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머슬 근손실 회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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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취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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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작가 있었으면 좋겠다
작품등록일 :
2024.09.02 02:40
최근연재일 :
2024.09.19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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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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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5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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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냉동고 속 티라노사우루스 2인분

DUMMY

-그것도 쉽지는 않으실텐데요.

-왜죠?


그렇겠지. 또 쉽지 않겠지. 뻔하다고 생각하며 나는 거의 즉시 반문했다. 그 때, 위협적인 날개 소리를 내며 사체룡이 날아올랐다.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매복해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듯 했다. 해골들은 피었던 꽃이 저물듯이 땅 속으로 돌아갔다. 유령 기사와 흡혈귀 마법사는 마지막까지 짙은 존재감을 뿜어내며 남아있었지만, 그들도 결국 흩어졌다. 아마 숨어서 방어 태세를 갖추기 위함이겠지.


-빙산은 여기서 생각보다 멀지 않아요. 저들이 멀지 않은 빙산 근처에 주둔하면서 여명관을 공격하지 않는 이유가 뭐겠어요? 저들도 여명관을 지키고 있는 군단이 얼마나 강한지 알아요. 이미 한 번 덤벼봤다가 처참하게 깨진 적이 있거든요.

-... 재시도는 없었나요?

-없었어요. 이 여명관은 여명회에 있어서 핵심 시설이지만, 저들은 그것까지는 모르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첫 침공 이후로는 쭈욱 조용했어요. 가끔 정찰병이나 왔다가는 정도? 외부 침입자가 근처에 오기만 해도 군단들이 달그락거리니, 정찰이라고 해봐야 멀리서 훑어보는 정도지만요.

-몇 년이나요?

-기억이 안 나네요. 백 년 정도는 되려나.


전신이 뇌로 구성되어있으면서 기억력이 좋은 편은 아니군. 저 뇌의 대부분은 차원을 넘나드는데 사용되는 건가. 내 표정을 읽기라도 한 건지, 머쓱하다는 듯이 스텔라는 머리를 긁적였다.


-아까, 박수를 쳐서 군단을 호출했죠?

-네. 일단 이 여명관의 관리 책임자는 저고, 그러니 방위군의 간단한 점호 정도는 할 수 있어요. 말 그대로 점호 정도만 가능해서, 아침 구보 정도도 못 시키지만요.


언데드를 구보시켜서 뭘 어쩌겠다는 건지. 저들도 나처럼 근손실이라도 나나? 스텔라의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그냥 말장난인 듯 하다.


-...그럼 점호는 아침에 한 번만 가능한 건가요?

-아니요? 딱히 그런 제한은... 없을 걸요? 하루에 몇 번씩이나 부를 일 자체가 없었지만요. 사실 좀 지겨워서 몇 달 정도 한 번도 안 불렀던 적은 있었는데...

-시험해보죠.

-네?

-하루에 몇 번이나 부를 수 있는지, 시험해봅시다.

-일단 알겠습니다만... 무슨 생각이신 건가요?


스텔라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우선은 명령을 따르겠다는 듯이 박수 세 번을 쳤다. 다시 아까와 같은 장면의 반복. 사체룡이 날아오고, 해골 병사가 솟아나고, 유령 기사와 흡혈귀 마법사들이 자리를 잡았다. 나는 별 다른 대꾸 없이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설원을 가득 채운 설원의 비명.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대기하던 그들은, 아까와 같은 모양으로 사라지려고 했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스텔라에게 명령했다.


-다시 박수!

-네?


스텔라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였지만, 그래도 내 지시를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는 얌전히 박수를 쳤다. 날아가던 사체룡은 급선회하여 원위치로 돌아왔고, 해골들은 저물다 말고 다시 피어났다. 기사와 마법사는 그 즈음에야 떠나기 시작하려고 했던 것인지, 제자리에서 살짝 움찔하고 말았다. 좋아, 생각대로 되는군.


-박수 계속 치세요.

-저, 주인님. 혹시 무슨 생각이신지 설명 좀 해주실 순 없나요?


성격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충성스러운 언데드인 건 스텔라 역시 마찬가지인가보다. 그는 의문을 표하면서도 박수를 멈추지 않았다. 이제 상태를 지켜보면 된다. 가만히, 가만히. 군단의 머리 위로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스텔라의 작은 박수 소리만이 설원에 울려퍼졌다.


예상했던 대로 스텔라의 박수 소리가 유지되는 동안 군단은 자리를 지켰다.


-좋아요. 그럼, 이대로 이동!


