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와인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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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똘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9.09 17:29
최근연재일 :
2024.09.18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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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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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이 밖보다 큰 저장고

DUMMY

2화



“네놈, 화평이 손자냐?”


화평이가 누구지.

화평이가 누구였더라.


말하는 염소의 등장으로 나의 대가리는 파업을 선언했다.

그러니까, ‘생각’이라는 걸 하기를 멈췄다는 것이다.


마치 바보가 된 것마냥 ‘화평··· 화, 화평··· 화평···?’하고 있으니, 당장 TV 열려라 동물농장에 데리고 가도 될만한 저 염소가 혀를 차기 시작했다.


여기서 한술 더 떠, 두 발로 걷는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 같다.


“이화평, 누군지 몰라?”


이화평? 익숙한 이름이다.


고등학교 동창 중에 화평이가 있었나?

아님, 대학 동기?

전 여친 중에는 화평이라는 이름 가진 여자는 없었는데.

중학교, 초등학교 동창인가?

아, 혹시 설마 전원유치원 햇살반 친구 이름이 화평이었나?


가족이랑 연관된 사람 같은데··· 문제는 도무지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거다.


“들어본 이름 같은데, 모··· 르겠는데.”


염소한테는 반말을 써야 하는 거야, 아니면 존댓말을 써야 하는 거야?

나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반말부터 시작하는 염소에게 똑같이 반말을 해야 할지, 혹은 현대 지성인답게 존댓말을 해야 할지 오리무중이다.


“얼씨구? 반말이냐?”

“···요.”


염소한테 존댓말을 하는 일이 다 오다니.

이건 마치 우리집 8.5키로 돼지 비숑 돌돌이에게 ‘돌돌님~’ 하고 부르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인간으로서 자존심이 꽤 상한다는 얘기다.


“이화평이 누군지 몰라? 광산 이씨는 맞고?”

“응, 아니, 네.”


반려동물 대하듯 무심코 ‘응’하고 말하던 순간, 가로로 좁게 좁혀지는 놈의 눈을 보았다.


왜지, 왜 무섭고 오금이 떨리지?


‘아, 맞다. ···염소 병아리 영상.’


이건 내 기억 속 내재된 병아리 잡아먹는 염소 영상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건··· 염소를 향한 일종의 PTSD, 트라우마인 거다.


그래, 저 눈이다.

저 눈을 하고 병아리를 잡아먹었었지···.


한동안 흑염소는커녕, 닭도 못 먹게 만들었으며, 동물농장을 보다 경기를 일으키게 만든 동영상 속 염소와 닮은 것도 같았다.


“광산 이씨 몇 대 손인데?”

“솔직히 몇 대 손인지는 모르고요, 제 이름은 이하준이고 아버지 이름은 이 준자 길자 쓰시고 할아버지는 이 병자 철자 쓰십니다.”


대체 나에게 뭘 원하는 걸까.

저 기묘한 염소가 내게 뭘 원하는지까지는 알 길이 없어, 그저 내 이름부터 할아버지 성함까지 낱낱이 밝혔다.


“아? 할아버지가 병철이 녀석이라고?”

“예, 이병철, 저희 할아버지 성함이에요.”


우리 할아버지를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되묻는다.

그러다 염소는 이내 크하하하하, 술 궤짝으로 들이킨 장비마냥 웃음을 터트렸다.


“그 오줌싸개 꼬맹이 병철이가 벌써 할아버지가 됐구나! 벌써 세월이 그렇게 지났을 줄이야!”


꼬맹이 병철이···?

마치 우리 할아버지의 유년 시절을 아는 것처럼 군다.

염소가 말하는 것만으로도 동물농장 PD가 두 팔 벌려 환영할 이슈인데, 우리 할아버지의 유년 시절까지 알고 있다니···. 더더욱 염소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그런데요, 선생님은 누구세요?”


