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세계로 다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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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무디
작품등록일 :
2024.09.01 14:19
최근연재일 :
2024.09.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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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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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가 좋지 않군

DUMMY

살짝 인상을 찌푸린 애셔가 입을 열었다.


“······조금 더 크게 말할 수 있는가? 그대가 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아.”

“아! 정이재! 정이재 입니다! 살려주셔서 감사해요. 애셔······님?”

“그냥 애셔라고 불러.”


애셔는 눈앞에 있는 꼬질꼬질한 남자, 정이재의 이름을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정이재? 정이재······.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특이한 이름이군. 애셔는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정이재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의 모습을 한 번 훑기 시작했다. 지금 날씨와는 어울리지 않는 얇고 짧은 여름옷, 그리고 이상한 꽃무늬······. 저런 걸 왜 입고 있는 거지? 그리고 나와 비슷한 검은색 머리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수수하게 생겼군. 확실히 이곳에서는 본 적 없는 특이한 복장과 생김새다. 혹시 다른 곳에서 온 사람인가? 적어도 이 근방에 살던 사람은 아니겠어, 그리고 처음 봤을 때부터 짐작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이 자는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아······. 어딘가 전체적으로 이상하고 수상하다. 애셔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던 정이재가 이젠 머리를 쥐어뜯으며 쭈그려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 큰 다짐을 한 뒤 입을 열었다.


“······그대의 상태가 별로 좋아 보이지 않으니 일단 나와 동행하지. 근처에 마을이 있으니 먼저 그곳으로 가는 게 좋겠어.”

“네? 아 네네······.”

“어두우니 서두르지. 길을 잃지 않게 잘 따라오도록 해.”


일단 근처 마을에 데려다준 후 다시 생각해 봐야겠군. 일단 나도 해야 할 일이 많으니 말이야. 애셔는 자신이 입고 있던 로브를 정이재에게 주고 앞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한편 이재는 애셔가 머리 위로 떨어뜨린 로브를 주섬주섬 입고 있었다. 그리고 로브의 가슴팍에 달린 특이한 문양의 녹색 보석을 바라보았다. 보석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이재는 가장자리에 적힌 ‘Asher’라는 글자를 매만지며 생각했다.


‘나······ 아무래도 웹소설에 들어오게 된 것 같다고. 그것도 내가 쓴······.’


*


“정이재. 발이 불편하진 않은가?”

“네? 아, 네네. 괜찮아요.”

“이곳과 가까운 곳이니 조금만 더 걸으면 돼.”


애셔는 뒤따라오던 정이재를 보며 말했다. 정이재가 신고 있는 거라 곤 털이 복슬복슬한 양말뿐이었지만 그는 괜찮다는 듯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 길은 험하진 않지만 작은 크기의 돌멩이들이 많다. 분명 발이 아플 텐데. 두꺼워 보이긴 하지만 발을 보호해 줄 거라곤 저 양말밖에 없는데도 괜찮다고 하다니. 혹시 귀찮게 굴면 내가 버리고 갈 거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건가? 게다가 걸으면서 계속 구역질을 하는 걸 보니 몸도 많이 안 좋아 보이는데. 아까 너무 많이 울어서 그런가? 애셔는 점점 측은한 눈빛으로 정이재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앞서나가던 발걸음을 천천히 늦추고 정이재의 걸음에 맞춰 나란히 걸어갔다. 하지만 이재는 애셔가 생각하는 것과는 아주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미친 숙취······. 속 안 좋아 죽겠네.’


이재는 숙취로 난리가 난 속을 부여잡으며 눈앞에 있는 이 남자, 애셔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쭉 훑어보았다. 7:3 가르마, 흑발 곱슬, 진한 쌍꺼풀, 녹색 눈, 가로로 긴 입, 남성적인 오각형 턱, 188은 되어 보이는 큰 키와 덩치, 검정 셔츠와 바지, 거기에 장갑과 조끼까지 올블랙 패션. 재영이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 한 잘생긴 흑발 남주 스타일인 걸 보니 일단 겉모습은 애셔가 맞다. 흔하지 않은 친절한 성격까지 보면 아마 애셔가 맞는 거겠지.

