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 흐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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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한
작품등록일 :
2024.08.30 17:17
최근연재일 :
2024.09.17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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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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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

DUMMY

# 미라


공포에 휩싸인 도경은 사력을 다해 여자에게서 빠져나오려고 했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전신마취라도 당한 것처럼 힘이 쭉 빠지면서 의식도 점점 흐릿해졌다.

흐릿해지는 의식 속에 이대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러자 그동안 살아왔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즐겁고 행복한 기억보다 아쉽고 억울한 기억이 더 많은 걸로 봐서 그리 좋은 삶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이렇게 죽는다니 너무 억울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의식이 멀어져갔다.

.

.

.

.

.

“정신이 좀 드십니까?”

주황색 구조대 복장을 한 중년의 한 남자가 바닥에 무릎을 대고 앉아 바닥에 엎드린 도경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도경이 몸을 일으키려 하자 남자가 일어나지 못하게 도경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움직이지 마세요.”

“네?”

“목을 다치신 것 같습니다. 목뒤에 피가 묻어 있어요.”

도경이 팔을 돌려 목을 만졌다.

손에 검은 그을음과 함께 붉은 피가 묻어 나왔다.

조금 전 여자에게 물린 곳이었다.

“가만히 계세요. 제가 좀 봐 드릴게요.”

중년의 구조대원이 손전등을 꺼내 들고 도경의 목뒤를 비췄다.

그러자 도경이 황급히 몸을 돌려 일어서려고 했다.

하지만 갑자기 어지러움이 몰려와 팔을 집고 땅에 주저앉았다.

“거. 움직이지 마시라니까요.”


“괜찮습니다. 별거 아니에요.”

“별거 아닌데 왜 이런데 쓰러져 있었던 겁니까?”

“그건” 순간적으로 거짓말이 입 밖으로 튀어 나갔다. “좀 놀라서 그런 겁니다.”


도경의 말을 들은 구조대원이 고개를 돌려 불에 탄 승용차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심각한 얼굴이 되어 도경에게 물었다.

“탑승자 상태가 그렇게 안 좋습니까?”

“네?”

“놀라서 쓰러지셨다면서요? 탑승자를 보고 그런 거 아닌가요?”

“아. 맞습니다. 운전석에 여자가 타고 있는데 화상이 아주 심해 보였습니다.”

“다른 탑승자는 없던가요?”

“네. 보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군요. 저희도 여러 사고 현장에서 희생자들의 모습을 보고 가끔 충격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특히 화재 사고일 때는 충격이 더 심하죠. 증상이 심해지면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아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중년의 구조대원이 다 이해한다는 투로 말을 이어가다가 도경의 목을 바라보며 물었다. “우선 다친 곳을 좀 보죠.”

“정말 괜찮습니다. 조금 전에 탑승자 상태를 확인하다가 차 유리에 살짝 긁힌 것뿐입니다.”


도경의 말에 구조대원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손에 든 구급상자에서 소독약과 거즈를 꺼내 도경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그러면 이걸로 다친 곳을 소독하세요. 감염이라도 되면 큰일 납니다.”

중년의 구조대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사고 차량으로 향했다.

사고 차량 주변에는 네다섯 명의 구조대원들이 모여 있었다.

그중 한 명이 절단기로 운전석의 문짝을 잘라내고 있었다.


도경은 사고 차량으로부터 약 1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와 있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건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조금 전 벌어졌던 일이 현실이 아닌 꿈처럼 느껴졌다.


도경은 다시 손으로 목의 뒤쪽을 만져봤다.

손에 선명한 붉은 피가 손에 묻어 있었다.

분명 꿈은 아니었다.


정말 여자가 그의 목을 물었던 것일까?

하지만 여자는 온몸에 화상을 입고 생사를 오가는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그를 꼼짝하지 못하게 하고 목을 물었다는 말인가?

그리고 대체 왜 그의 목을 문단 말인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구조대원에게도 여자에게 물렸고 말하지 못했다.

자기도 믿지 못하는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해봤자 미친 사람 취급당 이나 당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여자는 어떻게 됐을까?


도경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순간적으로 현기증이 느껴지긴 했지만 견딜만했다.

일어나서 보니 제복과 온몸이 온통 흙투성이였다.

아무래도 정신을 잃은 뒤 여기까지 굴러서 온 것 모양이었다.


그때 차량의 문짝이 떨어져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도경 사고 차량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하지만 도경이 서 있는 곳에서는 구조대원들의 등에 가려 운전석 내부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문짝이 떨어져 나간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구조대원들이 여자를 차량 밖으로 빼내지 않았다.

그저 운전석을 바라보면 자기들끼리 무언가를 수군댈 뿐이었다.


도경이 구조대원들을 향해 물었다.

“운전자는 괜찮습니까?”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려서 나왔다.

“네?”

조금 전 만났던 중년의 구조대원이 도경을 바라보며 알아듣지 못한 듯 되물었다.

