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더니 천재 서자가 되었다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새글

고각
작품등록일 :
2024.09.01 14:33
최근연재일 :
2024.09.19 08:20
연재수 :
19 회
조회수 :
12,902
추천수 :
373
글자수 :
87,108

작성
24.09.02 07:20
조회
1,198
추천
28
글자
10쪽

날 살해한 자가 내 시종이 되었다(1)

DUMMY

1.

그래, 언젠가 그런 적도 있었다.


문테아누 제국 황궁 알현실 안.

황좌 옆에 위치한 깃발이 찬란하게 펄럭였다.

환한 햇빛을 머금은 깃발 안에선 금빛 사자가 포효했다.

그 밑으론 고귀한 귀족들이 셀 수 없이 늘어섰다.

알현실 밖에선 성가대의 합창이 대륙 전역에 퍼졌고, 황실 기병대의 말발굽 소리가 대륙을 질주했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은 달랐다.

황좌 양옆에 위치한 깃발은 절반가량이 찢겨있었다.

깃발 안 금빛 사자는 핏물에 젖어있는 게 숨이 멎은 것 같았다.

이는 깃발 아래에 위치한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기까지인가.”

“폐하······.”


황좌 옆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이란.

황좌에 위태롭게 앉아 있었다.

얼굴엔 흉터가 가득했으며 왼쪽 어깨 아래가 텅 비어있었다.

복부에선 지혈되지 않은 피가 꾸역꾸역 흐르고 있었고, 검을 지팡이 삼아 애써 버티고 있었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나.’


그런 와중 나는 문득 옛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건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과거 나는 제국의 3황자로 태어났다. 그렇지만 난 그리 주목받지 못했었다.

나보다 마나 재능이 뛰어난 형제가 있었고, 정치 감각이 뛰어난 형제가 있었으며, 가진 세력이 월등한 형제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진즉 황위에 욕심을 버렸었다. 험난한 황궁에서 그저 살아남고자 했다.

황제의 눈밖에 벗어나지 않고자 그 무엇이라도 배우고, 궂은일에 앞장섰었다.

가진 것이 많지 않았던 내가 살아남기 위한 무기.

나로선 명분과 인망이라 판단했고, 처음엔 그것을 계산적으로 쌓아 올렸었다.


그런데.


그 결과 나는 죽어가고 있었다.

곳곳이 불타오르는 황성. 반파된 황궁 안에서 피 칠갑이 된 기사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폐하, 마지막인 만큼 한 가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사지 멀쩡하지 않은 소수의 기사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말하라.”

“왜 전하께선 궁에 끝까지 남으셨습니까.”

“하고 싶은 말을 정확히 하라.”

“폐하께선 다른 황족처럼 악마를 피해 남부로 피신할 수 있었습니다. 억지로 황제란 감투를 쓰지 않고 피난하는 신민들을 위해 희생하지 않아도 됐습니다. 그런데 왜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셨나이까.”


이에 나는 처음엔 짧게 답했다.


“글쎄.”


그것을 언뜻 한 문장으로 설명하기엔 흘러온 세월이 적지 않았기에.

하지만 나는 이내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내 신민들이 아직 제국에 남아있지 않나.”


그것은 죽음을 앞둔 지금에서야 명확히 뱉을 수 있는 답이었다.

과거엔 왕권의 욕심도, 제국의 자부심도, 특별한 이념도 없었다. 그저 생존 의식과 내 영역을 만들고자 했던 나였다.

그런데 여러 인연을 겪으면서···그들이 내 가슴에 남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죽음을 무릅쓰고 이 사지에 남지 않았겠지.

적에 대항하며 가신들을 잃은 슬픔이, 허망하게 죽는 신민들이, 악마로부터 죽은 전우들의 염원이, 나를 이 자리로 이끌었다.


“그럼 황제인 내가 마지막까지 제국에 남아 싸워야지. 황제가 신민을 지키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할까.”


이에 질문한 기사가 순간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침묵하기를 잠시. 이내 그가 고개를 들어 올렸을 땐 결의에 찬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그의 외형은 만신창이였으나 그의 눈엔 이전과 다른 굳센 결의가 느껴졌다.


“세상은 참 가혹한 것 같습니다. 신민들의 목숨 따윈 상관없다는 듯이 도망치는 귀족들은 살고, 폐하 같은 분께서 죽어야 하는 현실이라니요.”

“그럼 자네는 왜 남았나. 자네와 같은 실력자라면 언제고 몸을 뺄 수 있었을 텐데.”


