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제된 화염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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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한우
그림/삽화
양한우
작품등록일 :
2024.08.21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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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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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2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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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패치가 되어 망캐가 되었다.

DUMMY

-1-


<로스트 테라 1.4 패치 안내>


국산 오픈월드 MMORPG ‘로스트 테라’


2024년 8월 31일. 1.4 버전의 대규모 패치가 이루어졌다. 이 패치로 사기캐릭으로 손꼽히던 마법사 클래스는 완벽하게 망캐가 되었다.


수많은 마법의 데미지가 급격히 너프되었고, 마법에 필요한 MP 역시 너무 심하게 올랐다. 마법 시전 속도까지 느려져, 안 그래도 물 몸인 캐릭터는 적에게 쉽게 접근을 허용하여 마법을 제대로 쓰기도 전에 픽픽 죽어 나갔다.


패치 전까지 주류 중에서도 주류였던 마법사 클래스가 순식간에 너프당하자, ‘로스트 테라’의 유저게시판은 마법사 클래스 유저들의 불만과 욕설로 도배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불만에 운영진은 그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보도자료에는 ‘다양한 클래스 간 밸런스를 맞추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할 뿐이었다.



“접자...”



[주선, 이 캐릭터를 삭제하시겠습니까? - 캐릭터를 삭제하면 다시는 복구할 수 없습니다]



주선. 자그마치 4시간 반에 걸쳐 외모를 커스터마이징한 캐릭터. 게임 커뮤니티에 이른바 ‘미남캐’ 로 여기저기 공유까지 된 마법사 클래스 Lv. 75짜리 고렙 캐릭터이다.


하루에 14시간 이상씩 투자된, 마법사 중에서도 가장 사기캐라 평가받던 ‘파이어 위저드’. 레전드급 갑옷, 붉은 비단에 금빛 용이 수 놓인 ‘붉은 용의 로브’와 게임 내 가장 강력한 마법 스태프인 ‘데르만의 스태프’를 장착한 캐릭터 위로 삭제 경고 메시지가 뜬다.



“후우......”



게이머는 한숨을 푹 내쉬고 마우스 커서를 ‘YES’ 쪽으로 올린다.



‘딸깍’




순식간에 주선은 캐릭터 선택 화면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



드넓게 펼쳐진 눈 덮인 설원과 거칠게 솟아있는 산봉우리. 내가 처음으로 눈을 뜬 것은 바람을 타고 흐르는 한기가 몸을 찌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붉은 용의 로브’는 이 추위를 막기엔 너무 멋이 있었다. 정확히는 ‘멋’만 있었다. 마치 몽둥이로 온몸을 얻어맞는 느낌이었다.


‘로스트 테라’에서 볼 수 있었던 ‘타락의 설산’ 필드와 비슷한 풍경이다. 물론 ‘타락의 설산’은 비룡들이 무리를 지어 날아다니는 고렙 필드지만, 여기는 비룡은커녕 조그마한 쥐새끼 한 마리 보이질 않는다.



“스태프···.”



내가 쓰러져 있던 곳을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데르만의 스태프가 보이질 않는다. 이 맨손으로는 마법사 캐릭터 생성 시에 기본으로 배우는 ‘스몰 파이어’ 밖에 쓸 수 없다. 조그마한 아기 주먹만 한 불의 구체를 10m 정도 날릴 수 있는 ‘스몰 파이어’. 데미지도 워낙 낮고, 사거리도 짧아 레벨 4 이후로는 써본 적도 없다.



“스몰 파이어”



왼손에서 작은 불공이 순식간에 떠 올랐다. 앞으로 훅 날리자 천천히 날아가다가 ‘치익’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진다. 불이 떨어진 눈밭에 작은 구멍이 생겼다. 일단 칼 같은 추위만이라도 막아보려 주변을 돌아봤다. 멀지 않은 거리에 추위에 앙상해진 작은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저거라도 태워서 몸이라도 녹여야겠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옮겼다. 눈발에 촉촉이 젖은 앙상한 나무에 스몰 파이어를 날렸다. 마법으로 붙이는 불은 쉽사리 꺼지지 않는다. 나무줄기를 타고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불이 붙기 시작했다.



“따뜻해···.”



나름 불이 세차게 붙은 나무에 손을 가져다 대자 은은한 온기가 느껴진다. 얼마나 타 들어 갈지 알 순 없지만, 그래도 당장 이 한기를 녹여줄 정도는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불타는 나무 옆에 앉아 앞으로 뭘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던 찰나, 먼 곳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몸을 일으켜 세우자, 산자락 아래에서 사람들이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털가죽으로 된 두꺼운 옷. 나무 막대기 끝에 달린 날카로운 돌을 묶은 돌창. ‘야만인의 마을’에 있던 NPC들과 비슷한 모습의 남자들이 잔뜩 몰려오고 있다.


