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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취괭이
그림/삽화
그림 작가 있었으면 좋겠다
작품등록일 :
2024.09.02 02:40
최근연재일 :
2024.09.19 23:27
연재수 :
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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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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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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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9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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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넓은잎고무나무 수액 프로틴 4인분

DUMMY


숲에서 가장 귀한 열매를 모시겠다는 부족장의 말은 거짓이 아니였다. 듣도보도 못한 화려한 열매, 그 열매를 이용한 디저트와 술, 과일 풋내에 입이 물리기 전에 기름기를 보충해주는 고기. 풍경에 어울리는 우드 엘프의 북 연주도 좋았다. 분명 최고의 연회였을 것이다.


부족장이 연회 끝에 살해당하지만 않았어도 말이다.


-부족장! 아들을 잃은 그대의 사연은 실로 안타까우나, 이 이상의 실정은 용납할 수 없소! 부족의 미래를 위해 그대의 목숨을 거두겠소!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이시는 죽지 않았어요! 거기 너, 대답해보거라. 내 말이 틀렸느냐?


장로들의 반란에 부족장은 크게 동요했다. 아니, 사실은 반란에 동요한 것이 아니지. 그는 모든 부족원들이 자기 아들의 죽음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부족장님. 이시 님은 영원한 안식에 드셨습니다.

-이익, 웃기지 마라! 대장로, 이게 대체 무슨 농간이오! 저기 계신 치유사님이 내 아들을 일으켜 침상에서 일어났단 말이오! 지금도 멀쩡하게 자기 방에 앉아있단 말이다!


그는 연회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멱살을 잡으며 물었다. 자신의 아들이 죽었다고 생각하는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장로들을 제외한 부족원들은 그저 슬픈 눈빛으로 담담하게 사실만을 고했다. 부족장의 언성은 계속 높아져만 갔다.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그래, 치유사님! 당신은 아시겠죠? 우리 이시를 직접 일으켜세우신 분 아닙니까.


그는 다른 이들과 달리 내 멱살을 잡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내 두 팔을 잡았다. 그의 눈빛은 대단히 절박해보였다. 나는 그에게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그 어떤 말도 해주고 싶지 않았다. 그가 내 몸을 점점 더 과격하게 흔들기 시작하자, 돌러가 다가와 그를 떼어냈다.


-물러서요!


다소 거친 동작이였지만, 부족장의 경비병들은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미 부족에 대한 장악은 끝났구나.


" 어차피 죽일 거라면 방 안에서 조용히 해치우지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네요. "

" 이미 실성한 부족장과 힘싸움에서 밀릴 일은 없으니 암살처럼 보일 수 있는 방식은 택하지 않은 거겠죠. 확실한 권력 양도의 무대가 필요했던 거에요. "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대의명분을 공표하고, 정통한 혈통의 지배자를 끌어내린다. 이 연회는 수단이였다. 아니, 내가 그의 아들을 되살린 것부터가 수단이였다. 부족장은 아들이 일어날 때까지 공개적인 장소에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까. 가만히 서서 미친 아비가 자기 아들의 죽음을 거듭 확인하는 꼴을 지켜보았다.


대장로가 마침내 그의 목숨을 거둘 때까지.


-커억... 이시... 야...


화살은 한 발로 멈추지 않았다. 그의 몸에는 연거푸 화살이 꽂혔다. 7색의 화삿길. 모든 장로가 빠짐없이 이 살해에, 혁명에 가담한다는 뜻이겠지. 눈에 보이는 형식이 아니라면 서로의 말을 믿지 못하는 걸까. 부족장이 죽어갈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던 경비병들은, 부족장의 숨이 끊어지자 그의 유해를 정중하게 수습했다. 죽어야만 자신의 부족장이라는 듯이. 광언을 하지 않아야 우리의 왕이라는 듯이.


나는 자리에 있는 과일을 주워먹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꽤 여유가 있어보이는군.

-장로님이야말로. 지금부터가 중요한 거 아닙니까?


왕좌의 허물을 치워냈으니 이제 누가 어떻게 앉을지를 결정할 차례였다. 세스탄은 가만히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반역에 화살을 얹어 입장을 분명히 했으니, 그걸로 족하오. 중요한 문제는 다른 장로님들께서 이야기들 나누실거고.


거의 확실하군. 이 사람은 노인정의 막내가 맞다. 그것도 가진 것 많은 노인들만 있는 노인정의 빈털털이 막내. 나는 과실주 한 잔을 따라 그에게 건넸다. 그는 의외라는 듯한 눈빛으로 보더니, 잔을 받아 한 번에 삼켰다.


-대장로님이 그대들에게 수색을 허락한 건 맞으나, 보다시피 부족 상황이 좋지 않소. 어떤 약속이 어떻게 일그러질지 아무도 모를 일이지. 너무 지체하지 않는 걸 권해드리는 바요.

