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 없는 이세계 작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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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한햄스터
작품등록일 :
2024.08.22 15:25
최근연재일 :
2024.08.2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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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3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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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화

DUMMY




만일 누군가 내게 인간과 짐승의 차이를 묻는다면, 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인간은 꿈을 꿀 수 있습니다.’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갈망은 얼마나 멋진 욕구인가.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고, 성공을 꿈꾸는 인간은 얼마나 근사한 존재인가.


‘그래서 당신은 무슨 꿈을 꾸고 있습니까?’

‘전 짐승입니다만.’



* * *



“스토리도 엉망이고, 주인공은 그 흔한 목표 의식조차 없군.”


글자가 빼곡하게 적혀있는 흰색의 원고지가 공중에 흩날렸다.


“이딴 건 그냥 필력 차력쇼야!”


흩뿌려진 원고지 위로 내 시선을 가로채는 먼지가 둥둥 떠다녔다.


“앞으로 연락하지 말아줬으면 하네.”


장재호.

23세.

최종 학력, 중졸.


실로 감탄을 자아내는 이력이었다.

나는 잠시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지압했다.


벌써 올해에만 퇴짜맞은 매니지먼트의 수가 두 자릿수를 넘겼다.

이건, 그러니까, 더 이상 생계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글을 쓰기 시작한, 소위 말해 ‘글먹'을 꿈꾸던 작가 지망생이었다.


글 하나는 더럽게 많이 썼지.

6년 동안 진짜 더럽게도 많이 썼다.

17살부터 무려 성인이 될 때까지 필력만 다듬었고, 법적으로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되자 출판사에 투고를 시작했다.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을 법한 대형 출판사부터 작은 소설 플랫폼을 기웃거리는 신생 출판사까지.

글을 받는 모든 곳에 내 글을 넣었다.

그 결과 반이 내 이메일을 씹었고, 나머지 반은 내가 이쪽에 재능이 없다는 메일을 보냈다.


나도 이쯤 되니 오기가 생겼다.

그러니, 이건 이제 자존심의 문제였다.


그렇게 다시 직접 발로 뛰며 원고를 들이밀길 2년.

언젠가는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나오겠지, 어딘가는 내 재능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겠지···· 하면서 인생을 허비한 기간이 6년이었다.


“인생 시발.”


나는 혀끝의 씁쓸함을 털어내기 위해 담배 하나를 빼어 물었다.


가볍게 문 담배에서 느껴지는 달짝지근한 씁쓸함.

불을 붙이고 있는 힘껏 빨아 재끼자 코를 찌르는 담배 냄새가 온몸으로 퍼지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 담배는 이렇게 피워야지.


한동안 담배 연기를 들이마시는 것에 집중하고 있을 때,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담배 진짜 맛있게 피시네요.”

“이거보다 맛있는 게 없더라고요.”


슬그머니 다가온 여자의 입에 물린 담배가 눈에 들어왔다.


“아, 불.”


담배를 입에 물고 잠시 품속을 뒤적이던 그녀가 나지막이 한숨을 내뱉었다.


“여기, 불.”


그녀는 내가 내민 라이터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곤, 이내 라이터를 받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나와 그녀는 말없이 담배 연기만 뻐끔뻐끔 내뱉고 있었다.


‘아, 좆 같다. 인생 진짜 좆 같다. 내 인생은 좆이었다····.’


어, 방금 거 좋은데?

나는 통화와 메모장 기능만이 간신히 살아있는 구형 중고 핸드폰을 꺼내 방금 떠오른 구절을 적기 시작했다.


옆에서 내 핸드폰의 화면을 흘깃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저기, 글 쓰시나 봐요?”

“····예, 아직 작가는 아니지만.”

“잠깐 읽어봐도 괜찮을까요?”


라고 하더니, 대뜸 내 핸드폰을 낚아채 가는 것이 아닌가.

나는 한 소리 하려고 입을 열었다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불평을 도로 삼켜버렸다.


어차피 핸드폰은 대리점에 가져가봤자 만 원도 받기 힘들 기종이었고, 파일은 가지고 다니는 노트북에 따로 저장되어 있지 않나.


오히려 조금 들뜨기까지 했다.

내 글을 이렇게 열정적으로 읽고 싶어 하는 사람이 도대체 얼마 만이던가.


아주 약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낡은 핸드폰의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여성이 있었다.


흑발의 짧은 단발.

뒤로 질끈 묶어 올린 생머리가 바람에 흔들렸다.


“저기.”

“예? 아, 예.”

“괜찮은데요? 재밌어요.”


