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제된 화염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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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한우
그림/삽화
양한우
작품등록일 :
2024.08.21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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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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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2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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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스태프를 찾았다!

DUMMY

‘스몰 파이어’



왼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불덩이에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적응하지 못하는 듯하다. 벌써 열흘이나 지났건만, 대족장 웅은 나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살고 있던 ‘로스트 테라’ 세상에 관해 물었고, 내가 했던 말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려는 모습이었다.


대족장은 피곤함을 느낄 일이 없는 내가 보더라도 정말 많은 일들을 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의 사소한 민원도 들어주는 것은 물론, 종종 아랫마을에 쳐들어오는 예족의 동태도 끊임없이 살피고 있었다. 한겨울 부족한 식량의 상태를 살피는 것은 물론, 한족 전사들의 훈련도 꼼꼼히 살폈다.


그러면서도 틈이 날 때마다 내 이야기를 듣기 위해 항상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주선, 어제는 어디까지 했지?”


“레벨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까지 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래, 레벨. 전사들이 숙련되어 강해지는 것을 말한다고 했었지.”



나름 ‘로스트 테라’에서 고렙이었던 나는 게임 내 모든 필드를 돌아다녔고, 게임 내 다양한 환경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드넓은 리도 평원, 걷는 것만으로도 끔찍했던 하를 늪지, 바인 사막부터 뱀의 폭포와 스칸센 성, 타락의 설원까지. 그곳에서 사냥할 수 있는 다양한 몬스터들의 이야기와 나의 파이어 마법, 사냥법 등 다양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재밌구만. 재미있어. 항상 재미있구만 자네 이야기는.”


“환웅 대족장은 피곤하지 않으십니까? 내내 일하시고 이렇게 밤 늦게까지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는데···.”


“보다시피 체력 하나는 자신 있네. 걱정하지 말게나. 하하하하하하핫!!!”



자신 있어 보인다. 늘 보면 식사량도 남들의 서너 배는 되어 보인다.



“내일이 제사군. 마을 사람들에게 일러두었으니 함께 가세나.”


“제···. 사 말입니까?”


“제사도 모르나?”



모를 리가 있나. 레벨3 때 마을에서 제사 이벤트를 하면 익힌 고기 10개를 받을 수 있는 퀘스트가 있었지.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시는지?”


“마을 남쪽에 보이는 큰 산꼭대기네. 커다란 나무가 서 있지. 그곳에서 우리 한족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하늘의 아버지에게 제사를 지내는 거라네.”


“제가 그런 곳에 따라가도 되겠습니까?”


“내 허락만 있다면 외부인도 얼마든지 올 수 있는 곳이라네. 예족만 아니라면 말이지. 하하하하하핫!!!”



여전히 처치 곤란한 저 커다란 웃음소리가 적응이 안 된다. 특히나 이렇게 가까이 있을 때는 고막뿐 아니라 몸이 울릴 정도로 큰 목소리다. 대족장 자리를 덩치랑 목소리로 따냈나 싶을 정도로.



※※※※※※※※※※※



“주선, 가지.”



아침부터 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대족장 움막 앞으로 모여들었다. 산 아랫마을의 장로부터 계곡 상류의 전사들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마치 내가 있던 ‘로스트 테라’ 시작 마을의 광장 같았다.



“경비가 너무 허술하지 않습니까? 전사들까지 모두 가면 마을은···.”


“걱정하지 말게. 아무리 예족이 잔인하고 극악무도해도, 제삿날은 건드리지 않아. 서로 그것 만큼은 지키지.”



기습이 상습적으로 이루어지는 ‘로스트 테라’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로서는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애초에 내가 삭제되어 이곳에 떨어진 것부터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단지 나는, 최대한 이곳의 규칙을, 문화를, 사람들을 이해하려 노력할 뿐이다.


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은 예상보다 훨씬 험난했다. 늙은 장로들은 힘겨운 숨을 몰아쉬었고, 젊은이들도 추운 날씨가 무색하게 땀을 뻘뻘 흘리며 산을 올랐다. 애초에 체력 스탯을 장비에 맞춰 최소만 찍었던 나 역시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환웅 대족장은 그들의 발걸음에 맞춰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산 정상을 향했다.


산 정상에 가까워지자, 거대한 나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었다. 못해도 족히 30m는 넘어 보이는 나무가 이런 추운 곳, 그것도 산 정상에서 자랐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모두 아무 말도 없이 엄숙한 표정으로 천천히 나무에 다가갔고, 나무 앞에서 환웅 대족장이 무릎을 꿇자 모두 무릎을 꿇어앉았다. 나 역시 서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에 무릎을 꿇어앉았다.



“하늘의 주인이시자, 이 땅의 주인. 아버지께 인사 올립니다.”



