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궁의 비선실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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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도둑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8.20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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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31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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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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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령문 (2)

DUMMY

서령문 소속 무인 서가희.


그녀는 원작에서 그리 비중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아니, 비중을 논하기 전에··· 나처럼 정말 소설을 열심히 보지 않았다면, 그 존재유무 마저도 알 수 없을 법한 인물이었다.


소설의 초반부, 그러니까 ‘황녀님 호위가 아니라~’가 아직 불쏘시개가 아닌 떠오르는 초신성 로판이었을 무렵.


여자형제가 있냐는 이설의 물음에, 서원평이 ‘어렸을 적 누나처럼 따르던 사저는 있었습니다. 잘 지내고 있을지 모르겠군요.’ 정도로 언급되었을 뿐인 인물이었다.


하여, 나는 그녀가 어떻게 생겼는지, 나이는 몇이고 성격은 어떤지에 대한 정보가 일절 없었다.


여섯 번째 윤회를 거쳐, 처음으로 만나게 된 사저를 알아보지 못했던 것은 내게 있어선 당연한 일이었다.


-도와줘서 고맙소. 낭자.


-... 낭자, 낭자라고?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딱 보아하니 본관과 동년배 같아 보여 그리 불렀거늘, 허면 무어라 불러드려야 합니까?


-너 싹퉁바가지 없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는데,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그렇게 아무 말도 없이 떠나고, 연락 한 통 없더니, 이젠 아예 날 생판 남으로 대한다고?


-대체 누구시길래···


-그래도 가족이니까··· 나 말곤 아무도 안 남았으니까 살려보려고 했는데···


눈 앞의 사저는, 굳게 믿고 있던 무언가가 산산히 무너진 사람처럼, 몇 번이고 헛웃음을 짓다 말했다.


-하, 하하··· 이럴 거면, 그렇게 병신처럼 혼자 기다리지 말 걸, 그냥 죽게 놔둘 걸 그랬어.


그녀의 이름을 듣고, ‘소설 속 이야기’에 불과했던 활자의 조합을 짜맞추고 나서야, 그녀가 서원평의 사저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못 알아봐서 미안하다고 재차 사과를 하고 난 뒤에야, 그녀는 뒤늦게서야 나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라라도 잃은 듯 했던 그녀의 표정 역시도, ‘상당히 속상한 표정’ 정도로 순화되었고 말이다.


-하긴, 강산도 십년은 커녕 전부 눈 감았다 뜨면 바뀌곤 하는데, 사람 얼굴 하나 잊었다고 욕하는 것도 뭣하네··· 사과는 그 쯤이면 됐어.


-···


-아마 당분간 더 안정을 취해야 할 거야. 네게 먹인 게 비록 서령문에 하나밖에 남지 않은 만병통치약이라고 해도··· 석화증이 꽤 진행돼있는 상태였으니까. 일주간은 더 병상에 누워있어야 할 걸?


그녀의 말이 백번 옳았다.


굳어있던 몸이 점차 원상태로 복구되며, 몸 이곳저곳이 끝없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진작에 무공을 익혀두고, 고통에 익숙해지지 않았더라면 당최 버티지 못할 정도의 격통이었다.


-···얘기나 좀 나눠볼까? 네 사저는 보다시피, 다 망해가는 문파를 혼자 지키고 있었어. 장문인도, 대사형도, 이사형도 전부 죽었는데. 가장 약했던 나만 살아남았지 뭐니? 잠깐, 나는 몰라도··· 장문인이랑 대사형은 기억나지?


당연히 몰랐다.


그녀가 말하는 장문인, 서원식이면 몰라도, 대사형을 비롯한 다른 사형들은 작품에 일언도 언급이 없었으니, 나로써는 생판 남의 이야기로 들려오곤 하는 것이었다.


