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머슬 근손실 회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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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취괭이
그림/삽화
그림 작가 있었으면 좋겠다
작품등록일 :
2024.09.02 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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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6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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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고 속 티라노사우루스 3인분

DUMMY


-형제님.

-네, 형제님!

-제가 지금 형제님을 왜 불렀을 것 같아요?

-자, 잘 모르겠습니다.

-모르시면 뭐 배교라도 하실 거에요?

-아닙니다!


군대와 교회의 혼종이라니. 누가 이런 괴물을 만들었단 말인가. 막사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통해 그들이 꽤나 크리피한 집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그들의 근무 태도가 썩 좋지 않다는 것도. 왜지? 사령술사 집단의 주요 지점을 점령한 점령군이 아닌가. 군기가 좀 더 엄정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과감하게 움직이기로 했다. 포복이 아니라 걸으면서 막사 사이를 이동했다. 가끔 순찰자들의 불빛이 보일 때마다 엎드리거나 막사 뒤로 숨었다. 상당히 허술한 은신임에도 불구, 들킬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순찰자들은 모두, 대충 순찰을 마치고 막사로 돌아가고 싶다는 속마음이 팍팍 드러나는 태도로 순찰을 돌았기 때문이다. 그 꼴을 보자 조금 더 대범하게 움직여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순찰자를 미행하기 시작했다.


만약 이곳의 순찰 근무가 한국군의 경계 근무와 같은 형태라면, 순찰의 마지막에는 당직 사관 정도 되는 인물에게 보고를 하러 가겠지. 물론 국군의 순찰 업무는 주로 사관 이상급의 업무였지만, 이 순찰자들의 차림새는 어떻게 봐도 사관급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순찰자는 주둔군 진지를 한 바퀴 돌았다. 진지 외곽에 일정한 간격으로 말뚝이 박혀있었는데, 순찰자들은 그 말뚝에 자기 이름을 겼다. 저런 시스템이라도 있으니 겨우 순찰이 성립되는 거군. 참 대단한 군대가 아닐 수 없다. 내게는 다행이지만.


순찰자는 진지 내에서 가장 큰 막사에 도착했다. 내 예상이 적중했으면 좋겠군.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몸을 숨긴 채 대화를 엿들었다.


-부단장님, 정기 순찰 완료 했습니다.

-벌써요? 낮에 말뚝에다가 이름을 미리 써두신 거 아니죠?

-절대 아니지 말입니다.


부단장이라고 불린 자는 그 직책에 어울리는 멋진 중갑을 입고 있었다. 그는 순찰자에게 몇 마디의 농담을 더 던지더니, 그만 들어가보라고 했다. 순찰자는 횃불을 반납하고는 자신의 막사로 돌아갔다. 나는 순찰자의 발자국 소리가 완전히 사라지고도 한참을 더 기다렸다가, 부단장이 기다리고 있던 큰 막사에 접근했다. 막사 정문은 지키고 있는 병사들이 있어 접근할 수 없었지만, 후방은 완전히 무방비했다.


지휘통제실 같은 막사인듯 한데, 이토록 경비가 허술할 수 있나.


이렇게까지 잠입이 쉽자, 불안마저 느껴졌다. 나는 괜히 한 번 더 주변을 둘러보았다. 막사에서 새어나오는 흐린 불빛들 외에는, 고요함만이 보였다. 숨어있던 성기사들이 튀어나오는 거 아냐? 죽지도 늙지도 않는 몸이라고는 했는데, 그건 늙어죽는 일이 없다는 뜻이겠지? 철퇴 같은 걸로 머리를 부수면 아무래도 죽겠지?


침착하자.


함정이라면, 여기까지 와서 도망갈 수 있을 리가 없다. 함정이 아니라면, 여기서 물러나는 건 아까운 일이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막사의 틈새를 들여다보았다. 부단장과 다른 사제 하나가 카드 놀이를 하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카드 뿐만 술잔도 보였다. 저 모습이 연기라면, 사제가 아니라 배우를 했겠지. 조금은 편안해진 마음으로 막사의 다른 부분을 훔쳐봤다. 어디에 있지. 여기가 지휘통제실 같은 곳이라면, 분명 그게 있을 텐데.


찾았다, 인원 점검표. 총원 천백팝실명.


곰기병이 백, 보병이 천. 비전투 인원이 팔십. 막사 하나에 10명 정도가 생활한다고 치면, 대략 둘러본 막사 수와 일치하는 정보다. 필요한 정보를 얻었으니 이제 여기 더 머물 필요는 없다. 나는 조심스럽게 막사로부터 멀어졌다. 등 뒤로 새로운 순찰자가 도착해, 순찰을 시작하겠다고 보고하는 소리가 들렸다. 부단장이 뭐라고 답하긴 했으나, 이미 거리가 멀어 자세한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접근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물러날 때도 별 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분위기는 분명 최전방 근무인데... 군기가 왜 저 모양이지?


