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나니 천재 기사단장의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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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9.11 00:05
최근연재일 :
2024.09.18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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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1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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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하다 (1)

DUMMY

어떠한 젊음들은 그렇다.


때때로 굉장히 눈이 부시고 아름다워서, 저절로 시선이 가게 하고 따라붙게끔 만들곤 한다.


용사의 젊음이 그렇고, 아름다운 공주의 젊음이 그렇다.


영웅의 젊음이 그러하고, 역사에 남을 성군의 젊음이 그러하다.


그러나 나의 젊음은 어떠하였는가.


내 젊음에는, 그 어떤 자취 하나도 남기어둔 것이 없었다.


다만 꽃처럼 지었다.









0




“젠장할!!”


거칠게 날아간 의자가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났다. 장인이 공을 들여 만든 오크 나무 파편이 집무실 곳곳으로 튀었다.


“하아, 하······.”


연신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들었다. 부정하고 싶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집무실 창문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저택 대문의 광경.


하나같이 무장한 병사들이 스물이다. 그들은 가로막는 하인들을 제치며 저택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네르오스 기사단의 기사단장, 베르 켈버트는 들어라! 너의 사치와 횡포는 이미 전부 드러났다! 순순히 투항해라!!”


“개자식들이···.”


엄숙한 어조로 외치는 병단장의 목소리에 이를 바드득 갈았다. 내 술을 받아먹을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날 배신해?


창문에서 시선을 떼곤 주위를 살폈다. 갑옷은 없고, 장식용으로 놓아둔 검 하나가 벽에 걸려 있었다. 나는 무게 중심조차 맞지 않는 철검을 힘겹게 떼어냈다.


이대로 잡혀갈 수는 없다. 내가,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어떻게 이 모든 걸 얻어냈는데···!


검을 들고 성큼성큼 집무실을 나섰다. 2층 중앙의 복도 끝. 그곳에 저택을 빠져나갈 비밀 통로가 있었다.


검으로 벽의 틈을 잘라내고, 몸으로 밀쳤다.


쿠구궁⎯.


육중한 소리를 내며 벽이 안쪽으로 넘어갔다. 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좁디좁은 계단.


저택 바깥으로 향하는 비밀 통로다.


“2층! 집무실에 있을 거다! 당장 올라가!”


동시에 가까운 거리에서 들려오기 시작하는 외침. 병사들이 저택 안으로 완전히 들어온 것이 틀림없었다.


시간이 없다. 달려라.


나는 이를 꽉 깨물며 땅을 박찼다.


달려라.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라도.


“엇! 저기, 저쪽 복도 끝에 있습니다!”


“비밀 통로다! 쫓아! 당장 쫓아!”


고함과 몇 겹의 발소리가 매섭게 내 뒤를 쫓았다. 흑색과 소음이 배경처럼 나를 지나친다.


“젠장···!”


돌아보면 안 된다. 잡히는 순간 끝이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어깨를 옥죄는 좁은 계단을 한참이나 내달렸다. 등에서 들려오는 위협적인 발소리를 들으며.


그렇게 몇 분간 통로를 달려간 끝에. 마침내 어둠 너머로 희미한 나무문의 형태가 보이기 시작했다.


도시 외곽의 작은 나무집으로 연결되는 통로. 근처는 사창가라 몸을 숨기기에 어렵지 않으리라.


쿠웅!


쓰러지듯 몸을 부딪쳐 문을 열었다. 힘없이 뒤로 부서져 나가는 오래된 나무문.


동시에, 뒤쪽에서 점차 고함소리가 커져간다.


“하아, 후, 하하······!”


나는 가쁜 숨과 함께 웃음을 토해냈다.


지금 와서 쫓아온들 늦었다.


일단 몸부터 숨기자. 그리고 여길 빠져나가면, 숨겨둔 자금을 모아 날 배신한 저 새끼들에게 한 방 먹이는 거다.


문을 열어젖히고 바깥으로 뛰쳐나가는 순간이었다.



퍼억!!



“······크읍?!”


머리에서 느껴지는 둔탁한 충격. 이성을 지우는 고통이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이게, 무슨···.”


쓰러지는 시야가, 한 남자를 비춘다.


당황스러운 눈에 보여오는 것은 익숙한 실루엣.


“비밀 통로. 이곳으로 나오실 거라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집사장?”


나를 제외하고 비밀 통로의 위치를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 내가, 결코 배신하지 않으리라 여겼던 인물.


그 오래된 남자의 모습을 보며, 나는 하릴없이 허물어졌다.


그것이 내 마지막 자유의 모습이었다.






.

.

.

.







정신을 차려보니 가장 먼저 보여온 것은, 녹이 슬대로 슬어버린 낡고 단단한 철창이었다.


딱딱한 돌바닥에서 흘러나오는 차가운 한기가 이성을 천천히 일깨워 나갔다. 몇 걸음만으로도 끝에서 끝까지 도달할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다.

