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2회차 탑 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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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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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9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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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7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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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정복자의 시간(7)

DUMMY

아버지가 평생을 바쳐 일군 대호스틸은 김도윤의 손아귀에 떨어졌다.

그렇게 건실한 중견 사업체를 집어삼킨 놈은 아버지를 살해한 정동원에게 사장 자리를 내어주었다.

배려나 포상의 차원이 아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조롱하는, 우리 일가족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혹한 선택이었다.

내가 알아낸 정보는 그게 다였다.

인수된 이후에는 늘 그렇듯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기에(정기적인 매출 보고만 받을 뿐) 깊은 내막은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예상하지 못했다.

과거 대호스틸의 핵심 인재였던 아저씨들이 전부 자기를 지키고 있을 줄은.

김도윤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건.


‘이 자가 꾸몄을 테지.’


이제는 작은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자, 정동원이 벌인 일이 분명했다.

그 과정?

안 봐도 빤하다.

아버지를 팔아 뿔뿔이 흩어진 직원들을 모았을 것이다.

놈의 성격상 사업이 잘된 건 아버지의 역량이 아니라 우수한 직원들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물론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긴 하다.

사람이 좋으셨던 아버지는 직원들을 믿음으로 대했고, 직원들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대호스틸을 성장시켰다.

이 자는 거기에 숟가락을 얹었다.

아버지의 이름을 팔아가며, 아버지의 뜻을 이어가겠다는 거짓말로.

결과적으로 보면 성공이다.

공장 규모가 과거보다 배는 커졌다.

그건 곧 사업이 잘 나가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


“그런데···.”


덩그러니 홀로 떨어져 있는 나와 자연스레 눈이 마주친다.


“···누굴 찾아오셨는지?”


놈의 말에 덩달아 직원들의 시선이 내게 모였다.

하지만 그 주위 시선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내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는 건 정동원, 오직 그 하나뿐이었다.


“···.”

“음? 우리 본 적이 있던가요?”


멀뚱히 바라보고 있는 날 의식하며 말한다.

그제야.


“오랜만이네.”


입을 뗐다.


“오랜만···?”


얼굴이 반쯤 굳는다.

그럴 테지.

변장했다곤 하지만, 마찬가지로 20대 초반의 모습이다.

동방예의지국에서 아버지뻘에 반말을 해대는 게 정상적으로 보이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츠츠츠!

변신의 귀재를 풀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순간.


“하, 한성이?!”


경악하는 정동원.

그래도 아직 내 얼굴을 기억하는 모양이다.


“죽을 만큼 보고 싶었다, 정동원.”


한자 한자, 그 이름을 똑바로 말했다.


“뭐, 뭐? 너 무슨 말버릇···.”


하지만 놈이 말을 끝맺는 일은 없었다.

팟!

보이지 않는 속도로 접근한 내가.


“···컥!”


놈을 번쩍 들어 올렸기 때문이다.


“커, 커컥!”


벗어날 수 없는 악력에 버둥대며 고통을 표현한다.

충혈된 눈, 돋아나는 힘줄, 일그러진 얼굴.


“하하핫!”


고통으로 점철된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북부 대공 특성을 뚫는 기쁨이 솟아오른다.

기쁘다.

어떻게 기쁘지 않을까.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이렇게 대면하게 되었는데 말이다.


“아니, 이게 무슨 짓이야!”

“얼른 놓지 못해!”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당황한 직원들이 달려든다.

아니, 정확히는 달려들려고 했다.

파직, 파지직!

마치 스파크가 튀듯 검붉은 기운이 내 주변을 감쌌다.


“으읏!”

“허!”


깜짝 놀란 직원들이 헛바람을 들이키며 물러선다.

처음 보는 기이한 현상, 미지의 영역을 두려워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지만, 이건 차원이 다르다.


【탑의 정복자】


특정한 특성이 있는 도전자가 발산할 수 있는 기세.

패기(覇氣)라고도 불리는 것이며 이 기세에 노출된 이들은 공포, 두려움, 혼란 등 다양한 상태 이상에 빠지게 된다.

물론 일반인들인 직원들이야 당연히 이 기세에 저항하지 못할 테지만, 앞으로 등장할 도전자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패기는 정복한 층수에 따라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 말인즉 100층을 정복한 내 패기에 굴복하지 않을 이는 존재하지 않는단 점이다.


“으으-”


두려움에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직원들을 바라본다.

이들에게 손을 쓸 생각은 없다.

아버지를 배신한 것도 아니고, 그저 가면을 쓴 짐승에게 속고 있을 뿐이니까.

다만 소란이 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심신을 제압한 것이다.

그리고.


“끅, 끄으윽-”


여전히 발버둥 치는 정동원을 응시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내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궁금한 것 같은데.”


고통의 와중, 그 눈빛에 의문이 담겨 있다.

그래. 궁금하겠지.

내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을 테지만, 확신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다 알고 왔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말해주었다.

내가 다 알고 있음을.

그리고 그 순간.


“끄윽!”


