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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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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9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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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6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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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자의 시간(6)

DUMMY

『6년 전, 빈민촌』


높은 언덕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

어설프게 페인트칠이 된 그곳은 흔히 달동네라 부르는 빈민촌이었다.

그곳의 비좁은 단칸방 안,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있었다.


“···포기하자.”


장소와 어울리지 않게 명품 시계와 정장, 그리고 최근 유행하고 있는 무테안경을 쓴 사내.

그는 상대적으로 초라한 행색을 한 맞은 편의 사내에게 말했다.

행색은 다르지만, 왠지 닮아있다.

어딜 봐도 형제로 짐작되는 모습.


“포기? 동원이, 너···?”


그제야 동생, 정동원의 목적을 알게 된 형 정대호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설마 녀석의 사주를 받은 건 아니겠지?”

“무슨 소리야!”


버럭 소릴 지른다.


“내가 그 놈이랑, 형을 이렇게 만든 녀석과 손이라도 잡았다는 거야 뭐야?”


잘못한 게 있으면 일단 지르고 보는 성격.

누구보다 그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정대호였지만.


‘아니야. 아닐 거야. 아무리 사이가 소원해 졌어도 내 동생이 그럴 리가!’


애써 현실을 외면했다.

무언가 사정이 있을 거라며.

그리고.


“아니. 포기하는 일은 없어. 끝까지 싸운다.”


포기하자는 물음에 대해 답했다.


“아니, 형! 승산 없는 싸움을 언제까지 할 거야. 애들 대학 등록금에 유라 결혼 자금까지 털었다며.”


비수와 같이 가슴을 찌르는 말.

자식을 위해 마련한 자금을 쓴다는 건 부모로서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만이 아냐. 우리 가족이 떳떳해질 수 있는 일. 지금은 힘들더라도···.”

“정신 차려.”


흔들렸다고 생각한 걸까.

몰아붙이기 위해 정동원이 좀 더 거친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형도 알고 있잖아. 김도윤 뒤에 누가 있는지.”

“···.”


알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정·재계를 주름잡고 있는 거대한 세력이 버티고 있다는걸.


“증거? 증인?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어차피 기울어진 운동장인데. 그런데 왜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냐고. 애들에게 돌아갈 자금까지 전부 빼 써가면서. 뭐? 가족이 떳떳해질 수 있는 일? 그래. 조금 떳떳해졌다고 치자. 그럼, 당장 내일부터 어떻게 먹여 살릴 건데? 유라 시집은 어떻게 보낼 거고. 한성이 대학은? 이런 집에서 살아갈 형수님은 또 어떡하고!”


“···.”


씩씩대는 동생을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본다.


“내가 독단적으로 밀어붙이는 것 같아?”

“뭐?”

“이미 우리 가족 모두가 동의한 일이야. 한성이가 그러더라. 자기는 대학 안 가도 되고, 좋은 옷, 맛있는 거 안 먹어도 된다고. 그저···아빠가 편해졌으면 좋겠다고.”


비록 김도윤이 판 함정이긴 하지만, 김대호는 매일을 자책했다.

가족에게 미안하고, 자신을 믿고 있었던 직원들에게도, 그리고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런 주눅든 모습이 보기 싫었던 걸까.

한창 사춘기일 텐데도 불구하고 아빠의 힘이 되어주려는 아들.

그 말을 들은 날 새벽, 얼마나 울었던가.

아내인 서수연 또한 곁에서 숨죽여 울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가진 건 없더라도 떳떳한 사람이 되자고.

세간에 퍼져 있는 약쟁이에 가족과 직원들마저 버린 범죄자를 벗어나자고.


“이번 소송은 단순히 인수 무효 처분을 받기 위한 게 아니야. 비록 패소하더라도 내가 죄가 없다는 것을, 한 가정의 떳떳한 아버지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원동력이지.”


질 걸 알면서 왜 하냐고?

인정을 위해서다.

패소는 정해졌어도 지금껏 준비한 증거와 증인을 통해 세상에 알릴 것이다.

자신이, 정대호라는 사람이 몰염치한 범죄자가 아니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언론 제보 및 다음 계획도 순차적으로 진행할 생각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고? 열심히 살면 돼. 동원아. 내가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땐 지금보다 더 어려웠어. 비록 그때와 같을 순 없겠지만, 삶을 살아온 노하우가 있으니까 적어도 아이들, 그리고 아내를 고생시키면서 살진 않을 거다.”


물론 당장은 힘들 테지만, 자신이 있었다.

