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궁의 비선실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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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도둑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8.20 13:53
최근연재일 :
2024.08.31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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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1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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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령문 (5)

DUMMY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아본지 얼마나 오래 되었던가.


아니, 그 이전에 제 가슴이 이리 거세게 고동친 적이 있었던가.


서가희는 눈 앞에 벌어지는 광경을 보고는, 그저 넋을 놓고 입을 벌리고 있었다.


사저인 자신에게 매번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던 사제.


미형으로 태어났으며, 재능이 출중했기에 망정이지 둘 중 하나만 없었어도 진작에 객사해도 모자랐을 판이었던 사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애 같은 면이 있어, 뭇내 마음에 걸리곤 했던 막내, 서원평.


그가 제 눈 앞에서 보이는 광경이, 차마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라웠던 까닭이었다.


서원평은 천천히, 간결하게 검을 휘둘렀다.


그의 실력이라면 더 빠르고, 화려하게 검을 휘두를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진작에 알고있건만.


서원평은 마치 자신에게 보여주고자 하듯, 느리지만 정확하게 검을 내지르는 것이었다.


‘벽천일도(劈天一刀), 혼절검강(魂絶劍鋼).’


서원평의 검술의 근간은, 서령문의 검과 맞닿아 있었다.


서가희가 입춘부터 대한까지 매일같이 배웠으며, 보았으며, 행했던 것이 그와 같았으니, 이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것이었다.


‘혈영참수(血影斬首), 귀혼쇄령(鬼魂鎖靈), 파혼멸령(破魂滅靈), 천령귀진(天靈歸盡).’


서원평이 보이고 있는 것은, 갓 문파에 입문한 신출내기들이나 배우는 서령문의 기초 중의 기초였다.


분명 그들과 같은 간단한 동작, 서령문의 검술에서 기초가 되는 움직임만을 보이고 있건만.


‘같으면서도 달라. 그저 검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마치 검무를 보는 것 같아···’


서원평의 검은, 서가희 저 자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형들과도 궤를 달리하는 유려함을 보이고 있던 것이다.


-캉!


-챙!


그저 돌덩이에 검을 휘두르고 있을 뿐인데, 서가희는 마치 서원평의 눈 앞에 상대가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서원평의 물흐르듯 이어지는 연격에, 저도 모르게 몰입하게 되었던 것이다.


벽천일도(劈天一刀), 혼절검강(魂絶劍鋼).


서원평은 거석을 상단으로 올려베었으며, 올려벤 검을 사선으로 휘둘렀다.


‘첫 수는 일부러 내어주었고, 두 번째 수는 피했어. 상대는 서령문의 초식을 얼추 알고 있는 이구나.’


혈영참수(血影斬首).


서원평은 우측으로 한 발짝 움직이고, 자연스레 몸을 비틀어 거석의 상단을 베어낸다.


‘상대의 공격, 사제가 간발의 차로 피하고, 바로 목을 노렸어. 상대는 이마저도 수월히 막아낸다. 서령문의 초식을 두루뭉술하게 알고 있는 이가 아니야. 서령문을 잘 알고 있는 데다가, 상당한 경지에 오른 강자야···!’


귀혼쇄령(鬼魂鎖靈).


서원평은 돌과 제 검을 마주대고는, 일순 시간이 멈춘 듯 우두커니 서있었다.


‘사제의 목을 노리고, 수많은 공격이 날아온다. 검격 하나하나가 곧 살초나 다름없으니, 움직임 한 번 잘못했다가는 금세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야!’


서가희는 자기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는, 손에 땀을 쥐곤 눈 앞의 전투를 지켜봤다.


‘이대로 가다간··· 확실하게 지고 말텐데···’


허나 제 타가는 속을 알련지 모르는지, 서원평은 검을 마주대곤 아무 행동도 취하질 않았으니.


서가희는 멀리서 제 사제를 닥달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마, 막내야! 무슨 수라도 써봐야 하지 않겠니! 얼른, 얼른 뭐라도 해봐!”


“···언제는, 그 놈의 검술이 얼마나 대단한지 구경이나 좀 해보자고 하지 않았습니까?”


한 합 한 합에 생사가 오가는 결투이거늘, 서원평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반문했다.


그 모습에 채 위화감을 느끼지도 못한 채, 서가희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지금 그런 소리를 할 때가 아니잖아! 빨리, 빨리···! 공격이 온다구!”


“후일 사저의 검술이 대성하게 된 데에는, 그 상상력 역시도 큰 지분이 있겠군요.”


