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 없는 이세계 작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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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한햄스터
작품등록일 :
2024.08.22 15:25
최근연재일 :
2024.08.2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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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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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화

DUMMY




상쾌한 바람이 앞머리를 살랑였다.

습기 하나 없어 온몸이 끈적이지 않는, 기분 좋게 시원한 바람이었다.


바람에는 싱그러운 풀 내음이 실려 있었다.

진한 녹음이 연상되는 건강한 식물의 산뜻한 향기였다.


그리고, 향기로운 풀 내음이 실린 상쾌한 바람의 사이를 가르며 쩌렁쩌렁 울리는 사람들의 고함이 있었다.

기분이 좋지도, 산뜻하지도 않은 목소리였다.


“아니, 그래서 도대체 우리 보고 어쩌란 거야!”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까.


나는 달의 소름 끼치는 목소리를 들음과 동시에 정신을 잃고 말았다. 보통 소설에서 가장 하면 안 되는 행동 탑 5위 안에 드는 것이 시스템에 반기를 드는 것과 최종 보스 앞에서 기절하는 멍청한 짓인데, 나는 그 두 가지를 동시에 어긴 셈이다.


그리고 다시 깨어난 것이 대략 10분 전.

그러니까, 저기 소리치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 조용했을 때였다.


‘여러분은 선택받으신···· 어? 저거 뭐야. 여기서 더 나온다는 말은 없었는데?’


내가 눈을 뜬 곳은 커피 프랜차이즈 앞의 작은 벤치도, 사람들로 붐비는 번화가도 아니었다.


‘····모르겠다고? 그걸 말이라고 해?’


나는 울창한 숲속, 살짝 올라와 있는 언덕 위에 서 있었다.

이곳이 내가 아는 평범한 숲과 다른 점이 있다면, 숲속에 만화에나 나올 법한 천사들이 날아다닌다는 사실이겠지.


‘야, 이 새끼야, 죄송하면 천사 생활 끝나냐?’


천사들에서 시선을 내리면, 자연스레 비교적 낮은 지대에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적어도 수만 명.

말도 안 되는 규모의 사람들이 어리둥절한 상황에 부닥쳐 있었다.


‘요즘 것들이 빠져가지고···· 흠흠. 아무튼, 말을 이어가자면, 여러분은 아주 운이 좋은 분들입니다. 무려 신께 선택받으셨으니까요.’


통상적으로, 갑자기 상태창과 함께 판타지 세계에 소환되어 천사를 마주한 사람은 보일 수 있는 반응이 그리 다양하지 않은 법이다.


‘지금 전부 물에 빠진 치와와처럼 벌벌 떨고 계시는데, 물론 이해합니다. 당황스러우시겠죠. 집에서 토끼 같은 자식과 여우 같은 배우자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그런 여러분은 막중한 가장의 무게를 짊어지려 사회로 나오셨을 겁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현실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상태창이 생기고, 삶에 판타지가 끼어든 것이 행복했지만.

내심,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는 이 모든 게 꿈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이 천사의 말을 듣기 전까지 말이다.


‘이곳에서는 여러분이 어떤 삶을 살아오셨는지, 여러분이 누구인지 묻지 않습니다. 지금, 오늘부로 여러분은 이곳에서 새로 태어나셨습니다.’


곳곳에서 탄식하는 소리가 들리고, 주저앉는 사람들이 보였다.


대개는 절망감에 휩싸였지만, 반면 아무 말 없이 눈을 빛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후자에 속했다.


이곳에서, 검과 괴수가 존재하는 판타지 세상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내가, 다시 태어났다고?


‘어이, 이봐!’


물론, 사람들은 절망에서 그치지 않는다.

절망하고, 체념한 뒤, 수용한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받아들인 사람들, 그중에서도 잃을 게 많은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천사들에게 따지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고? 개소리는 집어치워라!”


그래서 지금 이런 상황이 되었다.


“난 가족이 있다고!”


선두에서 소리치는 저 아저씨, 어딘지 낯이 익은데.


고래고래 소리치는 사람들 중 가장 앞에 나와 있는 아재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자, 과연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편집장?’


조금 전 매니지먼트에서 내 원고지를 집어던진 편집장이었다.


그들의 항의는 점차 거칠어져 욕을 섞어가며 숲을 가득 채울 만큼 요란해지게 되었고, 그에 비해 천사들은 섬뜩하리만치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 이상하다.’


