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진 그 시간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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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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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빵
작품등록일 :
2024.08.15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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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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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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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 당신이 왜 여기에

DUMMY

“뭐? 1928년?”

현우는 재호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 2024년???”

현우는 다시 지수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1928년이라니요?”

지수가 재호를 바라봤다.


“1987년은 또 뭐고요.”

지수가 다시 현우를 바라봤다.


“하···. 내 생각이 맞았어···.”


세 사람은 서로 알 수 없는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

재호는 예상했던 말을 들어서 속이 한결 시원했고 현우는 진심으로 놀란 표정이었다.

지수는 놀란 것도 있지만 사실 속으로는 자신의 말에 계산하기 바빴다.


'그러니까 내가 2024년에 왔다고 했는데, 23살의 내 나이라면 2007년이었을 테니까, 2007년이라고 말했어야 했나? 아, 거짓말은 더 큰 거짓말을 낳는다더니, 아 머리야···.'


“참나, 재호 씨, 그렇담 조선, 아니 일제 강점기 시대에서 왔다는 겁니까?”


현우가 재호에게 물었다.


“일제 강점기 시대라고 현우 씨가 지금 말한다는 건, 혹시 현우 씨가 왔다는 1989년엔 우리가 독립했다는 겁니까?”


재호가 되물었다.


“네? ··· 네, 그렇죠. 한참 전에 했죠.”


“정말입니까? 내 그럴 줄 알았어···. 흑, 그럴 줄 알았다고···.”


재호의 눈시울이 점점 핏빛처럼 붉어졌다.

현우는 재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누구든 재호의 눈을 본다면 그의 말이 진심이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을 터.


“지수 씨가 100년 뒤 사람이라니. 어떻게 이런 일이···.”


“그러게··· 요. 하긴, 우리 상황이 지금 말이 되는 게 있나요.”


지수는 뒷말을 흐렸다.



*

과거의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미래인을 만난다는 건 시대를 불문하고 신기할 것이다.


“지수 씨가 나보다 36년 뒤 사람이라니. 아직 내 시대엔 태어나지도 않았다는 거잖아? 와, 너무 신기하다! 세기말 1999년에 세상이 멸망할 거라고 하던데. 2000년대에 사람이 살긴 하는군요.”


“도대체 100년 뒤엔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겁니까? 독립은 언제 하는 거죠?”


그들은 여기에 온 목적과 이유를 알아내는 것엔 이제 관심이 없어 보였다.


「미래인」 이라는 부지의 세계는 항상 흥미 있기 마련이다,

미래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으니.


세 사람 중 가장 미래인은 지수였지만 그녀는 현우와 재호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역사를 최대한 말해주지 않기로 했다.

다시 현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는 보장도 없는데 이런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혹시 그들도 나중에 삶의 제자리로 돌아간다면 역사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게 이치에 맞으니까.


세 사람은 금방 친해졌다.

서로의 비밀을 나눈 것처럼 이제 그들은 스스럼없는 사이가 된 것 같았다.

그리고 서로의 삶에 동경과 존경이 공존했다.


“우리 시대엔 남녀가 낮춤말을 쓴다는 건 좀 어색하긴 한데 그대들의 시간에서는 흔한가 보네요.”


“그럼요! 나이도 같은데 다 같이 편하게 반말하죠, 우리. 이런 인연이 어디 쉽겠어요?”


현우는 반말에 집착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우는 대학에서도 알아주는 요즘 말로 인싸였다.

곱슬머리에 장난기가 가득한 귀여운 얼굴.

완벽한 비율의 몸매를 가진 현우는 지나가는 여자들이 다 쳐다볼만한 귀족 같은 남자였다.

학생회장이기도 했으며 민주화 운동에도 앞장서는 의리의 사나이기도 한 현우는 어색한 것을 참지 못하는 성격상 OO 씨라고 할 때마다 목 뒷덜미에 작은 거미가 지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래, 내가 1987년까지 살아있을진 모르겠지만 지금은 낮춤말로 하자. 지수 넌 괜찮아?”


“네! 당연하죠.”


사실 지수에겐 이런 시간은 살면서 처음이었다.

비록 시대는 다르지만, 남매같이, 가족같이 서로 몇 시간씩 둘러앉아 웃고 떠드는 삶은 한 번도 상상해 본적도 겪어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가, 조금은 기뻤다.



*

“이게 놋그릇이구나, 지금은 이런 그릇 보기 힘들어. 어떻게 이 무거운 것들을 들고 왔어?”


해가 지고 저녁 밥상에 앉아 지수는 놋그릇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내가 일하는 주인집에서 들고 온 거야, 사실은 훔친 거라고 할 수 있지. 낮에는 일본인 집에서 일하는 대가로 살아가고 있거든. 어차피 그 일본인도 조선인들에게 빼앗은 놋그릇이니···. 훔친 거를 다시 훔쳐 왔다고 해야 하나?”


“이 나쁜 놈들!”


현우와 지수는 서로 약속이나 한 듯, 격양된 말투로 소리쳤다.


“그리고 밤에는 독립군들과 보통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조선인들에게 우리말과 우리 역사를 가르치는 야학 선생을 하고 있어. 우리 글을 지키고 올바른 역사를 알아야 나라를 지킬 수 있으니까.”


