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와인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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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똘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9.09 17:29
최근연재일 :
2024.09.18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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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4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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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간 캠프

DUMMY

5화



증조할아버지의 포도밭을 물려받은(?) 후, 양조장 사업을 결심하면서도 회사에 사표는 내지 못했다.


‘포도밭은 내 거여도, 양조장은 엄연히 그 남자 거라···.’


비유하자면 계란의 노른자는 빼놓고 흰자만 가지고 있는 상황 아닌가.


이번 내기에서 이기면 디오니소스의 양조장 소유권을 가진다. 계란의 노른자까지 먹을 수 있는 기회다.


그러니, 이번 내기가 내게는 아주 중요했다.



***



영천행이 결정되었을 때는 무려 7일의 휴가를 썼다. 그동안 자린고비 정신으로 아끼고 또 아껴 모은 휴가였다.


망가진 포도밭을 재건하겠다는 마음으로 찾아갔지만, 디오니소스의 완벽한 포도밭 관리로 자신이 뭘 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영천보다는 서울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았다. 디오니소스의 서울 공기 좀 맡고 싶다는 성화에 이르게 서울로 올라가게 된 것이다.


지난 7일을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스펙타클 했다.’


‘디오니소스 말고도 신이 한국에 있을 줄 몰랐지.’


지난 휴가를 떠올려보면 멀쩡한 간도 문드러질 것 같은 느낌이 절로 들었다.


왜냐, 우리는 영천에서는 간경화 캠프를, 서울에서는 지방간 캠프를 보냈으니까.


과장 아니고 진짜···.


나는 암만 디오니소스라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그렇게 많이 또 끊임없이 술을 마실 수 있는지 신기했다.


영천에서의 간경화 캠프 스케줄은 이러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간단한 샐러드와 함께 아침을 깨우는(?) 틴토 데 베라노(스페인식 와인 칵테일)을 마셨다.

점심은 포도밭에서 목살과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양갈비를 구워 먹으며 미국 나파벨리산 카베르네 소비뇽을 곁들여 마셨다.

포도밭에 건 환각은 풀어놓은 건지, 점심부터 포도밭에서 목살과 양갈비를 구워 술판을 벌이는 우리에게 주변 어르신들이 아는 체하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것도 직접 담그신 온갖 담금주에 막걸리를 양손에 드신 채.


‘아, 이러다 죽겠는데.’


분명 준비한 건 목살과 양갈비 3인분이었는데, 어떻게 된 게 음식은 늘어나면 늘어났지, 도무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직접 해오신 바삭한 해물파전도 모자라, 도토리묵무침, 달달한 아기 배추로 물기 없이 무치신 겉절이, 뜨끈한 손두부까지···.


거기까지는 좋았다.

정말 해물파전, 겉절이, 묵무침, 손두부 모두 맛있었는데, 문제는-


“어유~ 오랜만에 젊은 총각들 봐서 좋네~ 그러니까 귀농한다구~?”

“겉절이 한번 묵어봐. 맛나제? 우리 집 겉절이가 와따여, 와따!”

등···


눈만 마주치면 어르신들은 양옆에서 계속 내 입에 무언가를 집어넣으셨다는 것이다.


정말 이러다 배가 터져서 죽든, 급성 알코올 중독으로 죽든, 둘 중 하나로 반드시 죽을 것 같아 필사적으로 취한 척 굴자, 어르신들은 하나둘 자취를 감추시기 시작했다.


그렇게 오늘의 음주는 끝나는 줄 알았다.

알았는데···


웬걸 밥 먹은 지 고작 두 시간 지났을 뿐인데, 디오니소스가 금방 배고프다고 엥알엥알 졸라댔다. 그의 주장은 이거였다.


“너만 많이 먹었지, 나는 얼마 먹지도 못했어.”


그건 니가 나처럼 될까 봐, 매운 음식 하나도 못 먹는 외국인 컨셉 잡아서 그런 거잖아.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왔다.


지가 신생아야?

두 시간에 한 번씩 분유 달라 조르는 신생아냐고.


나는 결국 그에게 버번위스키 아포가토를 물릴 수밖에 없었다.

버번위스키 아포가토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버번위스키를 끼얹어 먹는 디저트로, 요즘 술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꽤 핫한 음식이다.