이 힘든 삶을 이겨내고 다시금 정상적인 생활을 찾을 수 있다는 확신 말이다.


“형, 아니, 왜 그렇게 힘든 길을 가려는 거야.”


강압적인 방법이 통하지 않는 걸 깨달은 정동원은 방법을 바꾸었다.

톤을 낮추며 부드럽게 설명을 이어간다.


“언제 생활을 안정화할 수 있는데? 그동안 아이들과 형수가 할 고생은 신경도 쓰지 않는 거야?”

“그건···.”

“게다가 확신? 어떻게 그리 확신하는 거야. 설마 김도윤이 가만히 있을 거로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정대호와 가족을 향한 김도윤의 훼방이 있을 건 빤했다.


“봐. 형도 확신하지 못하잖아. 떳떳한 아빠? 다 좋지. 그래도 현실을 생각해야 하잖아. 그러니까 여기서 포기해. 그러면 김도윤이 앞으로 훼방 놓을 일도 없고, 다만 얼마의 보상도···.”

“정동원.”


그제야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현실을 마주한 정대호.


“그만 가라.”

“···아니, 형!”

“네가 날 설득하는 대가로 얼마의 보상을 받기로 한 모양인데. 소용없는 짓이니까 가라고.”

“그게 무슨···?”

“과거엔 말이다. 부모 없이 자란 네가 가여워서, 없는 살림에 기죽지 말라고 뭐든 다 해줬지. 그런데 아무래도 그게 널 어긋나게 만든 모양이다. 하나뿐인 혈육이기에,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존재라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건 내 생각뿐이었던 것 같구나. 이제 너도 어엿한 한 가정의 가장이고 하니 더는 아무 말 않겠다. 가라. 나는 너를, 정동원이라는 동생을 오늘 부로 잃었다고 생각할 테니까.”

“···.”


분노도 어떠한 감정도 없다.

진정으로 화가 났을 때 보이는 무심한 단계.

정대호가 이렇게 말할 때는 그게 진심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동생은.


“···씨발!”


결국, 본성을 드러냈다.


“뭐? 다 해줘? 형이 해준 게 뭔데. 남들 다 하는 과외를 시켜주길 했어, 아니면 제대로 된 사업 아이템을 던져주길 했어?”


정동원의 비교군은 항상 ‘잘 사는’ 아이들이었다.

고액 과외에 족집게 강사, 그리고 명품과 자동차, 으리으리한 집.


“동생 잘 되는 게 보기 싫어서 자기만 홀랑 사업 아이템으로 성공한 주제에. 성공? 그것도 웃긴 말이긴 하네. 고작해야 좆소 기업의 사장 노릇하면서 뭐? 도대체 형이 나한테 해준 게 뭔데!”


그건 지독한 피해망상이었다.

없는 살림에 그래도 남들과 같이 학업에 매진할 수 있게 정대호는 최선을 다했다.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도 동생의 끼니는 균형 있는 식단을 차려주었다.

그러나 정동원은, 그의 하나뿐인 동생은 그저 남들과 비교하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할 뿐이었다.

차라리 같이 힘들게 컸다면 조금 달라졌을까?

동생의 피해망상에 지난날을 후회하는 형이었으나 그건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게다가.


“가라. 배웅은 하지 않으마. 소송으로 준비해야 할 게 많아서.”


뒤돌아선 정대호.

그리고 그게 트리거였다.

지독한 피해망상에 빠져 있던 정동원은 무시를 당했다고 생각하여.

뚝.

이성의 끈이 끊어지고 말았다.


“···.”


새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주변을 돌아보던 그의 눈에 들어온 건 낮은 천장에 설치된 빨랫줄.

신경질적으로 그것을 낚아채자 널어놓은 빨래가 바닥에 떨어졌다.

하지만 서류를 살피고 있던 정대호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

그렇게.


“커, 커컥!”


목을 죄어오는 빨랫줄의 압력에 고통의 신음을 토해낸다.


“끄, 끄으으-”


힘겹게 고갤 돌려 동생을 바라보려 하지만.


“씨발, 죽어, 죽으라고! 내 인생에 도움 하나 되지 않는 빌어먹을 새끼야!”


해준 것 하나 없으면서 사사건건 방해다.

이번에도 그렇다.

그냥 좋게 마무리하고 받을 것 받으면 그만 아닌가.

그런데 왜.

왜, 굳이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는 걸까.

정동원은 그것이 자신의 앞길을 막으려는 행동이라 생각했다.

그간 쌓였던 분노는 결국, 폭발하고 말았고.

