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 없는 이세계 작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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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한햄스터
작품등록일 :
2024.08.22 15:25
최근연재일 :
2024.08.2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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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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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화

DUMMY




“제기랄.”


아무리 봐도 이곳은 사후세계와는 아주 거리가 먼 곳이었다.


이렇게 갑자기 온다고?

아무런 징조도 없이?

대체 조건이 뭐지?


“제기랄, 제기랄, 제기랄.”


일단 진정하자.

이곳이 내가 생각하는 그곳이 아닐 수도 있고, 설령 맞다고 해도 그 기괴한 달이 몬스터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은가.


팔은 다행히 출혈이 멎은 상태였다.


최대한 침착하게 주변을 둘러보자, 저번과 비슷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발목을 넘지 않는 잔디가 펼쳐진 들판과, 시커멓게 어두컴컴해진 하늘. 그리고 역시나 불길하기 짝이 없는 보랏빛 달까지.


재수 없을 정도로 똑같은 곳이었다.


차가운 공기가 코끝을 시리게 만들었다.


‘어쩌면,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닐지도 몰라.’


생각해 보면 저 소름 돋는 달이 내게 직접적으로 위해를 가한 적은 없기도 하고.


나는 한숨을 내뱉듯 심호흡했다.


“이봐.”


보라색으로 빛나는 달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예전의 기괴한 미소는 온데간데없는, 보랏빛만 빼면 영락없는 보름달이었다.


“넌 뭐지? 이곳은 어디고.”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


혹시 같은 달이 아닌가?


“말해도 기절하지 않을 거니까, 아무 말이나 해봐.”


이번에도 역시 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 보고 뭘 어쩌란 거지?’


문득 내 답답한 심정을 짜증 나리만치 적막한 이 공간이 조롱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봐!”


내 목소리가 사라졌다.

말을 외친 사람은 있었지만, 외침을 들어줄 사람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곳에는 정말 아무도 없는 걸까.

나는, 여기 홀로 남겨진 걸까.


시야의 끝은 그저 어두운 하늘만이 땅과 맞닿아 있을 뿐이었다. 한 그루의 나무도, 단 한 마리의 동물도 보이지 않는 끝 없는 어둠.


나는, 그런 이곳이 매우 기분 나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멍청해.


일전의 그 목소리였다.


“뭐?”


달을 올려다보았지만, 웃지 않고 있는 상태.

그러나 그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분명 달이 말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멍청해도 너무 멍청해.

“밑도 끝도 없이 멍청하다니, 뭔 말인지 모르겠는데.”


이쯤 되니 나는 의구심보다도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제대로 좀 말해봐.”


내가 인상을 쓰니 달의 말이 잠시 사라졌다.

대신, 보라색 빛이 한층 더 강해진 것처럼 보였다.


-넌 누구지?

“그건 내가 할 말이고.”


-····.

“하아····. 장재호.”

-····.

“스물세 살. 중졸. 작가. 지구인. 잘생긴 청년.”


달이 반짝반짝 빛났다.

빛이 하늘의 어둠을 몰아내고, 주변이 살짝 밝아진 느낌이었다.


-작가는 작가답게 행동해.


작가답게 행동하라고?

여기서?


“고블린과 사이좋게 손잡고 글이라도 쓸까?”


달이 기울었다.


-그러면 좋겠지.


그리고, 천천히 빛나기 시작했다.


나는 괴수를 보았다.

트롤도 보았고, 고블린도 보았으며, 사람들을 장난처럼 터트리던 천사도 보았다.


“····너, 정체가 뭐야.”


그러나, 평생 저런 존재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어둠에 숨은 달.


그 순간, 밤을 낮으로 바꿀 만큼 가공할 빛이 하늘을 뒤덮기 시작했다. 어두웠던 하늘은 지평선 끝까지 빛이 닿아 환해졌고, 들판의 잔디는 보라색 달빛에 시들어갔다.


차갑게 날이 선 공기가 강한 돌풍이 되어 피부를 스치고, 들판을 파헤치며 잔디를 흩날렸다.


나는 거센 바람과 하늘을 밝힌 보랏빛에 눈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도망치고 싶은 생각마저 들지 않는 위압감이었다.


빛나는 달에서는 형용조차 할 수 없는 막연한 공포감이 물밀듯 쏟아졌다. 그것은, 어쩌면, 내 인지를 넘어선 무언가에 압도된 생존본능이었을 것이다.


