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조 재벌가 첩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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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작가 아카데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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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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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9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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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추락

DUMMY

할아버지는 나의 존재를 몹시 못마땅하게 여겼다. 자연스레 그룹에서 나를 가까이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간혹 로또를 꿈꾸며 용기 낸 자들이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한직으로 발령 났다.


그 이후부터 사람들은 내 몸에 붙어 있는 가시에 찔리지 않기 위해 일정 거리를 유지했다.


유일하게 다가온 인물이 있었으니 내 옆을 든든히 지키고 있는 서기범 상무였다.

부사장이라는 보장된 미래까지 모두 포기한 채 나에게 모든 걸 베팅했다.


점집으로 가는 길 슬며시 질문을 던졌다.


“내 옆에 왜 붙어 있는지 아직 대답 못 들은 거로 기억하는데.”


구렁이 담 넘어가듯 은근슬쩍 대답을 회피했다.


“사람 좋은 게 이유가 딱히 있겠습니까?”

“싱겁긴······.”

“아주 만약에 말입니다···.”

“우리 사이에 무슨 눈치를 보고 그래? 할 말 있으면 해봐.”


주저하던 서 상무가 조심스럽게 운을 떼었다.


“왕사모님 그러니까 할머님께서 살아계셨다면 사장님 입지가 어떻게 됐을지 궁금합니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처럼 잔심부름이나 하고 있지는 않겠지.”

“그리고 왕사모님 특제소스 말입니다. 그거 먹어본 사람들은 전부 그 맛을 잊지 못한다는데 도대체 얼마나 맛있는 겁니까?”


할머니의 손맛이 얼마나 좋았는지 3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었다.


“만약 그 소스를 내가 만들 수 있다면···. 아마 국내 식품계는 평정하고도 남을 거야.”

“그 정도입니까?”

“얘기는 나중에 하고 저기 보이는 천막 맞지?”

“예. 제가 말씀드린 점집이 바로 저깁니다.”


바람만 간신히 막을 수 있는 작은 천막이 눈에 들어왔다. 비닐을 젖히고 들어가자 백발 성성한 노인이 작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손님이 왔음에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서 상무는 우리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인사를 건넸다.


“어르신 안녕하십니까?”


요지부동이었다.

목소리를 조금 더 높여봤지만, 여전히 두꺼운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저 어르신······. 저희가 시간이 좀 없어서 그런데···.”


책을 덮은 노인은 대뜸 서 상무에게 호통치듯 말했다.


“객사할 팔자가 귀인을 만나 이미 운명을 바꿨는데 무언가 더 바라는 건 욕심 아닌가?”

“예? 그게 아니라······.”


노인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호통 한 바가지 쏟아낼 것이란 예상과 달리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어떤 걸 확인하려는지 알 수 없었지만, 안경까지 벗은 뒤 내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셨다.


“자네는 황금돼지야. 먹고살 걱정은 안 해도 되겠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먹을 게 지천으로 깔려있어. 지금 입고 있는 멀끔한 옷 내다 버리고 길바닥에 나 앉아도 굶어 죽을 일 없다는 말일세.”


이 정도는 얼마든지 때려 맞출 수 있었다.

의구심을 거두지 않은 채 노인을 응시했다.


“근데 아주 요상스러워···.”

“어떤 점이 이상하다는 말씀입니까?”

“보통 이런 팔자는 부모덕을 많이 보거든. 한데 자네 얼굴에는 그런 게 일절 안 보여. 양 손바닥 한번 내보이겠나?”


손금을 한참이나 보던 노인은 급기야 종이와 펜까지 꺼내 들었다.


“생년월일, 생시 적어보게.”

“네. 어르신. 여기 있습니다.”


커다란 종이에 한문을 빼곡히 써 내려가던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바삐 움직이던 손을 멈추었다.


“내 이럴 줄 알았어···. 아주 드문 팔자인데······.”

“좋지 않은 쪽이라도 상관없으니 말씀해주십시오.”

“옛날로 치자면 서얼 팔자야. 쉽게 말하자면 첩의 자식이란 말이지.”


족집게 같은 사주풀이에 화들짝 놀란 서 상무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부모덕을 못 봐 인생이 조금 기구한 대신 조상 덕은 톡톡히 보니 걱정할 거 없네. 할 말 다 했으니 가보게.”


단순히 소 뒷걸음질이라 치부할 수 없을 정도로 구체적이었다. 중대한 일도 앞둔 터라 조심스레 질문을 꺼내 들었다.