“뭔 헛소리를 하고 있어! 너 지금 죽게 생겼다니까!”


“나중에 부끄러워하는 것도 사저의 몫이니, 거기까지 신경쓰진 않겠습니다. 이어서 보시지요.”


서원평이 그저 상대의 공격을 막기만 하기 위해 우두커니 서있는 것은 아니었다.


파혼멸령(破魂滅靈).


일순, 서원평의 검이 푸른 빛으로 빛났다.


“!”


네 번째 초식은 그저 상대의 공격을 막기 위함이 아니었다.


되려, 이어질 초식을 온전히 쏟아붓기 위한, 준비동작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했다.


‘다들, 네 번째 초식은 도저히 영문 모를 초식인데다가··· 열심히 수련할 필요가 없다며 경시했었는데··· 이건···’


비단 본인뿐만 아니라, 사형들 역시 이 기초적인 초식에 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거늘.


저보다 한참 어린 막내는 그것이 전부 억측이었다는 양, 검에 고고한 푸른 빛을 두르고 서있는 것이었다.


“아마 스승님께선 직접 깨우치시길 원했겠지요. 만약 사형들께 충분히 많은 시간이 주어졌더라면, 정말 스스로 깨우쳤을지도 모릅니다.”


서원평이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었으나, 이미 그의 말은 서가희에게 들리지 않았다.


그저 검을 두르고 있는 푸른 빛에 압도되어, 그 빛의 영롱함에 눈이 멀고 말았다.


“···허나, 주어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뭐, 언젠가 사저도 깨우치게 되니까, 미리 떠먹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천령귀진(天靈歸盡).


푸른 빛을 띈 검이 사선으로 움직였다.


푸른 빛은 눈 앞의 적을 베었으나, 베어낸 것이 그 신체 뿐만은 아니었다.


검을 내리친 곳엔 푸르른 잔상이 남아있었다.


잔상은 바람을 타고 날아가, 천신을 둘러싼 빛무리의 일부가 되었다.


“···방금, 무엇을 벤거야?”


서가희는 그 빛에 홀린 채로, 서원평에게 물었다.


“령을 벴습니다.”


“뭐···?”


“서령문의 검은, 사람을 베기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닙니다. 훗날 있을 요괴피폐드리프트··· 아니, 백귀야행에 대비하기 위해 만든 검술이지요.”


도저히 보고도 믿기 힘든 광경이 연이어 일어나는 데다가, 이제는 영문 모를 이야기까지 들려온다.


서가희가 ‘그런 건 됐고, 어떻게 해야 그렇게 아름답게 검을 휘두를 수 있냐’고 묻기 바로 직전.


-쩌적!


눈 앞의 상대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커다란 거석 하나에 사선으로 금이 가더니.


-쿵!


이내, 바닥에 내려앉으며 커다란 흙먼지를 내었다.


“!”


서가희는 그제야 정신을 되찾는다.


“아, 아!”


이윽고, 하늘에 뜬 태양만큼이나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아, 아아···”


그렇게 ‘얼마나 잘하나 보자!’하고 큰 소리를 내었건만, 결국엔 제 사제의 검술을 보고 홀려서는, 멍청하게 입까지 헤- 벌리고 있었던 게 아닌가.


허나 서원평은, 이런 서가희의 반응 따위는 일절 관심 없다는 듯 거석 너머의 상자를 살폈다.


“아무리 양약고구라는 말이 있다곤 하지만··· 냄새만 맡아도 영 먹기 꺼려지는 약이네. 어째 그때 눈뜨자마자 구토감이 밀려오더니만···”


그리 멍청한 표정을 하고, 그리 부끄러운 반응을 내놓았건만.


일말의 반응도 없는 것을 보면, 서원평 역시 제 검에 집중하느라 이런 반응을 살피지 못했을 심산이 컸다.


서가희는 아무렇지 않은 채 하며, 입가의 침을 소매로 닦아내고는 능청스레 말했다.


“흐, 흐으음··· 그게 스승님이 남겨주신 비보라는거지? 뭐 대단한 건가 했는데, 그냥 평범한 영약이잖아?”


“···”


“자, 가자! 사제야! 산길은 위험하니까, 어두워지기 전에 내려가는 편이 좋을거야!”


“그래서, 생각 좀 해보셨습니까?”


“뭐, 뭐가? 뭘 생각하는데? 황궁에 파견되는 일 말하는거니? 아, 아아! 이제 괜찮아! 스승님께서 본부하신 일인걸?”


