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 흐르는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글한
작품등록일 :
2024.08.30 17:17
최근연재일 :
2024.09.17 17:27
연재수 :
7 회
조회수 :
74
추천수 :
2
글자수 :
34,814

작성
24.09.13 23:50
조회
7
추천
1
글자
11쪽

흡혈

DUMMY


도경은 석양을 등진 채 도시의 외곽을 향해 달렸다.

석양빛에 드리운 건물들의 긴 그림자들이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게 30분쯤 달리자 고층 건물들이 점차 사라지고 오래된 주택가 나타났다.

산비탈을 타고 낡은 주택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는 이곳에는 도경이 사는 집이 있었다.


하지만 도경은 집으로 향하지 않고 주택가를 빙 둘러 난 경사로를 따라 조금 더 올라갔다.

그러자 얼마 후 산의 입구가 나타났다.

동네 뒷산치고는 숲이 제법 우거진 이 산은 주택가와 가깝기도 해서 예전에는 등산객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몇 년 전인가 등산로를 정비하던 업체가 공사를 하던 중에 부도가 났다.

그 바람에 등산로가 여기저기 파헤쳐진 데가 가로등도 끊긴 채로 지금까지 방치되어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점차 줄어들었다.

게다가 등산로 안에서 사건 사고가 여러 건 발생하는 바람에 우범지대라는 인식이 박혀버렸다.


그래도 낮에는 간혹 다니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해가 진 뒤에는 아무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떨어져 있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도경은 어지럽게 적재 되어 있는 공사용 자재들 사이를 지나 등산로 입구로 들어섰다.

공사로 인해 파헤쳐진 등산로는 오늘 아침까지 퍼부은 장맛비로 젖어 있긴 했지만, 땅이 비교적 단단한 편이어서 걷는 데는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여름의 산은 녹음이 아주 풍성하게 자라나 있었다.

등산로를 따라 산속으로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자 숲의 향기가 한층 짙어지면서 피 냄새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자 동시에 끝없이 솟구칠 것 같던 기운도 빠져나갔다.

어느덧 산등성이 뒤로 해가 넘어가고 숲에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도경은 선글라스를 벗어 던지고 주머니 속에서 연신 울려대는 휴대전화도 꺼버렸다.

그리고 등산로를 벗어나 숲속을 헤치며 네발로 기듯이 올라갔다.

피 냄새는 완전히 사라졌지만, 도경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올랐다.

그리고 남은 기운을 완전히 소진된 후에야 쓰러지듯 수풀 속에 몸을 누였다.

땀이 흥건한 도경의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사람의 목을 물고 피를 빨려고 하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 순간 여자의 음성이 그를 멈추게 하지 않았다면 남자의 목을 물어뜯었을 것이다.

지금도 가슴 깊은 곳에서는 아직도 피에 대한 갈망이 들끓고 있었다.

정말 흡혈귀라도 되어버린 것일까?


그렇다면 이제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갈 수 없다.

그 난리를 피워놓았으니 아마 경찰 생활도 더는 하지 못할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망막했다.


갑자기 모든 게 귀찮게 느껴졌다.

사실 생각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삼 일이나 먹지도 자지도 못한 상태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낸 터라 허기와 탈진이 극한에 달해 있었다.

이대로 누워 있으면 아마 내일 해가 뜨는 것을 보지 못할지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자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시간이 흘러 조용히 흐르던 도경의 눈물도 어느덧 말라버렸다.

한창 무성해진 나뭇잎 사이로 가느다란 달이 떠올랐다.

손톱 모양의 초승달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의식이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았다.

잠이 오려는 것일까?

도경이 눈을 감았다.

이대로 잠이 들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의식이 점차 흐릿해졌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산등성이를 타고 강한 돌풍이 불어왔다.

그 습한 밤바람에 속에 달큼한 냄새가 느껴졌다.

아주 옅긴 했지만, 분명 인간의 피 냄새였다.


그 냄새를 맡은 도경은 갑자기 눈을 번쩍 뜨고는 자리에서 튕기듯 일어났다.

그리고 피 냄새를 쫓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젠 도경에게는 피의 갈망을 거부할 한 줌의 의지도 남아 있지 않았다.


