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균자 : 에필로그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SF

새글

정훈한
작품등록일 :
2024.08.29 15:49
최근연재일 :
2024.09.19 18:00
연재수 :
7 회
조회수 :
66
추천수 :
0
글자수 :
36,886

작성
24.09.17 18:00
조회
7
추천
0
글자
12쪽

#006. 강철 새장 Ⅰ

DUMMY

#006. 강철 새장 Ⅰ


덕호 할아버지도, 치안대 요원도 누구 하나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특히 치안대 요원은 당장이라도 삼단봉을 꺼내 할아버지를 때릴 기세였다. 동시에 정작 손을 맞은 동생은 내 옆에서 목이 터져라 울고 있었고, 갑작스러운 소란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 둘 우리를 향하기 시작했다.


"그만하세요 두 분 다!"


그리고 그때 어디선가 앙칼진 목소리와 함께 아버지가 차고 다니던 공무원증과 비슷한 것을 차고 있는 사람이 나타났다. 갈색 단발머리에 안경을 쓰고 키도 티브이에서나 보던 모델처럼 큰 여자였는데, 그는 할아버지와 치안대 요원 사이를 직접 양팔로 스윽스윽 가르며 둘을 한 번씩 노려보았다.


"정말··· 이렇게 두 분이서 싸운다고 해서 나아질 것 하나 없어요."


"아니 그래도 저놈이 저 어린아이를···!"


할아버지는 답답해 죽겠다는 듯 손가락으로 치안대 요원의 헬멧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쪽은 뭐 아이나 조카도 없나? 저렇게 덩치 큰 놈이 저런 조그만 애 손을 내려쳤는데 말이야. 그것도 저 스캐너인지 뭔 지하는 걸로."


"무슨 말인지는 잘 알겠어요. 저 같아도 화가 날 것 같은 건 마찬가지고요. 그렇지만 이 사람들은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 것뿐이에요. 저 사람이 무슨 힘이 있어서 그런 짓을 했겠어요? 다 위에서 시켜서 그러는 거지."


공무원의 말에 치안대 요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 발 뒤로 더 물러섰다. 이제는 거리가 꽤나 떨어진 할아버지와 치안대 요원 사이에서 공무원은 한숨을 길게 내뱉으며 말을 계속 이었다.


"치안대 요원분도 앞으로 그렇게 너무 빡빡한 기준 가지고 강경하게 대응하지 말아 주세요. 매뉴얼도 중요하지만 사람 사는 게 다 컴퓨터처럼 딱딱딱 맞춰서 살 수는 없는 거잖아요? 조금 융통성을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할아버지께서는 화나시는 건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저희한테 너무 역정을 내시면 안 돼요. 그러면 할아버지만 손해예요. 본인뿐만 아니라 옆에 할머니 그리고 아이들 모두가 같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요."



"음··· 뭐···"


그의 말에 할아버지는 고개를 돌려 우리들을 한 번 훑어보았다. 동생은 공무원이 등장한 다음부터 울음을 조금씩 그쳤고 할머니는 그런 동생의 등을 토닥여주고 있었다.


"안에 들어가서 자세히 설명드릴 예정이지만, 여기 임시 거주 시설 안에서 비협조적인 모습을 보일 경우 여러 가지로 불이익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일단 진정하시고··· 이분들 다 들어가도 되죠?"


치안대 요원은 공무원의 물음에 별 다른 대답 없이 그저 고개만 까딱 끄덕였다. 잘은 몰라도 그 또한 아직 분이 풀리지 않은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그 모습에 혀를 한 번 더 찼지만, 공무원이 "그만하세요."라고 하며 노려보는 바람에 입을 꾹 닫고 그냥 그런 그의 뒤를 쫓아 걷기 시작했다.


"자 이쪽으로 오세요 네 분 다."


우리는 공무원의 안내에 따라 커다란 입구를 지나 건물 안으로 이동했다. 밖에서 봤을 땐 네모 같다고 생각했던 건물의 내부는 이상하게도 동그란 돔의 형태였다. 철로 만들어진 듯한 건물의 구조물들은 마치 '#' 모양처럼 이리저리 층층이 계단과 함께 얽혀있었고, 그 가운데로 커다란 기둥 같은 회색 탑 하나가 우뚝 솟아있었다.


"그럼 이제 네 분 성함 한 번씩 다 말해주세요. 시민증도 보여주시고요."


"아··· 나는 박덕호라고 하고 시민증은 여기 있네. 당신도 어서 가지고 와 그리고 너희도 시민증 있으면 빨리 꺼내 보여드려라."