나는 계속 ‘병철이가 그렇게 컸어, 병철이 그 녀석이.’하고 웃다, 중얼거리다 또 웃는 염소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윽고 염소는 고양이 자세로 기지개를 쭉 켜더니, 기상천외한 말을 더 잇기 시작했다.


“나? 네 증조 할애비 친구.”


증조할아버지는 내가 뵌 적이 없으니 제외하고, 나는 할아버지 손에서 자라며 단 한 번도 ‘말하는 염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 없었다.


심지어 500평 포도밭에 대한 이야기도.


당신 이야기 하시길 좋아하시던 할아버지라, 더더욱 이해가 안 됐다.

우리 할아버지는 병상에 누워 계실 때도 어렸을 적 당신 사고 치신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던 분이셨으니까.


“제가 할아버지께 말하는 염소··· 가 아니라 사람이 아니신 증조할아버지 친구분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어서요.”

“그야 모를 수밖에. 그땐 내가 이 모습이 아니었기도 했고. 병철이 두셋 되었을 때쯤이었나, 영천을 떠났으니.”


아, 그렇구나.

그렇다면 모르실 수밖에 없지, 암.

나도 프랑스인일 적 내 세 살 때 기억은 나지도 않는다.


말하는 염소에게 익숙해질 때쯤, 정신이 없어 잊었던 가장 중요한 물음이 떠올랐다.


‘그래서 저 염소의 정체는 무엇이냐.’에 대한 물음말이다.


저 염소가 증조할아버지와 친구 사이인 것은 알겠다. 그래, 여기까지는 이해 완료.


그런데, 말은 어떻게 하는 거고, 어째서, 도대체, 왜 이 포도밭에 있는 건데?


“그런데요, 말씀은 어떻게 하시게 된 거예요···? 저희 포도밭에는 왜 계시는 거고요?”


염소는 잡아먹는다는 말 안 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염소에게 잡아먹힐 위험을 무릅쓰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안 믿을 수도 있겠지만.”

“······.”


여기서 더 놀랄 것이 남아있나요.

혹시 이족보행이라도 하시는지요.

아니면 허공답보?


“나는-”


꿀꺽, 괜스레 긴장감이 감돌아 침을 삼켰다.


“디오니소스다.”

“네?”


음?


음··· 음!

잘못 들은 게 분명하다.


“내가. 디오니소스라고. 술의 신.”


언제부터 경북 영천시가 그리스가 된 거지?


아- 아, 알겠다.

그리스가 나라 이름이 아니었던 거다.


그러니까, 그리스 로마 신화의 원래 풀네임은 ‘경북 영천시 화남면 그리스리 로마 마을 신화’였던 거구나!


아하, 이제야 이해가 가네-


는 개뿔.


대한민국에서 직항도 없는 그리스, 그것도 그리스 놈들도 이제는 안 믿는 그리스 신이 왜 경북 영천시 화남면 사천1리 보현산별빛포도마을에 있는 건데.


말하는 염소에 (자칭) 디오니소스의 등장이라.

사실 더 못 믿을 것도 없었다. 사실 그렇게 따지자면 제일 거짓말 같은 건 내 출생이다.

다만, 한국과는 너무 낯선 신이 다른 곳도 아니고 영천에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을 뿐.


“그래서 선생님이 디오니소스··· 이신데, 도대체 왜 그리스가 아니라 한국, 그것도 영천에 와 계시는 건지요.”

“뭐, 다른 이유가 있겠나.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 화평이랑 친해져서 여기 눌러앉은 것이지. 사실 이건 업계 비밀인데, 옆 동네 예수는 지금 국경 없는 의사회에서 일하고 있다네. 요즘은 의사인 척 굴면서도, 아직까지 예루살렘 몽키스패너 성질 못 버렸다는데, 그 친구도 참 여전해.”

“지금까지 여기 계시는 이유는요?”

“사실 화평이는 영천을 아예 떠날 생각이 없었어. 화평이 걔가 독립군 쪽에 자금을 좀 대줬다 보니, 순사의 레이더망에 걸렸고, 그거 피해 잠시 몸 좀 숨긴다는 게 이렇게 한 세월이 되었지, 뭐냐.”


