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나니 천재 기사단장의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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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9.11 00:05
최근연재일 :
2024.09.18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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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1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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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회귀하다 (完)

DUMMY

모든 인간은 후회를 한다. 그것이 줄리언의 생각이었다.


그 어떤 대단한 인물이라 할지라도. 그 어떤 신중한 인물이라 할지라도.


그 정도는 다를지언정, 과거의 어떤 선택을 보며 괴로워하지 않는 인간은 이 세상에 없다. 그야 인간은 자신의 과거를 잡아먹으며 살아가는 생물이니까.


그러나 눈앞의 이 노인은 무엇인가가 달랐다.


이 노인은 더 이상, 후회에 괴로워하고 있지도 않았으니까.


아무런 의지도 의미도 없이. 단지 땅의 기억만을 더듬으며 살아가는 삶. 그런 삶을 살아가려면 대체 얼마나 지독한 후회를 해야 한다는 말인가. 줄리언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자신의 영혼이 죽었다고 말하려면.


자신이 껍데기라고 말하려면, 대체 얼마나 괴로운 고민을 해와야 한다는 말인가.


이 노인은 그런 사람이었다.


자신의 삶이 옳다고 긍정도, 틀렸다고 부정도 할 수 없는 사람. 어느쪽 하나라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은 무너져 내릴 테니까. 그래서 그저 이대로 자신의 시간을 멈추기로 작정한 사람.


줄리언은 이제껏 그런 사람을 본 일이 없었다.


그렇게 되려면 어떠한 일들을 겪어야만 하는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여상한 표정으로 차를 홀짝이는 눈앞의 노인.


베르 켈버트···. 랬던가.


줄리언은 그제야 노인의 검은 검기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건, 이제껏 수많은 색들을 덧칠하고 덧칠한 끝에, 더는 아무런 색도 그 위에 덧그릴 수 없게 된 그런 흑색이었던 것이다.


아주 지독한 흑색이었던 것이다.


그 순간, 줄리언의 시선이 제 가방으로 가 닿았다.


수많은 마력초와 약재가 담겨있는. 그의 전부와도 같은 여행 가방.


줄리언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래, 이건 미친 짓이야.


그렇지만 하지 않고 견딜 수 있나?


줄리언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어르신. 혹시 말입니다.”


“음?”


노인은 분명 이런 성격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리 허허롭게 웃고, 이리 조곤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줄리언은 노인의 본래 성격이 궁금했다.


“만일···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찌 하시겠습니까.”


“······뭐?”


젊었을 적의 그대는 본디 어떤 사람이었던가.


그 모든 끔찍한 후회들을 제 손으로 만들어낸 어리석은 그대는.


“그게 무슨 소리인가.”


노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리 물어왔다. 그의 표정에는 숨길 수 없는 경계심이 드러나 있었다.


“저는 사실 카린달 제국 소속의 약초꾼입니다.”


줄리언은 여행 가방을 들어 매듭을 풀기 시작했다.


“황제 폐하의 명을 받아 제국과 폐하께 도움이 될 희귀 마력초들을 찾아다니는 것. 그것이 제 직업이지요.”


줄리언의 가방이 열리자 노인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어마어마하게 순도 높은, 그것도 매우 희귀한 종류의 마력들이 그 가방 안에서 뒤엉켜 흘러나왔으니까.


“그리고 폐하께서 제게 찾으라 명령한 것 중에는, 한 가지 아주 특이한 약초도 있었습니다.”


가방을 뒤적인 줄리언이 그 안에서 꺼내든 것은.


“···나뭇잎?”


짙은 잎맥이 돋아난. 손바닥만 한 크기의 커다란 나뭇잎 한 장이었다.


“그렇게 보이지만, 이 녀석은 평범한 나뭇잎이 아닙니다. 월명초라고 하는 녀석이지요. 들어 보셨습니까.”


노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레드 캐슬에는 수많은 마력초가 자라지만, 노인은 그런 것들엔 일절 관심조차 없었다. 그것들이 어떤 효력을 가졌는지 알 리가.


“이 녀석은 백년에 한 번씩만 자라난다고 하는 아주 희귀한 마력초입니다. 그마저도 일반적인 나뭇잎과 구분하기가 힘들기에 인간의 손에 들어갔던 적이 극히 희박하죠. 3대에 걸쳐 이 약초에 대해 연구해온 저희 집안에서야 겨우 찾아낸 녀석입니다.”


그런 귀중한 녀석이지만, 효력은 매우 단순한 편이었다.


줄리언은 숨을 잠시 들이쉬고는, 입을 열었다.


“이 약초를 복용한 사람을··· 과거로 회귀시켜 준다는 것.”


“······뭐?”