허나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모든 일이 그리 자신이 바라는대로 되지는 않기 마련이니.


“그 놈의 검술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자고 그리 호언장담을 하셨건만, 마치 연극이라도 보듯 심취해서 감상하신 소감이 어떤지··· 이 사제는 그것이 궁금할 따름입니다.”


“아, 아악! 잊어! 잊어줘! 아니, 잊으렴! 사저의 명령이야! 형우제공이란 말도 있잖니! 그냥 ‘우리 막내가 벌써 이렇게 컸구나···’ 싶어서 놀랐을 뿐이야!”


“아까도 말씀드렸듯, ‘부디 가르쳐주십쇼!’라고 말씀하셔야지만 가르쳐드릴 겁니다. ‘알려줘!’도, ‘혹시··· 알려줄 수 있겠니?’도 안 됩니다.”


산길을 내려가는 내내 자신의 추태에 얼굴을 붉히던 서가희가, 조심스레 “부, 부···”를 되뇌이는 것도.


이런 제 자신의 모습에 다시금 괴로움을 느끼는 것도.


···전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산길을 내려오고, 황궁에 도착하기까진 시간이 제법 빠르게 흘렀다.


사저는 황궁으로 가는 길 내내 저 혼자 머리를 쥐어뜯고, 얼굴을 붉히다가 화를 내기를 반복하더니, 황궁에 다 도착해서야 내 손목을 꽉 붙잡았다.


“사저, 측간은 아까 다녀오시지 않았습니까? 제가 가는 길은 온통 산길이니, 진작에 미리 해결하고 오라고 말씀드렸던 것 같습니다.”


“그런 거 아니야! 너는 어쩜 사저한테 못하는 말이 없니?”


“허면, 무슨 말을 하려고 하시길래 그리 끙끙 앓고 계십니까?”


사저는 무언가 굳게 결심한듯,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내쉬곤 말했다.


“부, 부···”


“오면서 ‘부’ 자만 일천번은 들은 것 같습니다. 사저. 되려 한시도 쉬지않고 말했던 때가 그리웠을 노릇입니다.”


“부디 가르쳐주십쇼···는 너무하지 않니! 아무리 그래도 네 사저인데! 어찌 사저한테 그런 말까지 하게 할 수가 있어!”


“예, 뭐··· 반쯤은 장난이었습니다. 전하를 호위하고 교육하는 시간을 제하고 남는 시간에 좀 알려드리겠습니다.”


“너, 너···! 이럴거면, 왜 이럴거면 진작에 말 안 한건데··· 왜 다 와서야, 황궁에 도착해서야 말해주는거냐구!”


사저가 강해지는 건 내겐 득밖에 없는 일이다.


전생의 그녀 역시 혼자서 요귀 백 마리는 거뜬하게 헤치울 수 있는 강자로 거듭나곤 했으니.


운월궁의 사람이 된다면, 후일 이설을 지키는데 있어서도 크게 이바지할 수 있을 터였다.


사흘 간의 기행을 마치고, 나는 곧장 이설에게 보고를 올리기 위해 운월궁으로 향했다.


당상관 윤문상에게 스승의 안부를 전하고, 스승님의 소개로 사람을 한 명 더 데려왔다고 전했다.


“당상관 나리를 뵙습니다. 스승님께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서원식 그 양반이 제 얘기를 많이 했습니까? 늘상 편지를 주고받을 땐, 그에 대해선 일언도 언급이 없었습니다만···”


“예, 물론입니다. 박학다식하시며, 품성까지 좋기 그지없으시니, 많은 관리들이 나리를 본받아 배워야 나라가 부국강병해진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셨습니다. 이리 직접 뵙고 이야기를 나눠보니, 스승님의 말씀이 역시 참이었던 모양입니다.”


“허, 허어··· 이번에도 서원식 그 영감이 보냈다기에 걱정이 앞섰거늘, 소저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허튼 걱정이었던 모양입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사저의 상태는 제법 멀쩡했다.


아니, 되려 지극히 예의바른 모습이라 놀라기까지 했다.


윤문상 역시 스승님의 절친한 친우라고 들었으니,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려 드는 모양이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이 궁의 주인이자, 이 곳에서 가장 높은 신분을 가진 인물인 이설을 만났을 때, 그녀가 어찌 반응할지에 관한 것이었다.



***



윤문상에게 사정을 설명한 뒤, 이설이 위치한 별채로 향했다.


“전하, 소관 서원평이 태자비께서 하달하신 일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이설은 한평생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선 방방 뛸 기세로 나를 반겼다.