버번위스키의 바닐라, 시나몬, 아몬드, 캐러멜 등 달짝지근한 향이 바닐라 아이스크림의 맛과 잘 어울려서, 나도 자주 집에서 먹곤 했다.


“이걸, 먹으라고? 나보고?”


디오니소스는 밥그릇 안에 아담하게 담긴 버번위스키와 아이스크림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다,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한 입 먹었다.


“흥, 그럭저럭이야.”


말과는 달리 입맛에 아주 맞으시는 모양인지, 그는 창고 냉장고에서 투게더 한 통을 꺼내 버번위스키 반 병을 부어 먹었다.


이거 완전 미친 사람 아니야, 이거.


이 남자에게도 인체의 신비가 적용이 된다면··· 아마 생로병사의 비밀 설 특집 방송 정도로 나갔을 것 같다.

이 남자가 나온 영상은 대충 ‘술 마시는 외국인 하마;;’ 정도로 유튜브를 떠돌았을 테고.


밤에도 당연히 술을 마셨다.


“샤또 마고 1900 빈티지 마시고 싶은 사람~?”


정말 정말 이제는 안 마시려고 했는데-


“···하준이요.”


그는 아주 졸렬하고 치사하게도 내가 마시지 않을 수 없는 술만 골라 가져왔다.


예를 들어 샤또 오브리옹 1989 빈티지라거나, 크룩 밀레짐 1966 빈티지라거나, 보고도 눈을 의심했던 샤또 마고 1900 빈티지라거나···.


듣기만 해도 억 소리 나는 리스트들을 공짜로 술술 꺼내주니, 어찌 안 마실 수가 있겠는가.


그렇게 3일간 쉴 틈 없이 술만 마시니, 디오니소스는 지루했는지 이번에는 서울에 가자고 졸라댔다.


그래서 얼떨결에 짐 하나를 더 붙이고 이른 아침부터 서울로 향했다.

그는 한눈에 보기에도 묵직해 보이는 열쇠 꾸러미를 아주 소중한 듯 품에 안은 채 조수석에 앉았다.


한··· 열다섯 개는 되어 보인다.


“그런데, 그 열쇠는 다 뭐예요? 집 열쇠?”


내내 궁금했던 열쇠의 정체를 물었다.

분명 양조장 열쇠는 하나다. 그렇다면 나머지 열쇠는···.


“집 열쇠가 이렇게 많을 리가 있나.”

“그러면 어떻게 살았어요?”

“염소로 살면 온 동네 땅과 들이 내 집인데, 집이 필요했을 리가 없잖아.”


노숙했다는 얘기를 뭘 이렇게 거창하게.


“···그렇다면, 나머지 열쇠는 대체 뭐예요?”


은근히 떠보듯 물어보자, 디오니소스는 감았던 눈을 흘끗 뜨며 새침하게 말했다.


“사실 나와의 내기에서 이기면 얘기해주려고 했는데.”


젠장 그놈의 블라인드 테이스팅.

휴가만 끝나 봐라.


“내기에서 지면요?”

“평생 모르는 거지.”


디오니소스는 열쇠를 보란 듯이 흔들었다. 열쇠는 총 열다섯 개.


“그러지 말고 알려주세요.”

“누가 그렇게 졸라대니, 어쩔 수 없구만- 양조장 열쇠를 제외한 나머지 열네 개의 열쇠는 바로 세계 각지에 있는 내 소유의 포도밭으로 바로 갈 수 있는 문의 열쇠야.”


“영천 말고도 밭이 또 있어요···?”

“나한테는 세계 각지에 숨겨진 총 열다섯 개의 밭이 있어. ‘나에게는’ 최상의 떼루아를 지닌 곳들이지. 개중에는 도멘 데 모스의 샹베르탱 밭보다도 더 뛰어난 떼루아를 가진 밭도 있어.”


뛰어난 떼루아로 유명한 샹베르탱보다도 더 뛰어난 떼루아를 가진 밭이라.

최고의 와인메이커, 세계 최고의 와인을 만들어 ‘도멘 레 라메 던 앙주’를 이기고 싶은 내게는 더없이 유혹적인 설명이다.


열쇠의 개수 딱 열다섯 개.


“너와 내기를 건 이 양조장 열쇠도 원래 포도밭으로 통하는 열쇠 중 하나야.”


열다섯 개의 밭 중 한 곳은 영천, 그렇다면 나머지는 어디일까.


“나머지는 어떻게···.”

