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떠보니 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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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산
그림/삽화
무늬산
작품등록일 :
2024.08.21 19:51
최근연재일 :
2024.09.16 13:57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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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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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4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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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눈 떠보니 산적이었다.

DUMMY

눈 떠보니 산적이었다.


두 마리 말이 끄는 마차 위에서 운기조식을 하던 단유운은 앞쪽에서 뿜어지는 병장기의 예기를 느끼며 눈을 떴다.


‘무림이 녹록치 않을 거라더니, 군을 나서자마자 별의별 것들을 다 만나는구나. 어떻게 하지?’


“집에 돌아간다고 하니 너무 설레고 감격스럽습니다······요.”


마차 안에서 란주의 들뜬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결국 그렇게 되는구나. 하란촌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대할지 걱정이구나.”

“에구, 제가 괜한 소릴 했나 봐요. 소문주님은 마음이 편치 않으실 텐데, 제가 뭣도 모르고······요.”

“내 마음이 편치 않다고 너까지 편치 않을 이유가 있느냐? 게다가 너는 기다리는 가족들이 있잖느냐?”


연주리의 목소리에서 물기가 느껴졌다.

부모와 식솔들이 처참하게 죽어 나간 연검문으로 돌아가는 길이 그녀에게는 마냥 기쁜 일일 수만은 없을 것이었다.


--주군, 앞쪽에 불순한 기운들이 있는데······. 어찌할까요? 혹시 그놈들이 다시 온 걸까요?


마차를 몰던 휘수에게서 전음이 왔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휘수도 예기를 감지한 모양이었다.

유운은 잠시 망설였다.

며칠 전 왔던 놈들이 벌써 돌아왔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진휘경이 상황을 예측하고 이중 삼중으로 살계를 짰다면 척살대나 암살대의 일원일 수도 있었다.


10년을 끌던 전쟁은 정가군의 대승으로 막을 내렸다.

덕분에 징집되었던 병사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일시 고용되었던 용병들 또한 전과(戰果)에 따른 보상을 받고 해체되었다.


유운은 3년 동안 전장을 함께 했던 혈랑대를 해산했다.

대원들이 유운을 따라나서고자 했지만, 많은 이들이 집단으로 움직이는 것은 괜한 오해를 살 수 있었다.

그는 다음을 기약한 채, 마땅히 갈 곳이 없는 책사(策士) 독은필과 휘수만을 대동했다.


이틀을 달려, 일행은 옥룡설산 끝자락에 닿았다.

거기에서 사천으로 넘어가는 목넘이고개에서 야영을 하던 중에 유운은 심상찮은 기운을 느꼈다.


그는 조용히 일어나 산책하듯이 야영지를 벗어났다.

유운의 그림자를 자처한 휘수가 인기척을 느꼈지만, 그는 개의치 말라고 타일렀다.


--아무래도 나를 노리는 놈들인 모양이다. 너까지 나서면 다른 일행들의 잠자리를 망칠 수 있으니, 여기서 혹시 모를 습격에 대비해라.

--괜찮으시겠습니까? 기도가 범상치 않은 놈들 같습니다만······.

--이런 놈들에게 당할 것 같았으면, 3년 동안 전쟁터에서 살아남았겠느냐?


유운은 개울가까지 별빛을 감상하며 걸었다.

역시 그를 노리는 자들이었다.

기운을 감춘 채 유운만을 쫓았다. 잘 훈련된 자들이지만 유운은 그들이 누군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익숙한 군문의 느낌이 있었다.


“이제 그만 모습을 드러내시지요? 제게 무슨 볼일이 있으신 거요?”

“······.”


그때 형문양이 깨어났다.


「어랍쇼? 이게 무슨 일이냐? 웬놈들이야?」

「제가 찾지도 않았는데 이 마당에 사조님이 왜 나오세요?」

「낸들 아나? 네 몸의 감각이 예리해지니 저절로 깨던데?」


“안 나오시면 이 몸이 먼저 갑니다!”


유운은 검을 뽑아 가볍게 휘둘렀다.

지난 3년간 전쟁터를 함께 누빈 불패검(不敗劍)이었다.

