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와인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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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똘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9.09 17:29
최근연재일 :
2024.09.18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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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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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애벌레랜드에는 제우스가 산다

DUMMY

7화



“이 와인 정말로 국내에서 만든 것 맞는지 물었어요.”


최 팀장님의 목소리가 냉랭했다.


최 팀장의 물음을 한 번 더 듣고 나서야, 나는 고개를 빠릿하게 끄덕였다.


이런 건 왜 묻는 거지?


“네···. 영천에서 만들었어요, 청수로요.”

“청수로, 영천에서 만들었다고요?”


최 팀장님은 ‘믿기지가 않는데’ 하며 와인을 몇 모금 더 입에 머금었다.


“저도 팀장님이랑 정말 똑같이 생각했어요. 저는 하준 씨 말씀 듣고 무슨 생각까지 했냐면, ‘내가 정말 국내 와인에 대해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니까요.”


해외영업팀의 재원, 채연 씨도 덧붙였다.


하아, 다행히 입맛에 맞는구나.


“무슨 맛이랑 향이 푸이 퓌메나, 퓌메 블랑을 마시는 것 같지 않아? 영천에서 만들었으니, 토질에서 비롯된 향은 아닐 테고, 하지만 싸구려 오크칩을 쓴 것 같지는 않고···. 이래저래 돈 꽤 많이 깨졌겠는걸.”


김 대리님께서 ‘푸이 퓌메’와 ‘퓌메 블랑’을 이야기하자 다들 이구동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푸이 퓌메는 프랑스 중부 지역, 루아르 밸리에 위치한 아펠라시옹(포도가 재배되는 특정한 지역)의 이름이다.

푸이 퓌메가 속한 루아르 밸리는 화이트 와인 생산 비율이 약 96%일 정도로 화이트 와인에 진심인 곳이다.


푸이 퓌메는 루아르 밸리에서도 손에 꼽히는 지역인데, 이곳의 와인에서는 신기하게도 ‘훈연향’, ‘화약향’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이유는 이곳 토양에는 ‘부싯돌’이 다량 포함되어 있기 때문.


퓌메 블랑 역시 마찬가지로 훈연향이 나는 화이트 와인을 뜻한다.

하지만, 이쪽은 푸이 퓌메랑 다르게 토질에서 비롯된 훈연향이 아닌, 오크통 숙성으로 비롯된 훈연향이라는 것.


쉽게 설명하자면, ‘푸이 퓌메를 오마주해 만든 미국산 소비뇽 블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짧게나마 요청한 시음평에는 오로지 감탄밖에 없었다.

채연 씨와 말 없는 강 과장님은 아로마와 팔레트, 감상에 대해 꽤 자세하게 적어낸 반면, 김 대리님은 ‘지릴 뻔’이라는 제법 짧고 쌈박한 시음평과 함께 본인이 느낀 아로마와 팔레트를 학구적으로 적어내었다.


하지만, 개중 압권은 최 팀장님이었다.


‘이것도··· 시음평?’


김 대리님은 그래도 짧고 강력하게라도 써냈다면, 최 팀장님은 ‘이게 맞나·········?’ 하는 말과 함께 아주아주아주 많은 말줄임표와 물음표를 종이에 가득 써냈다.


‘굉장히 고심해서 쓰시는 줄 알았는데.’


최 팀장님도 이런, 뭐랄까 고민하는 비둘기 같은 모습이 있구나.


팀원들은 국내 생태계 교란종 같은 이 이름도, 라벨도 없는 화이트 와인을 음미하는 데에 정신이 쏙 빠진 상태였다.


“혹시, 도수가 아쉽거나 하지는 않으셨나요?”

“뭐? 도수?”

“도수요?”


좀 전까지 이구동성이었던 팀원들이 동시에 고개를 들어 ‘내가 뭘 잘못 들었나?’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하, 아닙니다···.”


디오니소스의 내기에서 이기고, 양조장을 가지게 되었다는 성취감과 동시에, 여기서 와인에 대한 아쉬운 소리 한마디만 더했다가는 나는 여기서 죽겠구나, 하는 선뜩함이 함께 느껴졌다.



***



용인의 동물원, 사파리 월드.


‘동물원을 언제 마지막으로 왔었더라.’


아마도 대학교 때 사귀었던 여자 친구랑 왔었던 게 마지막이었을 테다. 그러니까, 한 3년 정도 되었나.

그때도 걔가 오자고, 오자고, 가자고, 가자고, 해서 간 거였다.


‘내 의지로 여길 또 오게 될 줄은 몰랐지.’


이곳에 오게 된 계기는 딱 하나, 단서 때문이었다.