숲 안쪽은 달빛도 들지 않아 어두웠지만, 도경은 거칠 것 없이 가파른 산비탈을 타고 올라갔다.

피 냄새로 신경이 예민해진 도경은 마치 적외선 고글을 낀 것처럼 어둠 속에서도 앞이 훤히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산비탈을 타고 올라가 산등성이를 넘어서자 달큼한 냄새가 더욱 짙어졌다.

도경은 산의 반대편으로 빠르게 내려갔다.


산의 아래에 거의 다다랐을 때쯤 등산로 옆에 반쯤 짓다 만 팔각형 모양의 정자가 나타났다.

도경은 피 냄새를 따라 그 정자 뒤편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정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수풀 속에서 한 여자를 발견했다.


여자는 긴 머리를 엉클어뜨린 채 하늘을 향해 누워 있었다.

젊은 여자인 것 같았지만, 누군가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는지 얼굴이 완전히 피떡이 되어 정확한 나이는 가늠하기 힘들었다.

여자의 상반신에는 너덜너덜해진 보라색 운동복이 걸쳐 있었지만, 하반신은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태였다.

벗겨진 여자의 하반신에서는 피 냄새와 함께 진한 정액 냄새가 풍겨 나왔다.


도경의 예민해진 청각에 여자의 숨소리나 심장박동 소리가 전혀 잡히지 않았다.

여자는 이미 숨이 멎은 상태였다.


도경은 여자의 피 냄새에 끌려 여기까지 왔지만, 막상 여자에게서는 피를 마시고 싶은 충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다른 피 냄새가 도경의 충동을 자극했다.

그 피 냄새는 죽은 여자의 양손 손톱 사이 그리고 엉망이 된 얼굴에서 풍겨 나오고 있었다.


도경은 그 피 냄새를 쫓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 것은 여자의 것보다 훨씬 흐릿했지만, 도경은 그 냄새의 흔적을 놓치지 않고 따라갔다.


그리고 등산로 입구에 거의 다다랐을 때쯤 그 피 냄새의 주인공을 찾아냈다.

검은색 민소매 티셔츠를 입은 남자는 도경만큼이나 체구가 커 보였다.


도경이 등 뒤에서 다가가자 터벅터벅 걸어가던 남자가 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봤다.

얼굴에 검은색 스포츠 마스크를 쓴 남자는 숱이 별로 없는 머리를 귀밑까지 길게 기르고 있었다.

남자가 태연하게 얼굴에 달라붙은 머리를 옆으로 쓸어 넘기며 도경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경찰이 이 시간에 여긴 웬일로?”

하지만 도경은 대답도 없이 남자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도경은 지금 민소매 남자의 냄새를 맡고 있었다.

남자의 몸에서 여자의 하반신에서 맡았던 정액 냄새가 물씬 풍겨 나왔다.

그리고 그 역겨운 냄새 사이에 달큼한 피 냄새도 섞여 있었다.

피 냄새는 남자의 팔에 난 손톱자국과 피로 얼룩진 두 주먹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도경이 쫓아온 바로 그 피 냄새였다.


민소매 남자도 도경이 자기 팔에 난 상처를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러자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더니 돌연 뒤를 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의 도경을 따돌릴 수는 없었다.

순식간에 남자를 따라잡은 도경이 남자 앞을 막아섰다.

“깜짝이야. 뭐가 이렇게 빨라?”

멈춰선 민소매 남자가 도경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왠지 경찰의 눈이 검게 번들거린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남자는 지금 그럴 데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민소매 남자는 빠르게 주위를 둘러봤다.

다른 경찰은 보이지 않았다.

상대도 체구가 만만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도 힘을 쓰는 데는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그에게는 숨겨둔 무기도 있었다.

제아무리 경찰이라도 혼자라면 충분히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민소매 남자가 바지에 주머니에 손을 넣고는 비열한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뭔가 오해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 잠깐만 제 얘기 좀 들어보세요. 제가 다 설명할 수 있어요.”

하지만 도경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남자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둘 사이의 거리가 충분히 가까워지자 남자가 갑자기 주머니에서 접이식 칼을 꺼냈다.

그리고 능숙한 동작으로 칼날을 펼치더니 도경을 향해 힘차게 휘둘렀다.