“어르신 몇 가지 여쭤볼 게 있습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대답하지 않는 이유를 그저 복채 때문이라 지레짐작했다.


현금을 두둑이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지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없어도 그만인 이 돈 쪼가리 받으려 이러는 거 아닐세.”

“혹시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기는 겁니까?”


답변 대신 조금은 생뚱맞은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가고 싶나?”


재벌가에서 태어난 행운아라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겉보기와 달리 내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솔직히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습니다.”

“생로병사는 고작 인간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네. 그러니 적당히 골라보게나.”


내 인생이 시궁창으로 처박힌 건 할머니의 사고 이후부터였다. 만약 그 사고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잔심부름이나 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19살 때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물론 돈 문제는 아닙니다.”


노인의 날카로운 눈빛이 조금 부드러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질문을 수없이 많은 사람에게 해봤네. 열이면 열 백이면 백 전부 주식이니 부동산이니 그런 잡다한 대답들만 들었다네.”


노인은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한이 꽤 서려 있는 듯 보이는데···.”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순 없습니다.”

“자네 기구한 팔자가 눈에 훤히 보이기도 하고 대답도 맘에 들었으니 내 자그마한 선물 하나 주겠네.”


안주머니 깊은 곳에 있는 노란색 부적을 꺼내 들었다.


“이게 어디에 쓰는 부적입니까?”

“아무리 날고 기어도 서얼 팔자를 타고났다면 필시 그 끝이 좋지 않을걸세.”


계획하고 있는 미래와 정확히 상충되는 말이었다.


“이 부적을 몸에 지니고 있으면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겁니까?”

“그것까지고는 부족하지. 명심하게. 항시 몸에 지니고 있다가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면 꼭 쥐고 눈을 감게.”

“그럼 무슨 일이 발생한다는 말씀입니까?”


노인은 오묘한 표정을 지은 채 구체적인 답변을 거부했다.


“더 이상 할 말 없으니 이만 가보게.”





***


인천국제공항.



서 상무는 내가 직접 아부다비까지 다녀오는 것을 여전히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 마중 나온 입이 오늘따라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제가 몰래 다녀오면 정말 안 되는 겁니까?”

“이런 일 어디 한두 번이야? 금방 다녀올 거야.”

“이러다 화병 먼저 생길 것 같습니다.”

“얼마 안 남았으니 괜찮아. 나 대신 회의 진행해줘.”

“알겠습니다.”


인사를 마친 뒤 곧장 비행기 탑승했다

삼강그룹의 SG 항공이었으니 직원들이 내 얼굴을 모를 리 없었다.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김형태 사무장입니다.”

“자주 뵙네요.”

“예. 지난달에도 두 번이나 뵀습니다. 가방 무거우실 텐데 저한테···.”


명색이 출국인데 흔한 가방조차 없이 쇼핑백 하나만 달랑 들고 있었다.

이미 소문이 자자했기에 어떤 상황인지 충분히 알고 있는 눈치였다. 민망한 듯 황급히 화제를 전환했다.


“필요하신 거 있으시면 뭐든 말씀해주십시오.”

“식사하고 와서 필요한 거 없어요. 도착하면 깨워주세요.”

“알겠습니다.”


10시간에 가까운 비행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가족들의 간섭을 피해 온전히 잠을 잘 수 있다는 소소한 장점도 있었다.


-저는 인천공항에서 아부다비로 여러분을 모시고 가는 김태현 기장입니다. 이 항공기는······.


기내방송이 끝난 뒤 곧장 이륙했다.

조금만 더 참으면 지긋지긋한 이 생활도 막을 내리게 된다. 준비하고 있는 계획을 상기하며 눈을 감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무언가 터지는듯한 소리와 함께 비행기가 좌우로 크게 흔들렸다.


“무슨 소리지? 분명 폭발음이었는데···.”

안대를 벗고 주위를 살폈다.

정확한 상황은 알지 못했지만, 승무원들의 당혹스러운 표정에서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직감할 수 있었다.


-긴급 상황입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안전벨트 착용해주시길 바랍니다.


재빨리 사무장에게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사장님 저······.난기류 때문에 살짝 흔들렸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순간 비행기가 다시 한번 크게 흔들렸다. 공포에 질린 승객들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난기류치고 너무 강한 것······.”


그 순간 보지 말아야 할 것이 눈에 들어왔다.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이는 분명한 현실이었다.


왼쪽 날개 엔진에 불이 붙어 있었다.


