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제된 화염마법사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대체역사

양한우
그림/삽화
양한우
작품등록일 :
2024.08.21 22:49
최근연재일 :
2024.08.27 18:00
연재수 :
6 회
조회수 :
140
추천수 :
0
글자수 :
33,621

작성
24.08.23 18:05
조회
22
추천
0
글자
11쪽

3화. 나는 사람인가?

DUMMY

“왜 내 명령을 듣질 않았나?”



처음 이 한족 마을에 떨어졌던 날처럼, 나는 대족장 앞에 무릎 꿇려졌다. 데르만의 스태프도 빼앗긴 채. 억울했다. 내가 아니었으면, 지금쯤 다들 죽거나 붙잡혀 험한 꼴을 당하고 있었을 게 뻔한데, 왜 내가 이런 꼴을 당하고 있어야 하지?



“제가 왜 대족장의 명령을 들어야 합니까?”


“뭐?”


“저는 대족장의 부하가 아닙니다. 명령을 들어야 할 이유가 없질 않습니까? 그리고, 제가 아니었다면 이미 다들 죽었을 겁니다. 아닙니까?”



몇몇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다만, 대족장만은 달랐다. 내가 명령을 듣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잔인하게 죽어버린 예족 놈들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내 마법이 두려워서였을까? 대족장의 눈에 분노와 두려움이 동시에 묻어나왔다.



“전쟁에도 규칙이란 것이 있다. 용맹하게 싸우다 죽는 것이 전사의 본분이며, 아무리 적이라 할지라도 그 시신만큼은 적에게 돌려주는 것이 규칙이다. 네놈이 한 짓을 보아라. 저 시신을 보란 말이다! 저 시신을 돌려줄 수 있겠느냔 말이야!!!”



대족장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엔 예족 전사들의 시신이 쌓여있었다. 그나마 멀티샷을 맞고 죽은 자들의 시신은 불화살을 맞은 자국뿐이었지만, 라바 익스트로젼을 뒤집어쓴 시신은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하체가 다 녹아 상체만이 절규하고 있는 시신부터, 이미 용암이 다 녹여버려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무언가까지···.



“규칙이요? 전쟁에 규칙이 어디 있습니까? 전쟁에선 죽이지 않으면 죽습니다. 죽지 않는 것이 이기는 것이 전쟁입니다. 대족장은 죽음이 뭔지 아십니까?”



나는, ‘로스트 테라’의 캐릭터였던 나는 죽음을 알고 있다. 75렙까지 성장하며 수없이 많은 죽음과 부활을 경험했다. 죽음은 한없이 보이지 않는 어둠이오, 그 자체로 고통이다. 아무리 많은 죽음을 경험했다 하더라도,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죽음이란 그런 것이었다.



“죽어본 것처럼 이야기하는군. 되었다. 한족의 영역에서 내 명령을 듣지 않는 자는 필요 없다. 당장 주선 이 자를 동굴에 가두어라! 먹을 것이나 마실 것도 절대 주지 말라! 데려가라!”



한족의 전사들이 내 팔을 잡고 마을 밖으로 향했다. 마을 밖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동굴이 하나 있다. 깊은 동굴.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공간에, 동굴 입구를 전사 두 명이 철통같이 지키고 서 있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그저 돕고자 했던 것뿐인데. 무엇보다도 언제인지, 어디인지도 모를 곳에 떨어져 이제야 조금 무언가를 알아가고 적응해 간다 싶었건만. 나는 대체 뭐고, 여기는 어디고, 대체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가 복잡하다. 복잡해 미칠 지경이다.



※※※※※※※※※※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다. 빛이 들어오지 않으니. 기본적으로 게임 캐릭터인 나는 얼마든지 먹지 않고 버틸 수 있다. 잠이야 게임이 종료되면 자연스레 잠이 드는 것이니···.



“대 족장님 오셨습니까?”



동굴 밖에서 경비병들의 우렁찬 인사가 들린다. 발소리만으로도 알 수 있다. 거구가 뚜벅뚜벅 발걸음을 옮기며 내는 미세하지만, 확실한 진동이 동굴 깊은 곳까지 울려 퍼진다. 횃불을 든 대족장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멀쩡하군. 4일 정도 굶기면 보통은 쓰러지는데 말이야.”