우리는 할아버지의 말에 주섬주섬 가방에서 시민증을 꺼내 공무원에게 건네주었다. 그런 그의 가까이에서 보니 이제야 그가 차고 있는 공무원증에 '장하나'라는 이름이 적혀있는 것이 보였다.


"음··· 가만 보자 네 분이 가족이 아니시죠?"


"아? 음··· 설명하자면 길어지는데··· 그게 중요한 건가?"


공무원은 어딘가 이상하다는 듯 우리 시민증과 자신의 스마트폰을 번갈아 확인

하면서 물었고, 할아버지는 머리를 긁적이며 난감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답했다.


"대략 설명하자면 여기로 향하는 지하열차에서 통성명하고 그때 붙어 같이 다닌 사이야. 사실 특별히 무슨 혈연관계가 있어서 같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어린애들이잖아. 애들만 두려니 너무 불쌍해서 말이지. 뭐··· 그런 애들이 한 둘은 아닌 것 같다만."


"음, 그러시군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공무원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와 동생의 얼굴을 천천히 한 번씩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확인해 보니까 사실 저 둘은 아까부터 저희가 찾고 있던 애들이었거든요. 두 명이라 당연히 2인 그룹에 속해있을 줄 알았는데 없었어서 혹시 열차를 타고 못 온건 아닌가 싶었는데 찾아서 다행이네요."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당신들이 저 아이들을 찾고 있었다고?"


할아버지의 물음에 공무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스마트폰을 자신의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네. 저도 자세한 사정은 잘은 모르겠는데. 저 아이들의 안전을 우선 확보하라는 제 상사의 지시가있었어요. 아마 저 아이 부모님들이 2도시에서 꽤나 힘좀 썼던 모양이에요. 아무튼 여기서부터는 제가 데리고 갈게요."


"아니 애들 부모 이야기는 듣긴 했는데··· 잠깐만 뭐? 갑자기 그렇게 된다고?"


할아버지는 깜짝 놀란 목소리로 공무원에게 물었고 뒤에 있던 할머니도 앞으로 나서며 그런 공무원을 향해 말했다.


"주무관··· 아니 장하나 씨? 맞지요? 내가 눈이 잘 안 보여서···"


"네. 맞아요. 장하나 주무관입니다. 그냥 편하게 아무렇게나 불러주셔도 돼요."


"아··· 그럼 하나 씨가 이제 아이들을 안전한 곳에서 돌봐주는 건가요? 아니면··· 어떻게 되는 건지 걱정이 돼서···"


할머니의 말에 장하나 주무관은 걱정 말라는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네. 이 아이들도 어르신이나 다른 사람들처럼 배정된 숙소에서 이런저런 케어를 받으면서 지내게 될 거예요. 제가 이 아이들의 전담 담당자는 아니지만, 뭐··· 엄밀히 말하면 같은 부서에서 하는 일이니까 제가 중간중간 계속 확인하기도 할 거고요. 그러니까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그래요? 그럼··· 믿겠습니다."


주무관의 말에 할머니는 잡고 있던 동생의 손을 놓아주었고, 그러자 동생은 다시 훌쩍거리기 시작하며 나를 향해 물었다.


"형, 할머니 할아버지랑 이제 같이 안 있는 거야?"


"아··· 잠깐 떨어져 있는 거야. 그렇죠? 계속 뵐 수는 있는 거죠?"


"장담은 못 드리지만··· 아마 가능할 거예요. 상황이 나아지면."


'상황이 나아지면'이라는 말이 조금 신경이 쓰였지만 나는 일단 동생을 달래기 위해 "봐봐 맞지?"라고 하며 동생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었다.


"자! 그럼 이동하실까요? 우선 아이들은 제가 데리고 올라가도록 할게요. 할머니 할아버지는 여기 계시면 다른 담당자가 와서 바로 안내 도와드릴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시고요."


"그래요··· 둘 다 잘 지내야 된다? 주무관님 말 잘 듣고 알았지?"


잠깐이지만 그새 정이 들은 건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하려는데 나 조차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사실 생각해 보면 정말 지하열차에서부터 이야기를 나누면서 몇 시간 같이 보낸 게 전부인데 신기한 감정이었다.


"자 이쪽으로."


그러나 그런 우리와 달리 장하나 주무관은 우리에게 슬퍼하거나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 것 같았다. 나야 그렇다 쳐도 아직 체격이 많이 작은 동생은 그런 주무관의 속도에 맞춰 따라가는 것이 매우 버거웠고, 결국 나와 동생은 조금씩 뒤쳐지게 됐다.


"저기 주무관님! 조금 천천히 가면 안 될까요? 동생이 조금 힘들어해서."


