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는 신을 찢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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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석
그림/삽화
Ai
작품등록일 :
2024.09.09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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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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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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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011. 천마 신앙 (1)

DUMMY

“진우 씨!”

“진우 씨는 무슨. 그냥 형이라고 불러라.”


생각해보니까 나이 차가 몇인데 형은 좀 오버네.


“아저씨라고 부르든가.”

“그럼 형이라고 부를게요. 진우 형. 이거······.”


그는 상자를 내밀었다.


“치킨 남은 거 싸 왔어요.”

“훌륭하다. 아껴야 잘 살지.”


지금이야 원 없이 쓸 수 있지만, 초기만 하더라도 동화 한 닢에도 벌벌댔다.


돈을 벌기 위해선 늘 목숨을 걸어야 하다 보니 한 닢 쓰는 게 너무 아깝더라.

또, 크게 다친다면 보험도 없는 세계에서 회복될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없었다.


그때의 버릇이 지금까지 이어졌고.


“그리고 편의점에서 맥주도 사 왔어요.”

“······너 성인이었어?”

“네. 올해 성인이에요. 생일도 지났고요.”

“겉보기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데.”

“이거 보세요.”


맥주 살 때 편의점에서 샀는지 잡지를 하나 꺼내 보였다.


“<히어로 스쿨>?”

“교단이나 헌터, 탑 공략법을 소개하는 잡지에요. 이 사람 보이시죠?”

“음?”


검아라가 멋진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아까 옆에 있던 그 친구까지.


“자청비 교단의 유망주라고 하네요. 자청비라면 한국신 중 최강인데, 여기서 유망주로 불릴 정도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오호.”

“근데 이분들도 다 성인이잖아요. 겉보기엔 키만 큰 십대 중반으로 보이는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예전에 놀랐었지.

2007년의 30대는 청년으로 보이는데, 80년대 30대는 그야말로 세월을 직격타로 맞은 아저씨, 아줌마로 보였으니까.


“한 단계 더 진보했네. 화장품이 발전한 건가? 관리법이 좋아진 건가?”

“이능을 익혀서 그래요. 노화를 방지해주니까요. 진우 형도 그렇잖아요. 40대라고 들은 것 같은데, 20대 초반으로 보여요.”

“그렇겠네.”


내가 간과한 건 교육열이다.

저쪽 세계와는 달리 이쪽 세계의 아이들은 밭일이나 허드렛일을 도울 필요 없이 어려서부터 이능을 익히는 모양이니까.

아무래도 보급률도, 성장률도 엄청 빠르겠지.


“근데 그······ 머리는 왜 자르셨어요? 긴 생머리가 잘 어울리셨는데.”

“반했냐?”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아니라고 했지만, 얼굴을 붉히는 걸 보면 마음이 아예 없진 않은 모양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화나서.”

“뭐가요?”

“처맞을 거라고 상상도 못 하는 태도가. 안 처맞고 귀하게 자란 것 같은 부류가 딱 저렇지.”

“싸가지 없다고 느끼셔서 화가 나신 건가요?”

“아니, 나처럼 불행하게 안 산 것 같아서 열 받아.”


이한결은 어이가 없다는 듯 입을 벌렸다가 다물었다.


“그거 같네요. 게임 <워 갓(War God)>의 주인공. 그에겐 신이 아니라 아버지가 필요했다.”

“타이틀 진짜 성의 없네. 워 갓이 뭐냐. ‘갓 오브 워’라고 짓든가. 근데 무슨 내용이야?”

“제우스의 아들로 태어나, 신들의 농간으로 아내와 자식을 잃은 주인공이 모든 그리스 신을 때려죽이는 내용이요. 이제는 올림포스 교단의 압력으로 발매 금지되었지만 명작이에요.”


하여간 권력을 잡으면 제일 먼저 하는 짓이 검열이지.


나였다면 검열은 안 했다.

대신 모가지를 땄겠지만.


“한강이나 가자. 뭔가 깨달은 척하면서 맥주나 한잔하고 싶다.”

“아, 한강에서 음주는 금지됐어요. 전에 사고가 나서.”

“까라 그래.”

“예?”

“내가 하겠다는데 누가 뭘 할 수 있는데?”

“아······ 네. 가죠. 안내할게요.”


적응력 빠르네.

나 같은 망나니에게 맞춰주기 쉽지 않은데.


“이제부터는 뭘 하실 생각인가요?”

“원래는 아무 생각 없었는데······.”


아까 가슴이 꽉 막히는 경험을 하고 나서 하고 싶은 일이 떠올랐다.


“내가 원하는 세상에서, 내가 원하는 걸 볼 거다.”

“······네?”

“생각해보면 이 세상은 그들의 논리로 재구성된 세계잖아.”


옛날에는 왕과 귀족에 의해.

현대에는 세계 대전의 승전국과 각 국가의 있는 자들에 의해.


그리고 지금은 신들과 교단의 지도부에 의해.


“나라고 못 할 이유가 없지.”


그럴 만한 힘이 있다면 망설일 이유도 없고.


