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 흐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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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한
작품등록일 :
2024.08.30 17:17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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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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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동

DUMMY

# 발동


“이게 무슨 냄새지?”

도경의 말에 김순경이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는 이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무슨 냄새요? 전 잘 모르겠는데요.”


“뜬금없이 웬 냄새 타령이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무슨 일인지 나가보자고.”

최 경위가 우식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들의 뒤를 따르던 도경이 탕비실 문 옆에 붙어있는 거울 보고 깜짝 놀라며 걸음을 멈추고 거울 속에 비친 자기 눈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눈의 검은자위가 훨씬 더 켜져 있었다.

그리고 거울을 보는 동안에도 눈동자의 검은 부위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눈동자 중앙의 검은자위는 수면에 떨어진 잉크처럼 번져나가 동공의 갈색 부위와 붉게 충혈된 흰자위를 순식간에 검은색으로 물들여 버렸다.

혹시나 하고 눈알을 이리저리 굴려봤지만, 흰자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형광등 불빛을 받아 검게 번들거리는 두 개의 검은 눈은 사고 현장에서 본 화상을 입은 여자의 눈과 완벽하게 닮아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때 탕비실 밖에서는 도경을 찾는 최 경위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경은 급한 데로 윗주머니에 꽂아둔 선글라스를 빼서 다시 쓰고 탕비실을 나섰다.


그런데 밖으로 나오자 달큼한 냄새가 더욱 짙어졌다.

그러자 식욕이 끓어 넘칠 것처럼 솟구치면서 그동안 참아왔던 허기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입안에 군침이 가득 고이고 턱이 뻐근하게 당겼다.

사흘 동안 굶주렸던 허기가 한꺼번에 몰려오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도경은 달큼한 냄새를 따라 지구대 입구에 위치한 민원인 대기실로 홀린 듯 걸어갔다.


지구대 출입문 앞에 위치한 민원실에는 수갑을 찬 40대 남자가 대원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남자는 어디서 다쳤는지 코가 퉁퉁 부어 있었고 입고 있는 옷이 군데군데 피로 얼룩져 있었다.

피가 아직 멈추지 않았는지 양쪽 콧구멍을 휴지도 막아 놓은 상태였다.

달큼한 냄새는 그 코피가 난 남자에게서 풍겨 나오고 있었다.


“경찰이면 사람 얼굴을 이렇게 만들어놔도 되는 거야?”

코피가 난 남자가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말했다.

“만들긴 누가 만들어요? 그쪽이 도망치려다가 넘어져서 그렇게 된 거잖아요.”

남자를 체포해 온 것으로 보이는 이성묵 경장이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내가 혼자 넘어졌어? 자네가 잡는 바람에 넘어진 거잖아. 내 코 어떻게 할 거야? 아무래도 코뼈가 부러진 것 같으니까 빨리 병원에 가자고.”

“그러길래 왜 도망을 쳐요? 그리고 코피 좀 났다고 어떻게 되는 거 아니니까 엄살 좀 그만 부려요.”

“아이 씨. 그러다 코라도 삐뚤어지면 자네가 책임질 거야? 점쟁이가 이 오뚝한 코 덕분에 먹고사는 거라고 했단 말이야.”

“제가 왜 그쪽 인생을 책임집니까?”


그때 옆에서 지켜보던 최 경위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이 경장. 무슨 일인데 그래?”

“식당에서 고기에 술까지 시켜서 먹고 돈 내지 않는다는 신고가 들어와서 무전취식 현행범으로 체포해 온 겁니다.”

“누가 안 준데? 당장 돈이 없으니 외상 좀 해달라고 한 건데 야박하게 시리.”


”그런데 이분 얼굴은 왜 이래?“

최 경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순찰차에 태우려는 과정에서 이분이 갑자기 도주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팔을 잡았는데 이분이 중심을 잃고 넘어지면서 순찰차 문에 얼굴을 부딪친 것 같습니다.”

“그러길래 조심했어야지. 많이 다치신 것 같은데 병원부터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최 경장의 말에 코피가 난 남자가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아이고 역시 높으신 양반이라 사리 분별이 뛰어나시네.”

하지만 이성묵 경장은 최 경장의 말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코피 좀 난 건데요 뭘. 그리고 이분 신분증도 제시하지 않고 주민등록번호도 엉터리로 불러준 게 아무래도 수상합니다.”

“집에 지갑을 놓고 왔다니까. 그러니까 돈도 못 낸 거고.”