그가 옅은 미소를 띠며 답했다.


“제 답도 폐하와 같습니다. 제 황제 폐하가 수도에 있습니다. 그럼 제가 제도에 남는 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겠습니까.”


나 역시 옅은 미소로 화답했다.

밖에선 황궁 건물이 무너지고, 적들의 행진이 땅을 울렸지만, 이 순간 그것은 아무렴 상관없었다.


“그것참 훌륭한 이유로군.”


쿵쿵쿵-


그들이 코앞까지 왔다는 듯이 그 소리가 점차 가까워졌지만, 나를 올려다보는 기사들의 기세가 그것을 잠재웠다.


그로부터 몇 초 뒤. 예고된 적들이 알현실 입구로부터 들어왔다.

어느덧 황혼이 내리쬐는 레드카펫 위로, 각양각색의 악마들이 위풍당당하게 몰려들었다.

그 숫자는 내부에 있는 기사들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에 내부 기사들은 나를 등진 채 검을 겨누며 그들을 경계했고, 나는 손님이 옴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시 보는군, 3황자. 아니, 이젠 황제인가.”


가장 선두의 악마가 알현실 중앙에 멈춰 나를 아는 체했다.

물론 나 또한 그가 누군지 잘 알고 있었다.


“왔나.”


그는 ‘타락한 자’였다.

본래 인간이었으나 악마가 된 자.

그중 대륙에 가장 큰 손해를 끼친 일곱을 가리켜 7대 타락한 자라 불렸는데, 그중에서 수장이라 불리는 하인츠 방겐하임이었다.

눈동자는 붉은빛으로 번들거리고 이마에 뿔이 달려있으나 전체적인 외형은 인간의 것인.


“황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


그는 손을 들어 올려 악마들을 조용히 시킨 뒤 내게 말했다.

이에 나는 옅은 웃음을 띠며 바닥에 꽂았던 검을 뽑았다. 행위로 답을 한 셈이었다.

말 대신 검을 뽑아 듦으로써 마지막 결사 항전의 의지를 비쳤다.


그런데.


“황제, 내게 할 말이 있을 텐데.”


곧이어 그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들을 수 있었다.


“기억을 못 한다면 다시 제안하지. 우리 쪽으로 귀의하라.”

“나더러 악마가 되라는 뜻이냐?”

“그렇다. 대악마께서 네 능력을 높게 보고 계신다.”


그는 내게 ‘타락한 자’가 되길 제안했다.


“네가 대륙을 통치하는 데 중추가 될 것을 의심치 않는다고 하셨다. 그 거룩한 뜻을 받들어라.”


이에 나는 평소라면 하지 않을 물음을 던졌다.


“이해가 안 가는군. 왜 내게 그런 제안을 하는 거지?”


준비 중인 자폭 마법진을 위해서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바. 시간을 벌 요량으로 이어서 말했다.


“나보다 뛰어난 인재는 제국에 많다. 악마의 시선에서 보면 난 특별할 게 없을 텐데.”


그러자 하인츠가 어이가 없다는 투로 답했다.


“정말 몰라서 묻는 말인가. 아니면 마지막까지 항전의 의지를 드러낸 것인가.”


내가 가만히 그를 응시하자 그가 이어서 말했다.


“넌 전투 시 매번 선봉에 서길 주저하지 않았다. 또한 수많은 이들에게 폭력을 쓰기보단 대의와 명분으로 앞세워 도시 하나를 굴복시킨 건 유명한 일화지. 그뿐인가. 넌 혼자서 대대 세력을 묶은 전례가 있으며, 쉽게 분열할 것만 같던 제국이 너 하나로 인해 뭉치지 않았나. 지금 이 순간마저도 넌 신민들의 피난 시간을 벌며 그들을 구원하고 있지.”


그 순간 나로선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칭찬을 증오하는 적에게 듣는다는 게 좀처럼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우린 그런 자들을 특별하다고 하지. 그런 자들은 종족을 불문하고 희소한 법이야. 문테아누 황실을 증오하는 나조차 네 행보는 귀감을 느꼈다. ”


그가 간략한 예를 표했다.

참 웃기면서도 흡족한 순간이었다.

같은 황족에게조차 듣지 못했던 인정을 적에게 받는 상황이란.


“그러니 선택하라. 이대로 차가운 주검이 될 텐가. 아니면 우리에게 귀의해 대륙을 통치하겠는가.”