나는 머릿속에서 시시각각 울리고 있는 경종에 입술을 깨물어야만 했다. 비릿하고 짭짤한 피 맛이 혓바닥을 타고 입안을 적셨다.


-그리고, 널 도울 존재.


그리고 마침내 달이 말한 순간, 잔디를 시들게 만들던 세상을 삼킨 달빛의 파도가 한 점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 * *



꿈을 꾼 것 같다.


불타는 마을 한복판에서, 어린 소녀 하나가 울고 있는 꿈이었다.


타오르는 마을을 배경으로 사람들이 죽어 있었는데, 그중에는 내 얼굴을 한 시체도 있었다.


나는 불길에 휩싸이는 내 시체와 어린 소녀를 바라보며 꿈에서 깨어났던 것 같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이곳은 내가 지내던 마을의 오래된 집 안이었다.


고개를 떨구자, 붕대가 감겨있는 내 오른팔과 나를 이곳으로 데려와 준 아랍 사내의 낡고 헤진 신발이 눈에 들어왔다.


“아, 예. 전 괜찮습니다. 오히려 제가 안부를 물어봐야 하는데요.”

“하하, 죽을 맛입니다. 괴수 놈한테 잘못 맞은 건지 힐을 받아도 아직 걷기가 힘드네요.”


사내는 자신을 희생해 마을을 구했다.

그날 이 사내가 없었다면, 우린 모두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무슨 일로 찾아오셨다고 하셨죠?”

“다른 건 아니고, 예전에 저희가 건넜던 다리 말입니다. 거길 다시 가봐야 할 것 같아서요.”

“괴수를 밀어 넣은 그 낭떠러지 말이죠.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끊어진 다리도 보수할 겸, 괴수의 흔적도 찾을 겸 가는 거죠. 그 괴수가 그대로 건너편을 향했다면 좋겠지만, 아니라면 아직도 근처에 있지 않겠습니까.”


사내의 말은 확실히 타당한 근거가 있었다.


트롤은 즉사하지 않는 한 치명상도 금방 회복해 버리니까.

떨어져 죽었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집채만 한 놈이 겨우 그 정도 높이에서 떨어진다고 즉사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민하 씨, 그리고 재호 씨와 같이 갈 생각입니다. 두 분 다 사냥조이시기도 하고, 무엇보다 재호 씨는 그날 두 사람을 살리셨으니까요. 괴수에 대해 뭔가 아는 게 있지 않으십니까?”

“그냥 판타지를 좋아했었습니다.”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이런 세상에선 그런 지식이 무엇보다 값지지 않겠습니까. 부상도 있으신데 데려가기 죄송스러운 마음입니다.”


나는 팔을 잠시 힐끗 쳐다보았다.

조금씩 따끔거리긴 하지만, 움직임에 문제는 없었다.


“이 정돈 별거 아닙니다.”

“아, 다행입니다. 그럼 마을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준비하고 나오시면 됩니다.”


사내는 그 말을 끝으로 집을 나갔고, 나도 사내와 헤어져 서민하를 찾으러 집을 나섰다.


늦은 오후를 지나 하늘이 어둑해지는 시간이었다.

비라도 올 셈인지 어둑어둑한 하늘에 우중충한 구름까지 껴있어 주변은 상당히 어두운 편이었다.


“아, 그, 몸은 좀 괜찮으세요?”


서민하를 만난 장소는 우물이 있는 광장이었다.

헐레벌떡 뛰어오기라도 한 건지, 앞머리가 땀에 젖어 있었다.


“하나도 안 괜찮아요. 누구 덕분에.”

“히히, 농담이 나올 정도면 거의 다 나았네요.”


그녀가 실없이 웃으며 불어오는 바람에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습기가 가득해 온몸이 끈적이는, 그리 기분 좋은 바람은 아니었다.


“소식 들으셨어요? 다리 보러 간다던데.”

“아, 그거요. 안 그래도 그 말 듣고 온 거예요. 재호 씨 일어났대서.”


벌써 그 이야기를 들었다고?

내가 뒤 따라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서민하의 집은 내 집을 기준으로 광장 반대편 끝자락에 있다.