-이미 확정된 이야기를 넌지시 알려주시는 건 아니죠?

-아니오. 그저 선의로 건네는 충고일 뿐.


나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당연하게도 연회는 끝이 나있었다. 누구도 기뻐하는 자는 없었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슬퍼하는 자 역시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이 일이 필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누군가는 장로들에게 인사를 한 후 자리를 빠져나갔고, 누군가는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시종들은 부지런히 뒷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제 이곳에 더 머물 필요는 없겠지.


-아, 혹시 낙원넓은잎고무나무에 대해서 좀 아십니까?

-그 이름대로 넓은 잎을 가진 고무나무요. 고무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고 있소?


세스탄의 물음에 나는 루나를 봤다. 루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끄덕임을 본 세스탄이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거요. 일반적인 고무나무에 비해 잎이 정말 넓은 식물이니까.

-고맙습니다. 저희는 이만 물러나보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시오. 아직 우리 셈이 끝나지 않았잖소.

-뭐 더 해드릴 게 남았던가요?

-내가 주기로 한 걸 못 주지 않았소.


아, 연회 참가에 대한 보상. 기억도 못하고 있을 만큼 별 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굳이 저쪽에서 붙잡아가며 주는 걸 사양할 필요야 없겠지. 소란스러운 연회장을 지켜보며 기다리자, 시종 하나가 보석 상자를 가져왔다. 세스탄은 상자를 받아 다시 내게 넘겨주며 말했다.


-눈꽃땅콩이라는 식물의 씨앗이오. 얼어붙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눈을 마시며 자라는 작물이지. 여명회는 북부에 본거지를 두고 있다고 하지 않았소? 이 식물이 도움이 될 거요.

-감사합니다. 도움이 된다면... 무슨 특별한 마법이라도 걸린 식물입니까?

-아니오. 하지만 맛있지. 먹어야 사는 것 아니겠소.


땅콩이 고단백 식품이긴 하지. 근데 보통 언데드한테 먹을 걸 선물로 주나? 처음 조우했을 때, 내가 육포를 먹고 있는 모습이 기억에 남았던 건가. 어쨌든 받아서 나쁠 건 없는 물건이였다. 나는 상자를 받은 후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세스탄도 함께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부족장님을 도와줘서 고맙소.

-부족이 아니라 부족장님을 도운 게 맞나요?

-그렇소. 그 분도 맨정신이였다면 결코 자신을 용서하지 않으셨을 테니까. 하루라도 빨리 부족의 문제를 해결해준 당신에게 분명 감사를 표했을 것이오.


그렇게 말하는 장로의 눈빛은 단호해보였다. 굳건함 안 쪽에서 부족장에 대한 그의 믿음이 보였다. 모든 것이 정상이던 시절, 이 사람은 부족장에게 꽤나 충직한 수하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걸 캐물어 무엇하겠는가. 이미 그 시절은 지나갔고, 세스탄의 화살은 부족장의 몸을 뚫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떠나왔던 곳으로 무사히 돌아가시기를.

-왜 이리 경고의 말씀처럼 들리는지 모르겠네요.

-글쎄, 정해진 건 아무 것도 없다고 하지 않았소.


마지막으로 다소 썰렁한 미소를 나누고 헤어졌다. 다행히 그의 말은 진실이였다. 나무를 찾아 수액을 채취할 때까지 우드 엘프들은 우리를 공격하지 않았다.


다만, 조용하지는 않았다. 장로들의 공공연한 반역이 아무런 문제 없이 성공한 것은 아니였다보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전쟁을 벌였다. 의외로 실성한 왕에게도 추종 세력이 남아있던 걸까? 아니면 왕의 죽음을 이용해 장로들에게 반기를 들고자 하는 세력이 있었던 걸까? 어느 쪽인지 자세한 속사정은 알 길이 없었다. 그들이 딱히 우리를 적대시하지 않는 이상 알 필요도 없었고.


낙원넓은잎고무나무는 정말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넓은잎을 가지고 있었다. 저 무거운 나뭇잎을 가느다란 가지로 용케 떠받들고 있군. 나는 나무에 칼질을 하고 수액을 받았다. 상처에서 굉장히 달콤한 향이 흘렀다. 이래서 이름에 낙원이라는 단어가 붙은 걸까. 나는 향을 한 차례 깊이 들이마신 후 뱉으며 말했다.


-이걸로 동부 원정은 끝이네요.

-왕이시여.

-네?

-우드 엘프의 언데드를 좀 만들어 가는 게 어떠신가요?


