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궁의 비선실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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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도둑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8.20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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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31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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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1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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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월 (2)

DUMMY

청휘 공주는 제 이명인 ‘청휘’가 참 잘 어울리는 자였다.


제 고귀함과 고결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듯한 용모는 하얀 분칠을 받아 저 하늘에 뜬 구름보다도 하얀 빛을 뿜어내고 있었으며, 푸르른 남색의 머리는 갓 해가 저문 하늘처럼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금일도 수고많았습니다. 정 나인.”


‘아름답다’는 말을 인간으로 빗어낸 듯한 용모.


기품이 뚝뚝 흘러넘치는 손짓 하나하나에 더불어.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청아한 목소리로 매번 존대를 해오며, 사용인들의 노고를 치하하곤 하니.


‘저 고귀하신 분을 어찌 의심할 수가 있는 건지··· 악한 마음 따위는 일절 품지 않으실 것으로 보인다만···’


정화월은 당최 서원평의 말을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언제 보아도 정 나인의 깔끔한 일처리는 놀랍기 그지없군요.”


“송구하옵니다. 공주 전하.”


정화월은 평소와 같이, 청휘궁의 일을 돕기 위해 파견을 나왔다.


그리고는 평소와 같이, 자신이 운월궁 소속의 궁녀임을 궁 곳곳에 말하고 다니며, 제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냈다.


남은 것은, 평소와 같은 일을 끝낸 뒤에 하는 사후보고였다.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평소와는 달리 어딘가 불편한 구석이 있는 제 자신의 마음 뿐이었으리라.


청휘 공주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정화월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사근사근 읊조렸다.


“마음만 같아서는 청휘궁 소속으로 데려오고 싶습니다만···”


멋쩍게 웃는 정화월에게, 청휘 공주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눈을 감곤 말했다.


“그 한결같은 충심 역시도, 정 나인의 큰 장점이지요.”


“이 불초한 몸을 어여삐 봐주시니, 감사드릴 따름이옵니다. 전하.”


청휘궁 뿐만 아니라, 다른 궁에서도 정화월을 원하는 이들은 많았다.


봉급의 두 배, 세 배를 준다는 제안도 있었고, 직급을 몇 계단은 껑충 올려주며 탄탄대로를 보장해준다는 제안도 있었다.


허나 자신이 충성을 바치는 이는 제 주군인 이설 하나 뿐이었던 까닭으로, 정화월은 그 모든 제안에 그저 ‘송구하다’로 일관할 뿐이었다.


청휘 공주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던 모양인지라, 그녀는 금새 주제를 돌렸다.


“아, 내 동생 설이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요? 저번에 전해 듣기로는, 이제 자수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들었는데···”


정화월은 이설의 개나리 자수를 생각하곤 살풋 웃었다.


-저, 정말 이상하지 않느냐···? 내 정성을 다해 만들어 보았거늘··· 개나리는 커녕 꽃으로 봐주기만 하여도 용할 따름이구나···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곤 하는 광경이었다.


정성을 들여 만들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며, 정화월이 몇 번이고 설득을 하고 난 뒤에야 이설은 안심하곤 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자수에는 영 재능이 없어보이십니다. 전하 본인은 자수를 놓는 것을 즐거워하시나, 황녀 전하께서는 총명한데 비해 손재주는 부족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아하, 재능이··· 없다?”


“···예. 전하.”


청휘 공주는 저와 같이 살풋 웃어보였으나, 정화월은 왠지 모를 기시감을 느꼈다.


저 웃음에 담긴 저의가, 과연 제 자신과 같은 의미를 품고 있을지에 대한··· 약간의 의뭉스러움이었다.


‘비웃은 건가?’


평소에는 전혀 느낄 수 없던 기시감이었다.


···그 능구렁이 같은 호위무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난 뒤에야 새로이 느끼게 된 것이었다.


정화월은 고개를 젓고는, 제 머릿 속에 드는 의뭉스러움을 털어내려 노력했다.


‘아냐, 그럴 리가··· 제 동생을 그리도 어여뻐하시는 청휘 공주신데··· 귀여워하신게 분명해.’


이윽고, 조신한 자세로 차를 홀짝 들이킨 청휘 공주가 말을 이었다.


“새로 온 호위무사와는 이야기를 나눠 보셨는지요? 혹, 정 나인에게 위해를 끼치려고 하지는 않았는지요?”


“!”


“···정 나인?”