“다 같이 살아가는 세상이잖아요. 투표를 통해 정하고······.”

“그럼 너는 왜 군대에 가야 하는 건데?”

“네?”

“사지 멀쩡한데도 안 가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데, 너는 왜 가야 하냐고?”

“그건······.”

“다수결도 웃겨. 다구리랑 뭐가 달라?”

“다수라는 건 그만큼 그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이 많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다수가 강요하면 무조건 따라야 한다?”


피식 웃었다.

내가 그걸 받아들일 성격이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 했겠지.


“그게 아니지. 신들이 오기 전, 민주주의 세계는 머릿수가 곧 힘이고, 다수가 강자니까 그들의 뜻대로 진행된 거다.”


지금은 그들 전부를 합친 것보다 내가 강하고.


“뭐할 생각이냐고 물었지? 어렸을 때는 불합리하게만 생각했던 이 세상을 내 방식대로 만끽할 생각이다. 어차피 정의 따윈 내다 버린 지 오래잖아.”


힘이 있으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나에게 이보다 좋은 세상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최강인데.


“SNS에서 떠드는 말이 맞았네요.”

“뭐라고 했는데?”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패왕의 상을 타고난 기재이자, 천상의 드높은 신마저 학살한 세계의 공적. 고려 마교의 주인이자 천하를 평정할 마신.”


유스티티아가 지옥에서 통탄하겠네.

마신으로 불리라고 준 힘이 아니었는데 라면서.


고려 마교는 또 뭐냐?

Korea 마교인가?


“하늘의 뜻을 거슬러 운명마저 삼킨 신의 천적이자 만세의 악몽이라.”


하늘의 뜻을 거슬렀다.

토르를 죽인 일을 빗댄 것이겠지만, 나에겐 유스티티아의 바람을 거슬렀다는 뜻으로 들렸다.


“우리는 그를 천마라 부른다.”


아주 종교를 만들 기세네.


“그래서 뭘 하실 생각인가요.”

“제대로 조지려면 밑에서부터 차근차근 경험해봐야 제대로 알 수 있지.”


원래는 청와대나 국회의사당부터 방문하려고 했는데, 토르를 때려죽이고 나서 느꼈다.

맛있는 건 나중에 먹어야 한다고.


“제대로 기업을 운영하려면 말단 사원부터 시작해봐야 알 수 있다는 말과 비슷하네요. 구체적으로 뭘 하실 생각이죠?”

“너랑 같이 입대나 해보려고.”

“······예?”

“대한민국에서 사병보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계급도 없잖아.”


이유없이 처맞아도 억울함을 하소연하기는커녕 도망가야 하는 처지가 존재한다니.

이게 정말 자유와 평등의 국가가 맞나?


“그리고 원래 사고치고 나면 군대 가는 거야.”


나의 경우 추가로 사고 치러 군대 가는 거지만.


***


검진우와 이한결이 한가롭게 이야기를 하고 있을 무렵.

세계의 각 정부와 교단은 여전히 긴급회의로 정신이 없었다.


특히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한국 정부는 눈 돌아갈 정도로 바빴다.


“검진우에 대한 분석 결과가 나왔습니다.”

“결과는?”

“못 이깁니다.”


회의에 참여한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신성한 국무회의에서 장난하자는 건가?”


총리가 불쾌함을 드러내며 분석관을 쪼아댔다.

그에 서민석 분석관은 억울하다는 듯이 항변했다.


“중요한 문제입니다. 총리님이나 장관님, 그리고 여러 의원님들의 바람처럼 그를 통제하려면 그를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못 이기는 데 대체 무슨 수로 통제하라고.


이길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신들에게 부탁하여 단체로 달려들면 된다.


검진우 본인이 이 위의 신까지는 어떻게 할 수 있어도, 삼 위의 신들이 달려든다면 승패를 장담할 수 없다고 했으니까.

사 위나 오 위의 신들을 끌어들인다면 확실하겠지.


하지만 신들은 기본적으로 어지간해선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마치 게임판 밖의 GM처럼, 신도라는 플레이어를 통해 의지를 드러낼 뿐이다.


이번에 토르가 등장한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라는 뜻이다.


그런 신들을 최소 셋, 많으면 다섯까지 끌어들여 합공을 하라고?

불가능하다는 말을 돌려서 말하는 것과 같다.


물론 자청비나 손오공처럼 자유롭게 얼굴을 비추는 신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들은 너무나도 자유롭기에 끌어들이기 오히려 더 까다롭다.


“신을 상처입혔다는 건 둘째치고, 애초에 개인이 신과 맞설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얻는 게 가능합니까?”

“보셨겠지만 가능합니다.”

“이론적으로 설명해 보라는 뜻입니다.”

“어······ 예를 들어 장관님들, 의원님들이 축구팀을 꾸려서 브라질 국가 대표 1군과 축구 경기를 하면 어떻게 될까요?”

“지겠죠.”

“이를 1억 년 동안 끊임없이 반복한다면요?”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낮은 확률이긴 합니다만, 가능성은 있습니다. 과학자들이 ‘절대’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대신 near zero라는 표현을 많이 쓰지요.”


