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 흐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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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한
작품등록일 :
2024.08.30 17:17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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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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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

DUMMY

# 교통사고


사흘 전 새벽 1시경. 야간 순찰 중이던 도경에게 출동 호출이 들어왔다.

시내 외곽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했다는 신고가 접수된 것이었다.

마침 사고 지점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었던 도경은 파트너인 김우식 순경과 함께 곧바로 사고 현장으로 출동했다.

사고 현장이 가까워지자 매캐한 탄내가 코를 자극했다.


순찰차를 몰고 조금 더 이동하자 도롯가에 비상등을 켜고 서 있는 SUV 차량이 보였고 그 뒤쪽에 60대 정도로 보이는 여자가 순찰차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사고가 난 곳은 평소에도 교통량이 많지 않은 곳이었지만,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도로에 오가는 차량은 거의 없었다.


도경은 SUV 뒤에 순찰차를 세우고 우식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

사고 현장 주변에는 가로등이 없어 매우 어두웠다.

도경과 우식이 순찰차에서 내리자 손을 흔들던 여자가 발을 동동 구르며 그들을 자신의 SUV 앞쪽으로 이끌었다.

여자를 따라가 보니 도롯가에 세워 놓은 가드레일이 10미터가량 부서져 있었다.

그리고 그 부서진 가드레일 너머의 5미터 정도 되는 비탈면 아래에 불이 붙은 승용차가 보였다.


신고자인 여성 SUV 운전자가 처음 발견했을 때는 불이 훨씬 크게 일었었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불길이 점점 잦아들었고 그들이 도착했을 때는 잔불 정도만 남은 상태였다.


위에서 손전등을 비춰봤지만, 아래까지 빛이 닿지 않아 자세한 상황을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소방서는 사고 지점에서 약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구조대가 도착하려면 아직 20분 이상 걸릴 게 분명했다.

그동안 그냥 가만히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내려가서 우선 불이라도 꺼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둘이 같이 내려갈 수는 없었다.

사고가 난 지점에 통행량은 거의 없었지만, 급격하게 휘는 곡선 도로여서 2차 사고 발생 가능성이 있었다.

도경은 김 순경에게 2차 사고 예방 조치를 맡기고 장갑과 소화기를 챙겨 비탈면 아래로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비탈면 아래에 도착한 도경은 아직 불길이 일고 있는 승용차의 보닛 부위에 소화기를 뿌렸다.

잔불만 남은 상태라 불길은 어렵지 않게 잡혔다.

하지만 불이 꺼진 승용차의 상태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해 보였다.


비탈면 아래의 배수로에 약 15도 정도의 각도로 비스듬하게 처박힌 승용차는 추락과 충돌의 여파로 온전한 곳을 거의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오른쪽 앞바퀴는 어디론가 사라져 보이지 않았고 배수로에 처박힌 승용차의 전면부는 거의 반 이상 찌그러진 상태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심각해 보이는 건 화재에 의한 피해였다.


찌그러진 엔진룸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화재는 보닛의 철판을 까맣게 그을리고 승용차 내부까지 번져 들어간 상태였다.

특히 운전석과 조수석이 있는 승용차의 전면부는 완전히 불에 타서 거의 잿더미처럼 변해 있었다.


도경은 손전등을 켜고 아직 연기가 피어오르는 승용차 안에서 탑승자를 찾았다.

그리고 운전석에서 온몸이 검게 그을린 여자를 발견했다.

여자는 안전밸트를 착용한 상태라 눈에 띄는 큰 부상은 없어 보였지만, 그야말로 형체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온몸이 새까맣게 타버린 상태였다.

얼굴의 피부는 완전히 불에 타 검붉은색으로 일그러져 있었고 그 위로 녹아내린 머리카락이 검게 말라붙어 있었다.

입고 있던 옷가지도 대부분 불에 타버려 피부 위로 검게 눌어붙은 상태였다.

발견된 사람이 여자라는 걸 안건 그녀가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성별조차 구분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탈출을 시도한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화재가 발생하기 전에 여자가 정신을 잃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도경은 어쩌면 그편이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여자는 엄청난 고통을 견뎌야 했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일선 현장에서 나름 이런저런 험한 일들을 보아 온 도경도 그런 끔찍한 장면은 처음이었다.


다행히 여자 외에 다른 탑승자는 보이지 않았다.

승용차의 유리는 대부분 깨져 있었는데 전면 유리는 거미줄처럼 금이 가긴 했지만 비교적 온전히 붙어 있었다.

그런 걸 보아 탑승자가 밖으로 튀어 나갔을 가능성은 적어 보였다.

전면부가 배수로에 처박힌 승용차는 비탈면을 따라 비스듬하게 앞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래서 여자의 몸도 안전밸트에 매달린 채 앞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불에 그을리긴 했지만 안전밸트는 여전히 끊어지지 않고 여자의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도경이 운전석 문짝 손잡이를 잡고 힘껏 당겼다.

하지만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다른 문들도 확인해 봤지만 모두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충돌 시 차체가 비틀어지면서 문이 고장 난 것 같았다.


도경이 운전석 문짝의 깨진 유리 잔해를 손전등 뒷부분으로 조심스럽게 쳐서 떨어냈다.