스텔라는 구체적인 계획 듣기를 포기한 건지, 이제는 군말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만 했다. 묘하게 뾰루퉁해보이는 그의 표정을 외면하고, 나는 스텔라와 함께 남쪽을 향해 나아갔다. 어느 정도의 거리가 벌어지자, 이번에도 기대하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쿵, 덜그럭덜그럭, 쿵, 덜그럭덜그럭.


군단이 스텔라를 쫓아 조금씩 걸어오기 시작했다.


-좋았어. 이렇게 남쪽으로 계속 가면 교단과 만나게 되겠죠?

-그렇긴 합니다만... 저기, 주인님. 혹시 이대로 교단을 공격할 생각은 아니시겠죠?

-안 되나요?

-시도해본 적은 없지만... 박수를 치고 있는 한 이 아이들은 꼼짝도 하지 않고 점호 대형만 유지할 거고, 박수를 멈추면 여명관으로 즉시 돌아가버릴 거에요.

-뭐, 그런 느낌일 것 같았어요. 그럼 우회전 합시다.


스텔라는 이번에도 얌전히 시키는 대로, 나를 따라 우회전했다. 표정이 그리 나쁘진 않았는데, 아무래도 스스로 궁리하기 시작한 것 같았다. 잠시 후 스텔라가 말했다.


-여명관을 비운 상태로 만들어서 적의 공격을 유도하려는 거군요! 여명관으로 적을 깊숙하게 끌어들인 상태에서 제가 박수를 멈추면, 일망타진할 수 있을 거구요!

-맞아요. 이것저것 시도해볼 생각이긴 했지만, 일단 지금 계획은 그래요.


퀴즈의 정답을 맞춘 기분인걸까. 스텔라의 걸음이 살짝 경쾌해졌다. 그렇게 즐거운 일이 아닐텐데. 조금 더 걸어간 후, 마침내 스텔라도 이 작전의 괴로운 부분을 깨달았다. 그는 약간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 그럼 여명관이 비어있는 상태를 적의 정찰병에게 보이시려는 거죠?

-그렇죠.

-근데 저... 정찰병들이 정해진 주기마다 오는 게 아니거든요?

-그렇군요.

-...설마 언제 올지도 모르는 정찰병이 와서 여명관이 비어있는 걸 볼 때까지 계속 박수를 치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요?

-그럴 리가요.

-아, 다행이네요. 저는 또...

-정찰병이 와서 여명관이 비어있는 걸 보고, 돌아가 보고하고, 후속 부대들이 여명관으로 전부 쳐들어올 때까지 치셔야죠.


스텔라의 표정 변화가 뚝 끊겼다. 아, 이번엔 정말 큰 충격이였나보다. 역시 감정이 격해지면 표정 변화가 사라지는 게 맞나보군.


-이 방향으로 쭈욱, 여명관이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지점까지 걸어가세요. 방위군을 계속 붙들고 계셔야 합니다.

-진심이세요, 주인님? 며칠동안 쉬지 않고 박수를 치라구요? 제가 언데드고 근육이나 관절은 없지만 움직임에 마력이 필요해서 피로는 느끼거든요? 주인님? 제 말 들리세요? 주인님?


나는 스텔라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여명관으로 향했다. 그는 계속 나를 불렀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멀어져가자 바람 소리 너머로 욕설이 들리는 것 같기도 했으나, 어쨌든 그는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는 충직한 참모장이였다. 방위군은 스텔라를 따라 계속해서 이동해갔으니까.


좀 심했나? 그래도 언데드인데 눈밭에 며칠 있었다고 감기에 걸리거나 하진 않겠지. 약간의 미안함을 뒤로 한 채, 나는 남쪽으로 향했다. 해야할 일이 있었다.


우선 빙산을 지키고 있는 적의 병력 규모를 정확히 알아야 했다. 정찰병이 와서 여명관이 비어있는 걸 확인했다고 한들, 다짜고짜 전력을 동원해 여명관으로 공격할 리는 없었다. 어쨌든 자기들의 주 임무는 빙산 보호다. 병력을 나누어 보낸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니 충분한 규모의 병력이 유인되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적진을 정찰하고 적의 병력 규모를 파악해야 했다.


그리고 아무리 유인 작전이라고는 하나, 여명관이 지금처럼 텅텅 비어있으면 안 된다. 방위군과 별도의 병력을 생산해 여명관을 지켜야 한다. 여명관이 아예 비어있으면 저쪽에서도 많은 수의 군사를 여명관으로 보낼 이유가 없다. 그러니 "공격은 시도해볼 법 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군사력을 동원해야만 한다." 라는 판단이 들 만큼의 수비군을 만들어야 한다. 스텔라는 분명 사체 앞에 서기만 하면 내가 좀비를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앞에 있는 사체를 일으켜보자.