허나 이들 역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면··· 거의 두 시진은 말을 하지 않고 있던 그녀가 이번에는 온종일 입을 다물 것으로 예상됐으니, 나는 기억이 나는 채를 하며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뭐, 비단 우리 문파만 아니라··· 일화국 전체가 불바다가 되고 있으니까,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굳이 더 설명할 필요없겠네. 막내야. 너는 그동안 뭐하고 지냈니?


일화국 사람이라면, 내 이름은 몰라도 별호 정도는 한 번 쯤 들었을 법 했다.


-혹, 지금 시대에 가장 강한 무사, 현재의 천하제일검이 누구인지 들어보셨습니까?


-몰라. 적어도 멍청하게 허접한 독에 중독되는 녀석은 아닐 것 같네.


-허면, 철혈황후의 정예 부대와 홀로 맞선 무사의 이야기는···


-나야 모르지. 근데, 철혈황후는 죽었다며? 뭐, 들려오는 말로는 나라 꼴을 이렇게 만들어놓고 자결했다는데··· 그냥 죽음으로 도망치겠다는 거 아냐? 사람이 그리 책임감이 없어서 참···


-철혈황후가 자결시킨 황족은 있지만, 본인이 자결한 것은 아닙니다. 되려, 본인이 자결시킨 황족의 수족에게 살해당했습니다.


허나 그녀는 내 별호를 듣든, 나와 태자비 간에 있었던 유명한 전투에 대한 이야기를 듣든 전부 처음 듣는 것이라며 의아함을 표했으니.


나는 빙의하기 전 서원평이 살아온 삶을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털어놓았으며, 빙의한 뒤, 이번 회차의 내 삶 역시도 그녀에게 털어놓을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내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사저는,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명료한 감평을 내놓았다.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기껏 한 일이, 사건에 연루된 자들을 전부 죽이고 너 자신도 자결을 택하고자 한 거라 이거지?


-맞습니다.


-그 전란에 휘말려, 일화국 전체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거고.


-···예.


-한심하네. 한심하기 그지없어.


비록 처음 만난 사저가 내 목숨을 구해줬으며, 문파에 하나밖에 남지 않은 귀한 약초를 내주었다 하더라도.


한심하단 말엔 나도 모르게 울컥할 수 밖에 없었다.


-사저께선 대체 무얼 아신다고 그리 쉽게 말씀하십니까?


내가 얼마나 괴롭고 고통스러웠는데.


이번 회차에야말로 성공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


대체 생판 남인 당신이 무얼 안다고 그리 쉽게 단언한단 말인가.


그리 생각했건만.


-네가 그리도 좋아죽던 황녀 전하께서, 네가 지금 이 모양 이 꼴인 모습을 보면 좋아하시겠냐고. 복수에 미쳐서는 길길이 날뛰는 모습을 저승에서 보시면 퍽이나 좋아하시겠다고, 그런 뜻으로 말했을 뿐이야.


사저의 말을 듣고는, 머리를 망치로 세게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을 받고 말았다.


그녀는 혀를 쯧쯧 차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못난 남동생을 챙기려 하는 누나처럼,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다 나으면 따라와. 비록 나 하나만 남은 문파지만,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으니까.


그렇게, 나는 회차의 마지막에 처음으로 누군가와 행동을 같이하게 된 것이었다.



***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건물도 멀쩡하고, 무인도 많군요.”


“뭘 새삼스레 처음 와본 사람처럼··· 야, 착각하지마. 스승께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하니까 들여보내준 거지. 원래 같았으면 문전박대해도 모자랄 판이었으니까.”


나는 사저와 함께 서령문 내부로 들어왔다.


전생에는 폐가라고 해도 믿을 법한 곳이었으나, 아직 환란을 겪기 전의 서령문은 어엿한 문파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시설은 두루 갖추고 있었다.


“하, 무슨 지네 집 안방이야? 지맘대로 들락날락하게.”


“장문인께서 그리도 아끼시는 수제자이시니, 저렇게 염치도 모르고 뻔뻔스레 들어올 수 있는거지!”


