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제된 화염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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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한우
그림/삽화
양한우
작품등록일 :
2024.08.21 22:49
최근연재일 :
2024.08.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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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3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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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4화. 남들 앞에서 이런 건 해본 적이 없어.

DUMMY

“되겠나?”


“될 겁니다. 되게 해야지요.”



나뭇가지와 돌로 땅바닥에 지도를 만들었다. 예족 주둔지로 쳐들어가기 위한 작전을 펼치기 위한 것이다. 지긋지긋하게 공성전과 시가전을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작전을 착착 설명해 나가자, 환웅 대족장의 눈이 한껏 빛난다.



“놀랍군. 전사 한명 한명이 열심히 싸우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건만.”


“간단합니다. 제가 살던 곳에선 ‘망치와 모루’ 전술이라고 부르지요. 여긴 망치와 모루는커녕 쇳덩이도 없으니 모르시겠지만···.”


한껏 비하를 해댔지만, 대족장은 당최 내가 뭔 소릴 하는지 모르는 눈치이다. 실제로 전투를 치를 한족의 전사들에게도 작전을 차근차근 꼼꼼히 전달하였다. 전사들 역시 이런 작전에 놀란 눈치이다.


예족 주둔지로 침공하는 날은 내일. 내일 큰 전투가 벌어질 것이다. 승리를 의심하진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내 마법으로 쓸어버리면 그만이니까. 데르만의 스태프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붉은빛이 활활 타들어 가듯 밝게 빛나고 있었다.



※※※※※※※※※※



“정말입니까?”


“20년 전. 하늘의 아버지가 지상의 사람들을 다스리라며 나와 내 형제들을 땅으로 내려보내셨네.”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는 사실에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아쉬움 비슷한 것이 올라옴을 느꼈다. 환웅 대족장은 나를 슬쩍 쳐다보더니, 어깨에 손을 툭 얹었다.



“저번에 보았던 산 정상의 나무. 그 나무로 우리 3형제가 내려왔어. 나는 평화를 사랑하는 한족을 선택했지.”


“설마···.” “그래. 예족을 선택한 내 동생이 바로 환호. 현재 예족 족장이다.”



놀라운 일이었다. 끔찍한 전쟁을 하고 있던 다른 민족의 족장이 동생이라니.



“호는 어려서부터 강한 힘만을 추구했지. 강함만이 세상 최고의 가치라고. 그래서 이미 거칠고 강했던 예족을 선택했어.”


“그렇군요···. 3형제라고 하셨는데, 그러면 다른 형제분은?”


“그 녀석은 북쪽으로 올라갔어.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녀석이지. 사람을 다스리라고 하늘 아버지께서 내려보내셨건만, 아무 말 없이 북쪽으로 가더군. 어디를 가는지 말도 없이, ‘저를 찾지 말아 주십시오 형님.’하고는 사라져 버렸어.”



놀라운 일이었다. 하늘이 내린 자라니. 아니,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대족장이라는 자리를 물려주겠다는 말을 나에게 할 수 있는 것이냐는 의문이 들었다.



“대족장 자리를 그렇게 막 물려줘도 되는 자리입니까?”


“사람을 잘 다스리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따를 뿐이야. 자네가 대족장이 되더라도, 나는 내 방식대로 사람들을 평화롭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야. 굳이 대족장이 아니더라도,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나?”


“제가 대족장이 되어 예족 족장처럼 마구 약탈하고 때려죽이고 다니면 어쩌시려고?”


“그러면 자네는 나한테 맞아 죽어.”



장난스럽게 하는 말이었지만, 순간적으로 느낀 살기에 몸이 움츠려드는 것을 느꼈다. 환웅 대족장이 나를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자네는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어. 그리고 나보다 더 강하네. 사람을 지키기 위한 선한 의지도 가지고 있어. 알 수 없는 힘도 가지고 있지. 한족의 대족장은 사람들을 지키고 배불리 먹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네. 분명히 나는 자네에게서 그 힘을 분명히 보았어. 부탁이네. 예족을 토벌하는 일에 협력해 주게. 그리고 한족의 대족장 자리를 맡아주게나.”