“운전자가 살아있냐고요?”

도경이 다시 묻자 주위의 모든 구조대원의 시선이 일제히 도경을 향했다.


다들 약간 어이가 없는 듯한 표정이었다.

중년의 구조대원 대답은 하지 않고 도경에게 되물었다.

“경관님. 운전석의 시신이 원래 이런 상태였습니까?”

시신이라는 말에 도경은 여자가 죽었다는 걸 알았다.


구조대원들이 도경이 운전석을 볼 수 있도록 옆으로 비켜났다.

그런데 구조대원들 사이로 드러난 운전석을 본 도경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운전석에는 있는 시신은 그가 보았던 화상을 입은 여자가 아니었다.


조금 전까지 운전석에 있던 여자는 온몸에 심한 화상을 입긴 했지만, 분명 살과 피로 이루어진 사람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 운전석에는 시신은 아무리 봐도 피는 고사하고 단 한 방울의 수분조차도 나오지 않을 것처럼 완전히 말라붙어 있었다.


검게 말라붙은 얇은 피부 위로 앙상한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시신은 마치 영화나 다큐멘터리에서 본 미라처럼 보였다.

눈이 있던 자리는 뻥 뚫린 구멍만 남아 있었고 입술도 완전히 사라져 누런 이빨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아무리 봐도 그 시신은 죽은 지 수십 년 이상은 되어 보였다.


도경은 운전석으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시신을 자세히 살폈다.

그리고 몇 가지 이상한 점을 찾아냈다.


우선 미라의 몸에 걸쳐진 불에 탄 옷과 발에 신겨진 구두가 그가 조금 전 보았던 화상을 입은 여자의 것과 똑같아 보였다.

안전밸트도 미라의 몸에 그대로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 미라의 위쪽 양 송곳니 끝에 묻은 붉은색 물질이 도경의 눈에 띄었다.

아주 작은 흔적이었고 주변이 어두워 얼핏 보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여자에게 물렸던 터라 도경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그건 분명 피처럼 보였다.


“경관님. 처음 발견하셨을 때 시신이 이런 상태였던 게 맞습니까?”

중년의 구조대원 다시 물었다.

하지만 도경은 머리가 혼란해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운전석에 앉아있는 시신은 분명 그 여자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화상을 입은 여자는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그리고 불에 탄 옷가지와 송곳니에 묻은 피는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도경은 어떻게 된 상황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구조대원들에게 뭐라 설명해야 할지 알 수가 않았다.

있는 그대로 설명해봐야 믿지도 않을 것 같았고 자칫 괜한 의심만 살 것 같았다.


도경이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중년의 구조대원 옆에 있던 젊은 여자 대원이 약간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요. 왜 대답을 못 하시는 거예요.”

추궁하는 듯한 여자의 말에 도경이 결국 다시 거짓말을 했다.

“네. 맞습니다. 제가 발견했을 때도 이런 상태였어요.”

“확실한 거죠?”

젊은 여자 대원이 의심스러운 듯 다시 물었다.

“네. 확실합니다.”

“그런데 방금 운전자가 괜찮냐는 둥 살아있냐는 둥 왜 물으신 건 거예요? 딱 봐도 죽은 지 한참 지난 시신인데요.”

“그건.” 도경이 잠시 변명할 말을 찾다가 이어서 말했다. “제가 잠깐 의식을 잃은 바람에 잠시 착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도경의 말에 여자 대원이 뭔가 더 물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중년의 구조대원이 여자 대원의 말을 막았다.

“이봐. 뭘 그리 꼬치꼬치 캐물어. 자네가 경찰이라도 돼?”

“아니. 이상하잖아요. 누가 봐도 사망한 지 수십 년은 돼 보이는데 시신을 두고 살아있냐고 묻는 게요.”

“착각했다고 하시잖아. 변사체 보면 우리도 왜 그럴 때가 있잖아. 거. 아는 사람끼리 왜 그래?”


젊은 여자 대원이 입을 다물자 중년의 구조 대원이 도경을 향해 말했다.

“죄송합니다. 경관님. 저 친구가 워낙 오지랖이 넓어 놔서요.”

“아닙니다. 제가 말을 착각해서 벌어진 일인걸요.”

“그럼 경찰 측에 지원 요청을 좀 해주시겠습니까?”

“네?”

“저 시신이 운전했을 리는 없으니 다른 탑승자가 있었을 거 아닙니까. 혹시 어딘가에 추락해 있을지도 모르니 주변 수색을 해 보려고 하는데 저희만으로는 인원이 부족해서요.”

“아. 그래야지요.”


도경은 곧바로 연락을 취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구대에서 별도의 인원들이 도착했다.

구조대와 경찰의 합동 수색은 동이 튼 이후에도 계속됐다.

도경도 수색에 참여했다.

하지는 결국 다른 탑승자는 발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화상을 입은 여자나 그 흔적 같은 것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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