그가 재차 선택을 종용했다.

물론 그렇다 할지언정 그의 회유에 변하는 것은 없었다.

내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폐하, 마법진이 준비됐습니다.”

“그렇군, 전 병력은 들으라.”


나는 하인츠가 아닌 내 기사들에게 답했다.


“지금부터 군가를 실시한다. 군가는 ‘전선’. 요령은 비장하게.”


나도 알고 있었다.

그의 제안을 거절하면 지금 이 자리에서 죽을 거라는 거.

몸이 정상일 때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대건만, 단지 말 몇 마디 나눴을 뿐이지만 호흡이 거칠어지는 내 상태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거.


『높은 산 깊은 골, 숨진 전우의 눈동자를 잊지 못하노니-』


하지만 나는 기사들과 군가를 외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죽어버린 신민들이 내 가슴에 박히면서, 인간을 잡아먹는 악마를 겪으면서, 어느새 악마를 증오하면서 살았던 나의 삶이었다.


실패와 좌절 속 쉬운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멋지고 아득한 마기를 보면 속이 불났다.

때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거나 욕망에 흔들릴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걸 알아보고 실행하는 거.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기억하는 거.

흔들릴지언정 그들처럼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거.


『검은 마기를 베며 우리는 간다-』


그간 목 놓아 부르던 군가를 끝까지 부르며 악마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채앵-


검과 검 사이 내 붉은색 마나와 흑색의 마기가 튀었다.

물론 내 검과 마나가 일방적으로 밀리는 구도였지만, 그런 와중 상대의 빈틈을 실시간으로 생각하며 찌르고 또 찔렀다.


그리고 몇 합을 주고받았을까.

어느덧 내 신체는 주어진 삶이 다됐다.


또르르-


어느새 목이 베었는지 내 시야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점멸하는 시야.

희미해지는 소리.

그럼에도 나는 그 순간 미소를 잃지 않았다.

곧이어 일대를 잡아먹는 거대한 폭발음. 계획대로 황궁 위 모든 걸 잿가루로 만들 자폭 마법진이 가동됐기 때문이었다.

당황해하는 악마들의 표정들이 선하게 눈에 들어왔다.


[이게 대체!]

[다들 마기를 끌어 올려라!]

[다들 마기로 몸을 보호해야-!]


또한 그때까지도 들리는 기사들의 군가.

내 삶의 마지막을 장식할 노래가 있다면, 숨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들렸으니.


『전우여 들리는가. 이 한 맺힌 목소리-』


그것은 내 생 최고의 노래였다.

그것을 들은 이상 더 이상 삶의 미련은 없다고.

내 삶은 이렇게 끝났다고 이때까진 그렇게 생각했었다.


『전우여 보이는가. 구원한 제국이-』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환생했더니 천재 서자가 되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 평일 08:20 / 주말 10:20 24.09.15 274 0 -
19 마법의 아버지(3) NEW +2 19시간 전 280 17 11쪽
18 마법의 아버지(2) +2 24.09.18 395 15 10쪽
17 마법의 아버지(1) +2 24.09.17 436 17 11쪽
16 황궁비고(3) +1 24.09.16 488 18 11쪽
15 황궁비고(2) +3 24.09.15 538 18 11쪽
14 황궁비고(1) +1 24.09.14 596 21 9쪽
13 황자 성취 증명(5) +5 24.09.13 635 17 9쪽
12 황자 성취 증명(4) +2 24.09.12 647 22 8쪽
11 황자 성취 증명(3) +1 24.09.11 681 21 12쪽
10 황자 성취 증명(2) +2 24.09.10 658 16 10쪽
9 황자 성취 증명(1) +4 24.09.09 691 22 12쪽
8 그가 악마가 된 이유(3) +2 24.09.08 729 19 11쪽
7 그가 악마가 된 이유(2) +2 24.09.07 722 20 11쪽
6 그가 악마가 된 이유(1) +3 24.09.06 760 19 10쪽
5 날 살해한 자가 내 시종이 되었다(5) +4 24.09.05 790 19 11쪽
4 날 살해한 자가 내 시종이 되었다(4) +3 24.09.04 804 19 9쪽
3 날 살해한 자가 내 시종이 되었다(3) +3 24.09.03 867 23 10쪽
2 날 살해한 자가 내 시종이 되었다(2) +2 24.09.02 982 22 9쪽
» 날 살해한 자가 내 시종이 되었다(1) +3 24.09.02 1,199 28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