“양조장에 내가 만든 와인 열네 개가 숨겨져 있어. 나머지 열네 개를 찾아. 하나씩 찾을 때마다 열쇠 하나를 주지. 그 밭의 포도로 와인을 만들어 상품화하든 뭐, 지지고 볶든 나는 상관 안 할 거야.”


그 넓은 양조장에 디오니소스가 만든 열네 개의 와인이 숨겨져 있다.


디오니소스의 밭으로 와인을 빚으면 분명 정말 맛있는 와인이 나올 테다. 맛 하나에 대해서는 깐깐한 양반이니까.


그런데 그 많은 양조통 중 열네 개를 어떻게 찾지?


청수 와인을 제외하곤 그의 와인을 제대로 마셔본 적 없으니, 그만의 개성을 짐작할 수가 없었다.


“벌써부터 막막하다는 얼굴이네. 나 그렇게 째째한 사람 아니야.”


그는 힌트를 알려줄까? 하고 말을 붙이고는 샐쭉 웃었다.

진짜 얄미웠다.


“내가 만든 와인을 마셔본 자가 열네 명 있어. 그 열네 명에게서 와인에 대한 단서를 찾아.”

“그 열네 명이 누구인데요?”

“그건 알려줄 수 없지. 네가 찾아내야지.”


뭐야, 이건?

단서를 주는 것도 아니고, 안 주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짐작 가는 사람은 있긴 했다.


바로 나의 증조할아버지.


‘아니, 이거 파묘를 할 수도 없고···.’


이미 옛저녁에 돌아가신 양반을 무슨 수로 다시 깨운단 말인가.

족보에서 이름 파이고 싶은 것도 아니면, 역시 방법은 하나밖에 없겠지.


“···역시 방법은 ···굿뿐인가.”


과거 케이블 오컬트 프로그램에서 접신한 무당들이 절로 떠오른 탓이다.


“그만 중얼거리고 출발이나 해.”

“그쪽이 이상한 말만 안 해도 이러지는 않았어요.”


차량 시동을 건 후 네비게이션 목적지를 서울 본가로 찍었다.

디오니소스를 흘끗 보니, 그는 이미 잘 준비를 마친 채였다.


“얼씨구.”


몇천 년간 지구에서 살면서 차량 조수석에 앉은 동승자의 예의, 에티켓, 이딴 건 배우지도 않은 모양이다.


“···참고로 굿은 안 돼.”


좀 전에 중얼거린 걸 다 들었던 모양이다.

정말로 굿을 할 것이라 생각한 모양인지, 디오니소스는 짐짓 엄한 어조로 말을 덧붙였다.


“싫은데요.”

“안 돼. 굿은 절대 안 돼.”


그럴수록 더 반발심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

아니, 내가 단서 찾겠다는데 웬 방해야?


“단서도 안 알려주면서, 왜요?”

“접신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아? 그 자리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신이나 귀신이 무당 몸 속으로 들어가는 거라고. 만약 네 놈이 굿판을 벌린다면 거기 가장 가까이 있는 놈은 누가 되겠냐?”


아하, 접신당하는 건 싫으셨군요?


“그것도 안 하면 전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단서를 찾아야 한다고요.”


일부러 나는 더더욱 당장 굿판을 벌릴 것마냥 굴었다.

어떻게 나오나 보자는 식이었다.


“···일단 너희 증조할아버지는 아니야. 그리고 나는 ‘사람’이라고 한 적 없다?”


‘사람이 아닌 존재 중에 있다’라···.


순식간에 난이도가 훅 높아져 버렸다.

인간은 인터넷 뒤지고, 흥신소 의뢰하면 찾을 수는 있지, 신은 디오니소스가 행방을 알려주지 않으면 결코 찾을 수 없을 거였다.


“그러면 이렇게 해요.”

“뭘?”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이기면 열네 명 중 딱 한 명만 알려주세요. 그 뒤는 제가 알아서 알아볼 테니까.”


디오니소스는 민둥한 턱을 매만지며 고민하다, 이내 입술을 떼었다.


“그러지, 뭐.”


단서도 찾고, 양조장도 가져보겠어.


작가의말

알코올 가득한 연휴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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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안이 밖보다 큰 저장고 24.09.11 25 1 13쪽
1 세상에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곤 하는데 그게 내 일이라면 어떨 것 같아~ 24.09.11 37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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