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제된 화염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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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한우
그림/삽화
양한우
작품등록일 :
2024.08.21 22:49
최근연재일 :
2024.08.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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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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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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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법과 사회

DUMMY

예족 주둔지 한복판. 또 사람들 사이에서 엄청난 싸움이 났다.



“넌 뭔데 이 새끼야?”


“네가 제일 많이 쳐먹어놓고 뭐라는거야?”



환웅 대족장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두 번이 아니라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족과 예족이 서로 반목하며 산 세월이 긴 만큼, 당연히 함께 살기는 어려울 것이라 예상했지만, 이렇게까지 다툼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에휴. 또 시작이군 그래.”


“예. 아무래도 당분간은 계속 이럴 것 같습니다.”


“환호는 아직인가?”


“예. 아마도 눈치를 챈 듯합니다만, 다른 예족 마을도 포섭해 놓은 만큼 어디 가서 수습하고 오긴 어려울 듯합니다.”


“그래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되네. 잡아야 해. 그대로 둔다면 화근이 될 테니.”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환호를 그대로 두는 것은 대족장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마을의 규모도, 인구도 모두 커진 만큼 여태까지와는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리고 나는 환웅 대족장에게 할 수 있는 조언을 했다.



“일단, 법을 만드십시오.”


“법?”


“예. 모두가 따라야 하는 규칙입니다. ‘무고하게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인다’ 와 같이.... 이런 법을 만들고 따르게 한다면, 안정적으로 이 땅과 사람들을 통치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군.... 그리고 환호는....”


“환호는 지금 추격대를 보내서 추적중이니 곧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겨우 십여명을 데리고 사냥을 나갔다고 하니, 그 병력으로 뭘 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래. 주선. 그러면 법에 관련된 부분은 자네에게 부탁해도 되겠나?”


“알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붙잡은 호랑에 대한 것입니다.”



환웅 대족장이 다시 한번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리 설득하고, 아무리 협박해도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반항을 했다. 벌써 보름 가까이 흘렀지만, 억지로 먹고 마시게 해서 살려두었을 따름이다.



“태어나서 저렇게 드센 여인은 처음일세. 대체 환호가 어떻게 구워삶았길래 저러는 거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정확하진 않지만....”


“음? 뭔가?”


“아. 아닙니다. 법 제정을 맡기시는 김에 호랑, 그 여자도 저에게 맡겨주시지 않겠습니까?”


“....괜찮겠나?”


“안 괜찮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되는 데까진 해보려 하니 맡겨주십시오.”



환웅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여주었다. 나는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는 호랑이 갖혀 있는 마을 중앙의 움집으로 향했다. 손발이 묶이고 재갈이 물려진 채, 쓰러져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한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재갈을 풀고 물과 밥을 먹이려다 손을 물린 무사들이 한둘이 아니라, 나 역시 긴장했지만, 저 가녀리고 아름다운 여인에게 동정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호랑 씨”



몸을 천천히 일으켜 세우는 호랑의 눈에 독기가 시퍼렇게 서려 있었다. 처음 잡혔을 때보다 훨씬 여위어있었다. 손이 물리는 일 없도록 재빨리 재갈을 풀었다. 물려고 바로 입질이 들어온다.



“이제 그만 하시죠.”


“크으....”


“환호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추적대를 보내 찾고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잡힐 겁니다.”


“닥쳐! 대족장님 이름 함부로 입에 올리지 마.”



목소리는 다 쉬어있지만, 분노가 서린 목소리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나는 데르만의 스태프를 슬쩍 들어 올렸다. 스태프 끝에 달린 루비가 은은한 빛을 내고 있다. 거칠게 몸을 뒤틀어 저항하는 호랑을 무릎으로 눌러놓고, 스태프를 그녀의 손에 가져다 대었다. 지력 90이 넘는 마법사만 다룰 수 있는 이 스태프. 스태프 끝에서 빛을 낼 수 있는 건 말 그대로 오로지 지력 90 이상의 마법사 뿐이다.



“역시....”



불같이 주황색의 타오르는 빛이 아닌, 몸에서 뿜어지는 피처럼 검붉은 빛을 내기 시작한 스태프. 내 예상대로 정확히 들어맞았다. 이 여인은 마법사다. 그것도 지력 90 이상의 고위마법사. 묘한 마력을 느껴 설마 했지만, 이렇게 확인하고 나니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다.



“당신, 마법사였군요. 그것도 피를 이용하는 암흑마법사.”


“마법사? 그게 뭔데? 이 망할 막대기는 뭔데?”


“아. 이 땅에서는 주술사라고 하던가요?”



호랑의 눈이 크게 흔들린다. 마치 들키지 말아야 할 것을 들켰다는 듯, 방금까지 죽일 듯 달려들던 태도는 온데간데 없이, 온 몸을 떨며 두려워했다. 초롱초롱한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두려움이 나에게까지 전해지는 듯하다.