“예, 예··· 항간의 소문과는 달리, 과묵하고 우직한 자였습니다.”


“달리 수상한 부분은 없었고요?”


“···예. 간단한 인사 정도만 나눴을 뿐이라, 성정까지는 미쳐 파악하지 못했사옵니다.”


정화월은 처음으로 청휘 공주에게 거짓을 고했다.


‘왜, 왜··· 자연스레 거짓말이 튀어나왔지? 분명 솔직하게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분명 그 수상한 무사의 말을 듣느니 그의 계략을 전부 청휘 공주께 폭로할 생각이었다.


구태여 내기 따위 하지 않아도, 서원평의 어두운 속내를 밝히기만 해도 그를 궁에서 내칠 수 있었다.


다만 영문 모를 기시감이 정화월의 언어를 정제하고, 행동을 그르칠 뿐이었다.


“과묵하고, 우직하다··· 흐음··· 이러면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네요.”


다시 의뭉스러운 말.


평소같았으면 신경쓰이지도 않았을 말이었으나, 서원평의 말을 듣고나선 그리 신경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거짓을 고해버렸으니, 이제 와서 뒤로 무를 수도 없는 법이지··· 내가 어쩌다 그런 내기를 해선···’


결국, 이 모든 의뭉스러움을 풀 방법은 서원평의 조언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요컨데, 외통수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밑져야 본전이지. 그래, 일단은···! 질러보고 생각하자!’


정화월은 눈을 질끔 감고는 말했다.


“공주 전하, 한 가지 더 아뢸 말이 있사옵니다.”


“예, 말해보시지요. 정 나인.”


“최근 이설 전하께서 잠을 도통 깊게 주무시지 못하시고, 자주 새벽에 기침하곤 하십니다. 혹 큰 병에 걸리신 건 아닐지 염려가 되어, 무지몽매한 소인이 전하께 조언을 여쭙고 싶습니다···”


한 움큼의 진실도 들어있지 않은, 온전한 거짓이었다.


‘혹여나 들키진 않을까?’


‘이를 진심으로 받아들이셔서 운월궁에 행차하시곤, 황녀 전하의 안부를 묻는다면?’


정화월은 고개를 숙이고, 조심스레 청휘 공주의 표정을 살폈다.


고개를 숙인 채,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표정을 살피는 것은 정화월의 장기 중 하나였다.


‘제발, 제발···’


어쩌면 정화월은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고귀한 얼굴에 걱정스러움을 물씬 얹어내고는, 당장이라도 운월궁으로 행차하겠다며 길에 오르는 청휘 공주의 모습을.


그리하여 제 거짓말이 탄로나고는, 어찌 황족을 능멸하려 드느냐며 큰 벌을 받는 자신의 모습을.


차라리 그리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세상에 저 말고 이설의 편이 한 명쯤은 있을 것이라고, 운월궁의 이름을 알리고, 잊혀지지 않기 위해 노력한 제 삶에는 분명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믿고 싶었다.


‘아, 아아··· 왜, 대체 왜···’


허나, 세상만사가 그리 쉽게 풀렸다면 왜 이설은 저 혼자 공주가 아닌 황녀로 남았을 것이며, 자신은 왜 어린 나이에 궁으로 팔려왔겠는가.


왜 자신이 몰래 남들의 눈치를 살피고, 그에 맞게 행동거지를 고치는 이런 음험한 특기를 다듬었겠는가.


‘제발 웃지 마셔요. 입꼬리를 올리지 마셔요···’


“흐, 흐으···”


청휘 공주는 열심히 웃음을 참으려는 듯, 입꼬리를 진동하고 있었다.


‘입가를 가리고, 웃음이 아니라 신음성처럼 보이려 분명 고개를 숙이실 거라고··· 전부, 전부··· 그 남자의 말대로···’


서원평의 말대로, 표정을 열심히 살피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변화였다.


“흑, 흑··· 어쩜 그런 일이···! 그리도 어리고 유약하신데, 근심 걱정까지 한둘이 아니니, 잠에 깊게 빠지지 못하는 건 응당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웃는 낯을 싹 지우고, 눈물을 몇 방울 흘린 채 하며 눈가를 몇 번 어루만진다.


환희의 감정을 전부 지워내곤, 동정심으로 얼굴을 꾸며낸다.


저 작은 몸짓 하나하나가, 대사 한 토씨 한 토씨가 전부 서원평이 말한 그대로 물흐르듯 이어졌다.