지수는 순간 전율이 일었다.


“우와···. 대박 멋있어! 재호는 역사 선생님이구나. 난 첨에 네가 모델인 줄 알았어. 넌 지금 내 시대에 가면 바로 길거리 모델 캐스팅 감이야.”


“내가 모델이라니? 그게 뭔데?”


“사진이 있는 책 있잖아. 거기서 최신 유행하는 옷이나 신발 같은 거 신고 광고하는 사람 말이야.”


지수는 재호가 알아듣기 좋게 최대한 영어를 쓰지 않고 말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100년이라는 세월은 결코 짧지 않구나.


“글쎄. 신여성들이나 기생들이 사진을 찍는 건 봤어. 일본인 가족들이나 부자들이나 찍는 거지, 보통은 사진 같은 걸 찍어본 적도 찍혀본 적도 없어서 말이야. 내 친구도 사진 찍는 기술 배운다고 일본으로 건너갔어. 나중에는 사진 기술이 많이 발달해서 그게 돈이 된다는군.”


재호가 말하자 옆에 있던 현우가 밥 먹다 말고 히죽 웃으며 말했다.


“50년만 지나 봐, 그 사진이 이제 형형색색으로 나온다니까? 흑백이 아니라 컬러로 나온다고! 카메라는 또 얼마나 작아지는데! 가방에 넣어서 들고 다닐 수도 있게 된다고.”


“뭐? 들고 다닐 수 있다니? 정말인가?”


“그럼! 집마다 하나씩은 다 들고 있을걸?”


“아니! 조선이 그렇게 잘 산단 말인가?”


지수는 그들의 대화가 너무 귀여웠다.


'지금은 핸드폰으로 찍는다고···. 대한민국이 얼마나 잘살게 되는데! 당신들의 노력으로 독립을 해준 덕분에,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 준 덕분에···.‘


순간 지수는 그들이 사랑스러웠다.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

지금의 우리를 이렇게 편하게 잘살게 해줘서.


그녀는 입이 근질근질했지만 꾹 참았다.

그러나 언제까지 참을 수 있을지 자신이 점점 없어졌다.


그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도 일어설 생각도 않고 자신의 시대에 대해 서로 자랑하듯 이야기꽃이 피었다.

마치 생생하게 살아있는 역사 수업을 받는 듯한 지수는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몇 번이나 생각했다.



*

달빛이 환한 걸 보니 밤이 꽤 깊어진 듯했다.


“자자, 여러분 이제 그만! 도대체 우리 얼마나 앉아있었던 거야? 시간 가는 줄도 몰랐어. 정말 오랜만에 너무 재미있었어.”


현우가 드르륵 의자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시계가 없으니 정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겠네. 밤이 새도록 얘기하래도 하겠어.”


지수도 사실 아까부터 하품이 계속 나오고 있었다.

현우가 먼저 일어나자고 말하지 않았다면 아마 식탁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을 테지.


재호가 은촛대에 꽂혀있는 양초를 ‘후’ 불자 사방이 깜깜해졌다.


“잘자, 모두.”

지수가 2층 계단을 막 밟았을 때였다.


「쿵!!」


별안간 대문 밖에서 큰 소리가 났다.

무언가가 크게 떨어진 소리 같기도.


2층 계단을 막 올라가려는 그들은 모두 사색이 되었다.


“뭐, 뭐야? 무슨 소리지?”


지수의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쉿!”


현우가 지수를 보며 말했다.


“지수, 내 뒤로 물러서 있어.”


재호가 지수의 손목을 끌어 자신의 뒤에 숨겼다.


「쾅!!」


누군가가 대문이 거침없이 열었다.


“저기, 저기요!! 도와주세요!”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두 사람의 형체였다.

분명 한 사람이 누군가를 부축하고 있었다.


깜깜한 밤, 보름달의 둥근 달빛은 유난히 밝았다.


그 환한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은색 단발머리···.


누군가의 부축을 받고 이는 은빛 머리 남자였다.


현우와 재호, 지수가 그토록 기다린 그 남자.


지수가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켰다.


“아, 피, 피···.”


은빛 머리 남자의 이마에서는 피가 나고 있었다.

그 붉은 핏물이 찰랑거리는 은빛 머리를 물들이고 있었다.


“제 실수로···. 이 사람이 다쳤습니다. 도와주세요!”


부축해 주고 있는 남자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재호가 다시 양초에 불을 붙이니 1층 사방이 다시 환해졌다.


“2층으로 가요! 이쪽으로 오세요!! 어서!”


현우와 재호가 부축하던 남자에게 은빛 머리 남자를 넘겨받아 2층으로 올라갔다.


“하아···.”


은빛 머리 남자를 넘겨준 그는 그제야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지만 지수는 그 자리에서 꼼짝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에··· 엘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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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EP8: 라메탈 별에서 온 아스트론 24.08.23 5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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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P4: 지금은 몇 년도? 24.08.19 8 0 9쪽
3 EP3: 여긴 도대체 어디 24.08.17 7 0 10쪽
2 EP2: 늙은 여우 24.08.16 7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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