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 없는 이세계 작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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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한햄스터
작품등록일 :
2024.08.22 15:25
최근연재일 :
2024.08.2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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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3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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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화

DUMMY




“····어, 음, 그러니까···· 민하 씨, 혹시 소드마스터세요?”


그녀는 진심으로 당황한 듯 보였다.

눈이 휘둥그레져서 나를 빤히 쳐다보았으니 말이다.


“어떻게 아셨어요?”

“아니, 그게···· 일부러 본 건 아닌데, 저도 모르게 스킬로 봐 버렸습니다.”


눈치 보기로 이런 것도 할 수 있는 건가.

정말이지 쓸데없이 유용한 스킬이군.


“어? 혹시 지금 울고 계세요?”

“여기서까지 불공평한 세상이 비통해 잠시 한탄의 눈물 좀 흘렸습니다.”


누구는 중졸인데 누구는 소드마스터구나!

내가 남들 눈치 볼 때 누구는 검의 축복이나 받고 있었구나!


나는 진심으로 아무나 붙잡고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녀, 서민하가 포대기를 번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 한심하죠? 이런 상태창으로 질질 짜고만 있고.”


내가 들지 못했던 짐을 너무나 쉽게 들어 올린 그녀는, 바람 앞에 놓인 등불처럼 언제라도 꺼질 것만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때 가장 먼저 나서야 할 사람은 저였는데.”


바람이 불었다.

썩은 거리의, 썩은 바람이었다.


“되고 싶어서 소드마스터가 됐습니까? 민하 씨는 소드마스터라고 해서 무슨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그건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푸흡.”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썩은 마을에 어울리지 않는 웃음이었다.


“그게 뭐야. 재호 씨, 위로에 진짜 재능 없는 거 알아요?”


물론 알고 있다.

만약 누군가가 재능과 가장 거리가 먼 사람을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내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릴 것이다.


내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멀뚱멀뚱 서 있자, 그녀는 침묵이 어색했는지 대화 주제를 바꿔 말을 꺼냈다.


“이거, 괴수가 부순 집의 잔해에요. 원래는 버렸어야 하는 건데, 제가 검술 훈련한다고 들고 왔어요.”

“····그냥 돌덩이를요?”

“소설 속 주인공들이 칼 들고 샤샥! 하면 막 이런 바윗덩이가 파바밧! 하고 갈라지잖아요? 그런 거 해보려고요.”


검으로 돌덩이를 조각내겠다니.


“민하 씨도 은근히 엉뚱한 면이 있네요.”

“그 새끼 회 뜨기 위해선 뭔들 못 할까요.”


그 새끼라면, 괴수를 말하는 것이겠지.


문득 그날의 광경이 머릿속에 떠 올랐다.


하늘의 빛을 가린 자욱한 연기와 불타는 마을, 그리고 괴성을 지르던 거대한 괴수까지.


‘····고블린을 싫어하는 집채만 한 괴수?’


“민하 씨, 혹시 판타지 좋아하세요?”

“무슨 판타지요?”

“그냥 판타지 영화라던가, 소설이요.”

“달고 살았죠.”

“그럼 혹시, 판타지 소설에서 무조건 등장하는 몬스터가 뭔지 아세요?”

“물론이죠. 고블린이랑 오크 아닌가요? 여기도 고블린이 있어서 신기했는데.”

“이건 모든 판타지 소설에 있는 설정은 아닌데, 간혹 그 고블린을 죽도록 싫어하는 몬스터도 있었잖아요.”


그녀가 미간을 좁혔다.


“····트롤이요? 그건 진짜 드문 설정인데.”


그래, 정말 간혹가다 트롤이 고블린을 혐오하는 세계관을 가진 판타지 소설이 있었다. 어지간한 것들은 몽땅 읽은 내 기억 속에도 진짜 드문 케이스로.


“설마 그 괴수가 트롤일 거라 생각하세요?”

“일반적인 트롤의 외향 묘사와 달라서 아직 반신반의하고 있긴 한데, 아마 거의 맞을 겁니다. 그거 트롤이에요.”

“그걸 어떻게 아세요? 그냥 그놈이 고블린을 싫어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단지 우연히 목표물이 전부 고블린을 메고 있었을 수도 있잖아요. 설마 이것도 스킬인가?”

“····아뇨, 이건 스킬 아닙니다.”


