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2회차 탑 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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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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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9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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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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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정복자의 시간(9)

DUMMY

『4년 전, 중앙지방검찰청 입구』


추운 겨울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얼어붙을 것만 같던 한파가 전국적인 영하의 날씨를 기록하던 때.


“여러분. 제 말을 들어주세요. 평범했던 한 가정의 아버지가 마약쟁이로, 타살이 자살로 바뀐 사건을 알고 계십니까.”


얇은 코트 하나만을 걸친, 자신의 몸보다 더 큰 피켓을 든 여인.


『대호스틸의 사장 정대호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고 싶습니다.

제대로 조사도 하지 않은 채 수사를 종결한 경찰을 규탄합니다.

명백한 증거와 증인에도 불구하고 불기소 처분한 부패 검찰을 고발합니다.』


벌써 1년.

대호스틸 인수와 관련된 사기, 그리고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밤낮으로 시위를 이어가고 있었다.

물론 의미 없는 짓이다.

아무런 배경도, 힘도 없는 그녀의 목소리가 경찰과 검찰, 정치권을 움직일 순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치 그것만이 유일한 숙원인 것처럼 계속해서 시위를 이어갔고, 개미에 불과한 그녀의 움직임은 작은 태동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얼마 전, 시사 프로그램 중 하나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무려 1년 동안 검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는 그녀의 기행이 세간의 관심을 사기 시작했다는 증거.

당연하지만, 일반적인 시위만으로는 주목을 받진 못했을 것이다.

주목을 받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한 커뮤니티에 퍼진 ‘검찰청 시위녀’라는 타이틀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정유라의 미모였다.

생얼임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연예인 뺨치는 미모로 인한 주목도였다.

비록 시위 내용 보다는 검찰청 시위녀라는 타이틀이 더 주목을 받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어떻게든 주목을 받으면 자신의 시위 내용 또한 퍼질 테니 말이다.


“하아-”


얼어붙은 손에 입김을 불어 넣는다.

늦은 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졌기에 더는 시위를 이어나가는 게 무의미하다.

저벅.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보도를 걷는다.

본래는 장기로 대여한 모텔로 돌아갈 테지만, 가지고 있던 돈이 다 떨어져 버렸다.

물론 알바라도 한다면 당분간 생활비를 버는 건 그리 힘든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제 주목을 받기 시작했는데, 그럴 순 없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간 힘들게 얻은 주목도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럴 순 없다.

힘겹게 잡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그녀는 이 시위를, 자리를 비울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건.

찌이익-

검찰청 주변의 골목, 그곳에 마련한 텐트였다.

마치 오픈 런을 뛰는 사람처럼 간이 텐트를 준비하여 그곳에서 숙식하고 있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고되고 힘들다.

왜 안 그럴까.

1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무거운 피켓을 들고 서 있는 건 성인 남성에게도 힘든 일.

그럼에도 이 갸녀린 몸으로 1년 동안 그 일을 반복해 왔다.

단 하루도 빠짐 없이.

그리고 그 작은 움직임이 드디어 빛을 보기 시작했다.

이대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시위 내용이 퍼져 이번 사건이 재조명된다면 사건을 뭉갠 경찰과 검찰도 가만히 있기는 힘들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게 된다면.


‘가족에게 돌아가야지.’


의절을 선언하며 집을 나오기는 했지만, 그건 진심이 아니었다.

어머니와 동생에게 이런 힘겨운 사투를 맡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영역에 가족을 끌어들일 수 없다.

힘든 건 자신이면 족하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끝났을 때 다시금 웃는 얼굴로 가족의 품에 돌아갈 것이다.

물론 지금은 차가운 현실과 날씨에 몸을 떨며 힘겹게 잠을 청할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지이익!

잠귀가 밝은 그녀다.

아무리 고된 하루여도 예민한 감각은 잠을 몰아내기에 충분했고.


“누, 누구···.”


텐트 입구를 열고 들어오는 낯선 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화악-

숨을 쉬는 순간 느껴지는 진한 알콜 냄새.

만취한 이가 착각하여 들어온 건가?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꺄악!”


거칠게 밀고 들어온 누군가가 그녀를 덮쳤기 때문이다.