“너....그걸 어떻게?”


“그리고 그 목걸이로 마력을 억제하고 있군요.”


호랑의 가녀린 목에 청동 구슬 여러 개를 엮어 만든 목걸이가 반짝인다. 화려하진 않지만, 견고하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마력의 흐름을 어느 정도 읽을 줄 아는 나는, 이 목걸이가 마력을 흡수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네놈이 어떻게 그걸?”


“환호 대족장은 주술사를 증오한다고 알고 있는데 말이죠. 환호 대족장이 주술사를 가까이 두기도 한 모양이군요.”


“....”



사실 고고한 척, 당당한 척 말은 하고 있었지만, 나는 두려웠다. 피를 사용하는 암흑마법사는 ‘로스트 테라’ 에서는 비주류 마법사 중 하나다. 마법을 사용할 때 MP만 사용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HP까지 깎아가며 강력한 마법을 구사한다. 자신의 피뿐만 아닌, 시신의 피까지 사용하기에, 많이 죽고 다치는 전장터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타인의 피를 이용해 강해지는, 그런 잔혹한 마법사다.



“정체가 뭡니까 당신?”


“네 놈이 알 바 아니야.”


“왜 우리가 이곳에 쳐들어왔을 때 당신의 주술을 사용하지 않았죠? 사용했더라면 충분히 상대해 볼만했을텐데 말이죠.”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네 놈이 알 바 아니야.”


“당신도 이 세계 사람이 아닌가요? 그것도 제가 알 바가 아닙니까?”


“뭔 개소리야 그게?”


“알겠습니다. 대답할 생각이 추호도 없군요. 풀어드리겠습니다. 환호가 빨리 돌아올까 당신을 가두어 두었지만, 이제는 한족도 모두 정착했고 대비도 되어있으니, 우리는 당신을 데리고 이유가 없습니다.”



내가 듣고 싶은 대답은 다 들었다. 이 세계에도 주술이라는 이름으로 마법이 존재하고, 호랑은 역시 마법사였으며, 다른 곳이 아닌 이 세계의 사람이다. 궁금한 것은 모두 해결되었다. 아니, 아직 한 가지 궁금한 것은 남았다. 호랑의 마법 아니 주술 능력. 지력 90이 넘는 마법사만이 밝힐 수 있는 데르만의 스태프를 밝힐 정도라면, 현재로서는 내 능력과 비슷하거나 더 높을 수도 있다.



“풀어준다고?”


“예. 풀어드릴 생각입니다. 환웅 대족장께서도 동의하셨습니다.”


“....무슨 생각이야?”


“죄송합니다만, 그건 당신이 알 바 아닙니다.”



통쾌하게 돌려준 대답에 호랑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죽일 듯이 몰아치는 기세와 패기, 독기를 품은 입을 가졌지만 아직 앳된 소녀일 뿐인지라, 이런 도발에 분해하는 모습은 귀엽기까지 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호랑은 호위무사에게 이끌려 마을 밖으로 향했다. 환웅 대족장과 나 역시 함께 따라나섰다. 갑작스럽게 주술을 써서 상황이 안 좋아지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호랑은 손과 발에 걸린 결박이 풀리자, 슬쩍 나와 대족장을 바라보고는 북쪽으로 향했다.



“괜찮겠나?”


“모르겠습니다.”


“몰라? 너무 무책임한 발언 아닌가?”


“제가 저 여인을 이길 수 있다면 문제될 건 없습니다. 다만, 져서 제가 죽는다면 꼭 청동기를 사용해 막아주십시오. 청동은 마력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으니까요.”


“무슨 말인지 정확히 모르겠네만, 알겠네. 죽는다는 소리 말게. 하여튼, 저 여인이 주술을 쓰면 청동으로 막으라는 거지?”


“귀한 금속이니만큼, 대족장께서 직접 사용해 주십시오.”



※※※※※※※※※※



이 땅에서는 많은 법이 필요치 않았다. 그만큼 원시적인 사회였다.



“말해주겠나?”


“예. 사람들에게 공표해 주십시오.”


[첫째, 무고한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인다.]

[둘째, 무고한 사람을 다치게 한 자는 곡물로 배상한다.]

[셋째,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재산을 몰수한다.]

[넷째, 먹을 것이 부족할 시 공평하게 나눈다.]

[다섯째, 게을러 남에게 해를 끼치면 5일간 굶긴다.]

[여섯째, 전쟁에 참여하는 전사는 상관의 명령에 절대복종한다.]

[일곱째, 여성과 아이는 반드시 보호한다.]