비행기 사고로 사망할 확률은 0.001%

자동차 사고로 사망할 확률의 65분의 1.

로또 1등 당첨 가능성보다 낮은 수치였다.


난 바늘구멍보다 좁은 틈을 기어이 비집고 들어가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꼴이었다.


막장 집안에서 그것도 첩의 자식으로 살아남기 위해 모진 수모를 견뎠다. 이를 악물고 버텼건만 날 기다리고 있는 건 개죽음뿐이었다.


고작 비행기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게 된다니 믿을 수 없었다.


“아니야···. 이럴 수 없어···. 이건 말도 안 돼···.”


분노도 잠시.

죽음에 대한 공포가 밀려왔다.

온몸에 땀이 흘러내렸다.

손발이 덜덜 떨려왔다.


억울했다. 원통하고 분통했다.

평생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다.

심지어 5년이라는 옥살이까지 했다.


내가 죽는다면 계열 분리를 통해 홀로 우뚝 서겠다는 야심 찬 계획은 모두 물거품 된다.


기체는 더욱 빠르게 요동치며 승객들의 비명은 더욱 켜졌다.


나 역시 두려움에 이성을 잃기 직전이었다. 사무장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기장한테 비상 착륙하라고 전달해! 빨리!”

“죄송하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무슨 말이야? 그럼 나보고 여기서 이대로 죽으라는 거야?”

“그게 아니라······.”


창밖으로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설상가상 밖은 한치의 빛도 보이지 않는 어둠뿐이었다. 빛이 없다는 건 망망대해 위에 있다는 것을 뜻했다.


비상착륙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설사 시도한다 해도 동체 파괴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당연히 생존 가능성 역시 현저히 떨어진다.


마지막까지 내 인생에 선택권은 없었다.

이제 남은 건 죽음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살기 위해 발버둥 쳐봤지만, 의자에 달린 벨트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만취한 행인처럼 중심 잡지 못하고 좌우로 크게 흔들리던 비행기는 빠르게 추락하기 시작했다.


애써 다른 생각을 해보려 노력했지만, 불가능했다. 호흡만 더욱 가빠질 뿐이었다.


“안돼······. 여기서 죽을 수 없어······.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있는 힘껏 의자를 주먹을 내려치며 울분을 토해봤지만,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두려움에 바들바들 떨고 있을 때 순간 노인의 말이 떠올랐다.


“부······. 부적······. 부적 어디 있지?”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것뿐이었다. 떨리는 손을 간신히 주머니에 넣어 부적을 꺼냈다.


“손에 꼭 쥐고······. 눈을 감으라고 했어···.”


노인의 말대로 손에 꼭 쥔 채 눈을 질끈 감았다. 잠시 후 엄청난 충격과 함께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아부다비로 향하는 보잉 989가 추락했습니다. 구조대는···.


-사망자 명단에는 삼강식품 설강현 사장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다시 눈을 떴을 때 익숙한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1978년 10월 동교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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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2화 곡해 +1 24.09.18 3,226 77 14쪽
21 21화 알박기 +2 24.09.17 3,597 86 13쪽
20 20화 명당 +1 24.09.16 4,010 77 13쪽
19 19화 파급 +6 24.09.15 4,187 80 13쪽
18 18화 무게 +3 24.09.14 4,246 87 13쪽
17 17화 낯꽃 +1 24.09.13 4,377 87 13쪽
16 16화 아연실색 +1 24.09.12 4,485 84 12쪽
15 15화 적중 +1 24.09.11 4,538 83 11쪽
14 14화 비책 +2 24.09.10 4,464 81 11쪽
13 13화 영험 +1 24.09.09 4,536 85 12쪽
12 12화 이목 +3 24.09.08 4,645 86 12쪽
11 11화 집중 +2 24.09.07 4,796 76 13쪽
10 10화 가중 +4 24.09.06 5,010 79 10쪽
9 9화 제안 +4 24.09.05 5,056 86 15쪽
8 8화 선물 +4 24.09.04 5,091 88 13쪽
7 7화 운수 +5 24.09.03 5,286 86 12쪽
6 6화 시험대 +8 24.09.02 5,773 94 13쪽
5 5화 기적 +5 24.09.01 5,913 100 11쪽
4 4화 운명(2) +5 24.08.31 5,876 99 12쪽
3 3화 운명 +3 24.08.30 6,147 93 11쪽
» 2화 추락 +4 24.08.29 6,275 96 12쪽
1 1화 푸대접 +4 24.08.29 7,621 8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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