“거절하겠습니다.”


“이유는?”


“저는 대족장보다 많은 것을 알고, 대족장보다 원거리에서는 더 강합니다. 근거리에선 어림도 없지만 말이죠. 하지만 저는 누군가를 다스릴 의지가 없습니다. 저에게 잘해준 사람에게 잘해주고 싶은 마음은 의지의 문제가 아닌 사람의 본능입니다. 저는 본능에 따라 움직였을 뿐입니다.”


내 대답에 환웅 대족장은 크게 실망했다. 낙담한 듯 한숨을 크게 푹 쉬며 허리를 쭉 펴 앉았다. 그 실망을 홈런 쳐 날려주어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말을 이어갔다.



“대신 당신의 뜻과 의지에는 동참하겠습니다.”


“......?”


“예족 토벌에 선봉으로 써주십시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최대한 그들의 항복을 유도하여 피를 적게 흘리는 방법으로 토벌하겠습니다. 지휘권을 저에게 주십시오.”



※※※※※※※※※※



토벌의 아침이 밝았다. 마을 곳곳에서는 돌로 된 창을 더 날카롭게 갈기 위해 여기저기서 ‘득득’ 돌 가는 소리가 연주처럼 울려 퍼졌다.



“한족의 전사들이여!”



환웅 대족장의 포효가 계곡 전체에 울려 퍼진다.



“우리는 지난 시간 동안 빼앗기고 또 빼앗기며 살아왔다. 우리는 빼앗는 자들을 막기 위한 힘을 길러왔다. 이제 그 힘으로 우리가 빼앗긴 것을 찾을 차례다. 다들 용맹하게 싸워라!!”


대족장의 훈시가 끝나자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다. 40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전사들이지만, 모두의 눈에는 전의가 활활 불타올랐다.


훈시를 마친 환웅 대족장의 솥뚜껑 같은 손이 내 등을 강하게 내려친다. 몇 번을 맞아도 적응이 안 되는 데미지다.



“대족장. 제가 몇 번이고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제발 좀 살살....”


“됐고! 자네도 한마디 하게! 지휘관 아닌가!”



눈이 활활 불타고 있는 400명의 전사들 앞에 섰다. 단 한 번도 이런 걸 해본 적이 없어서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 이야기를 숨죽여 기다리고 있는 전사들의 기대감 섞인 저 눈빛들을 차마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여러분.”


“예!”


침이 꼴깍 넘어간다. 이런 건 생성되고 단 한번도 해보지 않았는데...


“환웅 대족장이 만들려는 세상은!!.... 누군가에게 빼앗기지 않고, 누군가에게서 빼앗지 않는, 그런 세상입니다. 환웅 대족장의 희망은!!! 여러분이 살아남아 그런 좋은 세상에서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살아있음의 생동이 철철 넘쳐 전해 들어온다.



“여러분! 죽지 마십시오. 꼭 살아남으십시오.”



다들 ‘싸우다 죽자!’,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자!’ 이런 말을 기대한 모양인데, 예상치 못한 내 발언에 어리둥절한 모양이다. 하지만, 때맞춰 환웅 대족장이 그 특유의 발성으로 고함을 내지르자, 다들 하나 되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



해가 질 때쯤. 예족의 본거지에 도착했다. 한족의 마을과는 달리 훨씬 투박하고 거친 느낌이다. 뾰족한 목책들 사이사이로 호피가 널려있는 것이 눈에 띈다. 규모는 한족 마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크다.



“작전을 잊지 마세요. 절대 직접 맞서지 마십시오.”


“알겠습니다.” “알겠네.”


“해가 질 때까지 기다리죠.”



해가 뉘엿뉘엿 넘어간다. 소수로 다수를 상대할 때는 기습이 정석이다. 다만, 우리가 너무 소수인 데다, 개개인의 전투력으로는 예족의 전사를 이기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작전대로만 된다면, 큰 전투 없이 이겨낼 수 있다.



“시작하시죠.”


“주선.”


“예. 대족장.”


“정말 혼자 괜찮겠나? 지금이라도 호위 2명 정도 붙어 가는 건 어떤가?”


“못 믿으십니까?”