[여덟째, 대족장은 선대 대족장의 지명에 따라 선출되며, 부족원 절반 이상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대족장은 부족원들의 생명과 재산을, 최선을 다해 지키려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홉째, 위 모든 조항은 대족장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따라야하며, 대족장이 이 법을 어길 경우, 부족 전체 회의를 통해 탄핵할 수 있다.]



“탄핵이 무엇인가?”


“대족장 직위의 박탈을 의미합니다.”


“나 역시, 법을 따라야 한다는 이야기이군.”


“예. 법을 만들고 알린 사람이 법을 지키지 않으면, 그 누구도 법을 따르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넣은 조항입니다.”


“알겠네. 이대로 사람들에게 알리도록 하지.”


“혹시 서운하시다거나, 제가 건방지고 주제넘다고 생각하진 않으십니까?”


“그럴 리가 있는가? 혹시, 주선. 자네가 살던 곳에서는 탄핵이 된 대족장이 있었는가?”



나는 슬쩍 눈치를 살펴 웃으며, 표정으로 환웅의 질문에 대답했다.



※※※※※※※※※※


법을 공표한 지 사흘이 지났다.


누군가는 중얼거리며, 누군가는 노래를 만들어 부르며, 9개의 법을 외우고 다녔다. 문자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써놓고 볼 수 있는 법전 같은 것은 당연히 만들지 못했다. 마을의 솜씨 좋은 노인 한 명이, 돌에 법의 내용을 새기는 작업을 시작했다. 물론 글이 아닌 그림으로 말이다.


종이도, 붓도, 펜도 당연히 없었기에, 현재로서는 돌에 새기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언젠가 시간이 되고 여건이 된다면, 문자를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대족장! 대족장! 환호입니다!”



대족장과 나는 서둘러 움집을 나섰다. 마을 어귀 먼 곳에서 호피를 두른 전사들 열 명 정도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풀어줬던 호랑 역시, 환호의 옆에서 서서히 거리를 좁혀 걸어오고 있었다. 한족의 마을엔 비상이 걸렸고, 전사들이 서둘러 전투준비를 시작했다. 고작 열 명으로 이곳을 공격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지만, 호랑이 만약 주술을 쓰기 시작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환호 네 이노오오오옴!”



환웅의 포효가 다시 한번 작렬했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서 다 패 죽일 듯한 기세로 달려 나가려는 것을 내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이미 호랑의 주술에 대한 위협을 이야기 해둔 터, 환웅도 내 제지에 움찔하며 멈추어 섰다.


먼 거리를 두고 환호와 예족 전사들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호랑이 단신으로 한족 주둔지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대족장을 바라보았다. 대족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나 역시 단신으로 호랑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데르만의 스태프를 쥔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오랜만이네.”


“그렇게 오랜만은 아닙니다만.”


“우리 환호 대족장의 말씀을 전하러 왔다.”


“호랑 당신만 혼자 오셔도 될걸,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대족장까지 모시고 오셨습니까?”


“입 다물어. 네가 알 바 아니야 그건.”



서로 알 바 아니라는 말을 제일 많이 하는 것 같다.



“우리 환호 대족장께서는 이 땅을 떠나 남쪽으로 가실 예정이다. 예족과 관련된 모든 것을 포기하신다고 하신다. 더 이상 추적하지 않고 보내준다면, 한족에게 해를 입히는 일은 없을 거라 하셨다.”


“남쪽으로 도망칠 테니 살려 보내달라는 말을 어렵게 하시는군요.”



호랑의 미간이 확 구겨졌다. 다행히 청동목걸이가 아직 튼튼히 목에 걸려있는 걸로 봐서는, 주술을 쓸 생각은 없어 보이기에 내심 안심했다.



“우리 환웅 대족장께서는 환호를 큰 위협으로 생각하고 계십니다. 살려두는 것은 너무 위험해요. 그리고 이렇게 제 발로 찾아온 이상, 놓칠 수 없는 기회이지 않겠습니까?”


“제안을 거절하는 것이냐?”


“예.”



나는 생각했다. 굳이 말만 전하려는 것이라면 호랑만 보내도 되었을 것을, 대족장이 직접 위험을 무릅쓰고 나설 이유가 없다. 이유가 있다면 단 하나. 아마도 호랑 때문일 것이다. 그녀의 능력을 아끼는 것이든, 아니면 그녀를 아끼는 것이든, 그 어느 쪽이든 간에.



“대족장님!!!!!!!”



호랑이 하늘을 향해 큰 소리를 내지른다. 환호 대족장을 향해서도 아니고, 왜 하늘로 소리를 지르지? 라고 생각한 순간, 호랑의 손이 자신의 목에 걸려있는 목걸이로 향했다. 그리고 단숨에 ‘챙’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청동목걸이는 끊어졌다.


작가의말

어떠한 정치적 의도도 없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믿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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