혼자 생각한다고 답이 나올 리가 없다. 그나마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 뿐이겠지.


나는 스텔라가 있는 곳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사방팔방 눈으로 덮여 있어 사방위는 구분이 안 갔는데도, 이상하게도 스텔라가 있는 곳은 알 수 있었다. 이것도 특별한 마법 때문인건가. 내가 특별한 존재인 건지, 아니면 스텔라가 특별한 존재인건지.


-그건 저도 모르겠는데요?


내가 한 황혼 교단에 대한 질문을 듣고, 스텔라는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고는 바로 답했다. 허허벌판에서 박수를 계속 치고 있느라 기분이 좋아보이진 않았다. 그렇다고 아는데 부러 모르는 척 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적에 대한 의문이 가시지 않자 불편한 마음이 들었지만, 스텔라도 모른다면 딱히 다른 방도는 없었다. 지금은 세워놓은 계획에 충실할 밖에.


-그래서, 준비는 잘 되셨나요?

-그럭저럭이요. 그런데, 방위군은 여명관 인근이 아니면 전투를 못한다고 했죠?

-맞아요.

-둘러보니 여명관에서 꽤 떨어진 곳까지 황혼 교단의 사체가 보이더라구요. 그건 누구와 싸운거죠?

-여명회의 다른 군단이죠. 이곳 영구 동토에는 빙산을 수호하던 군단이 있었거든요. 그것도 꽤 많이요.

-전부 죽었나요?

-언데든데 죽은 건 아니죠. 없어진 건 맞아요. 황혼 교단은 언데드를 다시 사체로 돌릴 수 있는 힘이 있어서.


여명과 황혼. 생각해보니 서로 상반된 힘을 가졌을 법한 이름이다. 시체를 일으키는 여명회, 언데드를 다시 시체로 되돌리는 황혼교. 그런데 왜 우리가 여명이고, 그쪽이 황혼이지?


-보통, 악한 쪽이 황혼이지 않나요?

-음, 상세한 설정을 풀기에는 아직 초반 스토리 진행이 충분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래요. 초반 스토리 진행과 세계관 설명의 비율은 언제나 난제. 일단 조금은 풀어보도록 해요.

-뭐라고요?

-이건 기억해두세요, 주인님. 우리는 악하지 않아요. 선하지도 않지만요. 황혼 교단도 마찬가지에요.

-하지만 뭔가... 이미지 같은게 있잖습니까. 망자의 안식을 방해한다거나.

-생은 동(動). 사는 정(靜). 황혼교는 움직이는 것을 정지하게 만들고, 여명회는 정지한 것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 뿐이에요. 우리와 황혼 교단은 원의 양극단에서 회전을 유지시키는 존재. 옳은 것이 있다면, 회전 그 자체 뿐이에요. 죽음도 생명도, 모두 순환의 일부일 뿐이니까요.


스텔라는 똑부러지는 태도로 그렇게 말했다. 다소 추상적인 이야기라 마땅히 반문할 것도 떠오르지 않았지만, 만약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가벼운 마음으로는 묻지 못했을 것 같다. 그만큼 스텔라의 목소리는 진지했다.


-그리고 성기사, 사제 등이 사실은 고위 주교, 교황들에게 휘둘리고 있을 뿐, 정의로운 집단이 아니라는 설정 같은 건 또 나름 재밌는 클리셰잖아요?

-이번에도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거든요.

-박수 그만 치고 싶다는 얘기는 알아들으실까요? 피곤하기도 하고, 솔직히 저 군단들 얼굴 계속 보고 있기도 민망해요. 군대 다녀오셨잖아요. 무한으로 점호 받는 기분이 어떻겠어요?


방위군들은 스텔라의 느릿한 박수에 묶여있듯이, 꼼짝도 하지 않고 서있었다. 나는 그 얼굴들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만약 무한 점호를 받는 저들이 살아있는 존재였다면, 기분이 좋을 리는 없지.


-근데, 살아있는 존재였다면 애초에 이런 번거로운 작전을 하지 않아도 됐겠죠? 제 명령에 따라 황혼 교단을 박살냈을 거 아니에요.

-그건 이 아이들 잘못이 아닌데요?

-점호를 시키는 것도 제 잘못이 아니라는 거죠. 뭣보다 정말 기분이라는 걸 느끼긴 해요? 아무리 봐도 그냥 무표정들인데.


