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떠보니 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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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산
그림/삽화
무늬산
작품등록일 :
2024.08.21 19:51
최근연재일 :
2024.09.16 13:57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410
추천수 :
4
글자수 :
89,301

작성
24.08.21 19:53
조회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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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
7쪽

눈 떠보니 무림_프롤로그

DUMMY

아무리 눈을 뜨려고 해도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내 몸이 아닌 것처럼, 몸이 있는데도 지각할 수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흐른 것일까? 나는 죽어있는 것일까, 살아있는 것일까?

무저갱의 통로에 빠진 것처럼 유운은 아주 깊고도 깊은 구덩이에 떨어진 기억만이 흔적처럼, 공포로 남아 있었다.

다만, 청각만은 짙은 어둠 속의 가느다란 불빛처럼 조금씩 밝아왔다.


옴살라오옴 바리아 ······ 옴살라바리아 오옴다 ······ 옴살라 ······


“옳거니, 그럼 그렇지. 영명하신 원시천존(元始天尊)께서 이 형문양을 그냥 내버리실 리가 없지. 킬킬킬 킥킥킥.”


누구세요? 거기 누구 있어요?

유운은 목소리를 향해 소리쳤지만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차가움이 느껴졌다. 유운은 뛸 듯이 기뻤다. 느껴진다는 것은, 살아있음을 의미했다.


“누······구······세요?”

“오, 이제 말까지 하는구나? 얘야, 내 목소리가 들리느냐?”


유운은 고개를 끄덕이려고 했지만,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아주 낡은 목소리였다. 오래된 폐가에 거미줄이 잔뜩 얽혀있는 듯한 목소리.

그러고 보니 그런 냄새까지 맡아졌다.

퀴퀴하고, 썩은 나무에서 나는 먼지 냄새가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조금씩 눈꺼풀이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누군가 억지로 유운의 눈꺼풀을 잡아끌고 있었다. 조심스럽지만 고집스러운 손놀림이었다.


눈 떠보니 귀신같은 몰골의 늙은 사람이었다.

처음엔 희끄무레하게 형체가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사람의 모양이 나타났다.

턱과 입은 위에, 눈은 아래에 있었다.

그 눈이 아래에서 위로 천천히 올라오다 유운과 마주쳤다. 시커멓게 구멍이 뚫린 듯이 퀭한 눈이었다.


“끄아아악!”

“으하하하!”


유운은 비명을 질렀고, 늙은이는 광소(狂笑)를 터뜨렸다.

비명 덕분인지 유운은 온몸의 감각이 한꺼번에 살아남을 느꼈다.

그와 함께 온몸에서 통증이 솟아올랐다.

그냥 아픈 게 아니었다. 쓰리고 쑤시고 욱신거리는, 생전 겪어보지 못한 지독한 아픔이었다.


“어떠냐? 다시 살아난 기분이?”

“너무······ 아파요······.”

“킬킬킬. 천장(千丈) 절벽에서 떨어지며 안 부딪힌 구석이 없을 텐데, 당연히 아프겠지. 그치만, 아프다는 건 네 몸이 살아났다는 증명이니 다행 아니냐?”


“······ 할아버지는 누구세요? 귀신이세요?”

“킬킬킬 뭐,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전, 죽었나요?”

“떨어질 때는 죽었지. 암, 죽은 네 녀석을 내가 살렸다.”

“그런 게 어딨어요? 죽은 사람은 못 살아요.”

“그건 평범한 놈들에게나 그렇고, 네 앞에 있는 이 몸한테는 통하지 않는 얘기란다. 킬킬킬.”

“이상한 할아버지시네?”


유운은 무엇인가에 묶여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끈적한 무엇인가가 온몸을 감싸고 있었고, 머리만 그 속에서 삐죽이 나온 상태였다.

할아버지는 그의 바로 앞에 가부좌를 한 채 앉아있었다.

온통 하얀 머리와 수염이 기다랗고, 바짝 마른 몸이 핏기 하나 없어 보였다.


그는 계속해서 알아들을 수 없는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렸다.

유운이 그를 부르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어디서 나는지 정체를 알 수 없는 향냄새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가 갑자기 시커먼 눈을 떴다.


“킬킬킬킬, 우헤헤헤. 이제 됐다. 됐어. 대법이 성공했어.”


