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매니저는 맞다이가 체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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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역학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8.28 20:12
최근연재일 :
2024.09.04 20:25
연재수 :
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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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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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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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너 좀 별로다

DUMMY

난 다정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나 아프다는 말도 잘 못 하는데, 처음 보는 사람한테 ‘아프지 마라. 네가 아프면 나도 아프다.’라고 말하라니.

해맑은 표정으로 앉아 있는 송지원을 바라봤다. 과연 주문을 들은 저 아이의 얼굴이 어떻게 변할까?

눈, 코, 입으로 경멸을 표시하며 박경수에게 곧장 이르겠지?


‘저 아저씨 입에서 괴랄한 말이 나왔어요. 내가 아프면 자기가 아프대요.’


그 말을 들은 박경수는 내 말을 현실로 만들어 줄 거다. 내 혀를 잡고 메치기하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 아픈 것 보다 내게 향할 힐난의 눈빛이 더 두렵다.

거기에 무턱대고 주문을 외울 정도로 반투명창과 두터운 신뢰를 쌓은 게 아니다.

주문에 대한 거부감과 힐난을 각오하고 주문을 뱉었는데, 아무 변화가 없으면?


‘고민할 것도 없다.’


안 한다고 해서 내게 불이익이 닥치는 게 아닌데, 굳이 리스크를 짊어질 필요 없지.

그냥, 무리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것만 하자.

그렇게 결론을 내리는데, 송지원이 낭낭한 목소리로 내게 당부했다.


“오빠. 혹시 나중에라도 애들한테 제 발목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 애들이 알면 엄청 화낼 거예요. 오빠한테도 불똥 튈 걸요? 왜 안 말렸냐고.”


눈을 돌려 송지원의 발목을 봤다. 나도 태권도 선수 생활을 하며 몇 번이나 발목을 접질러 봐서 안다. 저 정도면 디딜 때마다 통증이 클 텐데.

저 상태로 춤추는 건 무리가 맞다. 부상이 더 깊어질 가능성도 크고. 앞날을 생각한다면 춤을 포기하는 게 맞을 텐데.


“왜 그렇게까지 춤을 고집하는 거야?”


내 질문에 송지원이 씩 웃으며 말했다.


“멤버들, 매니저 오빠들이 절 위해 무대를 만들어줬는데, 발목 부었다고 포기할 순 없잖아요. 보이세요?”


제 어깨를 툭툭 친다.


“여기 제 어깨에 모든 사람들이 얹어져 있잖아요. 제가 발을 멈추면 다들 자기 무게 때문이라고 생각할 거예요.”


그녀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제 존재를 증명하는 방법이 춤, 노래인데 그걸 포기하는 건 제 존재를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잖아요.”


순간 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멍해졌다.

멍청한 내 과거가 떠오르는 동시에 얼굴이 화끈해졌다.

내 존재를 증명하는 방법은 태권도였다. 그걸 부정하는 협회와 싸우고, 그래도 안 되면 언론에 알리고, 하다못해 상대를 물어뜯어서라도 날 증명했어야 했는데, 도망을 선택했다.


‘또 반복하려고 했다.’


주문의 진위여부가 정해지지도 않았는데, 지레 겁먹고 도망치려 했다.

지금의 난 송지원의 매니저고, 매니저의 소관은 담당 아티스트가 최선의 컨디션으로 무대를 설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게 매니저 하정민을 증명하는 방법이다.


주변을 둘러봤다. PPL인 얼음 아이스크림을 옮기는 스텝들이 보였다.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봐.”


송지원에게 기다리라고 말하고는 그쪽으로 달려가 물었다.


“혹시 얼음 좀 얻을 수 있습니까?”

“네? 얼음이요?”

“저희 아티스트가 발목을 접질러서요.”


아이스박스에 가득 담긴 얼음 아이스크림.

이 추운 날씨에 아이스크림 PPL이라니. 어쨌든, 오히려 다행인 상황.


