.


만약 차원이 다른 그들이 만나게 된다면?

유신은 한 번도 그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어떻게 될지 자신도 모른다.

현우의 말대로 내일 기차로 올까?

꼭 와야만 한다. 지금 그에게는 재호가 너무 필요한 시점이니까.


유신은 내일 메데이아를 찾으러 다시 종로경찰서로 가야 했다. 아직 메데이아의 꿍꿍이를 알 수 없었던 유신은 메데이아가 제물포로 다시 가기 전까지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

지수는 엘런이 씻은 후 욕실로 들어갔다.

근대식 욕실과 화장실이 구비되어 있는 스위트룸은 4차원 유신의 세계에선 상상도 못했던 따뜻한 물이 콸콸 쏟아져 나왔다.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고 그녀는 몸을 담궜다.


’바로 이거지···.‘


몸이 나른해진 지수는 깜박 잠이 들어버렸다.


쉼 없이 시간은 흐르고 지수는 욕조에 물이 식었을 때쯤 다시 눈을 떴다. 추위가 서서히 느껴지자 그녀는 욕조에서 나와 갈아입을 옷을 찾았지만 목욕 가운 외에는 그녀가 입을 옷이 없었다.

그렇다고 오늘 샀던 꽉 끼는 원피스를 다시 입을 수도 없고.


’엘런에게 셔츠나 빌려달라고 해볼까.‘


대충 수건으로 머리를 둘둘 말고 목욕 가운을 입은 지수는 욕실의 문을 살짝 열어 소파에 있는 엘런을 불렀다.


“엘런.”


그는 대답이 없었다.


“엘런?”


“······”


’잠이 들었나?‘


지수는 조심조심 소파로 갔다.

엘런은 목욕 가운을 입은 채 이미 깊은 잠에 빠져들어 보였다. 그의 옷은 소파에 아무렇게나 펼쳐져 있었다.

주섬주섬 그의 옷을 집어 옷장 안에 넣은 지수는 셔츠만 달랑 가지고 다시 욕실로 들고 갔다.


엘런의 넓은 어깨에 맞춰진 셔츠는 그녀에게 너무 큰 잠옷이었다. 소매가 길어 세 번을 접어도 그녀의 손가락만 겨우 보였으니.


“엘런, 엘런! 침대로 가.”


다시 소파로 간 지수는 엘런을 흔들어 깨웠다.


곤히 잠든 엘런을 놔둘까 생각도 했지만 엘런의 큰 키에는 소파가 한없이 짧았다. 어느 누가 보기에도 너무 불편해 보이는 자세인데.


“엘런! 일어나! 여기 너한테 너무 좁아! 어서.”


어떻게든 깨워서 잠결에 침대에 눕혀야겠다는 생각이 든 지수는 그를 끄집어냈다.


“아··· 왜···.”


술에 취한 사람처럼 잠에 취한 엘런은 지수의 힘에 못 이겨 반쯤 끌려 침대로 옮겨졌다. 병원에 일할 때도 노인들을 번쩍 안을 정도로 힘이 좋다고 칭찬받던 그녀였다.


미션에 성공한 그녀는 끌려 오느라 반쯤 벗겨진 엘런의 가운을 다시 여며 주었다.


“많이··· 아팠겠다···.”


엘런의 반라는 낮에 기차에서 일본 낭인들에게 맞은 흔적으로 가득했다.

지수는 가슴을 얻어맞은 듯 쓰라렸다.

4차원 세계였다면 가방에 들어있는 연고라도 발라주었을 텐데.


“바보같이 왜 달려든 거야.”


그녀는 흐르려는 눈물을 닦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가지 마···.”


갑자기 엘런이 일어나려는 지수의 팔목을 잡아끌었다.


“제발··· 가지 마.”


엘런이 다시 지수의 허리를 잡아 끌자, 그녀는 중심을 잃고 침대로 쓰러졌다.


’잠꼬대 하는 건가?‘


얼굴이 확 달아오른 지수는 이 자리를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이러다가 엘런이 눈이라도 뜨면 그 어색함은 아마 평생 갈 것 같은데.


지수는 엘런이 자신의 허리를 감싼 손을 살짝 잡아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 어떻게든 엘런의 눈을 뜨게 해선 안 됐다.


“안돼···. 가지 마, 지수···.”


엘런은 지수의 작은 어깨를 꽉 잡아 자신의 가슴에 닿게 꼭 끌어안았다. 팔 힘이 어찌나 센지 비집고 나갈 틈도 없었다.


그의 가운은 다시 풀어져 반라가 되어있었다.


그녀와 그의 가슴 사이에는 얇은 셔츠 하나가 전부다.

그의 따뜻한 온기와 심장 박동이 고스란히 그녀에게 전해졌다.


지수는 순간 몸이 얼어붙었다.


엘런이 내 이름을 불렀다···.


지수의 심장 파동이 제어 할 수 없을 만큼 거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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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EP17: 종로경찰서 24.09.03 4 0 10쪽
» EP16: 스위트룸 24.09.02 5 0 10쪽
15 EP15: 1928년 7월 7일 24.08.31 4 0 10쪽
14 EP14: 임옥호텔 24.08.30 5 0 9쪽
13 EP13: 지킬 수 있는 남자 24.08.29 5 0 10쪽
12 EP12: 모갈 1호 24.08.28 5 0 10쪽
11 EP11: 잃어버린 시간 24.08.27 5 0 9쪽
10 EP10: 넌 친구니까 24.08.26 5 0 9쪽
9 EP9: 비밀을 지켜 줄게요 24.08.24 5 0 10쪽
8 EP8: 라메탈 별에서 온 아스트론 24.08.23 4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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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P4: 지금은 몇 년도? 24.08.19 7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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