도망을 가야 할까? 아니면 도움을 요청해야 할까? 짧은 시간 많이 고민했다. 이곳, 이 상황에 대해 전혀 알 수 없으니, 그래도 도망을 가는 것보다는 저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여기요! 여기! 도와주십시오. 여기요!”



평생 수염과 머리를 단 한 번도 깎지 않은 듯한 거친 모습의 남성들이 그들이 든 돌창을 나에게 겨누었다. 20명쯤 되는 남성들. 기껏 해봐야 150cm 될까 말까 한 작은 키들이지만, 눈빛만큼은 전사의 매서운 눈빛이었다.



“누구냐?”


“저는 주선이라고 합니다. 마법사입니다. 저는 싸울 생각이 없습니다.”


“주선? 마법사? 너, 예족이냐?”



예족? 예족이 뭐지? 라고, 생각하던 찰나, 그들의 리더로 보이는 남자 하나가 창을 고쳐잡고 나에게 다가왔다.



“예족의 복장은 아닌 듯하군. 일단 족장님께 데려가도록 하지.”



그리고 뭐라 대꾸도 하기 전, 야만인 전사 한 명의 주먹이 내 배에 꽂혔다.



“커억! 억···.”



정신이 아득해져갔다. 이건 정말 너무한 거 아니냐는 생각과 함께···.



※※※※※※※※※※



“일어나. 일어나라!”


누군가의 발길질에 눈을 떠보니 또 새로운 곳이었다. 거친 동물 가죽 털옷을 입은 마을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여전히 투박한 돌창들이 나를 겨누고 있었다.



“대족장님 나오십니다.”



누군가의 외침에 다들 뒤로 돌아 고개를 숙였다. 사람들의 인사가 닿은 곳, 볏짚으로 지어진 커다란 움막에서 누군가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머리 두 개는 더 커 보이는 키와 압도적인 덩치. 풍채에서 주는 위압감이 정말 엄청났다.



“누구냐? 넌?”


“마법사 주선입니다. 저는 싸울 생각이 없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설원에 있게 되어...”


“그만!!!”



도무지 적응이 안 되는 풍채에 걸맞은 낮고 거친 포효에 나도 모르게 입이 턱 다물어졌다. 계곡 사이에 있는 마을 전체가 우웅 하고 울렸다.



“누구냐고만 물었다.”


“아, 예. 예...”


“예족이냐?”


“...... 솔직히 말씀드리면,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내 대답이 무례했다고 느꼈던 걸까? 대족장이라 불린 자와 마을 사람들이 표정이 일그러졌다. 대족장이 옆에 서 있던 전사에게 눈짓을 보내자 나를 질질 끌고는 그 앞에 무릎 꿇렸다. 나름 저항을 해본다고는 했는데, 몸에 도무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대족장이 몸을 낮추어 나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말해라. 솔직히 말하면 목숨 만은 보전해 주도록 하지.”


“솔직히 말씀드렸습니다. 예족이니 맥족이니 그런 것 전혀 모릅니다. 그저 ‘로스트 테라’에서 삭제되어 사라질 운명이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설원 한가운데였고, 너무 추워서 마법으로 나무에 불을 붙였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잡혀왔구요.”



대족장이 여전히 무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도무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하여튼 무슨 수로 거기서 불을 붙였지? 네놈 몸엔 부싯돌도 없던데?”


“마법으로 불을 붙였습니다.”


“마법?”



보여주는 게 가장 빠르다고 생각했다. 무릎을 꿇은 채로 나지막이 주문을 외웠다.



‘스몰 파이어’



나의 왼손에서 작은 불덩이가 서서히 일렁이기 시작하자, 족장이 놀란 듯 뒷걸음질 쳤다. 마을 사람들 역시 모두가 놀란 눈치였다. 손을 뻗어 사람이 없는 바닥에 불덩이를 던지자, 땅에 박혀 맹렬히 타들어 가다가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이걸로 불을 붙인 겁니다.”



모두가 놀란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곳엔 마법이란 개념이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데르만의 스태프가 있었다면 더 멋진 것을 보여줄 수도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어깨가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허.... 이런 주술도 있는 건가?”


“주술이 아니라 마법입니...”


“하!! 하하하핳!!!!!! 재밌는 녀석이구만.”



대족장의 솥뚜껑만 한 손이 내 어깨를 감쌌다.



“이런 주술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주술이 아니라 마법...”


“따라오게! 하핳하하핳!!!”