[특성 스킬, 눈치 보기 Lv.6이 강하게 발동 중입니다]


좋지 않은 예감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마치 당장 이 자리를 피해야 할 것만 같은, 매우 좋지 않은 예감이.


“당신들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멀어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처음부터 우리에게 말을 건 천사는 선두에서 뒷짐을 지고 있는 천사 한 명뿐이었다.


아니, 말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행동을 보인 천사가 그 하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선두의 천사 뒤로 모여 있던 다른 천사들이 일제히 우리를 바라보았다.


“흠. 존중과는 별개로 당신들의 멍청함에 유감을 표합니다만, 어디까지나 여러분의 서사가 이곳에서 끝난다는 신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천사들에게 항의하던 사람들이 터져나갔다.


퍼버버버벙!


사람들이, 그들이 살아온 삶이 한 장의 종이 조각처럼 너무나도 쉽게 찢어지고 짓밟혔다.


이건 현실이다.

인간의 목숨이 하찮아진, 한순간에 절대자의 유희로 전락해 버린 이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도 생생한 현실이었다.


붉은색 피가 튀고, 바람에 짙은 녹음보다 더 진한 혈향이 뭍을 때가 되어서야 안일해질대로 안일해진 현대인의 생존본능이 소리를 질렀다.


저건 천사 같은 게 아니라고.

나는 낭만이 가득한 모험의 세계에 다시 태어난 것이 아니라고.


“꺄아아아아아악!”


이건, 소설 따위가 아니라고.


아직 눈앞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나를 깨운 것은 사람들의 처절한 비명이었다.


나는 그 순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력으로 땅을 박찼다.

그것은, 의지보다는 본능에 가까운 발버둥이었다.


[일반 스킬, 임기응변 Lv.2를 사용합니다]


머릿속이 조금 더 침착해지고 요란하던 심장의 쿵쾅거림이 약간 진정되는 기분이었다.


나는 거대한 나무들이 굽어보는 울창한 숲속을 내달렸다.


기분 나쁜 비명이 숲을 울리고, 코를 찌르는 비릿한 혈향이 발목을 휘감았다.


[일반 스킬, 임기응변 Lv.2가 더욱 강하게 발동됩니다]


구역질이 올라오는 불쾌한 악취였다.

하지만,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는 확신의 증거이기도 했다.


나는 거의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다리를 움직였다.

지리도 모르는 낯선 세상 속에서, 나는 혼자 달리고 또 달렸다.


그 뒤로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내가 달리기를 멈춘 것은 흐르는 물소리를 들은 직후였다.


“으, 허억! 허억!”


입에선 단내가 진동했고, 두 다리는 모두 너덜너덜해져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나는 힘이 풀려 그 자리에 풀썩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시발, 시발····.”


너무 멀리 와버렸다.

후회하기에도, 기뻐하기에도, 너무 멀리 와버려서 나는 이제 무슨 감정을 느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특성 스킬, 자기합리화 Lv.5가 발동됩니다]


이런 세상을 원한 건 나 자신이었는데.

나는 상태창이 생기고, 괴수가 튀어나오고, 사람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세상을 원했는데.


“으, 흑···· 흑흑····.”


[특성 스킬, 자기합리화 Lv.5의 발동이 취소됩니다]


아니, 아니다.

나는 이런 세상을 원한 게 아니다.


세상이 싫었지만, 삶이 미웠지만, 그렇다고 이런 지옥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띠링!]


그래서 나는 울었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25341번째로 도망자 칭호를 획득했습니다]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어서.

그리고 그런 나 자신이 혐오스러워서.


[도망자 - 혼자 살기 위해 모든 걸 내팽개친 이기주의자입니다. 하지만 이기적인 사람은 오래 살아남죠. 당신은 오늘 하루도 끈질기게 살아남았습니다. 이 칭호는 추잡하게 도망쳐 목숨을 부지한 생존의 대가들에게 주어지는 칭호입니다. - 체력 +2, 민첩 +4]



* * *



이곳은 사람들의 비명도, 끔찍한 혈향도 나지 않았다.


조금 전의 끔찍한 참사와 사람들의 절규는 그저 무더운 여름날의 꿈이었다는 듯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크고 작은 바위의 굴곡을 타고 흐르며 시원한 소리를 만들어내는 청량한 물줄기뿐이었다.