들려오는 목소리가 쌉쌀했다.

잠깐의 외출이 이렇게 세대를 거듭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포도밭은 저희 증조할아버지가 부탁하신 건가요?”

“그렇지.”


할아버지가 포도밭을 팔지 않으셨던 이유, 알 것 같았다.

증조할아버지를 뵌 적은 없어 잘은 모르지만, 아마 증조할아버지는 할아버지께 영천에 두고 온 땅 이야기를 하셨던 듯했다.


“포도밭 관리는요?”

“누가 하겠어, 내가 했지. 명색이 와인, 술의 신인데 포도밭 관리 하나 못할까. 다만 양조용 포도밭으로만 관리 가능하다는 것이 문제지.”


양조용으로만 관리 가능하다고? 그럼 나야 완전히 땡큐다.

단순히 말하는 개꼰대 염소인 줄만 알았더니, 손 안 대고 코 풀게 해주는 고오급 인력이었잖아?


“그나저나, 암만 양조용 포도로 기르면 뭐하나.”

“드시면 되잖아요.”

“내가 술의 신이라고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축제도 주관하기도 하지.”

“···그게 왜요?”


축제를 주관하는데, 그게 왜. 뭐. 무슨 상관인데요.


“나이는 젊은데, 말귀는 영 꽝이네.”


혹시 설마.


“혼자··· 드시기 싫다는 거예요?”


몇천 년을 살아놓고?


“큼, 흠. 말이 그렇게 되나.”


그는 목을 가다듬으며 언제 그랬냐는 듯 딴청을 부렸다.


“모습은 왜 하필 ···염소인 건지 여쭤봐도 되나요?”

“사실 이 포도밭은 지금 화평이 가족들만 들어올 수 있어. 화평이와 일절 관계없는 사람들 눈에는 공터로만 보여.”

“일종의 환각이네요.”

“그렇지. 화평이는 내가 디오니소스라는 것을 몰랐어. 그저 한국말 잘하고 술 좋아하는 양인 친구로 알았지.”


당연히 그때도 이런··· 말하는 염소의 모습을 갖고 있을 줄 알았다. 하긴 그 당시라면, 말하는 염소보다는 외국인 모습을 하는 게 더 유리했을 테다.


“그러면 지금은 왜···.”

“사람의 모습을 하고 지내기에는 여기서 너무 오래 살았어. 나는 백몇 년 동안 늙지 않는 드라큘라 같은 걸로 토픽이 되고 싶지는 않거든. 참고로 이것도 업계 비밀인데, 드라큘라 그 인간, 인간 행세하며 멀쩡하게 돌아다니는 것도 모자라서 요즘은 지 이야기를 가지고 만든 뮤지컬에 직접 출연한다지? 그것도 본인 역할로.”

“아···.”


아까도 이 인간 아니 염소, 업계 이야기라면서 국경 없는 의사회에서 봉사활동하고 있는 예수 이야기했었는데.


“그 작자도 참- 징글징글하지. 뭐랬더라, ‘본인 사랑이 인정받는 것 같아 짜릿하다’던데.”

“그 말씀 중에 죄송한데요, 그래서 염소 모습은 왜 하고 계시는 건지···.”

“아아, 맞다. 그 얘기 중이었지? 좌우간, 사람들 눈에 띄지 않고 이곳저곳 쏘다니기에는 염소의 모습을 하는 게 편해. 뭐, 툭 까놓고 이야기하면 지금 당장 본래 모습으로 돌아다녀도 날 의심하는 인간들은 없을 거야. 날 기억하는 인간들은 다 죽었으니까.”


디오니소스의 말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가만히 보다 보니 이 양반, 이야기하다 자꾸 딴 길로 새는 게, ‘제가 1994년 LA에 있었을 때···’의 주인공과 닮았다.