한편 애셔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며 아주 작게 중얼거리는 정이재 때문에 옆으로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자신과 눈도 잘 못 마주쳤던 이재가 그때와는 다르게 애셔를 아주 빤히 보고 있었으니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주 난감했다. 무언가를 확인하듯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정이재의 시선에 애셔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한 얼굴을 하더니 갑자기 자신의 목덜미를 더듬어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니브.”

“앙앙-!”

“악-!”


목에서 꺼내든 건 애셔가 니브라고 부르는 동물이었다. 목에서 꺼낸 니브가 소리를 내자 정이재는 깜짝 놀라 위로 펄쩍 뛰었다. 그리곤 애셔와 약 다섯 발자국 떨어진 곳으로 후다닥 뛰어갔다.


“니브는 하늘다람쥐다. 며칠 전 숲에서 다친 걸 발견했는데 치료해 주었더니 날 따르더군.”


애셔는 자신의 손바닥에 있는 니브를 놀란 정이재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그러자 정이재는 눈을 아주 커다랗게 뜨더니 애셔의 손 위에 있는 니브를 계속 바라보았다. 그런 정이재를 본 애셔는 살짝 뿌듯했다. 확실히 동물이 정신이 불안정할 때 도움을 주는군. 나도 그랬으니 말이야.


“손 위에 올려보겠나? 물지 않으니 괜찮아. 그보다 넌 이 근방의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어디서 왔지?”


애셔는 정이재의 손바닥 위로 니브를 올려주며 말했다. 이제 정신상태도 아까보단 나아졌을 테니 슬슬 물어봐도 괜찮겠지. 정확한 이재의 답을 바랐던 애셔가 일종의 애니멀 테라피까지 선사하며 물어본 질문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이재는 자신의 추리가 맞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연기를 펼치기 시작했다.


“아 저는······ 모르겠어요. 이름이랑 나이 말고는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아 저는 27살이에요. 근데 지금 가고 있는 곳은 애셔가 사는 마을인가요?”

“······뭐? 기억을 잃었다고?”


애셔는 깜짝 놀라 이재를 바라보았다. 이 남자도 기억을 잃었다. 바로 나처럼. 지금까지 정이재가 이상하다고 느꼈던 건 기억이 없어서였군. 원래는 마을에 데려다주고 가려고 했는데······. 그래도 나이가 적은 건 아니니 괜찮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자마자 흙으로 새까매진 양말에 눈물, 콧물 자국을 매달고 있는 눈앞의 남자를 보니 그런 생각이 쏙 들어갔다.


‘하지만 나도 이 남자를 책임질 수는 없어.’


나도 기억이 없는 상태로 남의 집에 얹혀살고 있는데 그 집에 데려갈 수도 없고. 그리고 내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것······. 일단 이 일이 먼저이기도 하고 또 다른 일도······.


“······일단 지금 가고 있는 마을은 내가 살던 마을인지 나도 알 수 없어. 나도 그대처럼 기억을 잃었거든,”

“아······. 그럼 애셔는 혹시 기억나는 거 있어요?”

“기억나는 건 있지만······. 그대에게 말할 수는 없군.”


이 대화를 마지막으로 둘 사이 정적이 이어졌다. 애셔는 어딘가 공허한 눈빛으로 그저 걸어가고 있을 뿐이었고 이재는 손 위에 니브를 올린 채 그 옆을 따라가고 있었다. 따뜻하다······. 중얼거리던 이재는 손바닥 위에 널부러져있는 니브를 보며 생각했다.


‘역시 이곳은······ ‘새세법사 초기 설정’ 세계다.’


하필 초기 설정이라니. ‘새세법사’는······. ‘새 인생 사는 이세계 흑마법사’의 줄임말로 웹소설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다른 의미로 유명한 소설이다. 설정 구멍, 말도 안 되는 억지, 대체 배경을 알 수 없는 물건들. 매화마다 악플이 댓글의 80%를 차지하는 유명한 망소설이다.