벌써 4일이 지났다는 사실에 놀랐다. 계속 고민하고 한탄하고 자고 깨고를 반복했을 뿐인데. 이런 곳에 있으니 확실히 시간 감각이 없다. 대족장이 한숨을 푹 쉬며 나를 바라보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횃불 너머 미세하게 보이는 대족장의 표정에 분노는 없어 보였다.



“···.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고맙다는 말은 해야겠기에 말이지. 자네 말대로, 자네가 없었다면 우리 모두 죽거나 잡혀갔을 거야. 고맙네.”


“그렇게 고마우시면 이제 좀 내보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다른 건 다 참겠는데, 박쥐 새끼들 때문에.”



동굴 한쪽에 불에 탄 박쥐들이 줄줄이 모여있다. 하도 꽥꽥거리고 찍찍거리길래 사색하는 데 방해가 돼서 스몰파이어로 지져놓았는데, 탄내가 빠지질 않아서 괴로워하던 참이었다.



“주선. 자네의 그 마법이라는 것도, 먹지 않고 이리 버티는 것도 그렇고. 나는 자네가 우리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걸 느끼네. 어쩌면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겠어.”



사람이 아니다.


그래. 나는 사람이 만들었고, 사람에 의해 생겨났으며, 사람이 이름 지었고, 사람이 키운 존재이다. 하지만, 나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태어나고부터, 아니 생겨나고부터 내가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는데, 나는···. 사람이 아니었구나.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겠군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족장 환웅의 거대한 손이 내 등짝을 퍽 가격했다. 가끔 기분 좋거나 개그가 안 통하면 이러는데, HP가 절반씩 깎여나가는 기분이다. 기회 봐서 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그럴 기회가 없었다.



“하하하하하핫!!! 뭔 소릴 하는 건가? 자네가 사람이 아니면 뭔가? 눈 두 개, 콧구멍 두 개, 귀 두 개, 입 하나, 팔다리 다 제대로 붙어 있고! 곱상하게 자알 생긴 얼굴하며! 그리고, 이거 밑에 달린 이거이거!”


“어어어! 하지 마십시오. 뭐 하시는 겁니까?”



아랫도리로 훅 하고 들어오는 손을 피하자, 환웅이 껄껄 웃으며 내 손을 꼭 잡았다.



“한족의 영역에서, 내 명령은 절대적이네. 내 명령을 듣지 않는 것은 한족이 아니라는 의미요. 그것은 곧 우리 영역에서의 추방을 의미하지. 하지만, 자네는 손님이야. 내 백성도 아니고, 부하도 아니지. 자네의 말이 맞았네.”



나흘 전과 달리 돌변한 환웅의 태도에 의구심이라는 것이 폭발했지만, 더 할 말이 있는 듯 보여 입을 다물었다. 사과라는 것이 튀어나올 것 같아 내심 기대했다.



“자네를 동굴에 가두고, 백성들도, 전사들도 자네를 용서해야 한다고 말하는 자들이 많네. 물론, 추방해야 한다는 자들도 소수 있었지만···. 내내 자네 말을 곱씹어 보았네. 자네가 내 부하가 아니라는 것도, 자네 덕분에 우리가 산 것도, 그리고 전쟁에 규칙이 어딨냐는 그 말도.”



환웅의 표정이 조금씩 일그러진다. 그 전투의 날을 상기시키는 듯, 미간의 주름이 점점 깊어졌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날. 그 신성한 날에 몰래 쳐들어온 예족 놈들···. 그 극악무도한 놈들에게 규칙 같은 걸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그래서요?”


“우리를 도와주게. 대족장으로서의 명령이 아닌, 사람 환웅으로서 하는 부탁일세.”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들의 싸움에 개입하는 게 나에게 이득이 될 것이 무엇이 있을까? 수없이 많은 사냥터와 전장에서 살육을 저지르고 다니는 게 주업이었던 나다. 하지만 이들의 전쟁에서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오. 좋은 아이템을 떨구는 것도 아닐 텐데. 굳이 내 MP를 소모해 가며 이 전쟁에 참여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제가 그 전투에 참여한 건, 그동안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보살펴 주신 것에 대한 보답으로 그리 한 것입니다. 은혜를 베풀어준 수많은 대족장의 백성들 목숨을 살렸으니, 보답은 충분히 한 것 아니겠습니까?”


“···.”