유운은 정신을 놓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할아버지가 외치는 이상한 소리가 머리로 파고들어 머릿속 여기저기를 들쑤시는 것만 같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할아버지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가 가부좌를 틀고 앉았던 자리엔 수북이 먼지가 쌓여 있었고, 은은한 향냄새만 남아 있었다.

유운은 자신을 묶고 있던 끈적한 것들을 떼어냈다.

힘겹긴 했지만,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섬증이 덜했다.


동굴 안은 돌아볼수록 무척 넓었다.

천정과 벽 중간중간에 야명주가 박혀 있어 어둡지는 않았다.

펑퍼짐하게 욕조같은 작은 우물도 있었고, 바위틈에서 가끔 바람도 불었다. 땅속에 이렇게 아담한 마을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했다.

누군가의 무덤 같기도 했다.

돌아다니다 보니 높은 단을 쌓은 곳에 관이 놓여 있었다.


「이놈아, 내 목소리가 들리느냐?」


유운은 갑작스러운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덜컥 주저앉아 버렸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세요? 어디 계시는데요?”

「어디긴, 이놈아 네 머릿속이지.」

“제 머리요? 에이, 사람이 어떻게 머리에 들어가요?”

「나, 형문양은 모산파 장문 중에서도 천하제일 기재였느니라. 소멸 직전에 원시천존님의 가호로 네놈을 만나 대법을 성공시킨 게지.」

“무슨 말씀이신지 도통 모르겠어요. 진짜 제 머릿속에 계신 거예요?”

「오늘은 이만, 차차 알게 될 게다.」


형문양은 틈만 나면 유운의 머릿속에서 말을 걸어왔다.

유운은 도저히 자신의 머릿속에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의 신(神)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엄연한 현실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할아버지, 근데 저는 누구예요?」

「이놈이 또? 할아버지가 아니라 사조님이래도!」

「아, 사조님. 왜 저는 기억이 안 나죠?」

「그건 내가 네놈 머릿속으로 들어오면서 기억 중에 일부를 다른 곳으로 치워서 그렇지.」

「왜 제 기억을 치우셨는데요?」

「그거야 내가 네 머릿속에서 살 정신의 방을 만들려고 그런 거 아니겠냐?」

「그럼 전 영영 기억을 못 해요?」

「아니지. 머릿속이 차츰 정리되다 보면 어딘가에 가 있는 기억을 되찾을 수 있을 게야. 그러니 너는 무공 연마에만 전념하면 되는 거다.」

「무공을 다 익히면 기억을 찾을 수 있어요?」


「아암, 그렇게 믿거라. 내가 알려주는 무공과 검마의 무공을 다 익히면 기억도 찾고 이곳에서도 나갈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니겠느냐? 클클.」


유운은 형문양이 시키는 대로 단 위의 관에 절을 하고 죽은 검마를 스승으로 삼았다.

그래야 동티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형문양은 구대문파의 무공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무공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유운은 그에게 머리가 아플 정도로 무공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가 유운의 생각 속으로 들어올 수 있는 시간은 제한적이었다. 이유는 그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가 없는 동안만은 유운도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물론 형문양은 자신이 없는 동안 유운이 무공 연습을 얼마나 했는지 검사하곤 해서 곤란하기도 했지만, 그런 생활이 익숙해지면서 요령도 늘어갔고, 자신이 섬서성 와사촌의 단유운이라는 평범한 필부였음도 알게 되었다.


이신일체(二神一體).


단유운은 그렇게 모순 아닌 모순적 존재로 세상에 다시 태어날 수밖에 없었다.


작가의말

저의 세 번째 웹소설(사실상 두 번째)은 독자의 추천을 받은 무협물을 선택했습니다. 20대 청년기부터 지금까지 무협은 저의 최애 독서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용에서 마영성에 이르기까지 대작들을 두루 섭렵하면서 한번쯤은 그런 작품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2년 이상 연재를 계획하고 떠나는 여행길이 어떻게 펼쳐질지 두근거립니다. 많은 관심 가져주시고, 어떤 피드백이라도 달게 받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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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눈 떠보니 소형제였다. 24.08.28 24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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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눈 떠보니 군막이었다. 24.08.23 36 0 13쪽
3 눈 떠보니 적들이었다. 24.08.22 36 0 13쪽
2 눈 떠보니 적진이었다. 24.08.21 45 0 13쪽
» 눈 떠보니 무림_프롤로그 24.08.21 65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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