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웹소설 작가다.
“쓰레기군.”
그래서 이런 평가를 할 수 있었다.
펴는 책마다 쓰레기다.
기사가 더워서 투구를 벗는 장면 하나에도 온갖 형용사와 미사어구가 가득.
2페이지 분량의 묘사는 가독성이 박살나있는데 있는 집 자식들은 이딴 쓰레기 같은 비문을 정성을 다해 읽고 있었다.
그들의 사교계에서는 이런 글이 교양으로 치부되기 때문이겠지.
세상엔 분명 저것보다 더 나은 글이 있다.
그런데 저런 쓰레기를 시간과 정성을 들여 읽는 꼬라지를 보고 있으니 안타까운 심정을 금하지 못해 말이 입 밖으로 나왔다.
나도 모르게 말이다.
“지금 뭐라 그랬냐?”
“무엇이 말입니까.”
“그란티아 왕국의 명문 아카데미 최고의 지성들이 선정한 세기의 도서 100선 중 하나, 「황야의 기사와 광야의 제왕」을 일개 사서 따위가 쓰레기라고 칭하지 않았나?”
들린 모양이군.
귀족들을 대하는 것은 역시 성가시다.
사소한 것도 트집을 잡아 무소불위의 권위를 휘두를 수 있다.
나 같은 인맥도, 기반도, 연고도 없는 이계에서 온 전이자 따위는 아무렇게나 살해하더라도 그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책임을 묻지 않을 거다.
뭐, 그들이 내가 차원이동을 한 지구의 문명인이라는 사실은 절대 모를 테지만.
“그렇다면, 네가 한 번 써봐라.”
“예?”
“감히, 레오니데스 가의 직계인 나의 앞에서 반문을 하는 거냐? 네가 한 번 소설을 써보라고 하였다. 너그러운 나에게 걸렸기에 네 놈의 목이 지금 그 자리에 붙어 있는 것이지, 다른 귀족이었으면 네 놈은 이미 죽었다.”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다.
그 날, 글을 쓰라고 협박을 당한 나는 고민에 빠졌다.
이세계에 와서 언어를 익히고 생활고에 시달리느라 글을 안 쓴지 오래되었지만, 프로 웹소설 작가였던 나의 글 근육은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었다.
어떤 세계관이든 당장 종이 위에 펼쳐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글을 써야 좋을까?
웹소설 작가는 철저히 상업적인 글을 쓴다.
현대 사회의 사람들은 일 년에 종이책 1권도 제대로 읽지 않는 사람이 부기지수.
그들은 출근이나 퇴근길의 지하철에서 간단하게 소비할 수 있는 스낵 같은 글을 선호한다.
조금만 자신의 취향과 맞지 않아도 바로 뒤로 가기를 누를 용의가 준비되어 있는 독자가 내 글을 소비하게 하려면 어그로와 자극적인 전개가 필수였다.
그래서 내가 쓰던 글들도 일반적인 다수의 소비자 성향에 맞춰서 주인공 위주의 서사, 전개에 대한 기대감, 서사를 마무리하며 사이다 같은 만족감을 보상으로 주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써야하는 글은 저 레오니데스 가의 영애가 만족할만한 글이다.
다행히도 그녀에 대한 정보는 차고 넘친다.
그랜드 마스터라고 불리는 레오니데스 후작의 피를 가장 진하게 이어받았다고 소문이 자자한 바로 그 영애였으니.
얼핏 보았지만 그녀의 손에는 굳은살이 잔뜩 박혀있었고 등이 드러나 보이는 드레스를 입어 등근육이 악마의 형상을 한 채 움찔거렸었다.
나를 곱게 살려준 것을 보면 귀족 중에서 가장 민생을 살핀다는 소문도 거짓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장르는 역시 ‘그것’으로 하는 게 좋겠지.
타이핑을 하는 게 아니라 손으로 직접 글을 연재하는 건 처음이었지만.
오랜만에 적는 글은 나를 설레게 하였다.
협(俠)에 죽고 협에 사는 그 세계관이라면, 분명 저 영애도 만족할 수 있을 테지.
그리고, 완성한 1권 분량의 원고를 레오니데스 가의 집사에게 전달하였을 때.
“네 이놈! 당장 이리 나오지 못할까! 네 글을 읽고 저택의 모든 역사서를 뒤져보았다. 화산이 무엇이냐, 청운이 누구더냐. 어째서 한 낱 사서 따위가 고결한 깨달음을 글에···. 아니, 아니지. 당장 다음 권. 다음 권을 다오!”
왕국에 거대한 격변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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