일순간이지만 보였다.

놈의 눈빛에 살의가 깃드는 것을.

이 짐승은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날 죽이려 마음 먹었다.


“미안하지만, 네 뜻은 이루어지지 않을 거야.”


과거에는 그냥 당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부터는 나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복수의 무대를 장식할 등장인물이 도착했다.


“아빠! 왜 이렇게 늦게···.”


열린 문을 통해 공장 안으로 들어오는 이들.

육감을 통해 이미 누군가가 접근하고 있음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누군지도.


“꺄, 꺄악!”

“여보?!”


장내의 광경에 경악성을 토하는 이들.

정동원과 마찬가지로 낯익은 얼굴이다.


“오랜만입니다. 작은어머니, 그리고 누나.”


진수희, 정윤솔.

정동원의 아내와 무남독녀.


“너, 너 한성이니?”


안 본지 꽤 시간이 흘렀는데 용케 날 알아본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게 무슨 짓이야!”


위협받는 정동원의 모습에 내게 접근하려 한다.

물론.

파지직!


“꺅!”


패기를 발산해 정윤솔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아섰다.


“위기에 처한 아버지를 구하려는 효심이라. 그래. 확실히 자기 가족은 잘 챙긴다고 들었어.”


전해 듣긴 했다.

친형을 살해할 정도의 짐승이지만, 자기 가족은 유난히 아낀다는.

오히려 그런 가족에 대한 집착이 반대급부로 아버지에 대한 질투와 원망 등을 낳게 했는지도 모른다.

놈에게 가족은 그 무엇보다 지키고 싶은 보물일 테지?

그렇다면.


“내가 비밀 하나 알려줄까?”


놈이 그토록 아끼는 가족이 그토록 숨기고 싶은 비밀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참을 수 없는 궁금함에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끄, 끄륵!”


물론 어떻게든 그것을 막으려 했지만, 놈의 발버둥은 내 행동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었다.


“사실 우리 아버지를 살해한 진범이 있거든.”

“무, 무슨···?”

“바로 당신들의 남편이자, 아버지인 정동원. 자기 친형의 사업장을 빼앗으려는 김도윤과 손을 잡고 급기야 자신의 손으로 형을, 우리 아버지를 살해한 짐승!”

“···.”


그 충격적인 발언에 장내는 정적에 휩싸였다.

하지만.


“허, 헛소리! 큰아버지는 자살한 걸로···.”

“자살? 무효 소송의 첫 공판을 앞둔 전날 갑자기?”

“···믿기 힘들다는 건 알아. 하지만 이건 아니야. 아무런 증거도 없이 생사람을···.”

“증거?”


그래.

증거가 없는 말은 추측에 불과한 것.

충격적인 내용인 만큼 여기 있는 이들을 납득시키려면 증거가 필요한 법이다.

물론.


“원한다면 얼마든지.”


주머니에 넣어둔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리고 저장한 녹음본 중 하나를 재생했다.


「그 새끼, 평소 형에게 불만이 많았던 모양이던데. 지망한 대학교에 못 붙은 것도 형 탓. 사업이 망한 것도 형 탓. 모든 게 형 탓이라나. 낄낄낄낄.」


그건 김도윤을 고문하며 녹음한 내용이 담긴 것.


「···그렇지. 자기 손으로 형을 죽인 동생이라니. 후에 너희가 알게 될 진실을 위해서라도 그런 놈은 살려 둘 필요가 있겠더라고. 그래서 뒤처리를 마다하지 않았지. 형이 힘겹게 일군 사업체도 쥐여주고 말이야. 으하하하하!」


아버지가 살해된 일련의 과정이 자세히 담겨 있다.


“미, 믿을 수 없어. 이 사람이 누군데?”


여전히 믿지 못하는 정윤솔을 향해.


“김도윤.”

“···.”


적어도 이 자리에서 김도윤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가 무슨 짓을 했는지, 그리고 아버지와 어떠한 악연으로 엮여 있는지.

하지만.


“믿을 수 없어! 거짓말이야! 이건, 이건 조작된 걸 거야. 아빠가 큰아버지를 주, 죽일리 없잖아!”

“조작이라.”


촤아악.

바닥에 내려놓은 스마트폰을 밀어 정윤솔 앞에 두었다.


“조작이 의심되면 얼마든지 조사해 봐.”

“···.”


확신하는 내 모습에 흔들린다.


“커윽, 커어억!”


그리고 그것을 정동원도 지켜보고 있다.

하하!

이 얼마나 짜릿한가.

끔찍이 생각하는 가족이 자신을 살인범이라 의심하고 있다.

아마 놈에게는 이것이 그 어떤 고통보다 더욱더 깊게 새겨질 것이다.

하지만.


“한성아! 그래도 그 손은 그만 놔주고 어? 우리 천천히 이야기해 보자.”


당장 상황을 빠져나가기 위한 작은어머니의 말.


“그럴 순 없죠.”


어렵사리 준비한 무대, 나는 여기서 끝장을 볼 생각이다.