호탕한 웃음소리가 계곡 전체를 쩌렁쩌렁 울린다. 족장이 제일 큰 움막으로 들어가자, 나도 어쩔 수 없이 따라갔다. 여전히 마을 사람들은 내 마법이 놀랍다는 듯 아무 말도 없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 옆에 선 한 남성이 족장에게 말을 건넸다.



“대족장. 위험합니다. 예족일지도 모르는데 족장님 움막에 들이시는 것은...”


“예족에 주술사가 없다는 건 네가 제일 잘 알지 않나?”


“......”


“환호. 그자가 주술사를 보냈다고 생각할 순 없지 않겠나?”


“맞습니다. 죄송합니다. 대족장.”



사실, 대화를 들으면서도 도통 무슨 대화인지 알 수 없었다. 예족은 뭐고, 주술은 뭐며, 환호는 또 누구란 말인가? 온통 혼란스러운 가운데 대족장의 움막 안으로 들어갔다. 움막 안에는 뼈로 만든 다양한 장신구들과 청동으로 보이는 장식물들이 걸려있었다. 화려하다고 할 순 없지만, 그래도 위압감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주선이라고 했나 이름이?”


“예.”


“그 주술은 어디서 배웠는가?”


“몇 번 말씀드립니다만 주술이 아니라 마법입니다. 그리고, 이 마법은 제가 생성될 때부터 기본으로 가지고 있는 마법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인가? 아기 때부터 그 주술... 아니 마법을 쓸 수 있었다는 건가?”



생성이라는 말을 썼지만, 역시나 이해를 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나는 아기였던 시절이 없다. 캐릭터가 생성되었을 때 이미 이 모습이었으니.



“뭐, 그런 셈입니다.”


“그런 셈이라. 말이 좀 이상하군. 혹시 그 주술...”


“마.법.입니다.”


“그래 마법. 그 마법 말고 다른 것은 없나?”


“죄송합니다만, 제가 들고 있던 스태프를 잃어버려서, 아까 보여드린 마법 말고는 쓸 수가 없습니다. 스태프만 찾는다면, 더 강력하고 다양한 마법을 쓸 수 있습니다.”


“스... 때푸?”



애초에 스태프라는 단어를 꺼낼 때부터 과연 알아들어 먹을까 의구심이 들었는데, 역시는 역시였던 모양이다.



“나무 끝에 붉은 구슬이 박힌 단풍나무 지팡이입니다.”


“... 흠 그렇구만.”


“외람되오나, 저도 한 가지 질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내 질문이 역시 무례하게 느껴졌을까? 대족장 옆을 지키던 무사의 눈매가 확 무서워졌다. 하지만 대족장은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해보게.”


“여기는 어디입니까? 그리고 여러분들이 누구신지 알고 싶습니다.”



대족장은 나에게 쏟아지던 호기심 어린 눈을 거두고 허리를 똑바로 세웠다.



“이곳은 한족의 땅이네. 우리들은 한족이고.”


“한... 족?”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텐데?”


“처음 듣습니다.”


“그렇구만. 자네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거구만.”



대족장과 나는 꽤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물론 대족장은 내 말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게임, 캐릭터라는 단어도, 그리고 내가 삭제되었다는 것 역시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반면, 나는 이곳과 이 사람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은 ‘한족’ 이라 불리며, 이 주변 곳곳에 마을이 있고, 사냥과 밭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고 했다. 가끔 ‘예족’ 이라 불리는 자들이 마을을 침략하고 약탈을 일삼기에 사실상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도 했다. 나를 그렇게 경계했던 이유도, 나를 예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주수... 아니 마법을 쓰기에 자네가 예족이 아니라는 걸 확신했지. 예족은 주술사를 증오하니까. 특히 예족 족장 환호는 주술사라면 치를 떠는 놈이지.”


“그렇군요.”


“시간이 늦었군. 오늘은 이쯤 하고, 근처 움막을 비워줄 테니, 오늘은 거기서 지내도록 하게. 내일부터 자네가 살 곳을 지어주도록 하지.”



아? 여기서 살 게 되는 건가? 라는 잠깐의 의문이 들었지만, 단숨에 납득했다. 여기서 나가봐야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말이다.



“배려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대족장님 존함을 여쭤봐도 될지요?”


“존함?”


“이름을 여쭙고 싶습니다.”


“아! 자네가 사는 곳에서는 이름을 존함이라고 하나 보구만. 하하핫!”



여전히 저 낮고 무겁고 큰 목소리는 적응이 잘 안된다.



“여기서는 나를 내 이름을 부르는 자가 거의 없는데 말이지. 내 이름은 웅, 환웅이라고 하네.”


작가의말

환웅이 그 환웅일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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