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 없는 이세계 작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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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한햄스터
작품등록일 :
2024.08.22 15:25
최근연재일 :
2024.08.2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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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3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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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화

DUMMY




‘····괴수?’


아니, 사람?


괴수를 나뭇가지에 묶어 앞뒤로 책가방처럼 메고 있는 사람이라니, 저게 진짜 사람이 맞긴 한 걸까? 저런 모습의 생명체는 괴수밖에 없지 않을까?


“어이! 이쪽!”


그러나 해괴망측한 생명체가 내뱉는 유창한 말은 내 합리적인 의문을 단번에 쓸데없는 헛소리로 만들어버렸다. 대신, 새로운 의문을 가지게 만들었다.


‘방금 한국어로 말한 건가?’


괴수 두 마리를 책가방처럼 둘러멘 채 한국어를 하는 이국적인 인종들의 세상이라니, 대체 이딴 게 왜 존재하는 거지?


나는 혼란에 휩싸여 이도 저도 못 한 채, 계속 어중간한 자세로 나무의 뒤에 숨어있기로 마음먹었다.


먼저 계곡으로 나온 사람이 부르자, 건너편의 풀숲에서 두 명의 인영이 걸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두 남자는 자신들을 부른 남자와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괴수 보호구를 착용하고 있었으며, 중동 계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씻고 가자고.”

“마실 수 있는 물인가?”


그들이 대화하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는 도중, 나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입 모양이 다르군.’


상태창의 영향으로 번역되는 건가?


나는 그들이 용무를 마치고 돌아갈 때까지 이곳에서 기다릴 심산이었다.


“거기 누구 있습니까?”


곧바로 들키기 전까진.


세 명으로 이루어진 일행 중 풀숲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나온 남자가 이쪽을 향해 소리쳤다.


“나오지 않으면 괴수로 간주하겠습니다.”


진짜로 공격하고도 남을 듯한 목소리였다.


내가 저들과 싸워서 이길 수 있나?

지금 달려든다고 저 사람들이 얌전히 맞아 줄 가능성은?


나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고민하다, 내가 취할 수 있는 최적의 선택지를 골랐다.


[일반 스킬, 임기응변 Lv.2를 발동합니다]


“····이거 죄송합니다. 훔쳐볼 생각은 아니었는데.”


나는 순순히 나무 뒤에서 나와 저들의 온정에 기대기를 선택했다.


싸워서 내가 이길 가능성은 말해봤자 입만 아프고, 무엇보다 괴수를 산 채로 몸에 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내게 무슨 짓을 할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 것이 매우 큰 요소였다.


“하하, 아닙니다. 저희가 먼저 침범했는걸요, 뭐.”


잠깐, 침범했다고?


“처음부터 제가 여기 있다는 걸 알고 계셨습니까?”

“스킬에 생명체가 걸려 처음은 괴수인 줄 알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질 않으니 사람이라 생각했죠.”

“그런 스킬도 있으신 겁니까?”

“예, 탐지 비슷한 걸 가지고 있죠. 보아하니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거 같은데, 저희와 함께 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들이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저희는 생존자 무리의 일원입니다. 식량을 찾으러 나온 김에 마침 계곡을 들리길 잘한 것 같군요.”


생존자 무리라면, 나와 같이 전이된 사람들을 말하는 건가.


나는 잠시 마음속으로 저들과 이 음침한 숲의 위험성을 저울질해 보고, 결론을 내렸다.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좋습니다.”



* * *



계곡의 건너편, 무성한 풀숲을 헤치고 깊숙이 들어가면 높게 들어선 침엽수림이 나타난다.


뾰족한 잎사귀 사이로 들어오는 햇볕이 눈을 부시게 만들었다.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 편하게 물어보셔도 됩니다. 저도 처음엔 엄청 혼란스러웠으니까요.”


과할 정도로 친절한 사내의 말에, 나는 잘 걸렸다 싶은 마음으로 궁금하던 것들을 모두 털어놓았다.


“그, 괴수는 대체 왜 메고 다니십니까?”

“이건 일종의 비방책입니다. 이 숲은 고블린이 활동하는 지역인데, 불필요한 전투를 최소화하기 위해 이렇게 고블린으로 체취를 숨기는 거죠. 사실 놈들이 하도 멍청해서 이렇게만 해도 같은 동족인 줄 알더랍니다.”

“그거···· 신기하네요.”


당장의 궁금증은 해결했으니, 이제 조금 더 중요한 질문을 던질 차례였다.


“····이곳에 언제 오게 되셨습니까?”


시종일관 은은한 미소를 띠던 사내의 입꼬리가 약간 굳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건, 안 그래도 먼저 말을 꺼낼 생각이었습니다. 저희도 처음엔 이렇게 규모가 큰 사태인지 알 수 없었으니까요.”