“이거면 될 것 같은데요.”

“아, 네. 여기요.”


아이스크림 3개를 받아 송지원이 앉아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앉아 있는 송지원 무릎에 내 외투를 덮어주고, 티셔츠 위에 겹쳐 입은 남방을 벗었다.


“내가 태권도 선수 출신이잖아. 다리를 많이 쓰는 종목이라서 자주 다리 부상을 입거든. 그때 마다 얼음찜질을 했어.”


무릎 꿇은 상태로 남방에 얼음 아이스크림을 붓고는 하나로 싸맸다.


“좀 차가울 거야.”


남방으로 만든 얼음찜질팩을 발목에 댔다.


“읏!”


살짝 찡그리는 게 차갑다는 반응의 전부였다.


“이렇게 하면 좀 괜찮아질 거야.”

“고마워요. 오빠.”


주문을 위한 빌드업은 쌓았다.

이제 주문을 뱉으면 되는데.


‘밑도 끝도 없이 주문을 뱉으면 미친놈처럼 보일 거고. 뭐 그럴싸한 변명 거리가...잠깐, 이 구도 어디에서 봤더라?’


순간 예전에 본 사극 드라마가 떠올랐다.

관복을 입은 남자가 여자종 부상을 치료해주는 장면. 구도도, 대사도 비슷했던 것 같은데.

조심히 운을 뗐다.


“그... 있잖아. 예전 드라마에서 딱 이랬는데.”

“어떤 드라마요?”


눈을 깔았다. 눈 마주치며 주문을 외울 자신까진 없다.

침을 꿀꺽 삼키고는, 송지원 귀에만 들릴 작은 목소리로 주문을 외웠다.


“아프지 마라. 네가 아프면 나도 아프다.”


귀가 뜨겁다. 분명 인덕션의 불만큼 빨개졌겠지. 손이 비웃듯 덜덜 떨고 있다.

창피, 수치, 부끄러움, 아무튼 비슷한 뜻의 모든 단어들이 머리를 맴도는데, 정수리 너머로 송지원의 옅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하하.”


고개를 내렸는지 목소리가 가까이서 들린다.


“나 그거 알아요. 그 다음 대사가 ‘그래서 다친 겁니다’잖아요.”


내색하지 않았지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이다. 송지원이 그 드라마를 알고 있어서.


“어렸을 때 엄마 옆에서 봤어요.”


얼음팩 역할을 하고 있는 남방을 꽉 움켜쥐었다. 됐다. 미친놈 되는 건 면했다.

속으로 외치며 고개를 들었는데 이상한 게 보인다.


‘저건 뭐야?“


송지원 옆으로 막대자 크기의 세로로 된 반투명한 창이 나타났다. 0에서 시작한 게이지가 빠른 속도로 차오른다.

이윽고 게이지가 100에 다다르자.


[발목 부상 치료 완료]


란 글자와 함께 송지원의 현재 등급이 A로 변했다.


“....”


진짠가? 진짜 완치된 거야?

잠깐만. 이거 되도 이상한 거잖아.

주문을 외우고 30초도 안 지났는데. 완치라니. 너무 빠른 거 아니야?


‘...이 정도면 신 아니냐? 매니저 말고 기적의 염좌 치료사 일을 하면 떼돈 벌겠는데?’


망상은 방향 가리지 않고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그렇게 번 돈으로 협회를 무너뜨리고, 내게서 태극마크를 훔쳐간 그놈에게 뒤돌려차기를 해주는 거다. 물론 다리 사이에다가. 아파 죽는 놈에게 치료해주고 다시 차고, 다시 치료해주고.

엄한 생각을 하는 날 박경수의 목소리가 현실로 불러들였다.


“얼음찜질? 잘 했어. 선수 출신이라 행동력이 좋구만.”

“아, 네.”


박경수가 곤란한 표정으로 송지원에게 말했다.