“사저께선 참 성품도 고우셔. 이젠 출가외인이 된 자 이거늘, 저리도 친절하게 대해주곤 하시니···”


멀찍이서 나를 지켜보던 서령문의 제자들이 저들끼리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몇 회차고 회귀하면서 깨닫는 것이지만, 서원평은 제법 곳곳에서 미움을 많이 사고 다닌 모양이다.


당시 로판 남주 트렌드가 ‘다른 사람들에겐 싸가지 없는데, 나한테만 친절한 남주’ 였으니··· 아마 이곳저곳에서 싸가지 없는 모먼트를 제법 많이 보여준 모양이었다.


“사형제들이 저를 제법 미워하는 것 같습니다.”


“네가 한 일들을 생각해보면, 미워하지 않을 수가 없지 않니? 너희는 하루가 48시간이어도 날 이길 수 없다는 둥, 너희랑 상대하는 건 너무 시시해서, 나뭇잎을 보며 멍 때리는게 더 즐겁다는 둥 그리 성질을 긁어놨으니··· 정말 네가 강하지만 않았더라면, 조금만 더 못나게 생겼더라면··· 진작에 이 곳에서 맞아 죽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야.”


···7회차가 되어서야, 서원평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하나 더 얻게 됐다.


‘미친 ㅠㅠㅠ 개멋있어 ㅠㅠㅠ’ 하며 수많은 여자 독자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던 서원평의 ‘나쁜 남자’ 모먼트는, 그냥 순전히 인성이 덜 된 ‘나쁜 새끼’에 더 가까웠던 모양이다.


그리 서원평의 업보를 몸소 체험하고 난 뒤, 서령문에서도 가장 큰 전각 앞에 도착했다.


-그나마 이 곳이 멀쩡한게 어찌나 다행인지 몰라. 가끔 너무 힘들고 지칠 때에는, 장문인께서 그린 묵란을 보고 마음을 다스리곤 했거든.


모든 건물이 무너지고 부숴지는 와중에도, 사저가 끝끝내 지키고자 했던 건물이었다.


“장문인껜 네가 왔다고 말씀을 드려놨어. 넌 항상, 매순간 싸가지 없긴 했지만··· 이상하게도 스승님께는 깍듯했으니까, 굳이 예의를 갖추라고 주의 안 줘도 되지?”


“잠깐, 잠시만 기다려주십쇼. 사저.”


“뭐, 왜. 할 말이라도 있어?”


사실, 서원평의 평판이 어떠한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만약 내 평판이 나락으로 떨어져서 전세계의 공공의 적으로 지목받는 일이 있다해도, 그것으로 하여금 이설을 살릴 수 있다면 나는 아무 거리낌도 없이 그 방법을 택할 것이다.


“뭐, 할 말 있으면 빨리 해! 정원도 쓸어야 하고, 새로 입문할 아이들 옷도 준비해야 하니까!”


나는 눈 앞에 있는 사저를 본다.


얼굴 이 곳 저 곳에 나 있던 흉터도, 그 흉터만큼이나 깊은 수심이 진 얼굴도 아직은 먼 이야기였다.


아마, 내가 할 이야기 역시 지금의 그녀에겐 영문 모를 헛소리로 들릴 심산이 컸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맙습니다. 사저.”


나는 그녀에게 꼭 한 번은 감사를 표해야 했다.


“뭐, 뭐야··· 갑자기··· 뭐, 안내해줘서 고맙다고?”


“···뿐만 아니라, 제 사저가 되어 주셔서 고맙다는 뜻입니다.”


혹여나 연락이 없던 막내가 돌아오진 않을까 저 혼자 이 허름한 건물을 지키고 있던 그녀에게.


그리 퉁명스럽게 툴툴대곤 했으나, 뒤에선 ‘살아있으니 다행이다.’ 하며 젖은 숨을 내뱉곤 하던 그녀에게.


자신의 지병이 깊어감에도 불구하고, 하나 남은 약초를 아무 거리낌 없이 내게 복용시킨 그녀에게, 나는 감사를 표해야만 했다.