루나의 말에 나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만들 수 있다면야 만들고 싶었다. 높은 나무 위를 가볍게 뛰어다니는 운동 능력. 언데드가 되면 신체가 약화된다고는 하나, 약화된 인간보다는 훨씬 더 유용하겠지. 하지만 가지고 싶다고 다 가질 수가 있나? 그 운동 능력 높은 우드 엘프를 공격하자고?


-싸워서 이길 수 있어요?

-터무니없는 소리 마시고요. 이 숲에서 우드 엘프를 상대하기란 어려워요. 특히나 지금 여명회의 상태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에요.

-그럼 어떻게... 아.


생각해보니 우리가 직접 죽일 필요가 없었다. 저들은 지금 서로를 사체로 만들고 있었다. 찾아보면 전장 여기저기에 우드 엘프의 사체들이 널려있을 것이다. 어? 잠깐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또 이상한 점이 떠올랐다. 전쟁이 그렇게 격렬했는데 지금껏 우드 엘프의 사체를 본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뭐지? 설마 저들도 부두술 같은 걸 쓰나요?

-농담이시죠?

-네. 농담도 못 하나요?

-재미 없어요.

-미안하네요. 그래서 왜 사체가 없는 거죠?

-저들은 수목장 풍습이 있어요. 시체가 썩기 전에 반드시 나무 아래에 묻어야, 그들의 혼이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죠.


전쟁 중에도 동족의 시체를 바로바로 수습한다는 건가. 전쟁 중은 커녕, 전쟁 후에도 유해를 수습하지 못하는 군대들이 수두룩할텐데. 대단하다면 대단한 일이군. 우리에게 좋은 상황은 아니지만.


-그럼 무슨 수로 우드 엘프 언데드들을 만든단 말입니까? 도굴이라도 하자는 겁니까?

-아니요. 사실 매장지를 이미 확인해봤는데, 도굴이 가능한 구조가 아니에요.

-그렇겠죠. 어차피 도굴 후 저들보다 빠르게 도망칠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네, 그러니 거래를 제안하시죠. 저들은 언데드가 되는 걸 끔찍하게 싫어할 거에요.


드디어 루나의 계획을 알 수 있었다. 어느 한 쪽을 찾아가 상대편의 사체를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우리는 대가로 우드 엘프 좀비를 얻고, 저들은 강력한 아군을 얻는다. 시체가 썩기도 전에 나무 아래에 묻어야 한다고 믿는 이들이다. 어제 같은 편이였던 자가 부패한 채로 걸어다니는 모습은 상당한 혐오를 심어주겠지. 혐오보다 더 큰 공포와 함께.


-아무리 당장의 적이라고 해도 동족을 언데드로 만든다는 행위에 동의해줄지 모르겠네요. 꽤나 우직한 부족으로 보여서.

-저들은 내전 이전에도 부족의 상황이 좋지 않다고 했어요. 그리고 그 좋지 않은 부족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사령술을 택했고요.

-부족장의 아들이 이미 썩고 있었으니까 가능한 선택이 아니였겠습니까? 같은 상황이라고 볼 수 있을지요?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거래를 제안하는 것 뿐이잖아요. 성사되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물러나면 그 뿐.


말은 쉽게 하는군. 저들의 본거지에서 저들의 심기를 거스를 수도 있는 일인데. 하지만 분명 매혹적인 제안이기도 했다. 동토의 수염. 그 침엽수림에 우드 엘프 언데드들을 배치해놓고 활용하면 전략적 이득이 크겠지. 어느 정도까지 신체 능력이 떨어지는 지는 만들어봐야 알겠지만. 나는 한참을 고민한 끝에 결정을 내렸다. 그래, 아니다 싶으면 큰 절하고 사과하면 그 뿐이다.


-갑시다.

-어느 쪽으로 가실 건가요?

-그나마 익숙한 얼굴이 있는 쪽으로.


모름지기 거래에는 인맥이 필요한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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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낙원넓은잎고무나무 수액 프로틴 2인분 24.09.17 6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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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삶은 천둥새가슴살 4인분 24.09.13 8 0 13쪽
9 삶은 천둥새가슴살 3인분 24.09.11 7 0 12쪽
8 삶은 천둥새가슴살 2인분 24.09.11 7 0 15쪽
7 삶은 천둥새가슴살 1인분 24.09.11 6 0 13쪽
6 냉동고 속 티라노사우루스 5인분 24.09.09 6 0 14쪽
5 냉동고 속 티라노사우루스 4인분 24.09.08 5 0 13쪽
4 냉동고 속 티라노사우루스 3인분 24.09.06 9 0 12쪽
3 냉동고 속 티라노사우루스 2인분 24.09.05 12 0 12쪽
2 냉동고 속 티라노사우루스 1인분 24.09.03 12 0 13쪽
1 새벽 헬스장에서 고중량 운동하지 마세요 24.09.02 22 1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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