그녀는 내게 끝까지 스크롤을 내린 핸드폰을 내밀었다.


“글 잘 쓰시네요.”


얼떨결에 핸드폰을 돌려받은 나는 벙찐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것도 꽤 오랫동안.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 그게···· 글로 칭찬을 받은 게 처음이라서.”

“진짜요? 거짓말. 이렇게 재밌는데.”


나는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 멋쩍게 웃어 보였다.


“제가 영업부였으면 당장 명함부터 내밀었을 거예요. 스토리는 평범한 헌터물인데, 필력이 톡톡 튀네.”

“그거 다행이네요.”


비록 빈말뿐인 칭찬이라 하더라도, 얼굴로 원고지를 돌려받은 뒤로 계속 찝찝했던 기분이 조금 풀어졌다.


“이 세상이 멸망하면 어떤 기분일까요.”

“네?”


옆에서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되게 엉뚱하시네요. 하긴, 작가는 엉뚱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니까. 전혀 예상 못 한 질문인데요?”

“상태창이 생기고,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고···· 뭐 그런 거 있잖아요.”

“저 소설처럼요?”


그녀가 손가락으로 내 손에 들린 낡은 핸드폰을 가리켰다.


“뭐, 그렇죠. 이 소설처럼.”

“그럼 이야기가 달라지죠. 난 또 멸망이라길래 운석이라도 떨어지는 멸망인 줄 알았는데. 세상이 소설로 변하는 상상은 누구나 한 번쯤 해보잖아요?”


물론이다. 실제로 나도 매일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마음속으로 간절히 상태창을 외치니까.

게다가 게이트가 열리면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순식간에 성장할 루트까지 만들어서 메모장에 적어놓았다.


괴수가 등장하면 군대가 나타날 때까지 숨어서 부속물부터 슬쩍하고, 그걸로 상태창을 각성하는 거지. 괴수를 잡아야 각성하는 세계관이면 어떡하지?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옆에서 쿡쿡 웃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진짜, 작가가 천직이시네요. 정말로요.”

“뭐···· 아무래도 그렇겠죠.”


내 인생은 작가가 되기 위한 발버둥의 연속이었으니까.

그녀는 벌써 절반가량 타들어 간 담배를 조금 더 피운 뒤, 재떨이에 비벼 껐다.


“대화 즐거웠어요, 작가님. 덕분에 담타가 재밌었네요.”


나는 그녀와 인사하고 잠시 뒤 건물을 빠져나왔다.

1층의 문을 열고 나오자 펼쳐지는 북적이는 인파로 뒤덮인 번화가의 풍경.


햇빛이 쨍쨍한 오후가 살짝 지난 시간이라 그런지 불어오는 바람에 상쾌한 공기가 실려있었다.


마치 꼬일대로 꼬인 내 인생을 비웃기라도 하듯 따뜻한 햇볕과 적당히 시원한 바람이 매니지먼트 사옥을 나선 나를 맞이했다.


이대로 카페라도 들어갈까.

비록 내 수중에 있는 것은 처참하게 퇴짜맞은 원고지, 낡을대로 낡아서 이따금 이상한 소리를 내는 중고폰, 그리고 천 원 남짓의 교통비뿐이었지만.


‘내가 돈이 없지, 낭만이 없나.’


불행하게도,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이런 시답잖은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앞으로 내게 벌어질, 내 인생을 뒤흔드는 것으로도 모자라 송두리째 뽑아 내동댕이칠 어마어마한 사건이 다가오는 것도 모른 채.



* * *



나는 저 멀리 보이는 커피 프랜차이즈로 흐느적거리며 걸어갔다.


야외에 설치된 키오스크로 천오백 원짜리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키고 벤치에 털썩 주저앉자, 그제야 비로소 아까 전보다 조금 더 북적이는 인파가 눈에 들어왔다.


햇빛에 인상을 찡그리며 메모장을 들여다보기를 한참.

얼마나 기다렸을까, 금세 뜨거워진 핸드폰을 더 이상 들고 있기 힘들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때.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내 커피가 준비되었음을 알리는 알바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핸드폰을 집어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일어서려 했다.

돌연 눈앞이 핑 도는가 싶더니, 정신이 순식간에 까마득해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시야가 뒤집히고, 중심을 잡기 힘들었다.


갑자기 왜 이러지?

카페인에 혹사당한 심장이 드디어 항의하는 건가?


다행히도,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만 같은 느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쓰러지지 않으려 휘청이는 다리를 겨우 붙잡았다.


“····더위 먹었나?”