“얘가 진짜 뭘 잘못 먹었나? 왜 징그럽게 안 하던 말을 하고 그런대... ”


이번 생에도 목표는 변함 없었다.


이설을 살리는 것이 내 최종 목표였고, 그를 위해 살기로 다짐했다.


허나, 그 과정 중에··· 내가 할 수 있는 어떤 작은 일들로 하여금, 내가 기나긴 윤회 동안 신세를 진 이들에게 보답할 수 있다면.


-본궁은 분명히 믿고 있느니라. 베푸는 것을 마다치 않으며, 내가 가진 것을, 내가 받은 것을 당연히 여기지 않고 감사하며 살면, 죽는 순간에도 기꺼운 마음으로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본궁의 어머니는 그리 말씀하시며 행복하게 눈을 감으셨다!


어느 회차의 이설이 말했던 것처럼, 조금이라도 더 행복한 결말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희망을 품게 되는 것이었다.


“그, 그러면··· 스승님 뵙고 밥이나 한 번 먹고 가던가···”


고맙다는 말 한 마디에 금세 묵은 앙금이 다 풀린 것인지, 사저는 괜히 먼산을 바라보며 땅을 툭툭 차곤 말했다.


“눈칫밥을 하도 많이 먹어서, 진작에 배가 부를 따름입니다.”


물론, 내 행동 하나하나에 핀잔을 주곤 하는 이 곳에서 느긋하게 밥을 먹을 자신은 없었다.


사저는 잠시 턱에 손을 얹더니, ‘하긴, 그것도 그렇지.’ 하며 잠시 중얼거리다가 말했다.


“나 같아도 조금 눈치 보이는 일이긴 하네··· 그럼 이번엔 떠나기 전에 언질이라도 주고 가. 다들 저렇게 퉁명스럽게 말하곤 하지만, 네 소식이 끊겼을 땐 모두 걱정했다구.”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 고개를 끄덕였다.


커다란 전각의 문이 활짝 열렸다.


드넓은 공간 속, 척 보기에도 고수처럼 보이는 노인이 정자세로 앉아있었다.


“아, 말하는 걸 깜빡했는데, 장문인께선 네가 말 없이 떠난 데 제법 화가 나 계셨어! 아마 이렇게 갑작스레 방문한 것도 영 달가워하진 않으실거야!”


“그걸 왜 이제야···!”


“아무 말 없이 떠나고, 연락 한 통 없던 사제에게 이 정도 복수는 할 수 있지 않니? 그럼,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얘기 잘 하구 와!”


아무래도, 케케묵은 앙금이 그리 쉽게 풀리진 않는 모양이었다.



***



서원평의 스승, 서원식.


적어도 사저보다는 작중 언급이 잦은 인물이었고, 그리 적은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도 아니었지만, 막상 그를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작중 전개가 본격적으로 ‘요괴 사냥 피폐 전개’로 흘러가는 시작점이 곧 ‘은둔 고수 서원식의 죽음’ 이었으니.


매 회차 이설의 곁을 강박적으로 지키던 내가 이곳저곳 돌아다닐 수 있게 되는 시점은 이설이 죽고, 이미 일화국이 요괴 밭이 된 시점인데, 그때 쯤이면 내 스승 서원식은 이미 죽은 지 오래되어, 그 이름조차 기억하는 이가 적어지는 상황이었다.


하여, 나는 처음으로 서원평의 스승에게 인사를 올렸다.


“···스승님을 뵙습니다.”


“허, 안 하던 인사를 다 하는 모습을 보아하니, 정말로 철이 든 모양이구나.”


분명, 사저가 말하길 제 스승에겐 깍듯하다고 하지 않았나?


그리 깍듯하게 대했다는 스승에게도 인사 한 마디 안 했다는 걸 보니, 서원평이 서령문에선 얼마나 안하무인이었는지 도저히 가늠조차 되질 않았다.


‘깍듯하다는게, 눈 앞에서 찍소리도 못했다는 얘기라면 제법 타당성이 있긴 할지도.’