남자가 자신의 바지 주머니를 까뒤집으며 말했다.

“그러면 주민등록번호는 왜 엉터리로 불러준 거예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니까 그러네. 피를 하도 흘려서 그런가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그래. 이거 봐. 얼마나 피를 흘렸으면 옷이 이렇게 됐겠어.”

남자가 수갑을 찬 손으로 피가 묻은 티셔츠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참나. 그깟 코피 좀 났다고 주민등록번호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게 말이 돼요?”

“정말 어지러워 죽겠으니까. 아이고, 어지러워라.” 코피가 난 남자가 정말 어지러운 듯 비틀거리며 말했다.


그러자 최 경위가 겁을 집어먹은 목소리로 이성묵 경장에게 말했다.

“이 경장. 빨리 이분 병원에 모시고 가.”

“신원 조회만이라도 먼저 해보고···.”

최 경위가 짜증을 내며 이성묵 경장의 말을 끊었다.

“그러다 사람 하나 잘못되기라도 하면 자네가 책임질 거야? 신원은 다녀와서 확인하고 빨리 병원으로 모시고 가. 수갑도 풀어 드리고.”

“하지만···.”

“자네 지금 상관의 명령을 거역하겠다는 거야?.”

최 경위의 입에서 명령이라는 말까지 나오자 이성묵 경장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열쇠를 꺼내 남자의 수갑을 풀었다.


수갑이 풀리자 코피가 난 남자가 내심 쾌재를 불렀다.

여기까지는 그의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사실 남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어두운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신분이 밝혀지기 전에 어떻게 든 도망쳐야 했다.

체포될 당시 도망치려 했지만, 경찰에게 잡히고 말았다.

그래서 그는 순간적으로 기지를 발휘했다.

넘어지는 척하면서 순찰차에 얼굴을 박아버린 것이다.

생각보다 코를 심하게 다쳐 속이 쓰리긴 했지만, 그 정도는 돼야 병원에 데려다 줄 것 같았다.

병원에만 가면 어떻게 든 도망칠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를 체포한 경찰은 보기 드물게 꽉 막힌 인간이었다.

오는 내내 엄살을 부렸지만, 막무가내로 경찰서로 끌고 와 버렸다.


경찰서에 끌려 들어온 순간 모든 게 끝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역시 하늘은 노력하는 자의 편이었다.

그를 체포해 온 경찰의 상관은 겁이 무지하게 많은 보이는 작자였다.

혹시나 하고 조금 엄살을 부렸더니 금방 겁을 먹고 병원으로 데려가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이제 수갑도 풀었으니 도망치는 건 누워서 떡 먹기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별안간 이상한 경찰이 등장하면서 그의 계획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자기가 무슨 로보캅이라도 되는지 선글라스를 쓰고 나타난 경찰은 마치 땅속에 묻어 둔 먹이를 찾는 개처럼 코를 킁킁거리며 그에게 다가왔다.

당황한 남자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지만, 얼마 가지도 못하고 등이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게 되자 남자는 옆으로 몸을 돌려 빠져나오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선글라스를 쓴 경찰이 오른손으로 남자의 목 아래 가슴 부위를 강하게 눌렀다.

코피가 난 남자는 가슴이 커다란 바위에 눌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엄청난 압박에 가슴에서 뿌드득 하는 소리가 나면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남자의 입에서는 가는 신음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뒤에서 이를 지켜보던 최 경위가 경악하며 소리를 질렀다.

“박도경 경장. 지금 뭐 하는 거야. 그거 빨리 놓지 못해!”

그와 동시에 우식도 도경의 팔을 잡고 말렸다.


“박 경장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어느새 도경의 곁으로 다가온 우식이 도경의 팔을 잡고 외쳤다.

하지만 도경이 왼손으로 우식을 밀치자 우식은 단번에 거의 3미터가량 날아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우식의 뒤를 이어 다른 동료 셋이 도경에게 덤벼들었지만, 힘 한 번 못써보고 모두 멀찌감치 나가떨어졌다.

실로 엄청난 힘이었다.

한 손으로 사람을 날려버리는 걸 본 최 경위는 아연실색한 채 벙어리처럼 서 있었다.


하지만 더 놀란 건 당사자인 코피가 난 남자였다.

선글라스를 쓴 경찰의 엄청난 힘을 몸소 체험하고 있는 남자는 문득 이 경찰이 정말 로보캅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남자는 그게 헛된 망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던 선글라스를 쓴 경찰이 갑자기 낮게 그르렁거리며 입을 쩍 벌렸다.