뉘엿뉘엿 떨어지는 햇볕이 스며든 숲속을 걸으며 아주 거대한 바위를 지나쳤다. 내 키는 물론이고, 소나무로 보이는 침엽수보다도 훨씬 큰 바위였다.


“저를 포함한 세 명은 나름 이곳에서 오랫동안 살아왔습니다. 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지만, 사계절을 모두 겪었으니 대략 1년 정도겠군요.”


이런 끔찍한 일이 예전부터 일어나고 있었다는 건가?


“조금 이상한데요.”


며칠도 아니고, 적어도 1년 전부터 전 세계의 사람들이 무작위로 실종되었다면 뉴스에 한 번이라도 나와야 하는 게 정상이 아닌가.


“저희가 이곳에 왔을 당시에는 지구에서 온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나타나도 많아 봤자 수십, 수백이었죠. 당장 저희와 함께 이곳에 떨어진 사람들도 삼십 명이 채 안 됐으니까요.”


30명은 너무 적다.

적어도 너무 적었다.


말도 안 될 만큼.


“····어림잡아 수만 명입니다.”

“예?”

“저와 함께 떨어진 사람들 말입니다. 천사들이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할 때 도망쳐서 지금도 수만 명인지는 모르겠지만.”


후미에서 나와 대화를 나누던 사내의 발걸음이 멈췄고, 그에 따라 뒤를 돌아본 두 명 또한 멈춰서서 이쪽을 바라보았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예? 그, 수만 명이라고····.”

“그보다, 천사들이 사람들을 죽였다고요?”


사내의 얼굴이 굳어졌고, 심각성을 느낀 선두의 두 명이 다가왔다.


“저는 물론이고, 생존자 무리의 그 누구한테도 들어보지 못 한 말입니다. 그 천사들, 진짜 친절했으니까요.”


말 같지도 않은 헛소리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뒷짐 진 천사의 무표정한 얼굴과 일제히 우리를 쳐다보던 천사들의 섬뜩한 시선이 생생했다.


순간 헛구역질이 올라와 나는 있는 힘껏 미간을 찌푸렸다.


“심지어 위기에 처했을 때 몇 번 구해주기도 했습니다. 어디서 보고 있기라도 한 건지, 위험해질 때마다 귀신같이 나타났어요.”

“1년 동안 말입니까?”

“예, 최근까지도 나타나서 식량을 받았습니다.”


갑자기 폭발적으로 증가한 인원과, 돌변한 천사들의 태도. 둘에 무슨 연관이 있는 거지?


손에 잡힐 듯 말 듯 희미한 연결고리가 눈앞에 아른거리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사내의 입에서 작금의 상황에 쐐기를 박을 말이 나왔다.


“아, 제가 처음 여기 떨어졌을 때 천사들이 이상한 말을 했습니다.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베타 테스터 여러분의 특권···· 같은 뉘앙스로 말했던 것 같아요.”


이 세상의 베타 테스터.

현저히 적은 인원과, 죽지 않게 도와주는 천사들.


우후죽순으로 떠오르는 상념들과 알 수 없는 사내의 말이 뒤엉켜 지끈거리는 두통을 만들었다.


‘[등장인물 최적화 완료]’

‘여러분의 서사가 이곳에서 끝난다는 신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떠오른 상념들은 모두 하나의 의문점을 가리키고 있었다.


‘만약, 이 세상이 소설이라면?’


이곳이 소설 속이라면, 그동안 묘하게 위화감이 들었던 천사들과 상태창의 말을 설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곳은 분명 현실도, 이 세상도 아니었는데.’


한 가지 알 수 없는 건, 하필 그 소름 돋는 장소에서 달이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다.


‘소설 밖으로.’


소설 밖이라는 건, 곧 이곳이 소설의 외부에 존재한다는 의미가 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보라색 공간이 소설 안이 되는 것이겠지.


의문점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리고 도저히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던 내 생각을 끊은 것은 명쾌한 해답도, 터질 듯한 두통도 아닌 선두에서 걷던 사내의 말이었다.


“도착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앞을 바라보자, 눈앞에 보인 것은 어느새 어둑해진 주변과 끊어진 다리였다.


“····여기가 맞는 건가요?”


곰팡이가 펴 거뭇거뭇한 나무판자들과 바람에 흩날려 흔들리는 밧줄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다리가 많이 낡은 건 맞지만, 끊어져 있지는 않았습니다.”


다리가 이어져 있어야 할 건너편은 높은 나무들로 빽빽한 숲이었고, 다리의 아래에는 한참을 내려가다 흐르는 강이 있었다.