“PD랑 이야기해봤는데, 순서는 바꿔줄 수가 없다고 하네. 그 뒤로 인터뷰 촬영이랑 다 일정이 짜여 있어서.”

“괜찮아.”


송지원이 날 보며 씩 웃었다.


“정민 오빠가 마법의 주문을 외워줬거든.”


그 말에 흠칫 놀랐다.

얘 뭐야? 눈치라도 챈 건가?

다행히 박경수는 그녀의 말을 흘려들었다.


“정민아 얼음남방 치워봐. 차도가 있는지 봐보자.”

“네.”


셋 중 상태가 가장 궁금한 건 나일 것이다.

진짜 완치 됐으려나? 되도 문젠데.

조심히 옷을 치우자 하얗고 얇은 송지원의 발목이 드러났다.


“어?”

“음?”

“헉!”


각자 다른 단어로 당혹스러움을 표시했다.

박경수가 무릎을 꿇더니 송지원의 발목을 들어올렸다.


“아니. 이게...?”


분명 발목 옆에 붙어 있던 주먹 크기의 붓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실핏줄이 어지럽게 얽힌 복숭아 뼈가 드러나 있었다.


‘이게 왜 진짜지? 아니, 진짜여야 하는 게 맞긴 한데. 진짜여도 되는 거야?’


반신반의하며 반투명창이 시킨 대로 했는데, 정말로 주문이 통했다.

송지원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미소가 사라졌다. 제 발목을 쓰다듬으며 날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다.


“지원, 발목 움직여봐.”

“어, 어, 오빠.”


송지원이 내게 시선을 고정한 채 처음에는 천천히, 나중에는 크게 발목을 돌렸다.


“안 아파, 오빠. 하나도 안 아파.”


자리에서 일어난 송지원이 좌우로 팔짝 팔짝 뛰더니.

눈빛을 갈아 끼우고는 안무를 시작했다.

춤선, 노래가 확실히 달랐다. 세 명도 뛰어난 실력자였지만, 송지원은 달랐다.

같은 A등급이지만,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매력, 아니 마력을 갖고 있었다.

같은 등급에도 차이가 있다는 걸 유추하는데.


“오빠! 진짜 말짱해졌어!”


조금은 높은 톤으로 송지원이 소리를 질렀다.

박경수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날 봤다.

네. 맞아요. 제가 기적의 염좌치료삽니다.

물론 이 말들은 목구멍을 넘지 못했다.

멋쩍게 웃고 있는 내 앞으로 송지원이 성큼 다가왔다.


“오빠 어떻게 한 거예요? 솔직히 말해봐요. 오빠가 마법 부린 거예요?”

“그냥....”


마땅한 변명을 찾던 내 눈에 PPL 아이스크림 이름이 들어왔다.

제품명이 잘 보이는 방향으로 아이스크림 통을 들어보이며 말했다.


“슈퍼 아이스 매직.”

“뭐?”

“그게 뭐예요. 하하.”

“하, 하하.”


당연하지만,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굳이 증명해야 할 필요도 없었고.


“아무튼, 일시적인 걸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고.”


박경수의 우려에 송지원이 고개를 끄덕이는 찰나. 조연출의 외침이 들려왔다.


“촬영 시작합니다. 관계자들, 모두 나가주시고, 출연자들은 이쪽으로 모이실게요!”

“오빠 갈게.”

“어. 그래. 잘하고.”


박경수에게 먼저 인사한 송지원이 내게 주먹을 내밀었다.


“나중에 오빠 아프면 나도 같이 아파줄게요.”


주먹을 맞부딪치고 가는 그녀.

그 말은 내가 아파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데.

이걸 좋아해야 해, 말아야 해?

아직 사라지지 않은 반투명창 내용 중 두 개가 변해있었다.

하나는 현재 등급. C(A)가 A로.

다른 하나는 호감도. 0이었던 것이 10으로 훌쩍 뛰었다.