존재하는 것이라곤 구석에 쌓여있는 건초더미가 전부.


감옥이었다.


내가 끌려올 곳이라면, 아마 이곳은 왕성 지하의 감옥이겠지.


나는 차가워진 몸을 스스로 끌어안으며 철창 밖을 살폈다.


경비는 없었으나, 이 감옥에 경비는 필요 없었다. 철창 밖은 세 걸음 앞을 보기조차 힘들 정도로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으니까.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온갖 흉흉한 상상을 자아내는 저 어둠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경비이다. 이제껏 저 어둠을 헤치고 감옥에서 빠져나간 죄수는 한 명도 없었다.


그래. 그러니까, 나 역시.


“······제기랄.”


나 역시, 이곳에서 죽으리라.


그나마도 어찌저찌 마음을 다잡고, 한기가 서린 몸을 어떻게든 다스리려는 와중이었다.



쿠우웅⎯⎯.



저 어둠 넘어. 살짝 거리가 있는 곳. 육중한 소음과 함께 희미한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누가 감옥으로 들어온 건가?


옅은 빛에조차도 눈을 찌푸리며 하양에 적응하려는 와중.


발걸음 소리가 점차 가까워졌다.



“···오랜만이네요, 단장님.”



미려한 여인의 목소리였다. 꼿꼿하면서도 부드러운 기품이 서린. 꺾인 적 없던 우아함이 깃든 목소리였다.


달빛이 들린다면 이런 기분일까 싶을 정도로.


이런 목소리를 가진 사람은, 내가 아는 한 단 한 명뿐이었다.


“······아이샤.”


가슴 언저리까지 내려오는 검은 장발을 한쪽으로 쓸어 넘긴 여자. 입고 있는 제복엔 조금의 구김조차 없었고, 자주색 눈동자는 씁쓸한 기색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네르오스 기사단 부단장, 아이샤 트릴리스.


한 달 전 전장으로 떠났던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너마저 날 배신하는 것이냐, 아이샤.”


“······단장님.”


“왜지? 누구냐. 누가 이 모든 일을 꾸민 것이냐. 누가 너에게 날 배신하라 꼬드겼지? 대체 어떤 직위를 준다기에 기사단의 부단장직을···”


“단장님!”


나는 여상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철창 밖에 선 채 주저앉은 나를 내려다보는 아이샤. 꽉 깨문 작약빛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직위요? 단장님, 누가 꼬드겼냐고요? 지금 왕국이 어떤 상황인지 정말 몰라서 하는 소리세요···?”


언제나 담담했었던 그녀의 목소리는, 물기를 담뿍 머금고 있었다.


“카린달 왕국에게 영토 절반을 빼앗겼어요. 전하께선 일주일 전 전투에서 승하하셨고. 국가 자금은 바닥난 지 오래라 군에 보급할 자원조차 부족해요.

누가 꼬드겼냐고요? 차라리 누가 꼬드겼으면 좋겠군요···! 지금 이 나라에 누군가를 매수할 돈이란 게 남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너를 전장에 보내지 않았나.”


“그리고, 단장님을 포함한 기사단 서른 명은 왕국이 전복되는 동안 저택에서 술이나 마시면서 놀고 계셨죠.”


나는 말을 멈추고 아이샤의 눈을 바라보았다. 자주색 눈동자엔 뭐라 형언하기 힘든 감정들이 엉켜 있었다. 원망? 울분? 모르겠다.


애를 써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변명하고자 하면 못 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썩어있는 것들 틈에서 나 혼자 고아하고자 하는 것. 그만큼 멍청한 것은 없다.


그러니 진즉 포기했어야지, 아이샤. 나라에 망조가 끼었던 게 한두 해도 아니고. 나처럼 즐길 수 있을 때 즐겼어야지.


“비상 회의에서는 단장님을 죽이자고 그러더군요. 다른 기사단원들은 전쟁에 투입시킬 예정이고요.”


기사단원들이라. 네르오스의 기사들 중 한 번이라도 실전을 겪어본 이들은 많지 않았다. 대다수가 허울뿐인 기사직을 뒤집어쓴 귀족 집안 자제들일 뿐이지.


결국 마지막 발버둥이라 그건가.


“그래서, 너는 날 죽이러 온 거냐.”


“아니요. 저는 단지··· 작별 인사를 하러 온 거에요.”


작별 인사. 그 단어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 단어엔 어딘지. 잘 가라는 인사보다는, 잘 있으라는 인사가 담겨져 있는 것 같아서.


“레드 캐슬에서 총력전이 있을 예정이에요. 남아 있는 병사들을 전부 그러모아서. 저 역시 그곳에 있을 테죠.”


레드 캐슬. 왕국의 마지막 요충지라 불리우는 장소.


그런가.


그곳의 전투에서 패배한다면, 그대로 이 나라는 멸망이다. 승리한다면, 어쨌건 나는 사형일 테지.


“단장님과 제가 얼굴을 마주하는 건 이번이 마지막인 거예요.”