“말 그대로입니다. 회귀. 물론 어디까지나 기록에 의해서이지만요. 이 약초를 복용했다고 알려진 유일한 인물은 오백 년 전의 ‘용사’ 뿐이니까요.”


용사. 그 이름은 노인도 잘 알았다.


아주 옛날 마신으로부터 세상을 구했다던 영웅. 노인조차 태어나기 전 일이었기에 동화처럼 전해져오던 인물이었다.


그러고 보니···.


“용사는, 자신이 미래에서 왔다고 했었댔지.”


“바로 그겁니다. 그 당시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용사는 죽기 전 이 약초에 대한 기록을 남겨 두었었지요. 그렇게 저희는 알게 된 겁니다. 과거로 회귀한다는, 그 기적을 일으킬 방법을.”


“······.”


“하지만. 이런 약초를 복용하려면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조건?”


줄리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집안의 노력과 제국의 지원으로 월명초를 찾아낸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월명초는 복용한 모든 이에게 효력을 내는 것이 아니란 점이었다.


“이 약초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자에게만 효능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


노인은 찻잔을 든 자세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의 검은 동공에는,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황제는 이 약초를 복용할 수 없었다. 검성도 마찬가지. 그들은 모든 것을 가진 존재이니까. 약초에 담긴 마력이 그들의 손에 쥐여 쥐는 것을 거부했다.


“끝까지 발버둥 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이. 모든 사랑하는 것들의 죽음을 제 두 눈으로 겪어온 이. 과거의 용사는 그리 적어두었습니다.”


아주 오랜 시간 죽음을 견뎌온 이만이, 겨울을 끝낼 자격을 얻을 수 있다고.


줄리언은 아무래도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느끼며 미소를 지었다.


“어르신께 그 무엇보다 잘 어울리는 기적이 아닙니까.”


“그런 것을···.”


노인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귀중한 것을··· 왜 내게 준단 말인가. 나는 그럴 자격이 없을 텐데.”


“아니요.”


그 표정은, 일전에 노인이 단 한 번 지었던 적이 있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또렷하게 기억나는 그날. 노인의 영혼이 죽어버린 그날.


무너져가는 왕국의 공동묘지에서,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은 한 소년의 앞에서, 노인이 지었던 표정이었다.


“자격이란 건 누군가에 의해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지. 그리고 제가 보기에, 이 자격은 어르신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노인의 행동이 없었다면, 노인의 말이 없었다면 자신은 월명초를 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이건 갑작스러운 행동도, 기연도 아니었다.


그가 오랜 시간 찾아 헤매던 답을, 우연찮게 자신이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니 그 해답은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노인은 아무래도 영웅은 아니었다. 이 약초의 주인이던 전설 속 용사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렇기에 줄리언은 이 약초를 복용할 인물이 노인뿐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망나니.


이 노인은 분명 망나니였을 거다.


줄리언은 한참을 생각에 잠긴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탁자 위에 월명초를 살며시 내려놓았다.


“이것은 제 목숨값입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시지요. 월명초는 여기 두고 가겠습니다. 사용하지 않으시더라도, 당연하지만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


“호의 감사했습니다. 아무래도 레드 캐슬에는 못 들를 것 같으니, 저는 이만 돌아가야겠어요. 안녕히 계십시오.”


어르신의 앞길이 평온하기를. 줄리언은 그리 말하며 가방을 둘러멨다. 월명초의 무게가 사라진 가방은, 어쩐지 홀가분할 정도로 가벼웠다. 마치 맞지 않던 물건이 제 주인을 찾아 떠나간 것처럼.


터벅터벅. 나무집을 나서려는 줄리언에게 문득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고리를 잡을 즈음이었다.


“···자네는, 정말 그 소년을 닮았구만.”


“예?”


“······아무것도 아닐세. 그 소년과도 자네처럼 다섯 시간가량을 함께 있었지. 그렇게 내 오십 년을 앗아갔어.”


어딘지 잠긴 듯한 그 목소리에, 줄리언은 미소를 지었다.


“저도 어르신의 오십 년을 바꿀 수 있다면 좋겠군요.”



줄리언은 나무집을 나왔다. 뼈까지 시려오는 세찬 바람이 줄리언을 반갑게 덮쳤다. 그는 반사적으로 양팔을 끌어안은 채 오들오들 떨었다.


“으아, 날씨 진짜 개떡 같네.”


피어오르는 새하얀 입김.


줄리언은 그를 따라 하늘로 시선을 들어 올렸다. 구름처럼 새하얀 하늘은 언제야 멈출는지 눈덩이들을 펑펑 쏟아내고 있었다.


‘월명초는 어떻게 되려나.’


모든 것은 노인의 선택이긴 했다. 먹는 것도, 먹지 않는 것도. 사실 기록으로만 전해져오는 것이라 효력이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은 거고.