내게 그 괴수는 트롤이라 확신을 가져다주는 것은 눈치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더 높은 차원의 무언가였다.


‘직감은···· 아니야.’


“그냥 압니다.”

“무슨 궁예도 아니고, 그냥 안다고요? 아예 돗자리도 피지 그래요?”


나도 억울한 심정이었지만, 이건 진짜 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나는 그것이 트톨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사과는 아래로 떨어지고, 불은 무언가를 태우듯이. 그것은 트롤이었다.


“····만약 그게 진짜 트롤이면, 그럼 뭐가 달라지는데요? 전 그게 트롤이든 드래곤이든 죽여버릴 거예요.”

“많은 게 달라지죠. 트롤은 검 같은 무기로는 안 죽습니다. 미사일이라면 모를까, 검으로 베면 순식간에 회복해 버릴걸요. 민하 씨도 아시잖아요?”

“그건···· 그렇죠.”


판타지에 등장하는 트롤은, 거대한 거인의 모습에 아무리 큰 치명상도 눈 깜짝할 새 회복해 버리는 푸른 피부의 괴물이었다.


“정공법은 세 가진데···· 뭔진 아시죠?”

“모가지를 댕강 자르거나, 회복할 엄두도 못 내게 묵사발을 만들거나, 아님 상처에 불을 지르거나.”

“그렇죠. 현실적으로 앞의 두 가지는 불가능하고, 저흰 마지막 세 번째 방법으로 그걸 죽여야 합니다.”


내 말을 들은 그녀의 표정이 아연해졌다.


“솔직히 마지막 방법도 힘들지 않을까요? 내가 무슨 헤라클레스도 아니고.”


확실히, 양손에 검과 횃불을 들고 트롤을 공격하는 그녀의 모습을 상상해 보니 웃음이 나올 정도로 비현실적인 광경이긴 했다.


“뭐, 굳이 불이 아니어도 재생을 막을 만한 건 다 될 겁니다. 예를 들면 염산?”

“염산이라니, 점점 더 이상해지는데요.”


제목까진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읽었던 소설 중 주인공이 검에 산성 기운을 입혀 트롤을 잡았던 소설이 존재했다.


서민하도 소드마스터잖아?


“명색이 소드마스턴데, 검기는 못 쓰시나요? 불타는 검이라던가.”

“그런 스킬은 없····는데, 아닌가? 잘 모르겠어요.”

“그게 무슨 말씀이죠.”

“비슷해 보이는 스킬은 있는데, 이게···· 말로 설명하기 어렵네요. 제 스킬도 아시죠? 그거 보세요.”


내가 벌써 스킬까지 확인했을 거라고 확신하는 건가. 나를 마치 속옷이라도 훔쳐본 사람처럼 대하는 태도에 당황스러웠지만, 나는 진짜로 스킬까지 훔쳐봤으니 할 말이 없었다.


‘그러니까···· 이건가?’


눈앞에 보이는 그녀의 상태창 속 스킬 하나를 터치하자, 스킬의 이름과 함께 설명이 나타났다.


[광휘도검光輝刀劍 - 당신의 검은 빛납니다!]


나는 간략하기 짝이 없는 스킬 설명에 잠시 말을 잃었다.


“광휘도검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그거요. 스킬을 사용해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나서 평소에 안 쓰긴 하는데, 이름부터 뭔가 검기 같잖아요?”

“····그, 혹시 스킬 설명도 읽어보셨습니까?”

“네? 스킬 설명이요? 그런 건 없는데?”


나는 그게 뭔 소립니까, 라고 반문할 생각에 얼른 내 상태창을 터치했다.


“어? 진짜 안 되네?”


그럼 설마 이 스킬 설명 자체가 눈치 보기의 기능인 건가?


“설명에 뭐라고 쓰여 있었는데요?”

“당신의 검은 빛납니다! 라고 되어있긴 한데, 그냥 제 스킬의 레벨이 낮아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이상한 스킬이네요. 딱히 기대도 안 했어요. 그럼 혹시 다른 스킬도 보이세요? 제가 사실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 거의 없어서···· 얘네가 뭔지도 잘 모르고 있거든요.”


눈치 보기를 이런 식으로 활용할 수도 있군.


“그 정돈 어려운 일도 아니죠.”


나는 서민하의 스킬을 처음부터 차례차례 훑어보기 시작했다.


“이건, 그냥 검술이고···· 특성 때문에 레벨이 5부터 시작이네요. 그리고 특별한 게···· 어?”