“하나만 묻겠습니다.”


나를 진정시키려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가 눈앞에 있습니다. 충분히 제압할 만한 힘도 있고, 당장 복수할 수 있는 상황에서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그건···.”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는 진수희.


“···우리에게 지켜야 할 법과 질서가 있잖아.”


잠깐 침묵하고 있던 정윤솔이 나섰다.


“사적 제재는 폭력이야. 만약 아빠가 정말 큰아버지를, 잘못했다면 벌을 받아야겠지. 지금 네 복수의 방식은 옳지 않아.”


정론이다.

확실히 이 사회는 지켜야 할 법과 질서가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경계하는 건 사적 제재.

만약 사적 제재가 허용된다면 이 세계는 무질서로 인한 혼란이 찾아오게 될 것이다.


“지랄.”


물론 그따위 정론은 내게 들이밀 수 없다.


“법과 질서? 누구를 위한? 애초에 힘 있는 자들은 법과 얽매이지 않아. 오히려 그 법을 이용하여 약자를 짓누르지. 법과 질서를 찾는 건 힘이 없는 자, 나약한 이들만이 부르짖는 이상에 지나지 않아.”


김도윤과 대면하며 나는 이것에 대해 확실히 느꼈다.

놈은 분명 많은 잘못과 범죄를 저질렀다.

하지만 그가 법의 심판을 받은 적이 있는가?

수많은 소송에도,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법은 놈의 손을 들어주었다.

현재의 법과 질서는 힘 있는 자가 누리는 특권과 같은 것.


“···나도 그 혜택과 권리를 누려야겠어.”


나는 세상의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100층을 정복했다.

힘은 곧 나를 대변하는 단어.

이 세계의 법과 질서 따위는 내 행동의 정당성을 옭아맬 수 없다.


“한 번씩 생각했지. 아버지를 죽인 짐승을 가장 고통스럽게 죽일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문?

육체에 가하는 고통 따위는 순간에 불과하다.

내가 겪었던, 내 가족이 겪었던 영혼이 갈리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려면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결론을 얻었다.


【인형술사】


촤라락!

보이지 않는 실이.

푹, 푸푸푹!

고통에 발버둥치는 정동원의 몸뚱이 곳곳에 파고들었다.


“흐읍?!”


고통?

그런 건 없다.

다만 이질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을 뿐.

쿵.

그제야 잡고 있던 손을 놓아 놈을 자유롭게 해주었다.

아니, 그건 다른 의미의 속박이었다.

저벅.

놈이 내 손짓에 따라 움직인다.


“으, 으악! 이게 뭐야. 몸이, 몸이 말을 안 들어!”


인형술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실을 통해 일순간 육신을 조종할 수 있는 특성.

물론 상대의 능력치가 나보다 높거나 비슷하다면 애초에 실을 박을 수도 없지만, 정동원과 같은 일반인을 지배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마치 실로 연결된 마리오네트를 조종하듯 놈을 조종하여 공장 뒤편에 걸려 있던 빨랫줄을 가져오게 했다.


“누, 누가 나 좀. 으아아아-”


빨랫줄을 본 놈은 직감했을 것이다.

자신의 운명을.

지금부터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말이다.


“여, 여보!”

“아빠!”

“사장님!”


그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는 사람들.

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지켜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파지지지직!

더욱더 강렬하게 발산되는 패기 때문이다.


“한성아. 내가, 내가 잘못했다. 아버지를, 형님을 내가 죽였다.”


죽음을 직감한 놈이 실토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건 우발적인 거였어. 형님이 나를 무시하는 바람에. 애초에 내 말만 들었으면 모두 행복하게 살 수 있었는데 고집을 부려서···.”


그 상황에서도 여전히 남 탓, 아버지를 탓하고 있다.

스윽.

그 역겨운 주둥이가 더는 열리지 않도록 지퍼 채우는 시늉을 하자.


“으읍, 으으읍!”


신음을 낼뿐, 더는 악취 나는 말이 전해지는 일은 없었다.

놈이 무슨 말을 하든 바뀌는 건 없다.

설령 마지막 순간 회개한다고 해도 마찬가지.

이 짐승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빨랫줄을 고정하고, 올가미와 같은 둥근 모양을 만들었다.


“으으으으읍!”


놈의 눈은 나를 향해 있지 않다.

이 모든 과정을 똑똑히 지켜보고 있는 직원들, 그리고 자신이 아끼는 가족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덜컹.

올라간 의자를 밀어내며 올가미를 만든 빨랫줄에 목을 매었다.


“퀘헥, 케헤에엑-”


목을 압박하는 빨랫줄로 인해 터져 나오는 쇳소리.


“꺄아아아-”

“아아아아-”


사랑하는 이가 지켜보는 가운데 맞이하는 죽음.

그것이 내가 준비한, 놈에게 어울리는 가장 비참한 죽음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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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복자의 시간(1) +1 24.09.13 736 22 11쪽
1 나 혼자 탑 정복! 24.09.11 856 2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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