경찰과 얼굴을 바짝 맞대고 있던 남자는 도경의 드러난 이빨을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선글라스를 쓴 경찰의 송곳니가 점점 길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순식간에 새끼손가락만 한 길이로 자라난 네 개의 송곳니는 무척 날카로워 보였다.

이제 선글라스를 쓴 경찰은 더 이상 로보캅처럼 보이지 않았다.

길고 뾰족한 송곳니 사이로 침을 질질 흘리는 경찰은 이제 괴기 영화에 나오는 흡혈귀처럼 보였다.


코피가 난 남자는 너무 무서워서 바지에 오줌을 싸고 말았다.

두려움과 호흡 곤란을 겪던 남자는 결국 입에 거품을 문 채 혼절하고 말았다.

도경이 고개를 늘어뜨린 남자의 목에 송곳니를 박아넣으려고 했다.


“박 경장님. 제발 그만하십시오.”

어느새 다시 도경의 곁으로 다가온 김우식 순경이 애원하듯 외쳤다.

하지만 우식의 말은 도경의 의식에 닿지 않았다.

지금 도경은 이성은 피에 대한 갈망에 잠식된 상태였다.


달큼한 냄새에 홀리듯 코피가 난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간 도경은 그 냄새의 정체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건 바로 남자의 코와 옷에서 묻은 피의 냄새였다.

그 진한 피의 냄새가 도경 안에 잠재되어 있던 피에 대한 갈망을 일깨웠다.

자신이 인간의 피를 마시고 싶어 한다는 걸 깨달은 순간 도경은 그 생각에 떨쳐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삼 일 넘게 굶주림과 갈증에 시달린 도경은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드는 갈망에 저항할 힘이 없었다.

생존본능처럼 강해진 피에 대한 갈망은 저항하려는 도경의 의지를 손쉽게 꺾어버렸다.


의지가 꺾이자 가슴속에서 원인 모를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서 온몸의 감각들이 극도로 예민해졌다.

그리고 그 근원을 알 수 없는 거대한 힘이 폭발하듯 솟구쳤다.

도경은 예민해진 후각을 이용해 남자의 목에서 피가 맥동하는 경동맥을 찾아내 그곳에 이빨을 박아넣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낯익은 여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멈춰요. 제발.”

그건 분명 화상을 입은 여자의 목소리였다.


여자의 짧은 몇 마디가 피의 갈망에 잠식되어 있던 도경의 이성을 깨웠다.

그러자 활활 타오르던 분노도 점차 사그라지면서 도경의 의지가 다시 그의 몸을 통제했다.

송곳니가 남자의 목에 닿기 직전에 도경이 동작을 멈췄다.


정신이 든 도경은 주변을 둘러봤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화상을 입은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의 어깨를 부여잡고 있는 우식과 눈이 마주쳤다.

우식의 눈빛은 걱정과 공포로 흔들리고 있었다.


도경이 혼절해 몸이 축 늘어진 남자를 부축해 바닥에 눕혀놓았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봤다.

바닥에 널브러진 채 괴로운 듯 신음을 흘리고 있는 그의 동료들이 마치 괴물이라도 본 듯한 경악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서 화상을 입은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여자의 음성 덕분에 피에 대한 갈망을 잠시 뿌리치긴 했지만,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이제는 코피가 난 남자뿐만이 지구대의 대원들에게서도 그 달큼한 피 냄새가 났다.


도경은 출입문을 박차고 지구대 밖으로 뛰쳐나갔다.

뒤에서 동료들이 그를 부르며 따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또다시 피를 마시고 싶은 충동에 이성이 마비될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도경은 횡단보도의 신호도 무시한 채 계속해서 달렸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놀라서 멈춘 차량에 탄 사람들이 인상을 찌푸리며 도경을 쳐다봤다.


하지만 아무리 달려도 피 냄새는 계속 그를 쫓아다녔다.

도경은 이제 인간의 얇은 피부 아래 흐르는 피의 냄새까지 맡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거리와 건물의 입구에서 불어오는 바람 속에도 그 달큼한 피 냄새가 섞여 있었다.

피 냄새를 맡을 때마다 피를 마시고 싶은 충동이 불쑥불쑥 치밀었다.

충동에 다시 정신이 지배되지 않으려면 서둘러 피 냄새가 나지 않는 곳으로 가야 했다.

하지만 도시는 인파와 그들이 내뿜는 피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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