“여기에 정말로 제우스가 있는 거 맞아요?”

“그래, 우리 아버지 여기 계신다니까.”


디오니소스에게 의기양양하게 시음평을 전해주며 제 승리를 알렸을 때, 디오니소스는 의외로 쿨하게 제게 단서를 일러주었다.


‘용인 애벌레랜드에 내 아버지 제우스가 있다.’


그것도 사파리 월드에.


나는 당연히 그가 사육사나, 애벌레랜드 사파리 월드 직원으로 있을 줄만 알았다. 그런데-


‘요즘은 사람이 아니라 사자로 계신댔는데. 이름이 뭐랬지? 천둥이랬나.’


사자?

뭐, 천둥이?

근데, 그게 제우스?


말도 안 된다고는 생각했지만, 제 앞에 있는 이상한 남자를 생각해 보면 안 될 것도 없었다.

그런데 왜 하필 인간의 몸 놔두고, 사자로 사는 거냐고.


그래서 디오니소스에게 물었었다.

왜 하필 사자인지에 대해서.


그랬더니, 나온 답은 정말 아주 사람 돌아버리게 만들 만큼의 가관이었다.


‘미국 유력 대선 후보의 딸이랑 사귀었다지, 아마.’


차기 천조국 대통령의 딸과 지지고 볶고 천년의 사랑을 하고 어쩌고 했던 것까지는 좋았다. 좋았는데, 문제는 그가 부인을 아주 많이 가지고 있다는 거였다.


그것도 전 세계에 걸쳐서···.


중국에서 결혼한 여자 세 명, 프랑스에서 두 명, 한국에서 한 명, 이런 식으로 결혼한 여자가 무려 세 자릿수에 달했다.


미 대선 후보는 당연히 제 하나뿐인 딸이 웬 나이 많은 놈팽이랑 사귄다는데 미치고 팔짝 뛸 수밖에.

그걸 빌미로 뒷조사를 해보니 전 세계 와이프가 세 자릿수였다··· 라는 결과가 나와 이렇게 된 거였다.


제우스는 그 사실을 들켰을 당시 본인은 ‘몰몬교도다’라고 강력히 주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미 대선 후보가 암만 미치고 팔짝 뛰었다고 해도, 정말로 돌아버린 것도 아니고 이걸 당연히 믿을 리 없었다.


대신 ‘몰몬교의 일부다처제는 19세기에 이미 끝났는데 뭔 소리야’라는 이유에서의 괘씸죄만 더해졌다.


천조국 차기 대통령의 복수는 제우스가 어딜 가나 끈질기게도 이어졌다. 그렇게 그는 일부다처제가 합법인 사자가 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동물원에 도착하자마자 사자가 있는 사파리 월드로 향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하필 배정된 사자 조형의 사파리 버스에는 현장체험학습을 온 초등학교 저학년생 무리가 가득이었다.

성인이라고는 초등학생 친구들을 인솔하는 인솔자 선생님 한 명과, 이상한 머리 긴 금발의 외국인 하나,


그리고 얼른 집에 가고 싶어 하는 불쌍한 20대 청년 하나가 다였다.


우리 뒤에 앉은 초등학생 어린이 둘이 눈을 빛내며 계속 질문을 던져댔다.

남자애가 질문을 하면, 똘똘하게 생긴 여자애가 곧장 받아쳤기 때문에 제대로 된 질답은 되지 않았다.


“아저씨! 남자예요, 여자예요?”

“바보야! 그런 거 물어보는 거 미국에서는 실례라고!”

“여기는 한국인데?”

“아저씨도 외국인이잖아!”


귀에 피가 날 것 같았지만, 은은하게 웃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사파리 버스는 한창 곰 사육장을 돌고 있었는데, 이 애들은 신기하게도 동물원 동물, 이런 것에 하등 관심이 없었다.


“얘들아, 동물은 안 보니···?”


나는 반쯤 지친 목소리로 물었다. 제발 동물 좀 봐줘, 우리 말고.


“한국에 와서 부모님이랑 몇 번 와봤는데, 솔직히 Bronx Zoo보다 시시해서 재미없어요.”

“너 Bronx Zoo 가봤어? 나도 자주 갔었는데!”

“당연하지. 나 뉴욕에서 태어났는걸?”


여기 뭐··· 국제학교 그런 건가···.

애들 영어 발음이 조카놈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아저씨는 남잔데 왜 머리카락이 길어요?”

“핀란드인이거나, 헤비메탈 애호가일 수도 있잖아!”


인솔교사의 만류에도 호기심 왕성하고 한창 관심 받기 좋아하는 초등학생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아저씨! 아저씨 영어 잘해요?? 아저씨 나보다 영어 잘해요?”