해골 병사들과 사체룡은 엉엉 소리내어 운다고 해도 저 얼굴일 것 같았다. 유령 기사와 흡혈귀 마법사는 태어나서 한 번도 표정이라는 걸 지어본 적이 없는 존재들 같았고. 스텔라는 할 말이 없는지 지겨운 표정으로 박수를 계속 치기만 했다.


-그럼, 수고하세요.

-작전 빨리 성공시켜주세요!

-그건 아무래도 제 의지보다는... 저쪽에서 정찰을 얼마나 빨리 보내느냐에 달렸죠.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스텔라로부터 떨어졌다. 방위 구분이 가지 않아도, 여명관과 스텔라의 위치는 어디서든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넓은 설원에서도 대략적인 수색은 가능했다. 영구 동토를 돌아다니며 발견한 많은 사체들을 되살려서 여명관으로 보냈다. 곰이든, 사람이든, 혹은 다른 맹수든. 합해서 수 백기 정도는 됐다. 중간부터, "유인을 해야 하는데 너무 많은 숫자의 사체를 되살린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저들도 분명 언데드와 싸워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너무 적은 숫자의 언데드를 상대하는데 많은 수의 병력을 끌고 오지는 않겠지.


여명관으로 돌아와 언데드들의 위치를 조정시켰다. 간단한 의사소통이 가능해 적의 정찰 유무를 확인했으나 (스텔라에게 더욱) 안타깝게도, 아직 정찰은 오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언데드가 통제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위치를 부러 산만하게 배치해놓았다. 그리고 적의 접근을 발견하면 내게 알려달라고 명령해놓은 후, 여명관으로 들어왔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나름대로 상황은 순조로웠다. 다만 문제가...


-배고프네.


배가 고팠다. 배만 고픈 게 아니라, 졸리기도 했다. 사실 근성장과 근손실이 일어나는 몸이니 허기와 피로를 느끼는 건 당연했다. 오히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먹지도, 자지도 않고 견딜 수 있었던 게 이상한 거지. 그런데 잠이야 그냥 자면 된다고 쳐도, 먹는 건 어쩌지? 걷고 움직이는 게 가능한 몸이니까 소화도 시킬 수 있나? 애초에 이 눈 말고 아무것도 없는 땅에서 뭘 먹어야 하지?


혹시 여명관 어딘가에 프로틴이 있지는 않을까?


아, 좀 유머스러웠다. 나는 자신의 개그에 만족하며 여명관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미켈란이 있던 방 외에도, 여명관에는 여러 가지의 방이 있었다. 신기하고도 잡다한 물건들이 비치되어 있었지만, 사용법을 알 수 없었다. 저 중에 내 허기를 달래는데 도움이 되는 물건이 있는지조차 모르겠고. 혹시나 싶어서 미켈란에게도 물어봤지만, 그는 그림 말고는 정말 아는 게 하나도 없는 듯 했다. 스텔라한테 좀 설명을 들어놓을 걸 그랬나.


아무리 찾아도 먹을 게 나오지 않아서, 일단은 잠부터 자기로 했다. 나는 어쩐지 친숙함이 느껴지는 고인돌, 그러니까 내가 처음 눈을 떴던 돌 위에 몸을 누였다. 그래도 추위는 느껴지지 않는 몸이라 다행이군. 먼 거리를 걸어다니기도 했고, 긴장을 하기도 해서 그런가. 배고픔이 꽤 심해졌는데도 불구하고 잠드는 데 어려움은 없을 듯 했다. 몸에 긴장을 풀고 눕자, 서서히 눈이 감겼다.


지구라고 해야 하나? 원래 세계는 지금 어쩌고 있으려나.


관장님이 시체를 발견했으려나. 경찰이 시신을 발견하면 부모님에게 연락을 드리겠지. 아들을 헬스장에서 잃었다는 걸 알게 되신다면, 더욱 더 운동을 싫어하시게 되겠군. 이제 근력 운동 안 하시면 건강이 나빠지실 나이인데. 아들 일은 아들 일이고, 더 늦기 전에 근력 운동 시작하셔야 하지 않나. 스쿼트 정도는 어떻게든 가르쳐드릴걸.


하, 내가 이런 생각할 자격 있는 아들은 아니지.


쓴 자조와 함께, 내 의식은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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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냉동고 속 티라노사우루스 4인분 24.09.08 5 0 13쪽
» 냉동고 속 티라노사우루스 3인분 24.09.06 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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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냉동고 속 티라노사우루스 1인분 24.09.03 12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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