“청휘궁에 있는 약초 중에, 필히 숙면에 도움이 되는 약초가 있었습니다. 언니된 자로써, 동생이 그리 괴로워하는 꼴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요! 당상관! 당장 약제사께 여쭈어 얼른 ‘그 약초’를 가져오시지요!”


이윽고, 청휘 공주의 뒤에 있던 가신이 청휘 공주에게 재차 물었다.


어딘가 음침해 보이는 구석이 있는, 늘상 낯빛이 어두운 남자였다.


“‘그 약초’ 말씀이시지요?”


“예! 정 나인에게 들려 보낼 것이니, 바로 준비하라고 하시지요!”


“예, 전하··· 명··· 받들겠습니다.”


마치 미리 준비되어 있다는 듯, 약초는 빠르게 대령되었다.


“어떤 병이든 간에 초반에 뿌리를 뽑는 것이 중요하지요. 금일 운월궁에 도착하자마자 설이에게 이 약초를 복용시키셔요. 정 나인. 물에 담그거나, 한 번 쪄서 내게 되면 약효가 떨어지니··· 꼭, 반드시 이 상태 그대로 먹여야 한답니다?”


청휘 공주는 ‘꼭’, ‘반드시’에 강세를 주곤 정화월에게 신신당부했다.


‘어쩜, 한 토씨도 틀리지 않을 수가 있지? 대체 어떻게···’


이 또한, 정화월이 청휘 공주를 만나러 가기 전 서원평이 그녀에게 이른 말과 같았다.


남은 것은, 믿기 어려우며, 믿고싶지 않은 사실에 방점을 찍는 일 뿐이었다.



***



“화월아, 이 독초··· 대체 어디서 난게냐?”


“도, 독초라고요? 분명 숙면에 도움을 주는 약초라고 했습니다!”


“대체 누가 그런 말을 한게냐? 이걸 약초라 하는 정신머리를 보아하니, 필히 돌팔이거나 머저리 둘 중 하나로겠구나.”


“···”


청휘궁을 나오자마자 바로 들른, 궁 내 내의원.


정화월의 지인인 내의 진웅천은, 정화월이 받아온 ‘약초’를 유심히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겉보기엔 수면에 도움을 주는 청안초와 같으나, 이 독초는··· 적안초다. 뿌리 부분은 같으나, 여기 꽃술쪽을 보게 되면··· 색깔이 분명 불그스름하지 않느냐? 응당 의원이라면 궁에 들자마자 이 두 꽃을 구분하는 법을 배우거늘, 어찌 이런 기초적인 실수를 한단 말이냐?”


“진 의원, 그렇다 하면, 이 독초는 복용하게 되면···”


“단기적으로는 수면에 들기 용이할 수 있지. 허나, 먹고 난 후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게 되면··· 서서히 이 약초 없이는 잠에 드는 것조차 힘들게 된다. 특히, 생으로 먹는 일은 절대 금해야 한다. 호흡이 가빠지는 것부터 시작해, 머리에 안개가 낀 듯 정신이 몽롱해지며, 최악의 경우엔 저도 모르는 사이 의식을 놓게 되고는, 영영 깨어나지 못하게 된다.”


진웅천은 얼굴을 찌푸리곤 한 마디 더 덧붙였다.


“요컨데, 독초 중에 독초라고 할 수 있는게지.”


이 모두가, 호위무사가 말한 것과 같았다.


달랐던 점이라 하면, 서책에서 보았던 것을 아무 감정없이 읊는 진웅천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서원평은 회환에 잠긴 표정으로, 끔찍이도 슬퍼하며 이 사실을 읊었던 것 뿐이었다.


‘허면, 청휘 공주께서··· 정말 이설 전하를 해하려고 하셨던 건가? 나는, 그것도 모르고 좋다고 황녀 전하의 일거수일투족을 알려주었던 것이고?’


그제서야, 정화월은 자신이 무슨 일을 벌일 뻔 했던 것인지.


여지껏 자신이 대체 무슨 짓을 저질러왔던 것인지 깨달았다.


이설을 해하려 했다는 죄책감.


자신의 무지함으로 하여금, 이설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었다는 자괴감.


이 두 감정이 정화월의 가슴 속에서 일렁이며, 속을 울렁이게 하곤 했다.


‘그 남자는··· 이 모든 걸, 어찌 알고 있었던거지?’


마지막으로 드는 생각은, 이 모든 사실을 마치 미리 경험한 듯 알고 있었던 남자.


서원평에 대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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