저 먼 곳까지 간 송지원이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표정이나 태도로 봐서는 이 호감도가 뜻하는 게 나에 대한 호감을 수치로 변환한 것 같은데.


미용실로 가기 전 난 화장실에 들렀다. 아무리 등급을 소환해도 거울에 비친 내 이마엔 알파벳이 떠오르지 않았다.

혹시나하고 손가락으로 이마를 눌렀지만, 반투명창이 떠오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궁금한데. 나는 어느 정도 수준인지.”


생각해보니 아까 송지원 이마를 누르지 않았는데 반투명창이 떴다.


“이마를 만져야만 뜨는 게 아니라 접촉하면 뜨는 건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미용실로 가는 길. 조수석에 앉아 반투명창이 뜨는 조건을 확인하기 위해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더불어 호감도의 정체도.

등급 전원을 켜고, 적당한 타이밍에 박경수의 어깨를 톡 두드렸다.


“창문 좀 열겠습니다.”

“어, 그래.”


훅.


반투명창이 떠올랐다.

반투명창 소환이 이마에만 국한되지 않음이 증명됐다.

그렇다고 마음껏 반투명창을 소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여자와는 악수 말고 접촉할 수 있는 마땅한 변명거리가 없다.

이윽고 반투명창에 호감도가 떠올랐다.

분명 아침까지만 해도 0이었던 호감도가 15로 올라 있었다.


"정민, 아까 얼음찜질 잘 했다. 칭찬해."


아무래도 내 유추가 맞는 모양이다. 확실히 날 보는 눈에 호감이 잔뜩 담겨 있다.


*


메이크업을 장착한 세 멤버는 헤어지기 전에 봤던 것과 또 다른 모습이었다.

안 꾸민 모습도 예뻤는데, 꾸미니 눈이 부셨다.


“오빠. 방금 지원 언니한테 문자 왔는데, 마법 부렸다면서요?”

“이 오빠 뭐야? 출근 첫날부터 활약이 엄청나네.”


차에 오르자마자 재잘대는 아이들. 얼굴에 흥분이 한가득이다. 내내 뚱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나은우도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맨 뒷자리로 자리를 옮긴 박경수가 말했다.


“앞으로 어디 아프면 정민이한테 보여줘. 슈퍼 아이스매직으로 고쳐줄 테니까."


화기애애한 차 안 분위기 속, 유일하게 웃지 않는 건 운전석의 주진태뿐이었다. 분위기에 맞춰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고 있지만, 심기가 불편한 게 확실했다.

정면으로 돌린 얼굴이 굳어있다.

그가 글러브박스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 안에 음료수 있거든. 아무거나 하나 꺼내줘.”


가만 보면 애가 투명하다. 감정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설마 나한테 안 좋은 감정을 갖고 있는 건 아닐 테고.

인사하고, 10분 정도 이야기한 게 다다. 싫어하고 말고 할 게 없다.


'...확인해 볼까?'


속으로 ‘나와라, 등급’을 외치고는 캔음료를 건네면서 의도적 손을 스쳤다.

반투명창이 떠오르며 문장들이 올라왔다.


[이름 : 주진태

나이 : 27세

직업 : 매니저

현재 등급 : C]


여기까지는 알고 있던 내용 그대로다.

그리고.


[호감도 : -20]


-20?

(-)면 호감이 아니라 싫어하는 거 아니야?

이어지는 내용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상세 : 첫 출근한 신입이 칭찬 받는 상황이 불쾌함.]


주진태가 못마땅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차에 타면 안전벨트부터 매. 사고 나면 조수석에 앉은 사람이 제일 크게 다친다잖아.”


[특히 3주 동안 자신과는 거리를 두던 에테리얼 멤버들이 하정민에게는 살갑게 대하는 걸 보고 질투하고 있다.]


지금 보고 있는 내용이 진짜라면.

진태야, 너 좀 별로다.


작가의말

선작, 추천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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