“아무것도 모르는 저를 불쌍하고 가엾이 여겨주신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다만, 전투에는 참여하지 않겠습니다. 저에게 이득이 될 것이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순간 아차 싶었다. 어두컴컴한 동굴 속 횃불 하나 일렁이는 좁은 공간. 190cm는 가뿐히 넘어 보이는 거구의 사내와 스태프를 빼앗겨 마법이라고는 스몰파이어 밖에 못 쓰는 물몸 마법사. 동굴 입구 쪽에 앉아 있었다면 모를까, 내가 더 안쪽에 앉아 있는데. 이대로 대족장이 주먹이라도 붕 휘두르면 꼼짝없이 개죽음인데, 무슨 자신감으로 되는대로 씨불였는지....


조심스레 눈치를 보며 대족장의 표정을 살폈다. 기본적으로 머리카락과 수염이 얼굴의 70%가 넘는 터라, 잘 안 보이긴 한다. 그렇더라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사뭇 진지해진 대족장의 표정은 열흘 남짓 보았던 대족장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3,000명.”


“예?”


“내가 건사하고 있는 한족이 총 3,000명이네.”


“아. 지난번에 말씀해 주셔서 알고 있습니다. 이곳 말고도 4개의 마을이 더 있다고.”


“한족은 예로부터 하늘을 숭배하고 땅에 감사하며 살아온 유순한 민족이었지. 호랑이를 숭배하던 예족은 잊을 만하면 우리 한족뿐 아니라 남쪽의 맥족 역시 약탈하고 죽이며 주변을 괴롭혀왔네.”


“···.”


“우리 한족은 그것조차도 운명이고 하늘의 뜻이라며 복종하고 굴종하며 오랜 세월 버텨왔어. 20년 전, 내가 대족장이 되고 난 이후, 우리는 그 굴레와 멍에를 깨트리고 부숴버리기 위해 우리 스스로를 단련하고 또 단련했지. 그리고 죽을지언정, 빼앗기지 말자는 그 일념 하나로, 그렇게 우리 3,000 한족을 지켜왔네. 그게 대족장으로서 한 일이고 앞으로도 할 일이라네.”



대족장의 눈이 어둠 속에서도 환히 빛난다. 그리고 무언가 결심한 듯, 내 손을 쥔 그 거대한 손에 확 힘이 들어간다.



“평화를 위해, 이 땅의 평화를 위해 예족을 토벌할걸세. 힘을 보태주게. 토벌이 끝나는 대로 대족장의 자리를 물려주지.”


“예? 그게 무슨?”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말이었다. 느닷없이 대족장이라니. 적어도 이 땅에서만큼은 절대권력을 가진 대족장이란 자리를, 일개 식객에게 이렇게 쉽게?



“하늘에서 자네가 떨어졌을 때. 그때는 몰랐네. 예족 놈들이 마을까지 밀고 왔을 때, 그리고 자네가 그 마법의 힘으로 그들을 물리쳐 주었을 때. 그게 하늘의 뜻임을 알았지. 백성들도, 전사들도 자네를 하늘에서 내려준 전사라 여기고 있네. 신의 사자라고. 아직까진 내 명령이 절대적이라 부득이 자네를 이곳에 가두긴 했다만···.”



당황스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냉정하게 생각해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았다.



“대족장. 대족장의 자리가 그렇게 쉽게 물려주고 물려받을 수 있는 자리였습니까?”


“아니지. 대족장과 각 마을의 장로가 모두 동의하고, 백성들 다수가 동의해야 오를 수 있는 자리라네.”


“제가 대족장이 되는 것을 모두 동의해 주겠습니까? 겨우 열흘 봤는데?”



대족장이 씩 웃는다. 수염 사이로 보이는 건치가 유독 눈에 잘 띈다.



“나 역시. 하늘에서 떨어졌다네. 20년 전에 말이지.”


작가의말

야나두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삭제된 화염마법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월-금 6시 연재합니다. 24.08.27 5 0 -
6 6화. 법과 사회 24.08.27 10 0 13쪽
5 5화. 앙칼진 애미나이 등장 24.08.26 14 0 13쪽
4 4화. 남들 앞에서 이런 건 해본 적이 없어. 24.08.23 25 0 11쪽
» 3화. 나는 사람인가? 24.08.23 23 0 11쪽
2 2화. 스태프를 찾았다! 24.08.22 31 0 13쪽
1 1화. 패치가 되어 망캐가 되었다. 24.08.22 37 0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