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와인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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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똘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9.09 17:29
최근연재일 :
2024.09.18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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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5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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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e in Yeongcheon

DUMMY

6화



내가 아무리 와인을 좋아하고 또 사랑한다고 해도 이건 좀 무리다. 간경화, 지방간 걸릴 뻔했다.


술과 일주일을 보내고 바로 월요일 출근하려니, 죽을 맛이다.

마음 같아서는 오늘 추가로 연차를 쓰고 싶었지만, 오늘 회사에서 꼭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래도 먹었던 와인은 다 맛있었지.’


아직도 입에 남아있는 샤또 마고 1900 빈티지의 여운을 느끼며 대감댁 출입구 출입증을 찍었다.


“어이~ 동탄신도시 28개월 아기 이름 이하준이~!”


제발 그렇게 부르지 좀 말라고 내가···.


보지 않아도 저 멀리서 들려오는 우렁찬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알았다.

나는 애써 그를 무시하며 빠른 걸음으로 성큼성큼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동탄신도시 이하준 어린이 지금 저 무시하는 겁니까?! 나 최 팀장님이랑 같이 있는데?”


제발, 친구야.


“안녕하십니까. 팀장님.”

“안녕하세요, 하준 씨.”


나는 곧장 몸을 틀어 최 팀장님에게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를 드렸다.

물론, 최 팀장님 옆에서 얼쩡거리는 권재경이새끼는 무시한 채다.


“어잇? 이하준이 7일 동안 쉬어놓고 안색이 왜 휴가 가기 전보다 더 구리냐? 대체 술을 얼마나 마신 거야?”


상사 앞에서는 제발 자중해줄래.


“하하, 술이라뇨. 술 안 마셨어요. 재경 씨.”

“최 팀장님! 얘 거짓말 해요!”


맞다. 물론 개구라다.


사실 술 마신 날보다 안 마신 날을 세는 것이 더 빠를 정도로 술을 마셨다.

안 마신 날도 내가 숙취로 드러누웠기 때문이었다.


그때도 디오니소스는 해장술을 마셔야 한다며 내게 블러디메리(보드카 베이스 칵테일)를 들이밀었다.

이런 미친 신 같으니라고.


“쟤긍아 나 술 은므셨다니까···.”


팀장님 앞이니 평소처럼 권재경 이 새끼 저 새끼 할 수도 없어, 이를 최대한 악물고 말했다.


“휴가 때 뭐했어요?”


최 팀장님은, 아니 그녀는 내게 냉랭한 목소리로 물었다.


최 팀장은 나와 같은 신경와인 해외영업팀 팀장이다.

스펙 자체도 뛰어날 뿐만 아니라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4개 국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했다. 심지어 그녀는 요즘 취미로 일본어까지 공부 중이었다.


외국어만 잘하느냐? 하면 또 그것도 아니다. 영업 능력 자체도 손꼽힐 정도로 뛰어났다.

그래서인지, 30대 초반이라는 이른 나이에 임원들에게 인정받아 부장급인 팀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정리하자면, 외모면 외모, 학벌이면 학벌, 능력이면 능력, 모든 것을 갖춘 인재라는 소리다.


“휴가 때··· 음, 영천에 좀 다녀왔습니다.”

“이하준이, 영천에 지인이라도 있어? 아니면 이제 국내 와인에까지 손을 뻗은 건가?!”


권재경 이 자식, 국내와인사업팀라고 눈치 한 번 기가 막히다.


최 팀장은 의외라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입 좀 다물려 주고 싶은 권재경은 옆에서 계속 쉼 없이 깐족댔다.


“어, 진짜 와인이네?”


권재경은 내 양손에 들린 대형마트 가방 속을 쓱 훔쳐보았다. 대형마트에서 준 타포린 가방 안에는 라벨링 되어있지 않은 화이트와인이 각 5병씩 담겨있었다.


