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로환동이 아니라 치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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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학
작품등록일 :
2024.08.25 00:46
최근연재일 :
2024.08.27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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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1.


흔히들 뒷골목 출신들의 목숨이 파리 목숨만도 못한 이유는 돈이 없어서라고들 생각하는데, 이는 반만 맞는 이야기였다.


규제와 법의 사각지대인 이곳은 약간의 위험만 감수하면 얼마든지 큰 돈을 벌 수 있었으니까.


여기서 중요한 건 그 약간의 위험이라는 게 보통 의뢰인의 입장에서 약간이라는 점이다.


괜히 처음 보수로 거금을 만져본 애송이들이 다음날 강 하류에서 시체로 발견되는 게 아니지.


결국 이 바닥에서 살아남기 위해 중요한 건 선을 타는 능력.


그런 의미에서 본래 서부와 동부의 국경선 역할을 맡았으나, 동부가 무너진 오늘날.


대륙 최대의 노예무역이 이루어지는 자유도시 ‘만천’에서 10년이 넘도록 정보상으로 먹고 산 글렌은 본인의 직감을 절대 무시하지 않았다.


“...패왕이 남긴 유산, 그 저주 받은 보구들을 찾고 있다고? 미쳤군. 북부 야만족 놈들이 눈에 불을 켜고 수색하는 그 벌집을 건드리겠다니 썩 꺼지쇼.”

“이상하네요. 제가 듣기로 자유도시의 시민들은 북부의 군세도, 서부의 더러운 돈도 두려워하지 않은 자유민이라고 들었는데.”


잘 못 걸려도 단단히 잘 못 걸렸군.


왠지 느낌이 안 좋아 빠르게 장사를 접고 온기 한 점 없는 집으로 돌아가려는 찰나, 글렌의 작은 작업실을 찾아온 두 남녀.


나름 여러 사람을 봐왔다 자부하는 글렌이 보기에도 유독 눈에 띄는 새하얀 피부, 깊게 눌러 쓴 후드로도 다 가려지지 않는 짙은 푸른 머리칼을 가진 인형 같은 미소녀의 부담스러운 눈빛이 그를 향한다.


오늘날 패왕의 유산을 탐내는 건 후계자가 되기 위해 미쳐있는 패왕의 자식들과 힘에 미친 정신병자뿐인데.


그를 바라보는 여인의 눈동자엔 일말의 광기조차 보이지 않았다.


‘사실 그게 더 무서운 거지.’


이성을 가지고 미친 짓을 한다는 건 적당히 미친 게 아니라는 말이었기에.


“좋아. 알겠어. 알겠다고. 대신 그쪽도 알지? 여기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거야.”


어지간하면 이런 일에 안 얽히는 게 좋겠으나, 눈 앞의 두 남녀는 절대 평범한 존재는 아닐 터.


계산을 마친 글렌은 빠르게 자신이 아는 모든 걸 털어 놓은 뒤, 상대가 건넨 보석을 받아 챈 후 손님들을 내보냈다.


“잘 가쇼.”

“그대 역시 즐거운 하루되시길.”


맙소사. 살다 살다 저런 말을 들어보다니. 역시.


보수는 현물이 아닌 현찰로만 받는 다는 그의 신념?


지금 그딴 게 중요할까. 그깟 보석 몇 개보다 훨씬 가치 있는 정보가 품속에 들어왔는데.


인형처럼 아름다운 소녀가 패왕이 내던지듯 남긴 유산을 노린다? 이 정보는 필시-


“...하하. 손님. 우리 가게는 새벽 장사는 안하는데.”


목 끝에 다가온 섬뜩한 감각. 도대체 언제 다가왔단 말인가.


소름끼치는 감각을 애써 무시한 채 반평생을 먹고 살게 해준 입을 열려는 순간, 칼날이 경고하듯 글렌의 목덜미를 어루만진다.


“정보를 다루는 일을 하시니까 잘 아시겠죠. 비밀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

“...”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참 좋은 말입니다만, 제 스승께서 날벌레의 생명조차 소중하다 가르치셔서.”


목덜미에서 떨어져나가는 차가운 감촉.


이어 괴한은 단검을 타고 흐르는 글렌의 피를 자신의 칼날 위에 적시고, 그와 동시에 섬찟한 감각이 쥐새끼 같은 남자의 목덜미를 스치니.


“제 검이 워낙 유난스러워서. 이렇게 귀찮은 방법을 써야 되더라고요,”


무슨 방법을 쓴 거냐 글렌은 굳이 되묻지 않았다. 손발을 타고 올라오는 오한과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는 것만 같은 이 기분.


저주. 정보를 사고 파는 정보상을 통제하기 위한 입마개. 다만 왠지 걸리는 건.


‘...직접 검으로 상처를 입히면 안 되는, 피를 적시는 것만으로 저주를 거는 마검? 그건 마치-’


패왕의 유산 중에서도 으뜸이라는 백야의 능력과 유사하지 않은가.


안타깝게도 글렌의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도 전, 상대는 처음 나타났던 것처럼 신호도 흔적도 없이 사라진지 오래였다.


천천히 등을 돌아봐도 글렌의 눈에 보이는 건 텅 빈 어두운 복도뿐이었으니.


“에이. 말도 안 되는 일이지. 백야라니. 패왕이 검을 버린 후, 그 검에 손을 댄 자는 누구 하나 하루를 견디지 못하고 돌연사 했다는데.”


동시에 그렇기에 그 검을 손에 쥔 자만이 모든 보구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전설을 가진, 최악최흉의 보구.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감을 애써 진정시킨 채, 글렌은 다시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직감이 틀렸다면 틀려서 좋은 일이고.