마지막이라는 부분에선 아예 울 것만 같이 목소리가 떨려왔다. 그 아름다운 목소리가 그렇게 애절했던 적도 없었다.


“그러니, 잘 있어요. 단장님. 마지막인데 상관에게 출전 보고는 해야 할 것 같아서.”


“······.”


말을 맺은 아이샤가 홱 몸을 돌렸다. 그녀의 걸음과 함께 감옥을 채우던 불빛 역시 서서히 사그라들어갔다.


수없이 들어왔던 그 뚜벅이는 발소리를 들으며, 나는 바닥을 내려다봤다. 낡은 돌바닥이 더러웠다.


가만히 시선이 머물다, 고개를 들었다. 천장을 향해.


“고생 많았다. 아이샤 트릴리스.”


발걸음 소리가 잠시 멈췄다. 그러곤 재차 조금 들리더니.


이윽고, 문이 닫혔다.


정제된 어둠이 빈 공간을 채웠다.





.

.

.

.





아이샤가 떠난 뒤로 내가 빛이란 것을 보게 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처음 며칠 정도는 간수 하나가 빵 같지도 않은 빵과 물을 가져다주었었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는 않았다.


식수가 없어 감옥 벽 틈으로 흘러드는 빗물을 받아 마셨다. 곳곳을 기어다니는 벌레를 잡아먹거나 하는 식으로 연명해야 했다.


이대로 굶어 죽어볼까도 생각했었다. 사나흘쯤 굶었을 때 너무 고통스러워서 아무래도 관뒀지만. 온몸이 덜덜 떨리고 들이마시는 공기마저 아프게 느껴지는 감각은 맨정신으로 버틸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얼마나 살아 있는지도 모를 즈음이었다. 더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그 어떤 것도 알 수 없는 공간.


전쟁은 결과가 났을까. 감옥에 들어앉은 지도 오래 지났으니 아마 그럴 것이다.


사형수가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은 레드 캐슬의 전쟁에서 패했다는 뜻이겠지. 이 왕성이 있는 수도가 함락되는 것도 시간문제일 터다.


그렇게 답지 않은 죽음을 점치며 나는 가만히 시간을 보냈다. 전신을 찔러대는 어둠도 이제는 정겨울 지경으로.


조금의 시간이 더 흘렀다.





.

.

.

.





쿠구궁⎯⎯.


온몸으로 느껴지는 진동에 힘없이 눈을 떴다.

열량에서 배제된 몸의 눈꺼풀은 곧이라도 무너질 듯 파르르 떨렸다.


감옥 구석에 널브러진 채로 느릿하게 고개를 움직였다.


쿠궁! 쿠구궁!!


저 먼 곳부터 연이어 들려오는 굉음. 돌이 무너지고 벽들이 박살 나는 소리가 아스라이 울려온다.


카린달 왕국의 군대가 마침내 수도까지 밀고 들어온 것이겠지. 시작됐나.


왕성이 함락되면, 그 지하에 갇혀있는 난 전후 처리 과정에서 목이 베일 것이다. 타국의 범죄자를 받아줄 이유도 없으니.


아니지. 어떻게든 변명을 대어볼까. 누명을 썼다는 식으로. 한 왕국의 기사단장이 하는 말인데, 설득력은 있···


“설득력은 개뿔.”


마른 입술이 아치를 그렸다. 그래, 나도 안다.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다.


정말 죽어야 하나? 신은 내게 그걸 바라고 있었나? 손가락을 들어 허공에 원망을 끄적인다. 더러운 왕국이었고 더러운 이들이었다. 그런 사람들 틈바구니서 편하게 살아보려 한 것이 그리 잘못된 일이었나.


그것이 이토록 비참하게 죽어야 할 사유였나.


떴던 눈을 감는다. 기력을 움켜쥐고 있던 몸이 바닥에 널브러진다. 머리맡으로, 죽음이 기어 온다.


그리고.


동시에, 소리가 덮쳐왔다.



쿠구구구구궁!!



천장이 터져나가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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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회차 퀄리티를 위해 집필이 다소 늦어지고 있습니다 NEW 8시간 전 3 0 -
11 마탑 폭발 (1) 24.09.18 18 0 12쪽
10 마법사와 검기 (完) 24.09.16 30 0 14쪽
9 마법사와 검기 (1) 24.09.15 35 1 12쪽
8 기사단 죽이기 (完) 24.09.14 41 1 17쪽
7 기사단 죽이기 (2) 24.09.13 46 0 14쪽
6 기사단 죽이기 (1) 24.09.12 59 0 17쪽
5 회귀하다 (完) 24.09.11 60 1 13쪽
4 회귀하다 (4) 24.09.11 55 0 18쪽
3 회귀하다 (3) 24.09.11 66 0 15쪽
2 회귀하다 (2) 24.09.11 70 0 15쪽
» 회귀하다 (1) 24.09.11 8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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