맞다. 모스 집안의 화이트와인 오크통을 가져다 만든, 청수 와인이다. 내기의 주인공,


“무슨 와인이에요? 어디서 파는 것 같지는 않고.”

“···그, 아는 분이 마셔보라고 주셨어요.”


사실대로 순순히 말하려다가도, ‘블라인드 테이스팅’ 하기로 했던 것이 떠올라, 자세한 내용에 관한 것은 대충 얼버무렸다.


“이것 때문에 영천에?”

“아뇨, 아뇨. 한번 맛보라고 이만큼 주셨어요. 그런데, 저 혼자 열 병을 다 마시기에는 무리라, 회사에 가져와 봤어요.”

“이따 다 같이 마셔보면 좋겠네요.”



***



신경와인은 우리나라 와인 수입사 중 가장 큰 업체다. 그도 그럴 것이, 신경와인은 신경주류라는 거대 주류 회사의 계열사 중 하나였으니까.


그 말인즉, 회사 사람 모두가 한 말술 한다는 거다.


“이야, 술이야?!”

“예, 회사 분들이랑 나눠 마시고 싶어서요.”

“에게? 근데 열 병밖에 없네? 사람이 다섯인데!”


맞다. 잊고 있었다.

신경와인의 모든 부서 중 우리 해외영업팀이 가장 말술이라는 것을···.


게다가 방금 ‘이야, 술이야?’, ‘에게, 열 병밖에 없네?’라는 발언들을 한 김 대리님은 솔직히 혼자서 충분히 이거 열 병도 다 마실 수 있는 인물이었다.


“팀장님~ 저희 이거 언제 마십니까?”


업무에 관련된 와인도 아닌데, 김 대리님은 혼자 앞서 나가 계셨다.


“김 대리님이 가장 많이 드실 테니, 김 대리님이 고르시죠.”

“그러면! 당연히! 아침부터죠~”


김 대리님은 거대한 몸집을 이리 살랑, 저리 살랑, 흔들며 무언가를 흉내 냈다.


‘딸이 셋 있는 아버지는 이렇게 되어가는 것인가···.’


아무래도 장안의 화제 캐릭터, ‘캐치핑’ 같았다.


“그래요, 그럼 지금 마시죠.”


김 대리의 이상한 아양에 푸하하, 경쾌하게 웃음을 터트린 최 팀장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흔쾌히 허락했다.


“하준 씨, 소회의실로 와인 가져와요.”


그렇게 블라인드 테이스팅이 시작되었다.



***



아침부터 일 안 하고 이렇게 탱자탱자 놀아도 되나? 싶지만, 신경와인은 대체적으로 자유로운 업무 문화와 주류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마치··· 실리콘벨리의 대기업 같달까.

탱자탱자 놀아도 제 할 일만 다 하면, 터치하지 않는 그런 회사 말이다.


“툭 까놓고 보면 업무랑 연관된 음주도 아닌데, 점심시간도 아니고 괜찮은가요?”


주류 기업답게, 근무 중 업무와 연관된 음주(테이스팅)는 허용되었고, 점심시간에 맥주 한 잔 반주 곁들이는 것도 괜찮았다.


하지만, 지금은 정말로 툭 까놓고 보면 업무와 연관된 것도 아니지 않나.

나는 테이스팅을 위해 자리를 세팅하면서도 두 번, 세 번, 최 팀장님께 되물었다.


“뭐, 우리끼리 생각하기에는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난 아니거든요. 하준 씨, 지금 우리 회사 신사업이 뭔지를 떠올려봐요.”


아, 맞다.


국내 숨겨져 있는 좋은 와이너리를 지원 혹은 인수하여 리브랜딩해 판매하는 것.


“국내 와이너리 육성 사업 말씀하시는 것 맞죠?”


번드르르한 말로는 국내 와이너리 육성이니, 사업이니 하지만, 실상은 ‘캐쉬카우 국내 와인 하나 만들어서 인기몰이 해보자’는 것과 같았다.