만약 그의 직감이 진실을 말하고 있을 경우, 애초에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그와 같은 소시민에게 최선은 그저 눈을 돌린 채 현실을 살아가는 것 뿐.



2.


스승님과 함께 거의 평생을 산 속 자연에서 살 땐 못 느꼈는데.


사람의 외모가 빛난다는 건 단순한 비유가 아니었다.


어두운 밤. 두건을 짙게 눌러쓰고 변장을 했음에도 본연의 반짝임을 다 숨기지 못하는 소녀에게 다가간 이산은 살짝 들린 그녀의 두건을 다시 눌러준다.


고향이 무너져 쫓기는 와중, 갑작스럽게 낯선 산에서 낯선 이와 마주한 것도 적응하기 힘들 텐데 곧바로 산을 내려가자는 이산의 의견에도 덤덤히 고개를 끄덕여준 고마운 사람.


그녀에게 설명해준 건 극히 일부분이고 여전히 수많은 의문이 그녀의 마음속에 있을 텐데 소녀는 싫은 내색, 의심하는 내색 한 번 비추지 않은 채 이산의 주장을 따라줬다.


어쩔 수 없이 타협한 면도 있겠지만, 어쨌든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니.


그 결과, 두 남녀는 산을 내려와 대륙 최대의 자유도시 만천에 도착해있었다.


그 과정 속에서 서로 간의 호칭, 관계 등 몇 가지가 바뀐 상태였으니.


“...또 뒤처리를 하고 오신 건가요?”

“예. 그래도 이번 분은 눈치가 좀 있으신 것 같아서.”

“그런가요. 수고하셨습니다.”

“왜 굳이 여러 정보상을 쑤셔가며 거의 똑같은 정보를 확인하고, 그 대가로 시간과 저희들의 정보를 뿌리는 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시군요.”


왜 이런 귀찮은 짓을 하는가.


뭐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일단 첫번째로 이산 본인이 지독히도 인간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산은 본인의 뇌를 포함해 다른 이들의 뇌와 기억 모두.


전생의 기억 속 설정이나 대략적인 스토리? 그 기억이 정확한지 알 수 없고, 설령 전생에 그렇게 생각했다 한들 현실은 전혀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


그렇다면 남은 건 직접 현지에서 정보를 조달하는 건데, 인간의 입과 눈을 통해 전해지는 정보는, 돈을 대가로 전해지는 정보는 필연적으로 오염과 변형이 있을 수밖에 없기에 교차 검증이 필요하지.


그 결과, 다섯 명의 정보상을 찾아가 확인 한 끝에 북연 왕조의 대장군 중 하나였으나, 사고로 인해 이 변경도시의 관리자로 좌천됐던 남자가 이후 모종의 사건을 거쳐 패왕의 유산 중 하나인 ‘글루트’의 주인이 되어, 도시 밖에서 홀로 지내며 도시를 지키고 있단 정보를 확인 할 수 있었다.


“사실, 정말로 교차확인을 하고 싶다면 이것보다 더 빠르고 깔끔한 방법도 많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번거로운 방식을 쓴 걸까요.”

“...저와 당신의 정보를, 보구를 노리는 이들이 있다는 걸 알리려고?”

“훌륭합니다.”


산으로 나오며 아린과 함께 상의 한 것 중, 가장 첫 번째가 우리의 정확한 공통 목표를 정하는 거였고, 어렵지 않게 이산과 그녀는 모든 패왕의 보구를 모으는 게 가장 최우선 목표라는 데 합의를 봤다.


이산도, 아린도 상대의 힘을 약화시키면서 이쪽의 전력을 강화시킬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 그것이라고 인정했기에.


물론 이산에겐 조금 다른, 그러니까 일곱 보구 전원이 존재해야 백야의 통제가 좀 더 수월하고, 그를 통해 저주의 해소를 이룰 수 있다는 이유가 있긴 하다만.


아무튼 중요한 건 보구를 찾고 있는, 보유 중인 세력들이 그들의 소식을 듣고 알아서 찾아오게 만들어야 한다는 점.


동시에-


“분탕...이요?”

“예. 분탕. 누가 와도지지 않을 자신은 있지만, 상대가 저희의 정보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면 일이 더 수월하고, 상황에 따라 저희를 쫓는 각 세력을 엮어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 수도 있으니까요. 정보상들을 통해 저희가 움직일 무대를 만드는 겁니다.”


아마 현 시점 가장 몸이 달아올랐을 건 서부 왕국 연맹과 북부에서 계승 경쟁을 하고 있을 패왕의 자식, 그러니까 이산의 숙부들일 터.


그들 역시 인성이 글러 먹은 거지 지능이 글러 먹은 건 아니니 여러 준비를-


/역시. 분탕의 달인답구나. 애송아./

‘천격. 갑자기 무슨 말을 하려고.’

/네 녀석, 젊은 시절에 대단했더라고. 유동분신술이란 걸로 ‘롤대남’, 한남, 한녀, mz, 영포티, 586, 틀딱, 닭장... 너희 고향에 사는 모두를 증오하고 혐오하며 분장을 조장하는 글을 올렸던데. 능력도 좋은지 그러면서 차단 한 번 당해보지 않았어./

‘...어린 시절의 과오입니다. 애초에 취업을 한 이후 전부 그만 둔 일을 가지고.’


갑자기 내면으로 말을 걸 더니 부끄러운 과거를 들추어내다니.


아이러니한 점은, 천격의 설명이 그리 틀리지 않았다는 점.


작게 보면 이번 도시부터 크게는 대륙 전역에 까지.


그녀와 이산은 분탕이 되어 위태로운 균형 아래 유지되는 사회를 무너뜨려야 했다.


작가의말

어머니의 영압이, 조금이지만 돌아오신 걸까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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