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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한우
그림/삽화
양한우
작품등록일 :
2024.08.21 22:49
최근연재일 :
2024.08.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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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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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앙칼진 애미나이 등장

DUMMY

전투는 너무 싱겁게 끝났다.


뒤는 불기둥과 불 회오리가 몰아치고, 앞은 적들이 몰려오는데, 아무리 예족 전사들이 용맹하다고 할지라도, 온전히 맞서 싸우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전사 중 몇몇이 달려들어 소규모의 전투가 진행되었지만, 예상치 못한 시간에 예상치 못한 전술로 몰아붙인 한족의 승리였다.



“환호! 환호는 어디 있나?!”



환웅 대족장의 큰 목소리가 넓은 예족의 주둔지를 쩌렁쩌렁 울린다. 예족 전사들은 물론, 아이들과 여인들, 노인들까지 모두 무릎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환웅이 화려한 호피를 두른 전사의 대장 격 되어 보이는 자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환호 어디 있냐고 묻질 않느냐?”


“......”


“다들 입을 다물 셈이로구나. 다 방법이 있지.”



환웅 대족장의 커다란 두 손이 전사의 얼굴을 감쌌다. 얼굴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다. 분명히 하늘에서 내려왔을 때 힘이 아닌 평화를 쫓았다고 했는데, 저 광경을 보고 그 말을 되새기니 기가 찬다.



“크억.... 크어억....”


“자, 여기서 조금만 더 힘을 주면, 네놈 대갈통이 바스러질 것이다. 환호. 환호 어딨느냐?”


“주.... 죽여라....”


“오냐.”



환웅 대족장의 팔 근육이 움찔한다. 그 큰 손에 담겨버린 얼굴이 더욱 쪼그라든다. 뿌득뿌득 뼈와 이빨이 부딪히는 소름 끼치는 소리에 다들 공포에 질렸다. 머리를 세게 잡으면 저런 소리도 날 수 있구나.


“대족장은 산군을 사냥하러 가셨소!”



다들 고개를 푹 숙이고 몸을 벌벌 떨고 있는 가운데, 한 여인이 몸을 일으켜 세워 소리쳤다. 반듯한 눈썹과 일자로 뻗은 콧날, 도톰한 입술. 두터운 호피 옷을 입고 있었지만 가려지지 않은 훌륭한 몸매였다. 아직 얼굴이 앳되어 보이는 게, 기껏해야 열여섯 일곱 남짓 되어 보이는 하다.



“산군? 호랑이를 잡으러 갔단 말이냐?”



환웅 대족장이 쥐고 있던 예족 전사의 머리를 툭 땅에 떨군다. 코와 입에서 시뻘건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다행히 숨은 쉬는 것처럼 보인다. 환웅 대족장이 소리친 여인에게 다가간다.



“언제, 어디로 갔는지 말해라.”


“이틀 전에 동쪽 칼바위 산으로 떠나셨소. 언제 돌아오실지는 우리도 알 수 없소.”



환웅 대족장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 기습의 제1 목표가 환호를 잡기 위함이었거늘, 전투에선 대승이었지만 목적 달성에는 결국 실패했다. 한족 전사들 역시 아쉬운 표정이 역력했다. 나는.... 사실 큰 관심은 없었다. 다들 많이 안 다쳤다는 것에 안도할 뿐이었다.



“주선!”


“예. 대족장.”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나? 환호는 놓쳤고, 여기서 주구장창 기다릴 수도 없질 않겠나?”



그걸 왜 나에게 묻는 건지. 애초 작전은 전투가 마무리되면, 환호는 죽이거나 살려서 마을로 압송하고, 나머지 사람들도 전부 끌고 가서 항복하면 얌전히 받고, 반항하면 재교육을 빙자한 참교육을 시켜서 노동력으로 삼든지 할 예정이었다.


주위를 쭉 둘러보았다. 아무래도 바위산 계곡을 끼고 세워진 한족의 본거지 보다는 그나마 너른 평야가 펼쳐져 있다. 방어에는 불리할지 모르지만, 농사를 짓거나 사방팔방으로 이동하기엔 훨씬 좋아 보이는 곳이다.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말입니다. 보통 호랑이를 잡으러 가면 얼마나 걸립니까?”


“글쎄. 보통 흔적을 추적하고 쫓아가는 데만 해도 사나흘은 걸리고, 잡으려면 또 매복도 해야 하고 때도 맞춰야 하니 열흘 남짓은 되지 않겠나?”


“열흘이라.... 그렇다면 아예 한족의 본거지를 이리로 옮기는 것은 어떻습니까?”



예상치 못한 대답에 다들 고개를 쩍 벌리고 나를 쳐다보았다. 환웅 대족장 역시 놀라긴 마찬가지. 내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머리를 열어보고 싶다는 표정이다. 아까 보여줬던 근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네. 그거 진심인가?”