“호위무사여! 기다리고 있었다! 가는 길에 변고가 있진 않았느냐? 혹 괴한을 만나진 않았느냐? 운월궁이 조금은 그립고, 밤에는 가끔 본궁이 어찌 지내고 있을지 생각나진 않았느냐? 요 며칠 보지 못했을 뿐인데, 네게 할 얘기가 산더미처럼 쌓여있구나!”


하고 싶은 말이 어찌나 많았는지, 나름 고르고 고른 말이 저 정도였던 모양이다.


언제 봐도 웃음이 지어지는 광경이었으니,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그녀의 말에 답했다.


“예, 아직 태자비 마마도 뵙고 와야하니, 이야기는 차후 천천히 나누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음, 그리하거라! 내 그대와 먹을 다과와 차를 골라놓았으니, 얼른 끝마치고 오거라!”


“예,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내가 안전하게 돌아온 것에 대한 기쁨을 온전히 표현한 뒤에야, 이설은 내게 재차 물었다.


“헌데··· 그대 옆에 있는 낭자는 누구더냐? 내 사용인들의 얼굴은 전부 기억하고 있거늘, 처음 보는 얼굴이구나···”


나는 옆에 있는 사저에게 눈치를 주었다.


분명 황녀 전하를 보면 무릎을 꿇고 자기소개를 하라고 단단히 일러뒀건만.


“참나,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 했더니··· 그냥 애잖아?”


사저는 무엇이 그리 불만인지, 못마땅한 표정을 하곤 그리 투덜대는 것이었다.


“사저, 좋은 말로 할 때 제대로 인사를 드리시지요.”


“너, 너···! 좋은 말로 할 때? 사저한테 또 말버릇이 그게 뭐니?”


“검을 배우는 건 없었던 일로 하는 게 좋겠습니다.”


“으, 으··· 알겠어, 알겠다구! 하면 될 거 아니야!”


사저는 못마땅한 티를 팍팍 내면서도, 끝내 한 쪽 무릎을 꿇고 이설에게 인사를 올렸다.


“황녀 전하를 뵙습니다. 들으신 대로, 원평이의 사저 되는 사람이구요.”


이설은 사저의 자기소개를 듣고는 깜짝 놀라며 반문했다.


“워, 원평이··· 원평이라고 하였느냐··· 이름으로 부르는 사이인 것이냐!”


“예? 예에··· 뭐, 오랜 기간 같이 살았으니까, 이름으로 부르는게 익숙하지요. 막내나 사제··· 라고도 부르긴 하는데.”


“오랜 기간···! 같이···! 살았단 말이냐! 애칭까지 있단 말인게냐!”


어찌나 충격을 받았던지, 쿠궁! 하는 효과음마저 날 법한 표정을 하곤 나와 사저를 번갈아보는 것이었다.


이설이 무슨 착각을 하고 있는 지 눈치챈 모양인지, 그녀의 옆에 있던 정화월이 그녀의 귀에 대곤 소곤소곤 귓속말을 해댔다.


이설은 아직 충격받은 표정으로 잠시 고개를 몇 번 끄덕이더니, 이내 안심한 표정으로 제 표정을 바꾸고는 말했다.


“본궁이 세간에 대한 지식이 적어, 오해를 한 모양이구나! 내 화월이에게 전해듣기로는, 사저와 사제 관계라 함은 누이와 동생과도 다름없다고 들었다!”


사저는 무슨 당연한 걸 묻냐는 양, 떨떠름한 표정을 한 채 답했다.


“예··· 뭐···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허면, 당연히 연심 같은 건 생길 수도 없는게야!”


역시, 당연하다는 표정을 짓곤 답했다.


“아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데요··· 당장 엊그제도 사형 한 명이 꽃을 보러 가자니, 같이 달을 구경하자니··· 되려 연심을 품기 이상적인 관계가 아닐까 싶은데···”


“!”


이설은 이번에야말로 큰 충격을 받은 듯, 나와 사저, 그리고 정화월까지 번갈아보며 고개를 몇 번이고 움직였다.


그리고 잠시 심각한 표정을 짓곤 고민하더니, 이내 올해 두 번째로 굳은 결심을 하곤 말했다.


“호위무사여. 아, 아니··· 원평이는 잠시 나가있거라! 내 새로 온 호위무사와 긴히 할 말이 있으니!”


“···예, 전하. 태자비를 알현하고 오겠습니다. 사저께서도 전하께 잘 설명해주시지요.”