손에 쥔 데르만의 스태프를 휘적이며 말을 건네자, 환웅 대족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호에 맞춰 천천히 예족의 주둔지로 접근했다. 그리고 200보 정도 떨어진 곳에서 나는 대족장을 불렀다.



“여기서 헤어지시죠.”


“잘 부탁하네. 조심하게.”


“살아서 만나죠. 우리.”



나는 홀로 무리에서 떨어져 예족 주둔지 남쪽 정문 쪽으로 천천히 향했다. 산 능선에서 관찰한 예족 주둔지의 출입구는 총 3곳. 사실 목책으로 둘러쳐진 울타리와 볏짚으로 만들어진 움막이니, 광역 마법으로 태워버리면 그게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 작전을 반대했던 건 다름 아닌 환웅 대족장이었다.



‘호. 그 녀석만 잡으면 되네. 예족 백성들까지 모두 죽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한족의 여인들과 어린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전사들의 아내와 아이들. 예족도 전사들의 아내와 아이들이 있을 것이다. 대족장 말대로 그들까지 도륙할 필요는 없었다.



“누구냐?”



사실 몸도 바짝 숙이고 있었고, 옷도 ‘붉은 가시의 로브’는 너무 튈 것 같아서 어두운 가죽옷으로 바꿔입고 왔건만, 스태프의 빛은 꺼트릴 수가 없었다. 잠입은 역시 안되는구나.



“멀티 샷”



순식간에 붉은 불화살이 병사 둘의 몸을 꿰뚫었다. 금방 알아챌 거고 비상이 걸려 분주해지겠지. 그때가 작전의 시작이다.



‘뿌우우’



예상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예족 주둔지 안에서 뿔 나팔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곳곳에서 불이 밝혀지고, 전사들의 함성이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파이어 필라 (Fire Pillar)!”



주문을 외치자, 주둔지 남쪽 정문에 거대한 불기둥이 회오리치며 솟구치기 시작했다. 세 개의 불기둥이 주둔지 입구를 완전히 가로막는다. 적을 타겟팅 할 순 없지만, 해당 지역에 이동 불가 및 주변에 꽤 강력한 데미지를 준다. 무엇보다도 지속시간이 길다.


파이어 필라의 불기둥이 솟아오르자, 주둔지 북쪽에서도 큰 함성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환웅 대족장과 한족의 전사들이 북쪽 입구를 향해 돌진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불기둥이 보이면 북쪽으로 진입한다. 작전대로다.


불기둥에서 떨어지는 불씨들이 남쪽 정문 주변의 목책과 움집들, 초소에 옮겨붙으며 화마의 반원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나는 재빨리 주둔지 동쪽 입구로 뛰어갔다. 그곳까지 불을 붙여놓으면 예족들은 꼼짝없이 포위될 터. 혼란에 빠진 적들을 북쪽으로부터 밀어붙이기만 하면 이 싸움은 이긴다.


예족 주둔지는 삽시간에 혼란에 빠졌고, 한족 전사들은 아직 제대로 채비도 갖추지 못한 채, 한족 전사들의 돌칼과 돌창에 쓰러져갔다. 동쪽 입구에 도착하자, 아이들과 노인들, 여인들이 한족 전사들과 불을 피해 달아나려는 모습이 보였다.


고민이었다. 저들마저 불기둥으로 막아 세우고 사로잡아야 할지. 아니면, 그대로 도망가게 두어야 할지. 게임에선 NPC를 함부로 건드리면 ‘운영자의 번개’를 맞고 그대로 사망 처리가 되는데, 지금은 사람도 아닌 주제에 ‘인간적인 고민’을 하게 된다.



“파이어 필라!”



어쨌든 군사 작전이다. 작전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혼란이 없다. 커다란 불기둥들이 동쪽 입구를 틀어막았다. 부리나케 빠져나오려던 여인과 아이들, 노인들은 기겁하며 불기둥 뒤로 도망쳤다. 활활 불타오르는 남쪽과 동쪽의 입구를 한 번 무심히 바라보고, 나는 서둘러 대족장이 진입한 북쪽 입구를 향해 내달렸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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