“으응, 그럼. 당연하지.”


나 이하준, 소싯적에 토익 만점을 맞은 남자.


‘하··· 숨겨왔던 나의 영어 실력을 보여줘야 하나.’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이들의 머릿속에 추억 하나는 남겨주자, 싶었다.


“그럼 아저씨 ‘an undischarged bankrupt’가 뭔지 알아요?”


싶었었다.


“야, 아저씨는 어른인데 그런 기초 단어를 모를 리가 없잖아!”


어린이 친구들, 아저씨는 어른이 아닌가 봐요.


“···언··· 뭐?”

“아저씨 바보! 그것도 몰라요? ‘면책미결제파산자’잖아요!!”


하하, 그렇구나.

아저씨는 ‘면책미결제파산자’라는 단어도 오늘 처음 들어본단다.


버스는 막 맹수 사육장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내내 곰만 내리 보다가, 호랑이, 사자 사육장에 진입하니, 우리 뒤에 있던 꼬맹이들도 비로소 시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역시 애들은 애들이다.


‘이젠 좀 조용하겠네.’


호랑이, 사자가 있는 맹수 사육장만 돌면 사파리 버스는 끝이다. 나는 제우스를 만날 거라는 생각에 허리를 꼿꼿하게 세워 앉았다.


“좌측을 보시면, 저어기 땅바닥에 드러누운 친구는 태풍이라고 하는데요. 애벌레랜드 사파리 월드에서 두 번째 서열을 가진 사자 되겠습니다. 똑같이 좌측 돌침대에서 암사자 초롱이, 예쁜이랑 같이 누워있는 저어기 팔자 좋은 사자가 사파리 월드의 서열 1위, 천둥이입니다.”


저 사자가 제우스고 그에게 단서를 캐물을 시간은 내가 사자 우리에 들어가지 않는 한, 지금밖에 없다는 생각에 다급하게 그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천둥이!!! 이쪽 보세요!!!”


뒷자리의 초등학생 둘은 못 볼 걸 보았다는 듯, 사자와 호랑이보다도 나를 더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인마, 너네들은 내가 얼마나 간절한지 모를 거야.


반면 디오니소스는 제 아버지인 천둥이를 우수에 찬 눈빛으로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천둥이!! 이거 맞아요? 맞으면 까딱 해줘요!”


휴대폰 전광판 어플로 천둥이를 향해 흔들며 한 마리 야생의 소녀팬마냥 부르짖었다.


천둥이를 향한 나의 온갖 재롱에도 불구하고 사육사는 아주 꿋꿋하게 진행을 이어나갔다.


“···천둥이는 사파리 월드 서열 1위 사자이기도 하지만, 유일하게 장기가 가능한 사자이기도 합니다~ 자, 천둥이 이리 오세요~”


사육사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천둥이라는 이름의 사자는 순하게 버스 앞으로 와 고양이마냥 바르게 앉았다.


“천둥이 우리 친구들에게 인사하는 거 보여줄까? 친구들 안녕~ 안녕하세요~”


천둥이가 장기를 시작하자, 디오니소스의 어깨가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아, 아버지?”


덩치가 산만한 천둥이는 사육사의 말대로 고개를 까딱이곤, 사육사가 주는 생닭 한 마리를 통째로 으적으적 집어삼켰다.


디오니소스가 심상치 않았다.


“우리 천둥이 춤춰볼까? 좌로 댄스~ 우로 댄스~”


천둥이는 좌로도 빙글, 우로도 빙글 한 번씩 돌더니, 간식을 또 받아먹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아버지이이이이!!!”


디오니소스의 오열하는 목소리가 버스 안을 가득 울렸다. 현실 부정하는 듯 고개를 도리질하며 그는 창문을 팡팡 두드렸다.

디오니소스의 입김으로 사파리 버스의 창문 위에는 김이 하얗게 서렸다.


우리가 나란히 창문에 나란히 붙어있는 것을 바라보며, 인솔 교사는 “얘들아 너희는 저러면 안 돼.”라고 아이들에게 조용히 언질했다.


당황한 사육사가 ‘천둥이 안녕~’ 할 때까지도, 버스가 유유히 사파리에서 빠져나갈 때까지도 우리는 천둥이와 단 한마디도 말을 하지 못했다.

크아앙, 소리 단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


이제, 어떡하지?

이젠 진짜 사자 우리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작가의말

본격적인 연휴 시작입니다.

본격적으로 알코올 가득한 한가위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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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안이 밖보다 큰 저장고 24.09.11 26 1 13쪽
1 세상에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곤 하는데 그게 내 일이라면 어떨 것 같아~ 24.09.11 37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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