사실 이는 진화론을 설명할 때 쓰는 방식이다.

매우 낮은 확률이지만 수십억 년을 거쳐 단백질에서 미생물로, 미생물에서 고등 생명체로 진화할 수 있다는 걸 설명하는 이론.


신을 이야기하는 데 진화론을 꺼내는 것도 아이러니하기도 하지만.


“좋습니다. 로또 1등도 당첨될 확률이 있기는 하고, 매주 당첨자가 나오는데 그 미소한 확률을 뚫고 절대 강자가 되는 사람도 있겠지요.”


서민석 분석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해서 다행이다.

만약 이해를 못 했다면 다르게 설명해야 할 텐데,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히는 상황이었다.


“일단은 결과가 나왔으니 결과를 어떻게 이용할지 생각합시다. 그가 어떻게 그런 힘을 얻었는지, 어떻게 신에게 상처 입힐 수 있는지는 당장은 중요한 사항이 아니에요.”


그렇게 회의장 내 사람들의 동의를 얻은 후 다시 분석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분석관님도 아시다시피, 그의 존재는 매우 중요합니다. 무너진 법치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에요.”


신들의 귀환 이후 세상은, 특히 한국은 너무나도 많이 바뀌었다.

교단의 자경 활동을 허용해야만 했으며, 법률도 판결도 교단의 입장을 반영하여 많은 것이 바뀌었다.


기존의 정치권은 이 점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해 처먹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 어려워졌으니까.

마치 부패한 관리 위에 꼬장꼬장하고 제멋대로인 직속 상사가 등장한 느낌이랄까.


그렇다고 국민들도 썩 반기지 않았다.

교단의 교리를 반영하느라, 규제나 법률은 더욱 많아졌으니까.

강력한 세속주의를 표방하는 대한민국 헌법은 바뀐 지 오래다.


“이해합니다. 실제로 교단의 활동은 극도로 위축되었으니까요. 내부에서는 교단 불처벌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라고 들었습니다.”


서민석 분석관은 동생인 서지혜에게 들었던 내용을 떠올리며 말했다.


“하지만 그를 끌어들일 수 없다면, 다시 원 상태로 돌아가겠지요.”


고위 정치인이 종교 지도자의 말을 따르는 형태.

신권 정치로.


서민석 분석관은 이 자리 모인 정치인들이 중세 시대 교황의 권위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쳤던 유럽의 왕들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절실한 이유도 알 것 같았고.


그러나 지금도 사치에 불과하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이러한 불만조차 품는 사람이 없어질 것이다.

그게 당연한 일이 될 테니까.


“그러니까 그를 끌어들일 방법을 생각해보라는 거 아닙니까.”

“저는 과학자이며 신비 분석관입니다. 제가 어떻게 그걸······.”


너희는 대체 뭐 하는데.

고스톱 해서 여기까지 왔냐?


깨톡.


“응?”

“누가 회의 중에 진동으로 바꾸지도 않고.”


깨톡.

깨톡.

깨톡.

깨톡.


처음 소리가 났을 때는 몰랐지만,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범인이 드러났다.

서민석 분석관이었다.


“죄송합니다. 바로 끄겠습니다.”

“됐습니다. 급한 용무 같은데 보세요. 잠시 휴식하지요.”


서민석은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뒤를 돌아 스마트폰을 켰다.


“어?”


동생 서지혜한테서 온 메시지였다.


- 와 대박. 오빠. 나 그 사람 봤어. 신살자.

- 야수성 넘치던데? 게다가 실력도 대단해. 손가락 긋는 것만으로 아라 이 계집애 머리를 날려버렸다니까.

- 아, 머리가 아니라 머리카락.

- 이게 아니지. 그거 알아? 그 신살자 아라 삼촌이래. 검진혁 서장님 동생.

- 게다가 토르 교단의 신도였던 사람이랑 같이 다니는 것 같은데, 대체 왜일까? 토르 신을 죽인 거랑 관계가 있나?


서민석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검진혁 경무관의 동생이라고?

설마 그분은 저번 회의 때 알면서 숨긴 건가?


나도 모르는 사이 뭔가 거대한 음모에 발을 디딘 건······.


“검진혁 경무관을 불러라.”

“헙.”


깜짝 놀란 서민석 분석관이 고개를 들어보니, 바로 옆에 국무총리가 무서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왜 남의 폰을 몰래 보냐고.

사생활 침해 아니냐고 따지는 건 보통 인간관계에서나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진짜 고위 정치인을 만나게 되면 그런 거는 따질 생각도 못 한다.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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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006. 신화의 탄생 (2) 24.09.12 196 4 12쪽
5 #005. 신화의 탄생 (1) 24.09.11 206 5 13쪽
4 #004. 성대한 환영 24.09.10 214 4 13쪽
3 #003. 신살자의 귀환 (3) 24.09.09 255 5 12쪽
2 #002. 신살자의 귀환 (2) 24.09.09 292 7 14쪽
1 #001. 신살자의 귀환 (1) 24.09.09 351 8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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