‘환장하겠네. 이럴 수가 있나? 진짜로?’


나도 처음에는 그냥 ‘새세법사’ 세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초기 설정에만 나왔던 니브를 보니 이곳이 초기 설정 세계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차라리 초기 설정 말고 연재분 세계였으면 그나마 나았을 텐데. 초기 설정은 어렸을 때 나중에 꼭 쓰자며 재영이와 함께 재미로 짠 거라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아주 구체적으로 적혀있다. 그리고 이렇게 구멍 난 설정의 대부분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게 ‘새세법사’다. 이걸 대체 무슨 정신머리로 썼냐고 물어보면······ 할 말이 없네. 아무래도 좋으니 일단 쓰고 보자 하고 쓴 소설이니까. 그래도 들어 온 게 내가 쓴 소설이라 다행이야. 내용을 아무것도 모르는 것보단 망소설이여도 내가 써서 알긴 하니까. ······아닌가? 차라리 망소설보다 모르는 소설 속이 더 나은가?


“그럼 왜 관 속에 있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나?”

“네? 아 네. 그냥 눈떠보니까 거기였어요.”


한참을 생각에 잠겨있던 사이 멍하니 걷던 애셔가 갑자기 내게 말을 걸었다. 나는 손 위에 있던 니브를 오른쪽 어깨 위로 올리며 대답했다. 아까 애셔에게 한 대답들은 이름, 나이 빼면 다 거짓말이었지만 이 대답은 진실이다. 진짜 눈떠보니까 관 속이었다. 처음 눈을 떴을 때는 작은 통 안에 갇혀있길래 술김에 내가 쓰레기장에 들어갔나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지만 그땐 너무 취해서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으니까. 일단 다시 잤는데 술이 좀 깨고 다시 일어나보니 그게 관 속이였다는 걸 알게 됐다. 내가 술 먹고 길바닥에서 이상한 짓 하다가 남의 묘 파고 관짝에 들어갔나까지 생각했는데 지금 잠옷을 입고 있는 걸 보니 집에 제대로 간 건 확실하다. 정이재 술버릇. 집 가서 씻고 잠옷으로 갈아입고 자기. 집에는 확실히 들어갔다.

근데 사실 정신이 들었을 땐 술에 취해서 헛걸 보고 있거나 꿈을 꾸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니까. 하지만 관 뚜껑을 열심히 두들겨 댔던 손발이 아직도 욱신거리고 있는데 꿈일 리가 없지. 게다가 숙취까지······. 꿈에서까지 숙취가 느껴진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러니 이건 의심할 여지가 하나도 없는 현실인 거다.


‘그럼 난 여기 어떻게 온 거지? 그보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이 상황을 웹소설 작가로서 이 상황을 이해해 보자면 지금 난 흔한 소재인 빙의물 혹은 차원 이동물을 겪고 있는 거다. 자고 일어났더니 내가 무림 고수, 눈떠보니 공작가 막내딸이 됐습니다. 이런 소설들 말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난 지금 그 소설들 주인공처럼 된 거다.

‘근데 그런 웹소설을 보면 보통 독자한테 이런 일이 생기지 않나? 난 작가인데 왜······.’

그럼 집은 어떻게 가? 집에 가서 좀 눕고 싶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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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당연한 거 아님? 24.09.15 5 0 11쪽
9 맛이 없어요 24.09.14 6 0 11쪽
8 맛이 갔구나 24.09.13 5 0 10쪽
7 잠은 못잤어요... 24.09.11 5 0 11쪽
6 잠이 쏟아져요 24.09.10 7 0 10쪽
5 잠시 이야기 좀 하지 24.09.09 6 0 11쪽
4 빈집털이범인가요? 24.09.06 6 0 10쪽
3 궁금한 게 있어요 24.09.04 6 0 10쪽
» 상태가 좋지 않군 24.09.03 11 0 11쪽
1 넌 누구지? 24.09.02 13 0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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