흔들리는 머릿속이 진정되자, 다시 나를 뒤덮은 건 물밀듯 밀려오는 부끄러움이었다.


벤치에서 일어서며 혼자 휘청이는 내 꼴을 상상하자 얼굴이 화끈거려 얼른 무릎을 짚은 손을 떼며 고개를 치켜올렸다.


그리고 곧이어, 나는 까무러쳤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알바생이 아메리카노를 내밀고 있는 커피 프랜차이즈도, 사람들이 붐비는 번화가도 아니었다.


“어, 어····?”


햇빛이 쨍쨍한 늦은 오후는 온데간데없고, 주변은 온통 늦은 밤의 서늘한 냉기뿐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머리 위에서 내려오는 불길한 보랏빛.

그 께름칙한 귀기를 흘리는 어두운 달빛이.


“····달? 아닌가?”


나를 비추고 있었다.


원래 보라색 달이 존재했던가?

아니, 그 전에 왜 지금 달이 떠 있는 거지?


마치 아포칼립스 소설 속에서나 등장하는 멸망의 순간이라도 목도하는 기분이군.


문득 조금 전까지 함께 담배를 태우던 여성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나는 세상이 멸망하길 원했다.

만약 내가 상태창이 생기고, 게이트가 열리는 세계에 태어났다면.

차라리 이 세상이 소설이었다면.

그랬다면, 나는 도망치기만 하는 실패자가 아니었을 텐데.


“하지만 이런 세기말 멸망을 원한 건 아니었는데.”


만약, 정말 만약에 지금 내게 소설 같은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면.


나는,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


[띠링!]


그리고, 아직 현실성이 뒤떨어지는 상황에 쐐기를 박을 명쾌한 소리가 들렸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상태창을 각성하였습니다]


“지, 진짜?”


진짜로 내가 상태창을 외칠 수 있다고?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에, 이 거지 같은 현실과 제일 어울리지 않는 나였기 때문에, 나는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흠, 흐흠! 상태창!”


나는 목을 가다듬고, 최대한 멋있게 소리쳤다.


[이름] : 장재호

[특성] : 중졸

[칭호] : 없음

[체력-21 힘-13 민첩-9 지혜-16]

[일반 스킬] : 손재주 Lv.4/ 되는대로 내지르기 Lv.1/ 볼품없이 구르기 Lv.1/ 임기응변 Lv.2

[특성 스킬] : 자기합리화 Lv.5/ 눈치 보기 Lv.6


“오! 오오···· 오?”


기대에 들떠 상태창을 읽어 내려가던 내 목소리가 점차 묘연해졌다.


내심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엄청난 직업과 사기적인 히든 스킬이 나를 반겨주길 기대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딱히 그다지 특출난 점이 없더라도 불평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건 진심이다.


불길한 보라색 달빛 아래 상태창을 읽을 수 있는 것만 해도 감지덕진데, 히든 스킬까지 바라면 너무 양심이 없지 않나.


“되는대로 내지르기.”


그래, 그럴 수 있다.

원래 처음은 이런 스킬부터 시작하는 법이니.


“····볼품없이 구르기.”


하지만 볼품없이 구르기라니.

나는 이름부터 볼품없는 쓰레기 스킬에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염병할, 특성이 중졸이라고?”


검사, 궁수, 마법사도 아닌 중졸이라고?


나는 내 비참한 현실을 친절하게 상기시켜 주는 버릇없는 특성을 다시 한번 읽었다.


“····허. 중졸.”


이런 싸가지 없는 시스템이.


[띠링!]


내가 한 욕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상태창에서 다시 한번 맑은소리가 났다.


[오류 정산 중···· 등장인물 최적화 완료]


“····등장인물?”


인상을 찌푸린 채 등장인물이라는 단어를 몇 번이고 읽어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해당 등장인물을 전이합니다]


시스템의 말을 끝으로, 내 몸이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빛이었다.


“뭐야. 전이한다고? 어디로?”


나는 당황하며 소리쳤지만, 시스템에서 돌아오는 대답은 없이 내 몸만이 점점 더 환하게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야, 야! 이 새끼야! 어디로 전이하냐고!”


그리고 그 순간,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고대하던 목소리는 아니었다.


-소설 밖으로.


머리가 깨질 듯 소름 끼칠 정도로 불쾌한 목소리였다.

생으로 톱에 사지가 갈리면 이런 소리가 날까. 나는 묘사조차 하기 힘든 목소리에 전신이 굳어버렸다.


안간힘을 쓰며 굳은 몸을 억지로 목소리의 근원지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달이 있었다.


기괴한 미소를 그리는 보랏빛 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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