"아···"


내가 조그만 가방을 메고 계단을 힘겹게 오르는 동생을 가리키며 말하자 그제야 장하나 주무관은 마스크 속으로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내가 생각이 조금 짧았네.... 그럼 천천히 갈까?"


그다음부터 우리는 천천히 동생의 속도에 맞춰서 어디론가 계속 올라가고 또 올라갔다. 살면서 이렇게 높은 곳까지 걸어서 올라간 적은 없었던 것 같았다. 이렇게 걸으면서 깨달은 사실이지만 이 건물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듯 보였다. 하나같이 계단으로 여기저기 촘촘히 이어져 있었는데 아무래도 급하게 짓느라 엘리베이터를 빼먹은 게 아닐까 싶었다.


"헉헉··· 자··· 이제 여기···. 들어가면 돼 둘 다."


그렇게 몇 분여 계단을 더 오르고 나서야 우리는 앞으로 우리가 지내게 될 새 보금자리에 들어갈 수 있었다. 온통 흰색으로 통일된 바닥과 벽으로 이루어진 방에는 회색으로 된 가구들이 몇 개 비치돼 있었고, 정말 작디작은 화장실도 하나 딸려있었다. 티브이나 냉장고 같은 가전기기는 없었고, 에어컨 같은 것도 찾아볼 수 없었는데 물어보니 중앙에서 다 관리하고 있어서 냉난방기는 필요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그럼 저희 밥 같은 건 어떻게 먹나요?"


"이번 주 식사는 다 배급될 거야. 학교에서 급식 먹어봤지? 그것처럼. 대신에 급식실로 가는 게 아니라 여기 사람들이 직접 급식을 가지고 오는 거라고 생각하면 돼."


"아···"


밥을 직접 가져다준다니 편할 것 같기는 했지만 굳이 여기까지 밥을 가지고 올라와서 줘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한두 명도 아니고 몇 백 명은 될 것 같은데 일일이 다 가져다주려면 엄청 힘이 드는 일인데 말이다.


"아마 처음 일주일 동안은 방에서 나오기 힘들 거야. 그다음에 아마 조금씩 바깥 활동도 늘려갈 예정이니까 그렇게 우선 알고 있으면 돼."


"그럼 일주일 동안은 계속 여기에 있어야 하는 거예요?"


"응. 어쩔 수가 없네··· 바이러스 때문이라니까 일단 이해해 줘."


장하나 주무관은 본인 스스로도 말하면서 마음에 걸렸는지 조금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아! 그리고 혹시 무슨 일 있으면 저기 책상 옆에 전화기 들고 0번을 누르면 돼, 아마 지금 너희가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은 전부 다 안될 거야. 통신사 연결을 해야 하는데 아직 그건 논의 중이라··· 아무튼 무슨 일 있으면 저 전화기를 쓰도록 해."


"네."


[띠리링]


그가 전화기 이야기를 하자마자 주무관의 핸드폰이 울렸고, 장하나 주무관은 뒤돌아 서서 전화를 받으며 방 밖으로 걸어 나갔다. 동생은 새로운 우리의 보금자리가 조금은 마음에 들었는지 벌써 침대에 걸터앉아 신발을 벗고 있었다. 그런 동생의 모습을 보니 조금은 다행이다 싶었다. 어딘가 진짜 정처 없이 떠돌거나 길거리에 버려지는 건 아닌가 싶었는데 작긴 해도 이런 공간이 우리에게 있었으니 말이다.


"아··· 난 이제 가봐야겠네. 내 이름은 알지? 무슨 일 있으면 0번으로 전화한 다음에 나를 찾거나. 아니면 703호 담당자 연결해 달라고 하면 돼."


"703호··· 알겠어요."


"그래. 아마 조금 있으면 점심식사가 나올 테니까 그때까지 좀 쉬어. 그럼 나중에 또 보자."


장하나 주무관은 그 말을 끝으로 방문을 닫았고, 그제야 나는 방 문에 조그마한 창 두 개와 그 사이를 채운 쇠창살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보균자 : 에필로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안내. 24.08.29 9 0 -
7 #007. 강철 새장 Ⅱ NEW 10시간 전 3 0 12쪽
» #006. 강철 새장 Ⅰ 24.09.17 8 0 12쪽
5 #005. 일그러진 가면 Ⅱ 24.09.12 9 0 12쪽
4 #004. 일그러진 가면 Ⅰ 24.09.10 9 0 12쪽
3 #003. 반쪽 비극 Ⅲ 24.09.05 10 0 12쪽
2 #002. 반쪽 비극 Ⅱ 24.09.03 11 0 12쪽
1 #001. 반쪽 비극 Ⅰ 24.08.29 15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