그리고 오른손에 낀 장갑을 벗고 여자의 입과 코 주변에 손을 대 봤다.

숨결이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도경은 장갑을 낀 왼손으로 여자의 어깨를 잡고 조심스럽게 흔들어 봤다.

“이봐요. 이봐요.”

몇 차례 반복해 봤지만, 역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숯덩이처럼 변한 여자에게서는 어떠한 생명의 징후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멀리서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도경은 여자에게서 시선을 돌려 사이렌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봤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휘황찬란한 불빛이 어두운 하늘을 물들이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 불빛을 보자 안도의 한숨이 절로 터져 나왔다.

사실 도경은 빨리 여길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불에 탄 여자의 모습도 너무 끔찍한데다 매캐한 연기 속에 섞여 있는 살이 타는 냄새까지 맡고 있었더니 속이 다 울렁거릴 지경이었다.

도경은 차량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동해 잠시 숨을 돌린 후 도로 위에 있는 김순경에게 아래쪽 상황을 알리기 위해 무전기를 꺼냈다.


그런데 무전을 하려는 순간 어디선가 낯선 여자의 음성이 들렸다.

‘이-리-와.’

놀란 도경은 다시 사고 차량이 있는 곳으로 가서 손전등으로 운전석의 여자를 비췄다.

그런데 불빛에 비친 여자의 모습을 본 도경은 너무 놀라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호흡도 맥박도 멎어있던 여자가 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게다가 도경을 바라보는 여자의 눈이 흰자위가 있어야 할 부위까지 온통 검은색이다.

화상으로 일그러진 여자의 얼굴 속에서 번들거리는 검은 두 눈을 마주 보고 있으니 섬뜩하면서도 왠지 정신이 몽롱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도경이 여자의 눈에서 시선을 떼고 정신을 차리려는 듯 손바닥으로 자기 뺨을 세게 갈겼다.

그리고 여자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말했다.


“이봐요. 정신이 좀 드십니까?”

대답 대신 다시 그 음성이 들렸다.

‘이-리-와.’

여자가 구조해주길 바라는 것 같았다.

승용차 내부에는 아직 열기와 연기가 남아 있어 여자가 깨어난 이상 빨리 꺼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여자의 부상이 너무 심해서 괜히 건드렸다가 잘못되기라도 할까 봐 겁이 났다.


그동안에도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도경은 구급차를 기다리기로 했다.


“조금만 참으세요. 구급차가 오고 있으니 곧 구해드릴 겁니다.”

하지만 여자는 계속해서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이-리-와.’

그리고는 갑자기 두 팔을 흔들며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분명 승용차에서 나오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몸에 안전밸트가 채워져 있어 운전석에서 빠져나올 수는 없었다.

오히려 여자가 움직일 때마다 화상으로 약해진 피부가 안전밸트에 쓸리면서 벗겨졌다.


“조금 있으면 구급차가 도착하니까 움직이지 말고 좀 참아봐요.”

도경의 애원에도 여자의 몸부림은 오히려 더욱 거세졌다.

벗겨진 피부에서는 이제 붉은 진물까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도저히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도경은 일단 여자를 차량 밖으로 빼내기로 했다.


여자를 빼내려면 우선 몸에 채워진 안전밸트를 풀어야 했다.

그것만 풀면 창문 사이로 어떻게 든 여자를 빼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운전석 안쪽으로 손전등을 비추자 반대편의 안전밸트 걸쇠가 보였다.

거기에 닿으려면 상반신 전체를 승용차 안으로 밀어 넣어야 할 것 같았다.

“이봐요. 거기서 빼내 주려고 하니까 움직이지 말고 조금만 참아봐요.”

이번에는 도경의 말을 들은 것일까?

여자의 움직임이 조금 약해졌다.


도경은 여자의 팔을 어깨로 살짝 밀쳐 낸 후 차창 사이로 상체를 밀어 넣었다.

그리고 안전밸트를 풀었을 때 여자가 앞으로 쓰러지지 않도록 오른쪽 어깨와 팔꿈치로 여자의 상체를 지그시 눌러 받쳤다.

그 상태에서 왼손을 더듬어 안전밸트의 걸쇠를 찾았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어떤 강력한 힘이 그의 어깨와 머리를 눌렀다.

도경이 깜짝 놀라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누르는 힘이 너무 강해 그럴 수 없었다.

곁눈질로 확인 확인해 보니 뒤쪽에 까맣게 그을린 팔이 보였다.

화상을 입은 여자가 두 팔로 그를 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저기요. 왜 이러는 겁니까? 이거 좀 놔요.”

도경이 외쳐봤지만, 오히려 누르는 힘이 더 강해졌다.

몸을 일으키려 해봤지만, 누르는 힘을 워낙 강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조금 전까지 사경을 헤매던 여자가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오는 걸까?


그런데 그때 목뒤 쪽에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깜짝 놀란 도경이 왼손을 들어 올려 목뒤 쪽으로 가져갔다.

손에 약간 끈적거리면서도 거친 느낌의 둥그런 물체가 만져졌다.

화상을 입은 여자의 머리였다.

여자가 그의 목을 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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