검에서 나온 예리한 기운들이 숲의 일정한 방향으로 쏘아져 들어갔다.

그러자 복면을 한 십여 명의 인형(人形)이 튀어나오며 진을 갖추었다.


“명불허전이라더니, 과연 혈랑대 대주로군. 은밀히 일을 치르려 했는데, 이젠 어쩔 수가 없구나. 네놈이 우리를 상대로 얼마나 버티는지 보자꾸나.”


대장쯤으로 보이는, 중앙에 선 자가 검을 빼 흔들자 좌우의 복면인들이 순식간에 합벽 검진을 이루었다.

한 치의 흔들림 없는 동작만 보아도 고도로 훈련된 자들이었다.


“상장군 휘하의 척살조(刺殺組)가 뭐 때문에 내게 검을 겨누는 거지? 설마 대장군의 지시인가?”

“문답무용! 우린 오직 명령만 따를 뿐이다.”


「대장군이 네놈을 죽이려면 진작에 죽였겠지. 이런 짓을 벌일 자는 군사인지 뭔지 하는 놈일 게야.」

「진휘경이요? 그자가 왜 나를?」

「답답한 놈아, 뻔하지 않느냐? 뭔가 노림수가 있으니까 그렇겠지. 생각 좀 해봐라 이놈아.」


“상장군이 나와 다툴 일은 없으니, 진휘경의 사주인가? 감히 대장군의 명 없이 군영을 이탈하다니, 군령을 어기면서까지 나를 죽이려는 이유가 무엇이냐?”


복면인들은 유운의 질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검진을 개진했다.

열 명이 진을 맞춰 팔방과 천지를 공격하는 십방명왕진(十方明王陳)이었다.


유운은 검진이 펼쳐짐과 동시에 환영미리보를 밟았다.

그리고 각 방향에서 찔러오는 열 개의 검을 빠르게 회전하면서 하나씩 쳐냈다.

하지만 상대는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순식간에 서로 위치를 바꾸어 가면서 또 다른 검진으로 공격해 왔다.

마치 여러 개의 검진이 번갈아 가면서 밀려드니 십방진이 아니라, 천방진, 만방진처럼 느껴졌다.

유운은 검진의 빈 공간을 찾아 환영미리보를 펼치며 피해다녔다.


「이놈아 보법만 밟으며 피하다가는 눈먼 칼에 죽는 수가 있어.」

답답했던지 형문양이 유운의 머릿속에서 소리를 질러댔다.

「누가 그걸 모릅니까? 일단 피하고 보는 거지요.」

「십방진의 약점은 천원(天元)이나 지원(地元)인 게야. 상승의 경공술을 알려주면 뭐하냐? 이럴 때 써먹어야지!」

「뉘에, 뉘에. 안다고요. 알아요.」

「알긴, 새알을 알아? 안다는 놈이 왜 이 모양이야?」


척살조의 공격이 합을 맞춰 갈수록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검진의 속도가 절정에 달하자 마치 촘촘한 그물처럼 치밀한 검세가 펼쳐졌다.


원래 검진이란 진을 형성하는 검사들의 내공이나 무공 수위가 비슷할 때 상승효과가 발생해 강한 적을 제압하는 묘리가 있었다.

더구나 합벽 검진은 마치 한몸처럼 강약이나 동작 하나하나가 일치해야 힘이 배가되는 전술이었다.


“이, 미꾸라지 같은 놈, 언제까지 그렇게 도망만 다닐 셈이냐? 불패풍랑이라더니, 네놈의 전공(戰功)은 도망치다 얻은 것이더냐!”


이각(二刻)이 지나도록 유운의 옷자락 하나 건드리지 못하자 복면인 중의 대장인 듯한 자가 소리를 내질렀다.

유운을 압박하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검진이 불안정해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유운이 검진을 이끌고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


‘헉! 어기충소(御氣衝溯)?’


이미 유운에게 집중되어 있던 검진은 어쩔 수 없이 유운을 따라 공중으로 도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 바람에 내공이 바닥난 몇몇 무사들이 쫓아오지 못해 검진이 풀리기 시작했다.