일곱 번이나 되는 인생동안 칼질을 하며 살다보면, 강해보이는 이를 만났을 땐 나도 모르게 상대의 경지를 가늠해보게 된다.


‘당장 싸우면 진다. 직전 회차의 나랑 비슷하거나, 살짝 모자란 정도잖아···?’


서원식은 은둔 고수라는 세간의 평가가 괜히 있다는 게 아님을 증명하듯, 어마무시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동안 잘 지냈느냐. 어찌, 연락 한 통 할 생각도 하지 않고.”


“···못난 제자를 용서하시지요. 워낙에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던지라.”


“황궁의 호위무사는 산꼭대기 주막의 점소이 만큼이나 한가한 일일지언데, 어찌 그런 말같지도 않은 핑계를 대느냐.”


“···입이 백 개여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인자해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말에는 칼이 담겨있는 듯 제법 신랄했다.


나는 제 잘못에 부끄러워하는 제자를 연기하며, 조금이라도 더 정보를 알아내려 노력했다.


‘역시, 서원평은 자진해서 호위무사가 된 게 아니었다. 스승의 입김이 서려있었구나.’


···어딘가 한둘 맞지 않는 부분은 있으나, 일단은 이 정도 추측에서만 머물기로 했다.


“내가 전수해줬던 비급들은 전부 익혔느냐.”


“최대한 다독하며, 체화시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가는 길에 챙겨주었던 노잣돈은 부족하진 않더냐.”


“예, 돈이 모자랄 때엔 벌어서 썼으니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어찌, 일은 좀 적성에 맞더냐.”


“스승님 덕에 좋은 견문의 기회를 얻어, 감사한 마음 뿐입니다.”


당장 눈 앞에 있는 서원식의 질문을 하나하나 받아내기도 벅찼기 때문이다.


‘젠장, 하필이면··· 원작에 안 나와있는 정보들만 계속···’


서원식은 서원평과 있던 개인적인 이야기들만 하나하나 골라, 내게 몇 번이고 질문을 해왔다.


전부 작품 바깥에 있는 이야기였고, 나로써는 당최 알 수 없는 이야기만 가득했으니, 나는 ‘서원평이었다면 어찌 했을까’ 하며 계속 추측을 이어가며 답을 했을 뿐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내 본 목적에 대해 말을 꺼내기도 전에 내 정체를 의심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여, 안부 묻기는 이쯤 하고 바로 본론을 꺼내려던 순간이었다.


일순, 분위기가 바뀌었다.


“장난은 이 쯤 하지요. 제자의 얼굴을 간만에 본 것이 반가워, 이 노인네가 장난이나 좀 쳐봤습니다.”


잠시 쓴웃음을 지은 서원식은, 불과 방금 전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태도를 보이며 내게 물었다.


“결국, 그대는 누구십니까?”


나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답했다.


“그야, 스승님의 제자인 서원평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그렇지요. 몸과 마음 중 몸 만을 따지자면, 귀관이 말한 사실이 지당한 사실입니다. 다만, 이 노인네가 궁금한 것은... 당신이 어디서 온 누구고, 언제부터 내 제자의 몸을 빌리고 있는 것인지를 묻고싶은 겁니다.”


아무리 발뺌하려고 해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로는, 더는 연기를 이어가도 의미 없는 일이었다.


“···언제부터 눈치채셨습니까?”


결국엔, 들키고 말았던 모양이다.


“귀관이 이 방에 들어온 순간부터 알았지요. 들어오자마자 이 노인네의 경지를 파악하곤, 제 주위에 흐르는 기운을 눈으로 훑지 않으셨습니까.”


“!”


“제 제자 원평이가 아무리 불세출의 천재였다 한들··· 그 정도 수준까지 오를 재목은 아니었다는 것은, 스승이었던 제가 제일 잘 알고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이미 진작에 그리 될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여, 그대는 누구십니까?”


“···”


몇 회차를 거친 윤회 간 처음으로, 내가 ‘서원평’이 아님을 간파당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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