스륵-

만취한 와중에도 정확히 가슴을 향하는 손, 입술을 노리는 추악한 혀와 입술.

평범한 여인이었다면 당황하여 소리만 지를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아무리 취했어도 성인 남성, 그것도 상당히 체격이 좋은 그의 완력을 당해낼 순 없을 테니까.

하지만 정유라는 1년 동안 홀로 시위를 이어나갔을 정도로 독심이 있는 여인이었다.


“···.”


그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괴한의 얼굴을 확인한다.

나중에 신고를 위한 신원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아!’


낯익은 얼굴이었다.

시위하는 와중 종종 마주쳤던, 추울 거라며 따뜻한 커피를 나눠줬던.


‘하준원 검사!’


그녀가 이름을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인사였다.

누구도 건들기 힘든 기업, 정치가들을 구속하여 일약 스타덤에 오른 검사.

오직 법과 질서에 충성하겠다며 당당하게 선언한 정의로운 검사가 성욕을 이기지 못한 채 덮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끄아아악!”


돌연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건 정유라의 것이 아니라 하준원 검사가 지른 것.

덮쳐오는 입술을 힘껏 깨물어버린 것이다.

발랑 뒤집어진 그를 밀치며.


“허억, 허억!”


텐트를 빠져 나왔다.

아니, 나오려 했다.


“꺄악!”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상대의 대응이 더 빨랐다.


“이런 쌍년이!”


긴 머리카락을 움켜쥔 우악스러운 손길.

스윽-

입술에서 새어 나오는 핏물을 소매로 훔친 그가.

퍼억!

그대로 그녀의 안면을 주먹으로 가격했다.


“씨발, 별 거지 같은 년이. 내가 좋다고 품어주면 영광으로 알아야지, 어디서 지랄이야 지랄은!”


퍽, 퍼억!

아무리 독심이 있다고 해도 성인 남성, 그것도 럭비부로 꽤 오래 활동한 이의 폭력을 감당해낼 순 없었다.

꿈틀.

무자비한 폭력에 의식을 잃은 육신이 잘게 꿈틀댄다.


“아나, 씨!”


극도의 흥분은 몸에 남아 있는 취기를 몰아냈다.

그제야 사고를 친 사실을 깨달은 하준원.

하지만 그 짜증은.


“씨발, 입술을 깨물고 지랄이야.”


입술에 느껴지는 고통으로 인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짜증을.

퍽, 퍼퍼퍽!

고통을 준 당사자인 정유라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푼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래, 얌전히 있으니까 얼마나 좋아.”


폭력으로 얌전해진 그녀의 몸 위에 체중을 싣는다.

예전부터 그랬다.

한 번 끓어오른 욕정은 반드시 풀어야만 성미가 풀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작되는 본능의 행위.

의식을 잃은 그녀를 향한 욕정을 푼 이 젊은 스타 검사는 바지를 치켜올리며.


“야, 거기 있는 거 다 알고 있으니까 나와.”


골목 귀퉁이를 향해 소리쳤다.


“예, 예.”


그곳에는 거리를 배회하는 노숙자인 배석현이 있었다.

혹한의 추위에 바람이라도 피하고자 골목 사이에 숨어 있었다.

그런 와중에 들려오는 소란에 몰래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

좋은 눈요깃거리, 혹은 협박으로 돈 좀 뜯어낼 수 있지 않을까 여기면서 말이다.

그런데 들켰다.

아무래도 눈이 쌓여 있어서 움직일 때마다 소음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고, 취기를 몰아낸 검사는 그 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지금부터 네가 범인이다.”

“···예?”


갑작스러운 그 말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툭.

발치에 떨어지는 돈뭉치.

수표와 오만 원 지폐의 숫자가 상당하다.

꿀꺽!

못해도 수백만 원이 넘어가는 금액에 마른침을 삼킨다.


“그건 선금. 만약 네가 범인이라고 자백하면 통장에 1억 꽂아준다.”

“···.”


그건 흔들릴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물론 평범한 사람이라면 고작해야 1억에 자신의 인생을 팔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배석현은 노숙자다.

이미 인생을 포기한,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삶을 사는 이.