유운은 와해되는 검진 속으로 들어가며 회오리처럼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천근추!


공중으로 도약했던 척살조들보다 먼저 땅에 내려선 유운이 미리보를 밟으며 파전식을 펼쳐냈다.

마치 벌이 꿀을 발견하고 춤을 추듯이, 유운의 검은 눕힌 8자 모양을 사방으로 전개했다.

검무를 추는 것처럼 유운의 동작은 간결하고 유연했다.

희미한 어둠 속에서 유운의 불패검은 달빛에 부서지는 물보라처럼 번득였다.


“위험하다! 모두 검진을 풀고 산개······ 으윽!”


찰나와도 같은 짧은 순간이었다.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척살조는 몸이 성한 자가 없었다.

모두 유운의 검에 검상을 입고 있었다. 다행히 목숨을 잃은 자는 아무도 없었다.


「아하, 네놈도 머리를 쓸 때가 다 있구나?」

「무슨 그런 섭한 말씀을? 그럼 이때까지 사조님은 제가 무슨 멍청이인 줄 아셨어요?」

「응, 그래. 당연하지!」

「하아~ 무슨 놈의 사조께서 사손을 멍청이라고까지······?」


유운은 무릎과 손목에 검상을 입은 채 간신히 버티고 서 있는 척살대주의 목에 칼을 겨눴다.


“죽여라! 유가군 최고의 검이라는 혈랑대주의 손에 죽는다면, 그것 또한 명예로울 터······.”


“참으로 무인다운 기개와 자존심······은 개뿔, 아이고, 아저씨 잘 나셨네. 뭐가 명예로워? 당신은 진휘경의 계략에 놀아나 세 가지 멍청한 짓을 했어. 알아?”

“뭐, 뭣?”


“첫째, 상장군 마장기의 호위 주력이 사라지면 누가 이득일까? 설마 진휘경이 당신들을 나한테 보내면서 성공하리라 예상했을 것 같아? 어차피 전멸될 걸 알면서도 일부러 보낸 거야.”

“그, 그럴 리가? 그 말은 지금 상장군의 신변이 위험하단 말이냐?”


“그거야 내가 알 바 없구. 둘째, 전쟁이 끝났다지만 전투 군인이 지휘관의 명령없이 군영을 떠났으므로, 상장군은 무조건 징계감이지. 최악의 경우 군문에서 축출당할지도 모르고.”

“······.”


“마지막으로 내가 당신들을 죽인다면, 나는 더 이상 유가군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군문에 미련은 없지만, 대장군은 쓸만한 패 하나를 잃겠지. 과연 그런 결과가 당신들에게 도움이 될까?”


「이야, 단유운 네놈이 이렇게 기막힌 통찰력을 발휘하다니! 좀 전에 멍청이라고 했던 말은 취소다, 취소.」

「사조님이 저한테 칭찬을 다 하시다니? 그런 의미로다가 제 몸에서 그만 나가주시면 안 될까요?」

「그건 나야말로 학수고대다. 나두 너처럼 비루한 몸에 빌붙어 살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어서 모산파(茅山派)로 가자는 거 아니냐?」

「뉘에, 뉘에. 비루한 제 몸에서 고생하시니 최대한 빨리 가겠습니다.」


“크윽, 충성과 명예라는 말에 눈이 멀어 참으로 어리석은 짓을 하고 말았구나.”

“당신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내 옷깃 하나 어쩌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는데도 죽자 살자 덤비니······.

확, 다 죽이고 싶지만, 그건 누군가의 노림수에 놀아나는 꼴이라 살려주겠다. 돌아가거든 군사에게 분명히 전해라.

다시 한번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땐 부대로 돌아가 내가 직접 목을 따겠다고. 알았나?”


--주군, 앞쪽에 불순한 기운들이 있는데······.

어찌할까요? 혹시 그놈들이 다시 온 걸까요? 명만 내려주시면······.


유운은 상념에서 벗어났다. 거리가 이삼십 장 안으로 들어오자 기감이 느껴졌다.


--아니, 군문의 기운은 아니다. 숫자만 여럿이지 그다지 쎈 놈은 없는 것 같으니 부딪혀 보자.