“····.”


물소리의 근원지는 작은 계곡이었다.

비록 큰 강가나 수심이 깊은 호수는 아니었지만, 계곡은 나름대로 수수하게 아기자기한 경치를 가지고 있었다.


돗자리라도 펴고 피크닉 하기 좋은 계곡이군.

단지 경치를 즐길 만한 기분이었다면 말이지.


나는 세수도 하고 복잡한 머릿속도 정리할 겸 계곡을 향해 걸어갔다.


웅크려 앉을까 고민하다가, 수심이 얕아 그냥 바지 밑단을 접고 계곡 안으로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풍덩!


물의 한기가 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허리를 숙인 채 나를 바라보는 수면 위의 나.

물의 표면에 비친 내 얼굴은 겁에 질린 채 땀과 긴장감으로 얼룩져 있었다.


손을 살짝 담가보자, 수면에 떠오른 얼굴이 사라지며 적당히 시원한 물의 온도가 느껴졌다.


나는 그대로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는 계곡의 물로 세수했다. 더럽고 불쾌한 감정들을 씻어내기 위해, 나는 얼굴을 박박 문질렀다.


천사가 나를 쫓아오진 않을까?

이곳에 떨어진 사람들은 내가 있던 곳이 전부인 건가?

몇 명이나 상태창이 생긴 거지?


두 팔을 분주하게 움직이는 동안 수많은 상념이 떠올랐고, 또 그만큼 수많은 잡념이 사라졌다.


나는, 이제 어떡해야 하는 거지?


내가 물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축축한 몸을 이끌고 눈앞에 보이는 나무의 밑동에 대충 걸터앉자, 그제야 생각이 한 점으로 모이는 기분이었다.


내가 바란 대로 상태창이 생겼고, 세상이 바뀌었다.

이곳에는 천사가 존재한다. 어쩌면 신도.

천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세상은 검과 마법이 만연한 판타지였고, 우리는 그곳에 상태창과 함께 떨어졌다.


‘이곳에서는 여러분이 어떤 삶을 살아오셨는지, 여러분이 누구인지 묻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지금, 오늘부로 여러분은 새로 태어나셨습니다.’


아니, 그것은 틀린 말이다.

나는 천사의 말에 큰 결점을 발견했다.


“상태창.”


[띠링!]


[이름] : 장재호

[특성] : 중졸

[칭호] : 도망자

[체력-23 힘-13 민첩-13 지혜-16]

[일반 스킬] : 손재주 Lv.4/ 되는대로 내지르기 Lv.1/ 볼품없이 구르기 Lv.1/ 임기응변 Lv.2

[특성 스킬] : 자기합리화 Lv.5/ 눈치 보기 Lv.6


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내가 누구였는지 묻지 않는다면.


“특성이 중졸일 리가 없지.”


특성뿐만이 아니었다.

일반 스킬과 특성 스킬 모두 묘하게 내 인생을 요약하는 느낌이 있었다.


글을 썼던 만큼 손재주가 없다고는 못 하겠고, 내 인생은 그야말로 즉흥적인 임기응변의 연속이지 않았던가.


“이건···· 원고를 되는대로 내지르고 봤다고 비꼬는 건가?”


나는 한동안 상태창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에 심취해 있었다.

주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를 만큼.


“캬아아아악!”


나는 난생처음 듣는 생명체의 울음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소리는 계곡의 건너편, 풀이 우거진 방향에서 들렸다.


나는 허둥지둥 주변의 나무 뒤로 숨었다.


처음 조우하는 이쪽의 생명체.

나타나면 불가피하게 싸워야겠지만, 가능하면 아예 마주치지 않는 것이 베스트다.


잘할 수 있을까?

벌레 한 마리도 제대로 못 잡던 내가?


계곡의 건너편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모든 신경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풀숲에 쏠렸다.


소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내 심장 또한 더욱 요란하게 뛰었다.

나는 혹시라도 괴수가 이쪽을 바라보기라도 하는 즉시 달려들 준비를 했다.


풀숲을 헤치는 소리가 점점 커지다가 마침내 잦아든 순간.

나는 고개를 내밀어 존재를 확인했다.


그것은, 앞뒤로 괴수를 메고 있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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