즉, 그녀가 소식을 듣고 광장까지 달려왔다면 적어도 사내가 그 짧은 시간 안에 내 집에서 광장, 그리고 서민하의 집까지 주파했다는 건데.


“민하 씨, 민첩 40 넘지 않아요?”

“네? 아, 그렇죠. 왜요?”

“그런 민하 씨도 제가 집에서 여기까지 올 동안 이야길 듣고 달려와서 광장까지 온 건데, 그분은 몇 분 만에 민하 씨 집에 도착했잖아요. 그럼 스탯이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요?”

“어, 그렇네.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그럼 한 60은 되지 않을까요? 아니면 아예 재호 씨 스킬로 각 잡고 싸악 확인하던가.”

“에이, 그래도 스킬로 훔쳐보긴 좀 그렇죠. 조금 예의 없는 행동이고.”


서민하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굉장히 할 말이 많아 보이는 자세로.


“아, 그건 어쩔 수 없었어요. 그런 건 줄 몰랐는데.”


끈적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곳의 사람들과는 상반된 웃음이었다.


“크크, 알겠어요. 입구에서 기다리겠다, 빨리 가요. 스탯도 높으신 분 심기를 거스르면 안 되지.”

“진짜 몰랐는데.”

“누가 뭐래요?”


그녀의 낡은 검집에 덧댄 고철이 작게 반짝였다.



* * *



시간이 흘렀지만, 먹구름이 낀 하늘은 점점 더 우중충해지기만 하더니 이제 완전히 햇빛을 가려버렸다.


“민하 씨, 지금이 몇 시일까요?”


롱소드로 무심하게 허리까지 오는 풀들을 베어 넘기며 걷던 서민하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 글쎄요. 한 여섯 시는 되지 않았을까요.”

“아마 그 정도 될 겁니다.”


서민하의 뒤, 그리고 내 옆에 선 사내가 한 말이었다.


“사실 시간 같은 게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안 그래도 여긴 시계가 없거든요.”

“시계도 없이 살려면 조금 불편하겠네요.”

“처음엔 그랬죠. 지금은 그럭저럭 살지만요.”


서민하와 사내가 한참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트롤이 나타나면 어떡하지?’


혼자서는 죽일 수 없다.

이건 너무나 당연한 명제다.


아마 도망가기도 힘들겠지.


하지만, 서민하라면.

서민하, 사내, 그리고 내가 전부 달려든다면.


나는 고개를 휘저었다.


전부 달려들면, 뭐 전부 죽겠지.


일단 나를 전력에 포함하는 것 자체가 어폐였고, 그때 보았던 트롤은 도저히 세 명이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생명체가 아니었다.


사내가 고블린으로 유인하는 동안 서민하가 공격이라도 한다면 모르겠지만, 포획해 놓은 고블린도 이미 진작에 떨어진 상태였다.


‘지금 마주치면 일단 고블린 서식지까지 도망가서···· 아니, 낙인이 찍히면 느려지니까 잡을 만하려나.’


“재호 씨.”


나는 내 이름을 부르는 사내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그 순간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은 마지막으로 봤을 때와 다름없는 끊어진 다리, 그리고 절벽 끝에 선 서민하였다.


“도착했군요.”


철퍽-


다리 아래로 흐르는 강이 절벽에 부딪히며 만드는 물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민하 씨. 이게 제가 건넌 다리입니다. 이렇게 보면 그땐 진짜 어떻게 건넜지 싶네요.”


그녀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녀의 옷자락과 머리카락이 강가의 비릿한 바람에 펄럭였다.


“민하 씨? 거기 뭐라도 있어요? 떨어질라.”


나는 지금까지도 굳어 있는 그녀의 상태에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내가 아무런 대처를 하지 않은 것은, 그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는 [임기응변]과 [눈치 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식은땀에 절은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잡은 것은, 고작 스킬 따위를 내게 경고하는 본능보다 우위로 두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말을 잃었다.


“웁···· 우욱! 우웨엑!”


절벽의 아래에는 썩어 문드러진 채 죽어 있는 트롤의 시체 한 구와, 끔찍하게 찢긴 고블린의 시체 수천 구가 빼곡히 쌓여 있었다.


철퍽-


내가 물이 절벽에 부딪히는 소리라 생각했던 둔탁한 물소리는, 물이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강줄기를 뒤덮은 수천 마리의 고블린 시체에 부서지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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