눈으로 봐도 족히 10미터는 되어 보이는 건너편과 이곳 사이의 폭에,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다른 입구는 없습니까? 아무리 봐도 여긴 못 지나갈 거 같은데.”

“아뇨,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전 그보다 다리가 어째서 끊어져 있는지가 더 걱정스럽군요.”


근처에 다리를 제외한 다른 길목은 보이지 않았다. 물론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자살 행위.


대체 어떤 부분이 괜찮은 거지?


“조금 어지러울 수도 있습니다.”


사내는 그 말을 끝으로 공중에 떠올랐다.


아니, 잠깐.


“예?”


공중에 떠올랐다고?


내가 멍청하게 반문함과 동시에, 다른 두 명과 나 역시 사내를 따라 공중에 떠올랐다.


“제법 유용한 스킬 하나를 가지고 있거든요.”


떠오른 우리는 천천히 다리가 잇고 있어야 할 건너편을 향해 부유하기 시작했다.


[특성 스킬, 눈치 보기 Lv.6이 발동됩니다]


“여, 염동력?”

“엇, 어떻게 아셨습니까? 한눈에 보고 맞춘 사람은 처음인데.”


만약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태연하게 초능력으로 날고 있는 셈이 되겠지만, 이젠 딱히 놀랍지도 않았다.


이런 것에 일일이 놀라기에, 나는 이미 너무 많은 일들을 겪어 버렸다.


우리는 그의 스킬 덕분에 별 탈 없이 건너편의 숲 초입에 도달할 수 있었다.


안 그래도 두통 때문에 지끈거리던 머리에 멀미가 더해져 이제 걷기도 힘들 지경이 되었다.


“거의 다 왔습니다. 이제 저기만 지나면 오래된 마을이 나올 겁니다.”


휘청이던 나를 잡아준 사내가 말했다.


“버려졌던 마을이지만 나름 살기 좋은 곳이죠. 사람들도 모두 친절해서 환영해 줄 겁니다.”


나는 사내의 말을 믿고 피곤한 몸을 이끌었다.

하루 종일 뛰고 걸어 너덜너덜해진 다리에 힘을 주자, 저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과연 사내의 말대로 계속 걸으니 숲을 금방 빠져나올 수 있었다. 숲을 나오자 넓은 공터가 나왔는데, 저 멀리 아른거리는 불빛이 보였다.


“아, 저기 보이네요.”


드디어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절로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불빛을 향해 다가가기를 한참, 제법 밝아진 주변과 낡은 건물이 가까워졌을 때.


내가 물었다.


“원래 이 시간에 사람들이 모여있습니까?”


마을에서 사는 생존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거대한 동상을 마주 보며 횃불을 든 채 모여있었다.


횃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마을에서, 들판에서, 사람들의 손아귀에서.


횃불은 타오르고 있었다.


[특성 스킬, 눈치 보기 Lv.6이 강하게 요동칩니다]


강하게 요동친다고?


이런 메시지는 처음 본다.

심지어 사람들이 천사들에게 떼죽음을 당했을 때도 상태창이 이렇게 난리 친 적은 없었다.


[특성 스킬, 눈치 보기 Lv.6이····

[특성 스킬, 눈치 보기 Lv.6이····

[특성 스킬, 눈치 보기 Lv.6이····

[특성 스킬, 눈치 보기가 성장합니다! Lv.6 → Lv.7]

[특성 스킬, 눈치 보기 Lv.7이····


“아뇨, 아닙니다. 무언가가···· 잘못됐습니다. 이런 적은 처음인데····.”


그리고,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상태창이 경고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뭐?”


사람들로 혼잡한 마을 입구는 하나의 거대한 불지옥이 되어 있었다.


내가 우뚝 솟은 동상이라 착각했던 형체가 날뛰며 지축을 흔들었다.


마을의 건물보다도 훨씬 거대한 형체가 발을 구를 때마다 비명을 지르는 목소리 하나가 사라졌고, 죽은 이의 손에 들렸던 횃불이 풀숲에 옮겨붙었다.


살집과 나무가 타는 냄새가 코를 찔러댔고, 괴수의 발걸음과 사람들의 비명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내가 뭘 할 수 있지?

도망쳐야 하나?


····저 사람들은?


온갖 잡념이 나를 사로잡은 그 순간, 신기하게도 불바다 속에서 그 아비규환을 꿰뚫고 너무나도 선명히 내 귀에 꽂히는 목소리 하나가 있었다.


“····편집장 이 좆 같은 개새끼야!”


이미 죽은 편집장을 부르짖으며 검을 빼 들고 달려가는, 일전에 사옥에서 만났던 여성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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