“우화하하! 이거, 오랜만에 반가운 손님들께서 납셨구만!”


마차 앞으로 커다란 덩치의 장정 하나와 수하들로 보이는 서너 명의 녹림도들이 뛰쳐나오며 마차를 가로막았다.

7척에 200근은 넉넉히 됨직한 장정은 자기 머리통의 두 배 가량 되는 도끼를 어깨에 올려 매고 있었다.

물만두 같은 얼굴에 수염까지 덥수룩하니, 완연한 산적의 모습이었다.


유운은 휘수에게 마차를 부탁하고, 가볍게 신법을 펼쳐 뛰어내렸다.


“너는 누구신데 길을 막는 겁니까?”

“나? 이 몸은 공가산(貢嘎山) 입구를 지키는 노호채의 부채주······, 얘들아 뭐하냐?”


그러자 뒤에서 분위기를 살피던 서너 명의 녹림도들이 입을 모아,

“솟아나는 힘! 거! 솟구치는 정력! 웅! 무적의 부! 천하를 울려라! 패! 거(巨)-웅(雄)-부(斧)-패(覇)!”

노래하듯이 힘주어 내뱉었다.


“크하하하, 그렇다. 내가 바로 거웅부패 구손락이다. 어떠냐?”

“어떠냐니? 손꾸락인지, 구손락인지, 왜 마차를 가로막았냐고?”

“엉? 정녕 모르는 것이냐? 소형제 혹시나 강호 초출인가?”

“뭐, 그런 셈이긴 한데······.”

“어쩐지 어리숙해 보이더니······. 강호엔 어딜 가나 공짜가 없는 법이네.

산길을 가려면 당연히 통행료라는 것을 내야 한단 말이지. 크하하하.”


이때 마차 안에서 연주리와 란주가 곁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갑갑해하던 참에 바깥이 소란스러워지자 동태가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아니, 저렇게 예쁜 아가씨들이 마차에 있었다니?”


구손락은 두 사람을 발견하곤 눈을 복숭아 모양처럼 뜨고는 침까지 흘렸다.


“에그머니나 소문주님 산적들이 나타난 모양이다······요.”

“그러게. 공가산이 산세가 높고 험하다더니 초입부터 산적들이 설치는 모양이구나.”


“우와, 그런데 저 이 장면 어디서 본 것 같아요.”


“란주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니, 어디 책에서라도 본 모양이구나?”

“네. 이거 자주 나오는 장면이다······요.”

“그래? 책에서는 어떤데?”

“보통 이런 장면에서는요, 주인공이 산적들을 물리치고 산채까지 찾아가 채주까지 몰살시키고 만다······요.”


“푸하하하! 아가씨, 그건 어디까지나 책에서나 있는 일이지. 소형제가 아직 강호 초출이라 뭘 모르는 모양인데, 우린 그냥 산적이 아니라 녹림일세. 공가산의 주인이란 말이지. 가볍게 통행세만 받으려 했는데, 저런 미인들이 타고 있으니, 이를 어쩐다?”


구손락이 도끼를 한번 휘두르고는 손바닥으로 턱, 턱, 두들겼다. 제딴에는 고민하는 듯한 모습이 우스웠다.


단유운의 신형이 살짝 움직였다.


그리고 찰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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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눈 떠보니 객잔이었다. 24.09.16 8 1 14쪽
14 눈 떠보니 핏빛이었다. 24.09.13 17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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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눈 떠보니 미명이었다. 24.08.31 24 0 15쪽
7 눈 떠보니 어둠이었다. 24.08.30 27 0 14쪽
6 눈 떠보니 소형제였다. 24.08.28 24 0 14쪽
» 눈 떠보니 산적이었다. 24.08.24 33 0 13쪽
4 눈 떠보니 군막이었다. 24.08.23 36 0 13쪽
3 눈 떠보니 적들이었다. 24.08.22 36 0 13쪽
2 눈 떠보니 적진이었다. 24.08.21 45 0 13쪽
1 눈 떠보니 무림_프롤로그 24.08.21 65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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