“그것 때문에 국내와인사업팀이 골머리를 앓고 있어요. 국내에 괜찮은 와인이 이렇게 없었나, 하면서요.”


국내와인사업팀이라면, 권재경이 있는 곳이다.

어쩐지, 요즘 전국 주류 박람회를 미친 듯이 찾아다니더니. 이 때문이었나 보다.


“하지만 그게 우리 일은 아니지 않나요?”

“맞아요. 우리 일은 아니지만, 뭐··· 이 김에 보석 같은 와이너리 하나 찾으면 회사 사업에는 진척이 있을 테니 좋은 거죠. 그 김에 하준 씨도 성과 올리는 거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그런 거 아니겠어요?”


우리 팀 업무뿐 아니라, 다른 팀 업무까지 신경 쓰고 있는 그녀의 업무 사랑, 아니 회사 사랑에 감탄이 나왔다.


어쩜··· 팀장님은 저렇게 대감님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맨날 대감집 탈출할 생각만 일삼는 (예비) 추노인데.


와인잔이 모두 세팅되었다.

나는 가볍게 칠링(와인을 차갑게 만드는 것)을 한 와인의 코르크를 따, 잔에 적당량씩 따랐다.


“다들 일할 수 있을 정도로만 마시세요. 과음하셔도 전 모릅니다. 토하고 일하고 토하고 일하고, 그런 거 경험하고 싶으시면 그렇게 하시고.”


해외영업팀 팀원 다섯 명이 모두 와인잔을 들고 있으니,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거기에 최 팀장님의 잔소리까지 곁들이니, 아주 회식 자리가 따로 없다.


“그럼, 맛있게 드시고 시음평 짧게라도 꼭 적어주세요.”


팀원들에게는 아는 사람이 준 와인이라고 이야기했지만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누가 보면 하준 씨 본인이 만든 줄 알겠어.”


김 대리님은 거기다 정말로 하준 씨가 만든 건 아니지? 아니지? 하며 깐족깐족 놀려댔다.


엄연히 도멘 데 모스의 색체가 짙게 묻은 와인이기에 긴장하는 건 당연했다.

따지고 보면 한국 사람들에게 제 집 와인 비스무리한 것을 처음 선보이는 것이 아닌가.


나는 팀원들이 한 모금 와인을 넘기는 것을 보고 나서야 한 모금 넘겼다.


“······.”


열띤 의견과 토론으로 가득해야 할 소회의실이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가장 먼저 의견을 냈어야 할 최 팀장님마저도 말없이 침묵을 지키며 와인을 뜯어보고만 있었으니.


“와인, 어떠셨나요?”


결국 먼저 침묵을 깬 건 나였다.


“하준 씨,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


한참 침묵을 지키고 있었던 최 팀장이 미간을 좁혔다.


무언가 불편한 게 있는 것일까.

혹은 부쇼네(와인 변질, 부패)가 나버린 것일까?

아니면 내 와인이···.


“···네?”


예상치 못했던 반응에 머리가 혼란하다. 평소라면 전혀 하지 않을 생각도 하는 걸 보니.


“이거, 국내 와인 아니죠? 김 대리님, 루아르밸리 생산 와인 중에 저렇게 라벨도 없이 수입되는 게 있었나요?”


이런 물음은 더더욱 예상치 못했다.


루아르 밸리?

거긴 프랑스에 있는 곳 아닌가?

이건 영천에서 만든 와인인데?


“예?”


멍청하게 되묻는 걸 보니, 제정신은 아니다.


“이 와인 정말로 국내에서 만든 것 맞는지 물었어요.”


최 팀장님의 목소리가 냉랭했다.


작가의말

미끈한 리슬링 와인이 당기는 날씨입니다 ^^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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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상에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곤 하는데 그게 내 일이라면 어떨 것 같아~ 24.09.11 35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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