“뭐라도 찾으셨나요?”


종말의 낙인.

나는 그 간단한 5글자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종말의 낙인 - 만물의 끝을 기원하는 종말론자의 의지가 당신을 이곳으로 이끌었습니다. 이 세상은 멸망해야 함이 마땅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종말을 맞이하길 바라는 상대에게 내리는 죽음의 선고입니다. - 종말의 낙인이 찍힌 상대는 상처 회복이 불가, 출혈량 +50%, 이속 감소 -20% *칭호, 복수자에 의해 강화된 상태입니다*]


“혹시 종말의 낙인도 써 보셨습니까?”

“종말의 낙인이요? 당하면 조금 느려지던데.”

“그거 회복 불가 저주입니다. 트롤에 쓰면 되겠네요.”

“음····.”


그녀가 돌연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검을 빼 들었다.

튼튼해 보이는 롱소드였다.


어설프게 잡은 검을 공중에 몇 번 휘적여보더니, 조금 있다가 팔을 축 늘어트렸다.


뭘 하고 싶은 거지?


“그거, 재호 씨한테 써 봐도 돼요?”

“····네?”


그녀가 늘어져 있던 검의 날카로운 끝을 치켜올려 나를 가리켰다.


“스킬이 중요한 순간에 발동이 안 될 수도 있고, 어떻게 쓰는 건지 감은 잡아봐야 할 거 같아서요.”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검을 겨눈 대상이 틀려서 그렇지.


“스물세 살에 종말을 맞이하고 싶진 않은데요.”

“에이, 안 죽어요. 예전에 한 번 써 봤어요.”

“쓰고 나서 검으로 베진 않지 않았습니까.”

“안 죽는다니까 그러네.”


그녀는 정말 진심으로 내게 죽음의 선고를 내릴 작정이었다.


‘직장 동료가 죽었어요. 같이 편집장 뒷담도 까는 친한 사이였는데, 저 거지 같은 괴수가 개미처럼 발로 으깨버렸어요.’


‘갈 거면 혼자 도망쳐요. 죽더라도 저 새끼 몸에 칼빵은 놓고 죽어야겠으니까.’


만약, 그녀의 소중한 사람이 다시 위험에 빠지는 상황이 온다면. 그 순간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나는 지금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조금만 베는 겁니다. 진짜 조금만요.”

“와, 진짜요?”


그녀가 말함과 동시에 검이 휘둘러졌다.

아까 전과는 완전히 다른, 눈으로 좇기도 힘든 속도였다.


“····제대로 벤 거 맞아요? 하나도 안 아픈데.”

“완전 깔끔하게 벴어요. 팔 쪽에.”


그녀의 말대로 내 팔을 내려다보자, 과연 오른쪽 팔등에 새빨간 실금이 그어져 있었다.


“스킬이 지속되는 동안 이 상처가 회복되지 않는 건가? 출혈 50% 증가도 있었는데, 딱히 별 차이는 없네요.”


내 말이 끝나는 순간, 얇은 상처에서 붉은 피가 주륵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엇.”


피가 나왔다.


“성능 확실하네요.”


계속 나왔다.


“어, 근데 이거 조금 위험한 거 아닌가요.”


계속, 계속 끊임없이 나오고 있었다.


소매가 피로 흥건하게 젖어 들어갔다.

어렸을 때 동네 형에게 맞아 쌍코피가 난 뒤로 처음 보는 양이었다.


나는 순식간에 머리가 어지러워져 주춤거리며 말했다.


“스킬 해제해 주세요. 사람 잡겠네.”

“아니, 그, 스킬은 아까 해제했는데····”


시야가 흔들리며 그녀의 목소리가 점차 멀어져갔다.

마치 물에 잠긴 듯 무언가에 막힌 목소리였다.


“괜···으···· 죽으··면····”


정말로 죽는다고?

사람이 이 정도로 피 좀 흘렸다고 죽을 수 있는 건가?

정말 이렇게 순식간에?


이제 그녀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내 몸이 물속으로 가라앉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눈앞이 뿌예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지경이 되어서야, 나는 이제야 정말로 죽는다는 사실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진짜 죽는구나.

아직 아무것도 못 했는데.


나는 이렇게 죽는구나.


나는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어두운 시야에 보라색으로 빛나는 달의 실루엣이 비치기 전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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