그럼에도, 줄리언은 노인이 어떤 선택을 할지 알 것만 같았다.


“좋아. 나도 후딱 돌아가 보자고.”


줄리언은 머리를 긁적이며 눈길을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1



아이샤 트릴리스는 짜증이 났다.


그녀는 그것을 감출 생각도 없이, 분노가 서린 걸음걸이로 터벅터벅 기사단의 복도를 걸어갔다. 그녀를 마주친 수많은 기사와 관리인들이 당황하여 옆으로 비켜설 정도였다.


그럼 그녀가 왜 이렇게 짜증이 났는가.


이유는 단순했다.


“이번에도 또 멀쩡한 영애들을 건드려서···!”


자신의 상관이자 네르오스 기사단의 기사단장.


베르 켈버트.


바로 그가, 어젯밤 한 파티에서 술을 진탕 먹은 채 귀족 영애와 하룻밤을 보낸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백작이자 왕국 중심을 수호한다는 인간이, 이제 갓 성인이 된 영애의 순결을 뺐다니! 그쪽 가문에서 날아온 항의 서신만 벌써 세 통이었다.


무엇보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의 아이샤 본인의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왕국의 모든 여자들을 안기라도 할 심산인 거야···?’


더는 실망할 거리가 없을거라 생각해도, 매일 같이 새로운 실망이 머리를 들이밀고 있었다.


아이샤는 마침내 기사단의 단장실 앞에 도착했다. 베르의 이름이 적혀 있는 고풍스러운 나무문.


그녀는 퉁명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단장님, 계시죠? 어제 일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지금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


역시나 아무런 답변도 없다. 이제는 익숙한 과정이었다. 아이샤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단장실 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보여온 것은──


“단장······ 님···?”


햇빛이 사선으로 내리쬐는, 고풍스러운 단장실 안.


제복을 입은 사내 하나가 어색한 자세로 책상 앞에 서 있었다. 처리하지 않아 늘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서류 몇 장을 들고서는.


짧게 자른 검은 머리칼이 사월의 바람에 옅게 흔들린다. 어젯밤의 술기운이 남은 건지 다크써클이 어린 눈은, 약간은 멍하게 단장실 곳곳을 훑고 있었다.


아이샤는 익숙하지 않은 남자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렸다. 왜 저러고 있지? 평소 같으면 의자에 눕듯이 앉아서 지겹다며 자신을 맞이해야 할 텐데?


“단장님···?”


“아.”


조심스레 그를 부르자, 멀거니 서 있던 남자가 마침내 고개를 돌렸다.


약간은 피폐한. 그러면서도 늘 그렇듯 오만한.


그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얼굴이 아이샤를 마주한다.


“괘, 괜찮으십니까, 단장님? 혹시 어디 아프기라도 하신──”


오늘은 반드시 따지겠다는 다짐은 금세 사라지고, 평소와 다른 남자의 모습에 걱정이 피어오를 무렵.


“······아이샤.”


그가, 잠긴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왜, 왜 그러시죠···?”


아이샤가 긴장한 어조로 대답하자.


오랜 꿈에서 깨어난 듯, 그 남자는, 아주 그리운 것을 마주한 듯.


천천히.


아이샤에게로 다가왔다.


“무슨 일 있으신··· 흐읍?!”


그리고, 그녀를 끌어안았다.


아이샤는, 그대로 그 남자의 커다란 덩치에 빨려 들어갔고.


제 어깨 위로 파묻히는 남자의 머리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단장님···?!”


당황하여 빳빳하게 굳은 아이샤의 몸.


그 체온과 선을 바스러질 듯, 그렇지만 다정하게 끌어안으며, 마침내 남자는 생각했다.


이건 정말로 지나치게 긴 악몽이 아니었던가 하고.


나는 돌아왔다.


겨울의 끝에서, 다시 봄으로.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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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나니 천재 기사단장의 회귀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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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회차 퀄리티를 위해 집필이 다소 늦어지고 있습니다 NEW 7시간 전 3 0 -
11 마탑 폭발 (1) 24.09.18 17 0 12쪽
10 마법사와 검기 (完) 24.09.16 30 0 14쪽
9 마법사와 검기 (1) 24.09.15 34 1 12쪽
8 기사단 죽이기 (完) 24.09.14 41 1 17쪽
7 기사단 죽이기 (2) 24.09.13 45 0 14쪽
6 기사단 죽이기 (1) 24.09.12 58 0 17쪽
» 회귀하다 (完) 24.09.11 60 1 13쪽
4 회귀하다 (4) 24.09.11 54 0 18쪽
3 회귀하다 (3) 24.09.11 65 0 15쪽
2 회귀하다 (2) 24.09.11 69 0 15쪽
1 회귀하다 (1) 24.09.11 8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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