“이곳은 한족 마을보다 농사를 짓기에도 적합하고, 산바람이 덜 불어 훨씬 온화합니다. 불타버린 목책이야 다시 세우면 그만이고, 이 많은 인원을 먹여 살릴 생산력이 되는 듯하니....”


“안되네.”


“이유는요?”


“우리는 신단수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야. 제사를 지냈던 그 나무 말일세.”



예족이 쳐들어왔던 그날. 산꼭대기에 있던 그 나무를 신단수라고 부르고 있었구나. 하긴 하늘에서 그 나무로 내려왔다고 하니, 상징적이고 귀하긴 하겠다. 하지만,



“한족이고 예족이고, 사람을 다스리기 위해서 내려오셨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고 뺏고 빼앗기지 않게 하시려면 일단 농사 잘되고 사냥하러 가기 좋은 곳에 사는 게 우선 아니겠습니까? 그깟 나무....”


“그깟 나무???!!!!!!!”



환웅의 포효는 정말이지 매번 들어도 적응이 안 된다.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것이 느껴질 만큼 엄청난 충격파가 온몸으로 전해졌다. 내장이 다치진 않을까 우려될 정도로.



“그 말은 아버지의 신성을 모독하는 것이다. 취소하게.”


“죄송합니다. 대족장. 조심하겠습니다.”


“.... 생각할 시간을 좀 주지 않겠나?”



환웅은 생각에 잠겼다. 겁에 질려 있는 아이들이 못내 안쓰러웠다. 긴장이라도 풀어주려 나와 눈이 마주친 아이에게 슬쩍 웃어 보여 주었지만, 이내 엄마 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하긴 이런 상황이라면 웃음이 나올 수가 없다. 애도 어른도.


잠시 후, 환웅 대족장이 입을 열었다.


“예족이여. 들으라. 나는 하늘에서 사람을 옳게 다스리러 내려온 천제 환인의 장남이자, 한족의 대족장 환웅이니라. 오랜 시간 우리 한족을 핍박하고 괴롭혔던 예족 너희들을 나는 용서하려 함이다.”



예족들은 어리둥절함을 숨기지 않았다. 하긴, 그간 쳐들어가서 죽이고 뺏고 하던 게 익숙했던 자들이라, 용서라는 단어가 낯설 만도 할 것이다. 환웅 대족장이 말을 이어가는 와중에도, ‘산군을 잡으러 갔다.’ 라며 호기롭게 일어선 여인은 자리에 앉지 않았다. 다시 스르륵 천천히 앉으면 될 것을. 민망한 건지, 용감한 건지, 아니면 앉기가 싫은 건지.



“너희가 뺏고 죽였던 이들이 너희를 용서하려 함이다. 결국 너희에게 뺏고 죽이라 시킨 환호. 죄는 그자에게만 있을 따름이다. 나는 오로지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서로 죽이고 다치게 하지 않으며, 평화롭게 살게 하고 싶을 뿐이니, 이곳에서 우리 한족과 함께 살지 않겠는가? 항복하지 않고 내 제안을 거절하더라도 죽이진 않겠다. 단, 이곳에서는 떠나야 할 것이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환웅 대족장의 말에는 힘이 있다. 묵직한 저음에서 풍기는 신뢰감. 하지만 그냥 저음만 가지고 풍기는 그런 근거 없는 신뢰감이 아니다. 진심을 말에 듬뿍 담을 수 있는, 그런 힘이 환웅에게는 분명히 있다.



“싫소!”



날카로운 여인의 목소리가 환웅의 웅변을 비집고 들어왔다. 아까부터 계속 서 있던 여인의 일갈이었다.



“우리는 환호 대족장을 모시는 예족이오. 비록 오늘 이렇게 싸움에 져서 무릎 꿇고 있다고는 하나, 당신 밑으로 들어가진 않겠소. 차라리 모두 죽이시오!”


“죽일 생각이 없다고 하질 않았나? 싫으면 떠나도 좋아. 말리지 않겠다.”



여인은 주변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다들 가서 환호 대족장을 찾아옵시다. 찾아와서 한족 놈들을 몰아내고 다시 이곳을 찾읍시다. 다들 환호 대족장의 은혜를 잊은 게요?”


“....”



모두 여인의 일갈에 말이 없다. 이럴 거라는 것이라는 걸 난 어느 정도 눈치챘다. 환웅 대족장의 말을 들은 이들의 표정에서 안도와 희망 같은 것들이 읽혔기 때문이다.



“이런 겁쟁이들. 그러고도 예족이고 예족의 전사라 할 수 있소?!”


“호랑. 네년은 환호 대족장의 은혜를 입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아니야! 그렇게 사냥을 하고도 끓여 먹을 짐승 뼈 쪼가리 하나 얻을 수 없었단 말이다. 기껏 콩을 키워놓으면 군량이라며 전부 빼앗아 가고!”