-북극곰... 인 것 같긴 한데...


가까이서 본 맹수의 덩치는 생각 이상으로 컸다. 동물원에서 실물을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까지 가까이서 본 적은 없었다. 사체라고는 해도, 겁이 많은 사람은 쉽사리 접근하지 못할 것 같았다.


-등에 이건... 안장이고...


안장에는 군용품 느낌이 물씬나는 잡동사니들도 여럿 달려있었다. 주변에 조금 솟아있는 눈덩이를 치우니, 무장한 병사의 하반신이 드러났다. 그렇군. 아무래도 여기 병사들은 곰을 타고 다니는 것 같다. 곰기병이라니, 대단하네. 아니, 잠깐. 그렇다면, 방위군들은 곰기병을 운용하는 군단보다 강하다는 건가? 꽤 하는 편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사체 위로 곰의 형상이 떠올랐다. 에메랄드 빛으로 반짝이는 그 형상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형상을 보자마자, 나는 스텔라가 말했던 "자연스럽게 좀비로 만들 수 있다."는 개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언제나 해왔던 것 마냥 자연스럽게 한 손을 앞으로 뻗었다. 곰의 혼은 내 손을 주시했다. 내가 손을 천천히 내리자, 곰의 혼은 순종적으로 자신의 사체를 파고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사체의 눈이 자신의 혼과 같은 색으로 빛났다.


턱, 턱. 북극곰의 사체가 일어섰다.


덮여있던 눈이 떨어져, 그 모습이 제대로 드러났다. 생각보다 엉덩이 쪽이 많이 손상되어있었다. 기수의 상반신을 박살낸 공격이, 아마 곰의 둔부 역시 잘라갔으리라. 나는 사체곰에게 여명관을 향해 가라고 명령했다. 어려운 일은 아니였다. 말 한 마디 없이, 손짓하며 자신이 원하는 바를 생각하면 사체는 그 말을 따른다. 좀비를 생성하는 것 뿐만 아니라, 좀비를 부리는 것 역시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만 있는 건 아닌가?


나는 계속해서 남쪽으로 걸어가며, 보이는 사체를 일으켜세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몇 가지 법칙을 깨달았다.


우선 사체의 손상이 너무 심하면 영혼을 부릴 수가 없었다. 영혼만으로도 사용할 방법이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 방법을 알 수 없었다. 다른 부분이 비교적 멀쩡하면 머리가 없어도 언데드로 만들 수는 있었지만, 만든 즉시 제멋대로 움직여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머리가 없으면 명령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조금 실망스러운 사실. 같은 육신일 때에 비해서 언데드가 훨씬 약하다는 점이였다.


이 부분이 사실 좀 많이 실망스러웠다. 분명 살아있었을 시절에는 곰을 잘만 타고 다녔을 기병들이, 북극곰 위로 올라가는 것 조차 힘겨워했다. 올라가더라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떨어졌다. 실제로 전투를 해본 게 아니라 사체곰의 성능은 알 수 없지만, 사람 좀비의 성능을 보니 대충 짐작이 갔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숨결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래, 일단은 머릿수라도 있는 게 어디인가.


어느 정도 사체를 일으키며 남쪽으로 계속 나아가자, 저 멀리 빙산의 머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설원 한 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것이 누가 봐도 특별한 물체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시점에서 조금만 더 덜어가면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착각이였다. 거리가 가까워진 게 아니라 빙산이 어마어마하게 큰 것이다. 설원의 칼바람은 시간을 짐작하지 못하게 했다. 생각해보니 시계, 스마트폰도 없구나. 운동할 때 불편하겠는데.


그 때, 저 앞, 빙산 주변에서 불빛이 보였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눈 덕분에 시야가 좋지 않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상당히 가까이 온 것이였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땅히 몸을 숨길만한 곳이 없었다. 나는 엎드려 눈밭을 포복으로 기어갔다.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리치가 할 법한 짓이 아닌데. 마법 같은 마법은 배운 적이 없으니 별 수 없었다. 마법에 대해 잘 아는 참모를 복원하고나면 마법을 좀 배우자. 그 다음부터는 이런 짓은 안 해도 되겠지.


한참을 기어가고나서, 마침내 적의 천막에 붙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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