환웅 대족장이 허리춤에서 청동으로 된 검과 거울을 들어 올렸다. 내리쬐는 햇빛이 검과 거울에 닿아 반짝였다. 다들 고개를 땅에 대고 엎드렸다. 역시 가만히 허리를 세우고 있으면 안 될 분위기라, 나 또한 머리를 땅에 살짝 가져다 대었다.



“부디 우리 한족을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모두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해 주시옵소서.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해 주시옵소서. 우리 한족을 지켜 주시옵소서.”



크고 낮은 목소리에 담긴 진심이 고스란히 나에게까지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안전하고 평화롭게, 배불리 먹고 살 수 있도록 하늘에 비는 것. 그래. 그게 바로 제사였다.


엄숙한 제사가 마무리되고, 대족장이 큰 나무를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대족장을 따랐다. 나 역시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큰 나무를 바라보며 천천히 그들을 따르기 시작했다.



“음? 이것은?”



환웅 대족장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나무의 뿌리 쪽에서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주선! 주선!”


“예. 대족장.”



대족장에게 다가섰다. 대족장의 손에 굉장히 익숙한 무언가가 들려있었다.



“데르만의 스태프?!”



까맣게 옻칠이 되어있는 단단한 단풍나무, 그 끝에 대마법사 데르만의 마법력이 깃든 루비가 박혀있는 전설급 스태프다. 나를 플레이하던 유저는 이걸 줍기 위해 자그마치 50시간을 마법사의 대도서관에서 노가다를 했다.



“이게 그 스때푸인지 수태프인지 하는 그거 맞나?”


“아니···. 이게 왜 여기에?”



대족장으로부터 스태프를 건네받았다. 내 법력에 반응하듯 스태프 끝의 루비에 붉은빛이 환히 빛나기 시작했다. 마법사가 아니면, 그리고 지력이 90이 되지 않으면 이것을 쥐더라도 빛을 내지 못한다. 말 그대로, 지력 90 이상의 마법사들만 사용할 수 있는 무기다.



“오오···. 나에게 다시 줘보지 않겠나?”



환웅 대족장에게 스태프를 주자 이내 붉은 빛이 사그라들었다. 다시 건네받은 스태프가 빛을 발하자, 모여있는 모두가 ‘오오’ 하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원래 내 것을 찾았을 뿐인데 왜인지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졌다. 근데, 대체 이게 왜 이곳에 있었던 걸까?



“이게 있다면 더 다양하고 많은 마법을 쓸 수 있습니다.”


“오! 그런가. 마을로 돌아가면 꼭 보여주게. 대신 지난번처럼 쌓아놓은 장작더미를 홀랑 태울 수도 있으니, 공터에서 보여주게나! 하하하하하핫!!”



되찾은 데르만의 스태프를 손에 꼭 쥐고, 산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올라오는 길만큼이나 내려가는 길도 험했다. 눈이 곳곳에 쌓여있어 미끄러웠고, 길은 좁아 위험했다. 노인들까지 따라나섰던 터라, 대족장은 신중히 맨 앞에서 꾸준히 뒤를 돌아보며 산에서 내려왔다.


그때였다.



“대족장! 대족장님!! 큰일입니다!!”



산 밑에서 누군가 서둘러 뛰어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분명 마을을 지키고 있던 경비병이었다. 털가죽 옷이 이리 찢기고 저리 찢겨 엉망인 모습이었다. 머리에는 피까지 흘리고 있었다.



“설마?”


“예족의 기습입니다. 계곡 입구에서 막고 있는데 역부족입니다. 이미 마을 근처까지 왔을 겁니다.”


“환호... 이 개자식이...”



대족장이 산을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젊은 전사들 역시 빠르게 그 뒤를 따랐다. 장로를 비롯한 노인들도 발걸음에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나 역시 그들을 뒤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능선 위에서 마을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 다다랐다. 반대쪽 마을 입구에서는 이미 전투가 시작되고 있었다.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쓴 전사들이 마을 입구 쪽 한족 전사들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으나, 수가 너무 많아 보였다.



“숙산!”



전사 중 가장 작고 재빠른 숙산이 대족장에게 다가섰다.



“예, 대족장.”


“무기고로 먼저 가서 무기들을 산 위쪽으로 빼게. 나머지는 무기를 받는 대로 마을에서 예족 놈들을 몰아낸다. 아마 여인들과 아이들은 이미 이쪽으로 대피하고 있을 테니, 한 명이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키고.”


“알겠습니다!”



숙산이 재빠른 몸놀림으로 절벽처럼 가파른 산 능선을 타고 내려갔다. 나머지 인원들도 순식간에 대족장을 따라 산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가 따라가기 벅찰 지경이었다. 뒤쫓아 오던 노인들과 내 체력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주선! 자네는 천천히 내려오게. 그리고, 절대 전투에 휘말리지 말게나!”