“그래! 맞아!” “대족장이 우리에게 해준 게 뭐가 있어?” “맞아!” “맞다!!”



‘호랑’이라 불린 여인의 얼굴색이 붉게 변했다. 뭐, 깊은 사정까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상황은 누가 뭐래도 한족의 승리가 확실했다. 실력의 차이가 아닌, 인성과 마음의 차이였다.



“그래. 내 환호 대족장을 모시고 와 반드시 너희들 모두를 도륙 낼 것이다. 비겁한 겁쟁이들.”



호랑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는 무릎 꿇은 이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환웅 대족장 쪽으로 다가왔다. 바로 환웅을 호위하고 있던 병사들의 제지를 받았다.



“비켜.”


“하하하하핫!! 아주 충성심이 대단한 여인이구만. 그래. 환호를 찾아오겠느냐?”


“환웅. 네 놈 목은 환호 대족장님께서 직접 따실 것이다. 기다리고 있거라.”


“혀가 꽤 거칠구나. 환호가 널 어지간히 따뜻하게 품어주었나 보구먼.”


“이 개새끼가!!”



호랑이 불끈 쥔 주먹을 환웅에게 내질렀지만, 주먹이 허리에 올라가기도 전에 호위 무사들이 호랑을 제압했다. 가녀린 여인의 몸으로 저 정도의 패기를 부릴 수 있다는 것에 조금 놀랐다.



“이 여인과 뜻을 같이하는 자가 있다면, 지금 나오게. 모두 안전하게 보내주지.”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었다. 아직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환호라는 자의 좁디좁은 그릇 크기는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을 상황이었다.



“지금 당장 이곳의 식량창고를 모두 열어라. 그중 2할은 군량미로, 2할은 월동 대비 식량으로 하며, 나머지 식량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머릿수대로 공평하게 나누도록 하라! 또한, 지금 당장 우리 한족의 마을로 가서, 이 상황을 전하고 이곳으로 이주 준비를 서두르라 하라!”


“예! 대족장!”



모든 사람의 얼굴이 점점 환하게 변해간다. 호위무사에게 붙잡혀 버둥대는 한 여인을 제외하고는. 한 명이 환호하기 시작하자, 모두 기뻐하며 환호한다. 한족 병사들도, 예족 병사들도, 그리고 이곳의 사람들 모두 기쁨을 감추지 않는다.


그리고 문득 나는 대족장에게 궁금한 게 생겼다.



“두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말해보게. 주선.”


“나무.... 그러니까 신단수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지켜야지.”


“어떻게 말입니까?”


“여기서. 조금 멀리서 지키는 거지. 그래봐야 겨우 반나절 거리 아닌가?”


“제사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말하지 않았나? 겨우 반나절일세. 내가 정 불안하면 초소라도 세워서 경비를 서게 할 생각이네만, 환호만 잡으면 굳이 신단수를 위협할 녀석들은 없네.”



그럴 거였으면, ‘그깟 나무우?!!!!’ 라면서 혼날 이유도 없었을 것 같은데, 왜인지 모를 억울함이 밀려왔다.



“질문 끝났나?”


“아니,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뭔가?”


“저 여인은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아직도 눈에 살기를 가득 품고 호위무사에게 붙잡혀 버둥거리는 여인. 환웅 대족장은 그 여인을 빤히 바라보더니,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어쨌으면 좋겠나?”


“저는 호랑이를 잡아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저 여인이 환호를 찾아 나서서 발견하면 하루라도 더 빨리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그러면 그냥 동굴이나 감옥에 가두시죠. 환호가 올 때까지.”


“내가 내 뜻에 따르지 않는 자는 풀어준다고 약속을 하지 않았나? 한 입으로 두말하기는 싫네.”


“환호가 올 때까지만입니다. 한족 사람들을 이곳에 이주시키고 여길 보수하고 자리를 잡으려면 시간이 촉박하지 않겠습니까? 환호가 돌아오기 전까지는 모두 마무리해야 합니다.”



환웅 대족장은 내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여인을 마을 정중앙의 움막에 가둘 것을 지시하고 3명의 경비를 세웠다. 앙칼지고 날카로운 욕설이 난무했지만, 재갈을 채워놓는 것으로 간단하게 해결하였다.


단 한 번의 전투로 깔끔하게 끝났다. 예족은 2명이 죽고 9명이 다쳤다. 한족은 단 한 명도 죽지 않았고 4명이 작은 부상을 입었다.


기쁜소식은 금세 한족 마을에 전해졌고, 이윽고 사람들은 속속 이곳 예족의 마을.... 아니, 한족의 새로운 마을로 옮겨오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나무를 지킵시다.


한(韓)족입니다. 한(漢)족 아닙니다. 환웅을 중국인으로 만들 생각 추호도 없소.

참고로 예족은 예(獩)족 입니다. 한자가 어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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