“그렇지만 이런 소도시에서 금발 긴 머리 미남자로 돌아다녀서 좋을 게 뭐가 있겠어? 쓸데없이 눈에 띄기나 할 테지.”


그 말과 함께 디오니소스는 본래 제 모습을 드러냈다.

확실히 저런 금발에 긴 머리를 하고 있는 남자라면··· 나도 몇 번씩 뒤를 돌아보다 말 한 번 걸어볼 것 같긴 하다.


‘혹시, 헤비메탈 좋아하세요?’라고···.


염소에서 인간으로 변한 그의 차림새는 갓 태어난 인간과도 같았다.


그러니까, 알몸이라는 뜻이다.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지만, 필사적으로 괜찮은 척, 쿨한 척, 목욕탕에 온 사람인 척 굴며 보스턴백에서 품이 큰 흰 티셔츠와 운동복 바지를 건넸다.


어휴, 이제 눈 좀 들겠네.


“···그렇군요.”


‘그냥 금발 긴 머리 미남자로 살기에는 눈에 너무 튄다’고 깔끔하게 정리하면 안 되냐고.

이걸 이렇게 길게 말할 일이냐고.


“그럼 이제는 내가 묻지. 네 녀석은 이 포도밭에 뭔 볼일이 있어 찾아온 거냐? 땅 팔기 전에 둘러나 보려고 온 거면 썩 꺼져.”


증조할아버지의 포도밭을 1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킨 것도 모자라, 환각까지 걸어놓은 양반이다.

이방인이나 마찬가지인 제게 저렇게 날을 세우는 것도 당연하다.


지금까지 이곳을 지키고 관리하고 있었다는 건, 곧 증조할아버지와 사이가 돈독했다는 것과 같은 의미니까.


그렇지만, 아군은 될지언정, 적군이 될 리는 없는 사람이다. 무엇보다도 증조할아버지의 친구이기도 하고.


“설마요, 땅을 팔 리가 있나요. 저는 그냥··· 와인을 만들려고요. 그래서 왔습니다.”

“와인을 만든다?”


디오니소스는 흥미롭다는 눈 반, 가소롭다는 눈 반을 하고 나를 바라보았다.


까딱, 까딱.


그러더니, 나를 포도밭에 마련된 창고로 데려갔다. 어디 경기도 중소기업 소형 물류창고처럼 생긴 건물이다.


십 년은 더 된 느낌의 조립식 창고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박공지붕 타입의 작은 창고다. 와인을 저장할만한 곳은 확실히 아니다.


‘이런 곳엘 왜 가자고 하는 거지?’


와인은 아주 예민하다.

온도는 10도에서 14도 정도, 습도는 60%에서 70% 정도로 유지되어야 한다.

진동에 따라서도 와인의 맛과 향의 구조가 깨질 수 있기 때문에, 보관되는 장소는 흔들림 없이 안정적이어야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공기가 정체되지 않고 계속 환기되는 환경도 중요했다.


즉, 저 조립식 창고는 와인 저장고로써는 낙제점이라는 뜻이다.


심지어 영천은 일교차도 크고, 태양도 강렬하다.

조립식 창고는 여름이면 와인이 끓기 딱 좋고, 겨울이면 와인이 얼기 알맞은 환경이다.


‘저런 곳에 와인이 있을 리가···.’


대체 뭐가 든 거지, 오리무중인 상태로 그를 뒤따랐다. 창고는 멀리서 봤던 것보다 더 작아서, 여기에 와인이 없을 거라는 심증은 더더욱 확신으로 굳어져만 갔다.


“와인을 만든다면 이것쯤은 알아보겠지.”


마침내 그가 창고의 문을 열어젖히면,


‘···있네.’


안이 밖보다 더 큰 와인 저장고가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KakaoTalk_20240911_002657694.jpg


작가의말

8.5키로 돌돌이는 실존 강아지(돼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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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이 밖보다 큰 저장고 24.09.11 26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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