그런 이에게 1억이란 금액은 어떻게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설령 징역을 살다 나온다고 해도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해줄 만한 금액이었다.


“나 검사야. 최대한 징역을 살지 않도록 손을 써둘 테니까 어때? 고작해야 감방에서 몇 년 썩는 거치곤 좋은 조건 같은데.”

“···.”

“싫으면 꺼져. 너 말고도 얼마든지···.”

“아, 아닙니다. 제가, 제가 하겠습니다.”

“그래?”


미심쩍은 눈빛.


“맡겨만 주십시오. 제가 잘 할 수 있습니다.”


어딜 봐도 대단한 윗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을 반 죽여 놓고 이렇게 당당할 수 있을까.

저 위의 세계가 상당히 추악하다는 걸 알고 있기에 이건 기회라 생각했다.


‘평생 못 만질 돈을 만질 수 있다.’


그 기회를 다른 이에게 빼앗길 순 없지.


“그럼 뒤처리. 확실하게. 알지?”


이 추운 날씨에 발가벗겨진 채 꿈틀대고 있는 정유라를 바라본다.


“예. 제가 확실하게 처리해 놓겠습니다.”

“말귀는 잘 알아먹어서 좋네. 그리고 명심해. 나에 대한 어떠한 이야기라도 꺼내는 순간···.”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며.


“네 목이 달아난다는 걸.”

“아, 알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않게 입단속, 뒤처리도 확실히 할 테니 돈만 확실히···.”


그렇게 더러운 거래가 성사되었다.

우발적인 범행을 벌인 하준원 검사는 그 자리를 벗어났고.

휘이이잉-

겨울의 찬 바람이 부는 그곳에 노숙자 배석현과 차갑게 식어가고 있는 정유라만이 남아 있었다.


“···.”


그리고 정유라를 바라보는 배석현의 시선에는.

꿀꺽.

더럽고 추악한 욕정이 깃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익.

지퍼를 내린 배석현은 조금 전 하준원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욕정을 풀기 위한 짐승의 행위를 시작하고 있었다.


*


“헤에-”


세뇌로 인한 정신의 파괴.

내가 놈의 기억을 읽는 동안 놈은 자아를 잃은 백치가 되었다.

자신이 무엇인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


“···운이 좋군.”


정신이 파괴된 놈에게 어떤 짓을 하건 놈은 그것을 인지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그건 놈에게 어울리는 처분이 아니었다.

최대한 고통스럽게, 누나가 느꼈을 고통의 100분의 1, 아니 1,000분의 1이라도 느끼게 해줬어야만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정신이 파괴된 놈을 되돌릴 방법은 지금의 내게도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뭐, 뭐야?”


침묵의 장막으로 인한 무음은 그 공간 안에 있는 이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잠을 청하고 있던 수감자들이 때 아닌 소란에 몸을 일으킨다.


“너, 누구야?”


험상궂은 얼굴.

팔에 새겨진 문신과 노란색 명찰은 놈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를 짐작케 한다.


“씨발,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

“벙어리 새끼야? 왜 말이 없냐고.”


죄수복도 아니고 사복을 입은 애송이.

내 등장에 다들 무언가 기회를 얻은 것처럼 눈을 번뜩인다.


“꺼져···.”


기분이 좋지 않다.

가슴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무언가.

그 열기는 북부 대공조차도 억누를 수 없는 것이었다.

당장 분출하지 않으면 터질 것만 같은 그것은 제어하기 힘든 ‘분노’였다.


“뭐? 꺼져? 나이도 어린 새끼가···.”


그리고 그 분노를 발산할 만한 쓰레기들이 근처에 있다.

퍽, 퍼퍽!

그건 그냥 기분이 시키는 대로, 당장 터져버릴 것만 같은 감정의 배출이었다.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이성이 다시금 돌아왔을 땐.


“끄으으···.”

“끄륵-”


아무렇게 널브러진, 만신창이가 된 수감자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


그러나 가슴을 태울 듯한 불길은 여전하다.


“아무래도···.”


이 불길을 꺼뜨리기 위해선 이 모든 일의 근원, 그 짐승 새끼와 대면해 봐야 할 듯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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