뛰어 내려가는 와중에도 내게 소리를 치는 대족장의 목소리가 산을 쩌렁쩌렁 울렸다.



※※※※※※※※※※※



“헉···. 헉헉···.”



산에서 내려와 마을 뒤편에 진입하자, 곳곳에서 나무 부딪히는 소리와 비명이 난무했다. 예상보다 많은 예족들에게 이미 마을 입구가 뚫려, 마을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산길을 내려오는 길에 만난 여인들과 어린아이들 역시 급히 도망쳐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이 개자식들!!!!!!”



대족장이 포효하며 큰 창을 휘두르자,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쓴 전사 서너 명이 낙엽처럼 날아갔다. 전투 상황은 예족에게 유리한 것으로 보였다. 이미 지형의 유리함까지 상실한 한족 전사들은 용맹함만큼은 밀리지 않았지만, 숫자에서 미묘하게 밀려가고 있었다. 물론, 환웅 대족장의 활약이 그 열세를 상쇄시키고는 있었지만, 역부족이었다.


내가 이 전투에 참여해야 할지, 참혹한 이 상황 속에서도 고민에 빠졌다. 절대 전투에 참여하지 말라는 대족장의 말도 있었고, 사실 한족이든 예족이든 상관은 없었다. 아직은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판단도 서지 않았다. 단지, 지난 열흘간 나를 먹여주고 재워주고 이 세계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해 준 대족장과, 친절하게 대해준 마을 사람들에게 내 힘으로 보답하는 게 맞다는 본능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가자.”



데르만의 스태프 끝에 내 법력을 천천히 끌어모았다. 붉은 루비에서 내뿜어지는 빛이 점차 커지자, 곳곳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전사들의 시선이 하나둘 씩 나에게 꽂히는 것을 느꼈다.



“락 온”



내 시야에 들어온 호랑이 가죽의 전사 5명. 그들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차분히 주문을 읊었다.



“멀티 샷”



작은 불의 화살이 스태프 끝에서 순식간에 발사되었다. 내가 주시한 5명의 가슴팍에 순식간에 날아가 꽂혔다. 데미지 자체는 약하지만, 다수의 적을 빠르게 제압하는 데 이만한 마법은 없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예족 전사들과 한족 전사들 모두 말을 잃었다. 창끝에 사람을 매달고 던져버리던 환웅 대족장 역시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락 온”



다시 한번 호랑이 가죽을 입은 예족 전사들을 바라본다. 움찔거리는 예족 전사들. 아직은 도망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멀티 샷”



다시 한번 다섯 개의 불화살이 스태프에서 발사되자, 5명의 전사가 눈 깜짝할 새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두 번의 멀티샷에 예족 전사들이 점점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내가 한 걸음 한 걸음 마을 안쪽으로 진입하자, 이내 무기를 버리고 들어온 마을 입구를 향해 내빼기 시작했다.


마을 입구가 순식간에 예족 전사들로 가득 찼다. 제대로 몰렸다. 기회다.



“라바 익스트루젼 (Lava extrusion)”



적군과 아군, 피아 구분 없이 좁은 지역의 땅을 파열시켜 용암을 분출시키는 마법이다. 주로 몰이사냥을 할 때 사용하며, 좁은 던전에서 접근을 막거나, 몰아놓고 딜을 넣을 때 쓰는 고급 주문이다.


다시 한번 데르만의 스태프 끝이 밝게 빛났다. 그러자 예족들이 도망가고 있는 마을 입구의 땅이 서서히 갈라지기 시작했고, 붉은 용암이 뿜어져 나왔다. 엄청난 열기를 내뿜는 화마가 순식간에 예족 전사들을 집어삼켰다.



“끄아악!! 으아아악!!!!”



살이 타는 냄새가 코를 찌르기 시작한다. 용암에 빠져 불에 타기 시작한 예족들의 비명이 끊임없이 마을을 휩쓸었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비명은 사그라든다. 아무래도 애매하게 좁은 범위의 마법이라 피해서 빠져나간 인원도 적진 않았지만, 최소한 30명 정도는 갈라진 용암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스태프를 천천히 내려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비명과 창이 부딪히는 소리가 난무했던 마을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고요하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눈이 나를 향해있었다. 그리고 그 정적을 깨고 무시무시한 고함이 내 귀를 흔들었다.



“주선!!!”



환웅 대족장의 포효가 계곡 전체로 울려 퍼진다. 평소보다도 훨씬 크고, 거친 고함.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뒤섞인, 그런 목소리였다.


작가의말

아마존과 소서리스의 끔찍한 혼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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