추욱.

형을 살해하는, 존속살해라는 비극을 낳고야 말았다.


“허억, 허억!”


첫 살인.

하지만 이 탐욕스러운 동생은 형의 죽음 앞에서도 자기의 살길을 궁리할 뿐이었다.


“씨, 씨발! 주, 죽을 짓을 해서 그래. 나는, 나는 잘못 없어. 이 새끼가 문제였던 거야.”


억울하게 눈도 감지 못한 형을 감히 바라보지도 못한 채 말을 이어가던 정동원.


“서류, 그래 증거!”


지금껏 정대호가 모아둔 증거를 챙긴다.

그게 끝이 아니다.

의자를 가져와 빨랫줄을 묶어, 마치 자살인 것처럼 꾸민 후 황급히 그 자리를 벗어났다.


‘이것만 가져가면 김도윤이 해결해 줄 거야.’


형의 원수인 김도윤이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


「속보입니다.

대성그룹 김도윤 회장의 비보가 전해지는 가운데, 자택에서 가족과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고인이 남긴 유서에는 그간 자신이 했던 악행에 관한 속죄의 내용이 기록···.」


택시 안, 대성그룹의 총수인 김도윤의 죽음에 관한 속보가 전해지고 있었다.


“어이구! 그룹 회장씩이나 되는 양반이 어쩌다가. 게다가 가족까지? 이게 돈이 많다고 세상 행복한 게 아니라니까.”


나이가 지긋한 택시 기사가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아마도 나와 대화할 꺼리를 찾는 것 같지만.


“···.”


침묵할 뿐이었다.

여기서 괜히 뭐라고 대답했다간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기계적인 대화를 나눌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암시가 제대로 먹혔군.’


택시 기사를 포함해 다른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소식일 테지만, 내게는 당연한 일에 불과했다.

최면술사 특성을 이용하여 가족과 함께 비극적인 마무리를 하게 암시를 건 게 나니까.


「고인이 직접 쓴 유서에는 자신 소유의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혀···.」


그리고 재산의 환원까지.

그러나 좋은 소식만 전해진 건 아니었다.


「한편 대성그룹 내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에 대해 용의자 추적에 나선 경찰은 국민들의 안전을 위하여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체포하겠다는 의지를···.」


대낮에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고 수십 명이 죽는.

비록 칼밥을 먹고 사는 건달들이라 하지만 이 정도 수가 죽어 나갔다면 공권력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은 CCTV의 나라다.

1m마다 설치된 감시 체제로 인해 내 신상을 특정하는 건 너무도 쉬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태연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다.

뉴스를 통해 용의자, 내 신상이 밝혀지고 있었지만, 상관 없었다.


【변신의 귀재】


이 특성을 이용하여 모습을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비록 특성을 성장시키지 않아 체형 등은 바꾸지 못했지만, 얼굴만 조금 바꿔놔도 나를 알아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자, 도착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했다.

두툼한 지갑(김도윤의 지갑에서 훔친 것)에서 5만원 짜리를 꺼내며 기사에게 건넸다.


“잔돈은 됐습니다.”


요금은 3만원.

하지만 굳이 잔금을 받지 않은 채 택시에서 내렸다.


“어이쿠! 감사합니다, 손님!”


거듭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택시 기사를 뒤로한 채 걸어갔다.

그렇게 도착한 곳.

그곳은 곳곳마다 공장과 사무실이 자리하고 있는 공단이었다.

그리고 정면에 보이는 건.


『동원스틸』


어쩐지 익숙한 간판을 지나쳐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설마···?’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공장 안,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은 너무도 익숙한 이들이었다.


‘종철, 우식, 재천 아저씨···.’


아버지와 함께 대호스틸을 이끌었던 직원들.


“어? 누구···?”


부지런히 일하고 있던 종철 아저씨가 방문객인 나를 보며 말을 건넬 때였다.


“아이고, 사장님!”

“이 시간에는 또 어쩐 일로.”

“사장님, 어서 오십시오.”


우연처럼 나와 함께 공장 안으로 들어온 이가 있었다.

뒤늦게 들어온 그를 확인하기 위해 천천히, 마치 슬로모션에 걸린 것처럼 뒤돌아섰다.

그리고 내 시야를 가득 채우는 존재.


“하하. 다들 열심히 일하기에, 간식 좀 들고 왔습니다."


본래는 아버지가 있어야 할 자리와 호칭.

그것을 빼앗은, 불쾌하게 아버지를 닮은 정동원이 가식적인 미소로 직원들에게 인사하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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