“야, 야! 어디가! 뭘 설명해주는데! 응? 뭐라도 알려주고 가야할 거 아니야!”


사저의 외침을 뒤로 하고, 별채 밖으로 잽싸게 나갔다.


누가 로판 여주 아니랄까봐, 이설은 사랑에 관련된 이야기엔 묘하게 열성적인 부분이 있었다.


건물 밖으로도 사저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에??? 제가요? 제가 저 싸가지랑, 무슨 관계라고요?”


사저만큼이나 당황한 이설의 목소리가 겹쳐왔다.


“모, 목소리가 너무 크지 않느냐···”


“아니, 아무리 높으신 분이라고 해도,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뭐, 뭐··· 사귀어요? 정분이 나요? 저딴 얼굴빼고 아무것도 없는 놈이랑 정분이 날 바에야, 길거리를 나돌아다니는 거지놈이랑 사귀는게 훨 나아요!”


“그렇지 않느니라! 내 호위무사는 얼굴만 빼고 아무것도 없지 않느니라···!”


“쟤가 글쎄 얼마나 싸가지 없고, 못난 놈인지 알아요? 글쎄, 어릴 때 있죠···”


제 속에 있던 울분을 다 토해내려 하듯, 내 악담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있는 사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저와 함께 했던 전 회차의 기억이 머릿속에 문득 떠올랐다.


-네가 노래를 부르는 황녀 전하 말이야. 나랑은 제법 안 맞았을 것 같아.


-어떤 연유로 안 맞을 것 같단 말씀이십니까?


-왜, 모든 걸 좋게 보려고 노력하고, 매사에 열심인데다가, 나보다 남을 더 생각한다고 했잖아?


-예, 뿐만 아니라···


-아, 좀···! 들어봐. 아무튼, 나는 꽤 비관적인 편이고, 서령문 말고 다른 사람들은 어찌 되든 상관 없다는 주의였고, 막 강해지려고 노력도 하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다른 사람들을 위해 희생한다는게 이해가 안 됐단 말이지.


-···


-그래서, 크륵, 나랑은, 크륵, 정반대의 사람이니까··· 혹 만날 기회가 있더라도, 크륵, 친해지긴 어렵지 않을까···크륵, 크르륵··· 그런 생각이 들었다구.


상념을 깬 것은, 바람을 타고 날아온 매화닢이었다.


“그리고 이건 또 비밀인데··· 원평이 쟤가 여섯살때 이불에 실례를 하고는, 남몰래 개울가에서 빨래를 하다가 딱 들킨 거 있죠? 참나, 그래놓고는 이제와서 사저 취급도 안하고 저리 싹바가지 없어져서는···”


“귀엽구나아··· 어린 마음에 제 실수를 스스로 처리하려고 하는게 어찌나 기특한지···”


“···네? 이래도 정이 안 떨어진다고요? 그, 그럼 이건 어때요!”


머리칼에 붙은 매화닢을 떼어내고는, 다시 바람에 날려보냈다.


‘사저는 항상 제 자신을 제일 모르십니다. 대체 어디가 정반대이고, 어찌 친해지지 못한다는 것인지.’


궁 밖으로 나와, 돌담길에 한 폭씩 발자국을 남겼다.


‘이제, 태자비를 만나러 가야지. 월화궁에 가게 되면 다시 혈흔이 낭자한 거리가 눈에 들어올 터. 이 정취를 최대한 만끽하고 가야겠어.‘


···전생의 선연과는 또 다른 연을 맺었으니, 전생의 악연과도 매듭을 지을 차례였다.


작가의말

새벽이 아니라 아침이 되어버렸네요...

하지만! 최선을 다했습니다!

부디 재밌게 봐주셨으면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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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령문 (5) 24.08.31 11 0 18쪽
12 서령문 (4) 24.08.29 10 0 22쪽
11 서령문 (3) 24.08.28 10 0 14쪽
10 서령문 (2) 24.08.27 13 0 17쪽
9 서령문 (1) 24.08.26 12 0 14쪽
8 태자비 24.08.24 12 0 18쪽
7 교육 (2) 24.08.23 12 0 23쪽
6 교육 (1) 24.08.22 13 0 23쪽
5 정화월 (3) 24.08.21 17 0 13쪽
4 정화월 (2) 24.08.21 14 0 12쪽
3 정화월 (1) 24.08.20 19 0 14쪽
2 돌담과 개나리 24.08.20 34 0 19쪽
1 호위무사 24.08.20 41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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