예상치 못한 기습에 도경은 미처 피하지 못했다.

도경의 오른쪽 어깨에서 팔까지 약 20cm 길이의 긴 상처가 났다.

그리고 거기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도경의 팔을 그은 민소매 남자가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젠장. 또 사고를 쳐버렸네. 그러니까 왜 사람을 짜증 나게 만들고 지랄들이야. 그년도 좀 놀다가 보내주려고 했는데 왜 그렇게 반항을 심하게 하던지.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가 버리고 말았잖아.”


민소매 남자가 칼을 앞세워 들고 뒷걸음질 치며 말했다.

“너도 그년처럼 뒤지고 싶지 않으면 더 이상 따라오지 마. 난 분명히 경고했어.”

하지만 도경은 팔에서 피가 줄줄 흐르는데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남자를 향해 걸어갔다.

그러자 뒷걸음치던 민소매 남자가 도경의 목을 향해 다시 칼을 휘둘렀다.


하지만 이번에는 도경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칼날이 몸에 닿기 전에 도경이 칼을 쥔 남자의 오른쪽 손목을 낚아챘다.

도경에게 손목을 잡히자 남자는 손에 쥔 칼을 떨어뜨리고는 고통스러운 듯 소리쳤다.

“악. 이거 안 놔.”


하지만 도경이 놓지 않고 더욱 힘을 주자 남자의 손목에서 뼈가 바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극한의 고통에 남자의 두 무릎이 힘없이 꺾였다.

남자의 무릎이 땅에 닿는 순간 도경이 남자의 왼쪽 손목을 강하게 틀어쥐었다.

이번에는 남자의 왼쪽 손목의 뼈가 바스러졌다.


오른쪽에 이어 왼쪽 손의 뼈까지 바스러지자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남자는 입만 벙끗거릴 뿐 소리도 지르지 못했다.

질끈 감은 남자의 두 눈에서는 눈물만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그때 남자의 귓가에 낮게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건 분명 인간이 낼 법한 소리가 아니었다.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남자가 고통을 참고 눈을 떴다.

그러자 그의 얼굴과 맞닿을 듯 붙어 있는 경찰의 얼굴이 보였다.

경찰은 굶주린 개처럼 입가에 침을 질질 흘리며 그의 목 주변에 코를 들이대고 냄새를 맡고 있었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남자가 흐느끼며 물었지만, 경찰은 아무런 대꾸도 없이 무슨 중요한 일이라도 되는 듯 열심히 냄새만 맡았다.


그리고는 찾던 것을 찾았는지 냄새 맡는 것을 멈추고는 갑자기 입을 쩍 벌렸다.

입이 벌어지자 그 안에 감추어져 있던 네 개의 송곳니가 드러났다.

네 개의 뾰족한 송곳니는 엄지손가락보다 훨씬 길어 보였다.


그제야 남자는 자신이 상대하고 있는 경찰이 보통의 인간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공포에 휩싸인 민소매 남자가 덜덜 떨며 애원했다.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한 번만 살려주시면 앞으로는 착하게 살겠습니다.”


그러자 도경이 얼굴을 들고 남자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번들거리는 두 개의 검은 눈을 마주한 남자는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너무 편해서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러자 공포에 절었던 민소매 남자의 표정도 생전 그런 적이 있었나 싶은 정도로 아주 편안해졌다.


도경이 그런 남자의 머리채를 잡고 뒤로 당기자 남자의 고개가 힘없이 뒤로 젖혀졌다.

달빛에 남자의 살찐 목이 허옇게 드러났다.


도경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는 남자의 목에 자신의 긴 송곳니들을 박아 넣었다.

남자의 경동맥에서 분출되는 피가 도경의 목구멍을 타고 벌컥벌컥 쏟아져 들어갔다.

그러자 삼 일간 이어진 갈증이 말끔히 사라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피가 흐르는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7 복귀 24.09.17 2 0 13쪽
» 흡혈 24.09.13 8 1 11쪽
5 발동 24.09.10 9 1 12쪽
4 냄새 24.09.06 15 0 16쪽
3 미라 24.09.03 14 0 9쪽
2 교통사고 24.08.30 13 0 10쪽
1 프롤로그 24.08.30 14 0 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